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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릿한 세계에서 발견한 선명함

파스칼의 방에서

by 무아제로

1. 블러 처리된 세상


결막염이 심해져 각막까지 손상되었다. 한쪽 눈에는 치료용 렌즈가 들어 있고, 다른 쪽 눈에는 연고가 발라져 있다. 양쪽 눈 모두 뿌옇다. 세상이 블러 처리된 것처럼 보인다.


모니터 앞에서 나는 준시각장애인이 되었다. 코를 거의 댈 정도로 가까이 가야 글자를 읽을 수 있다. 핸드폰의 SNS는 한참을 요리조리 돌려봐야 겨우 읽힌다. 책은 당연히 읽을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눈을 감고 유튜브를 듣는다.


2. 광선공포증


이른 아침과 어둑해지는 저녁엔 괜찮다. 문제는 점심 시간 전후다. 햇빛이 강해지면 눈이 부셔 눈을 뜰 수가 없고 눈물이 계속 흐른다.


손상된 각막은 빛에 민감하다. 신경이 노출되어 있어 한낮의 자연광은 견딜 수 없는 고통이다. 광선공포증. 아름다운 이름의 괴로운 증상.


그러나 나는 매일 50분 넘게 운전해서 출퇴근해야 한다. 대중교통과는 거리가 먼 곳, 교대 근무제로 운영되는 아동 보호 시설. 내가 없으면 누군가는 쉬지 못하고 계속 나와야 한다.


휴일 포함해서 나흘을 쉬었다. 더는 쉴 수 없었다. 인력 부족. 책임감. 어제보다 괜찮아진 것 같아서 출근했다.


3. 강제된 고요


퇴근 후, 세상은 여전히 블러 처리되어 있다. 나는 눈을 감고 유튜브를 듣는다. 오디오북을 듣는다. 팟캐스트를 듣는다. 그리고 잠을 잔다.


평소보다 훨씬 많이.


4. 원망하지 않는 마음


이상한 일이다. 내 상황이 원망스럽지 않다.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 잠을 많이 자니 눈은 팅팅 부었는데 피부에서는 윤이 난다.


술도 못 마시지, 잠 잘 자지, 회사도 그동안 안 나갔지, 월급은 들어왔지.


몸이 말한다. 아, 이제야 좀 쉬는구나.


그동안 얼마나 지쳐 있었는지를 비로소 깨닫는다. 교대 근무, 긴 출퇴근 시간, 아동 보호라는 무거운 책임감. 퇴근 후에도 목표를 이루려고 공부하는 삶.


아프기 전까지 나는 쉴 명분이 없었다.


5. 내면을 보는 시간


눈이 불편하니 내면을 보려고 한다. 바깥을 볼 수 없으니 안을 본다. 내 안을 관찰하는 일이 유일한 흥미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고요해서 행복하다.


6. 행복에 대하여


행복은 도파민이 터지는 것이 아니다. 행복은 평온함이다.


우리는 자꾸 무언가를 성취하고, 얻고, 자극받는 것을 행복이라고 착각한다. 지금을 참아가며 무언가를 이루려고 나아가는 삶. 그것도 의미 있는 삶이지만, 그게 행복은 아니다.


나도 퇴근 후 공부를 한다. 목표를 향해 노력한다. 그러나 나 자신을 들들 볶지는 않는다. 노력하는 삶이든 그렇지 않은 삶이든, 자기가 즐겁다면 그게 행복이다.


7. 블러 속의 선명함


세상이 흐릿해지니 오히려 더 깊이 보게 되었다. 평소라면 바깥으로 향했을 시선이 안으로 향한다.


눈은 팅팅 부었지만 피부에서는 윤이 난다. 세상은 블러 처리되어 있지만 내면은 선명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모든 것이 보인다.


8. 파스칼의 방


파스칼은 말했다. 인간의 모든 불행은 단 하나, 방 안에 조용히 머물러 있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과 단둘이 있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조용히 혼자 있으면 불안하고, 공허하고, 자신의 유한함을 직면하게 된다. 그래서 끊임없이 바깥으로 도망친다.


17세기에는 사냥, 도박, 오락이었다. 지금은 스마트폰, SNS, 유튜브다. 형태만 다를 뿐 본질은 같다. 우리는 끊임없이 무언가로 시간을 채운다. 고요함이 두렵기 때문이다.


파스칼은 이것을 기분전환이라고 불렀다. 진짜 자기 자신을 마주하지 않기 위한 도피. 죽음, 허무, 실존적 불안으로부터의 도피.


그런데 역설적으로, 이렇게 도망치는 것이 바로 불행의 근원이다. 자기 자신을 마주하지 않으면 진정한 평화도, 행복도 없다. 끊임없이 외부의 자극을 찾아 헤매다가 결국 공허함만 남는다.


나는 지금 강제로 파스칼의 방 안에 있다. 눈을 감고 듣고, 쉬고, 내면을 관찰한다. 그리고 이 고요 속에서 행복을 발견한다.


9. 회복 후에도


눈은 회복될 것이다. 며칠, 혹은 몇 주 후면 나는 다시 선명한 세상을 볼 것이다. 모니터 앞에서 코를 들이밀지 않아도 될 것이다. 한낮의 햇빛도 견딜 수 있을 것이다.


그때 나는 기억할 것이다.


이렇게까지 쉬고 싶었다는 것을. 이렇게까지 지쳐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강제로라도 멈춰야만 발견할 수 있었던 것들이 있었다는 것을.


행복은 평온함이라는 것. 고요 속에서 자기 자신을 관찰하는 것이 얼마나 귀한 시간인지. 노력하되 자신을 괴롭히지 않는 삶. 목표를 향해 가되 그 과정 자체를 즐기는 삶.


10. 역설


시력을 잃었을 때 비로소 보았다. 세상이 흐려졌을 때 삶이 선명해졌다. 눈을 감았을 때 내면이 열렸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이 보는 것이 아니라 덜 보는 것, 더 많이 하는 것이 아니라 덜 하는 것, 더 빨리 가는 것이 아니라 잠시 멈추는 것인지도 모른다.


방 안에 조용히 머물러 있을 줄 아는 사람. 자기 내면을 관찰할 줄 아는 사람. 노력하되 자신을 괴롭히지 않는 사람. 지금 이 순간 괜찮다고 느낄 줄 아는 사람.


11. 고요 속에서


세상은 여전히 블러 처리되어 있다. 그리고 나는 고요해서 행복하다.


이 순간을 잃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한다. 눈이 회복되어도, 다시 바쁜 일상으로 돌아가도, 이 평온함을 기억해야겠다고.


눈이 부은 채로, 피부에 윤을 머금은 채로, 나는 그런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세상이 흐릿해졌지만, 나는 지금 어느 때보다 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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