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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gnes Sep 15. 2024

남편이 좋아하는 글만 쓸 수는 없어

남편은 내 브런치를 구독한다. 구독할 뿐만 아니라 열심히 읽고 좋아요를 눌러주고 가끔 금전적으로 응원도 해 준다. 브런치 응원료는 수수료가 매우 세다고(무려 30%나 된다고) 알려 줬지만, 그래도 하고 싶은지 가끔 한다. 남편이 아내에게 돈을 주고 싶으면 그냥 현금으로 주면 될 걸, 괜히 카카오에 수수료를 내고 주는 느낌이 없지 않아 있지만, 그냥 내버려 둔다. 재미있으니까. 남편이 가장 좋아하는 장르는 자기 아들 이야기와 처형 이야기다. 아주 산뜻하다며, 이런 글을 많이 썼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나는 브런치에 크게 세 분야의 글을 쓰는데, 가장 많이 쓰고 가장 사랑받는 장르는 단연코 어머니 이야기다. 내 브런치의 시작도 어머니였다. 어머니라는 주제는 정말이지 모두에게 공감받는 장르인 것 같다. 출판사에 투고를 시작할 때 나는 두 개의 원고를 들고 있었다. 두 개의 원고는 분위기가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매우 달라서, 출판사를 선별해 투고해야 했다. 그때도 단연코 어머니 이야기가 더 반응이 좋았다. 그래서 당연하게도 내 첫 책은 어머니 이야기가 되었다.


다음으로 많이 쓰는 분야는 한국어 교사 이야기다. 나는 한국어 교사 이야기로도 꼭 책을 쓰고 싶은데, 사실 한국어 교사 이야기에 대한 글은 독자 반응도 출판사 반응도 어머니 이야기만 못하다. 그래서 이게 내 필력의 문제인가 글감의 문제인가를 나는 요즘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그리고 3-4년 간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에 대하여 쓰다 보니, 어느 순간 내가 비슷한 이야기를 쓰고 있다는 느낌도 든다. 게다가 내가 좀 예민한 이야기들은 제외하거나 에둘러서 쓰는 경향이 있어서, 컬러풀한 글이 나오지 않는 것도 느낀다(여기까지 쓰고 보니, 정말 필력의 문제인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아무튼 그래서 한국어 교사 이야기는 지금 좀 정체기다.


세 번째로 많이 쓰는 글은 책에 대한 이야기다. 나는 브런치에 <노년을 읽습니다>라는 브런치북을 연재하고 있는데, 나는 인스타그램에도 책 이야기를 정말 많이 쓴다. 노년, 죽음, 돌봄 등에 대한 책 서평은 브런치에 써내고, 그 외의 책 이야기들은 인스타그램에 쓴다. 나는 읽는 것이 정말 좋은데, 읽다가 보면 쓰고 싶은 이야기가 많이 생긴다. 그러니 읽고 쓰고 읽고 쓰고. 이게 내 삶인 것 같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쓰는 글들은 내 생활 이야기. 아이 이야기와 가족 이야기다. 가끔, 정말 가끔, 낭만 고딩에 대한 이야기를 쓰는데, 남편의 반응은 기대 이상이다. 자기 아들 이야기이니 본인에게 더더욱 재미나게 여겨지는 것을 생각지도 못하는 눈치다(지난 글 <우리 집 고딩 근황>을 읽으면서는 큭큭 거리면서 웃기까지 했다). 작년에 내 언니의 사랑 이야기에 대해 썼을 때에는, 정말 흥미진진하다면서(논픽션이므로 본인은 결말을 알면서도) 이런 글이 자기 취향이라고 몇 번을 어필했다. 나는 그때마다 말한다. 내가 남편이 좋아하는 머리 스타일만 할 수는 없는 것처럼, 남편이 좋아하는 옷만 평생 입을 수는 없는 것처럼, 남편이 좋아하는 글만 쓸 수는 없다고. 하지만 내 남편은 늘 그러는 것처럼 또다시 같은 말을 반복할 테고, 그럼 나는 회심의 한 방을 날릴 계획이다.


자꾸 그러면, 남편 이야기를 브런치에 연재하는 수가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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