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엄마는 50대 중반이었다. 아빠는 힘겨운 방황기를 거쳐 제2의 직업에 안착한 상태였고 모처럼 우리 집은 평화로웠다. 아빠에게 더 이상 고된 야근과 적은 월급으로 인한 고통이 없었고 그것은 우리 가족 모두의 평화였다. 우리는 실로 오랜만에 햇살 가득한 거실에서 마음껏 먹고 쉬고 웃을 수 있었다.
오랜만에 시골에서 올라온 외할아버지가 엄마에게 경제 상황에 대한 질문을 했던 것 같다. 그래 새로 시작한 서 서방 일은 좀 어떻니. 벌이는 괜찮은가. 월급쟁이 할 때랑 비슷한가 어쩐가. 못 잡아도 20년 전 일이니 외할아버지 연세가 일흔 후반이었던 것 같다. 어휴, 우리 할아버지 날아다닐 때였구나.
엄마는 장녀로서 외할아버지를 만족시켜 주고 싶은 마음과, 솔직하게 말하고 신세 한탄 하고픈 마음이 왔다 갔다 하는 듯 보였다. 뭐 월급 받을 때보다는 훨씬 괜찮지만, 이것 빼고 저것 빼고 뭐 내고 뭐 내고 그럼 남는 것도 없네요. 엄마가 그런 이야기를 두서없이 늘어놓는데 가만히 듣던 외할아버지가 이렇게 말하셨다.
1년 먹고살았잖니. 먹고 산 게 그게 큰일 한 거다.
맞다. 정말 맞다.
1년 동안 먹고 산 거 그것도 다 돈이었는데 그걸 잊었다. 먹고살고 그러고 나서 남은 걸 저축도 하고 보험도 넣고 그런 거였으니 가장 큰 일은 잘 해낸 것 아닌가.
얼마 전 아이의 주민등록증을 발급하라는 우편물이 왔다. 드디어. 사람이 되는구나. 이제 아이가 대학에 가면 대학 등록금도 내줘야 하고 대학생 용돈도 줘야 하고 그리고 독립도 시켜야 하고 우리의 노후도 설계해야 하고. 지하철을 30년 가까이 탔는데 지금의 나는 괜찮은 것인가. 난생처음 주식 계좌를 개설하면서 관심도 없었던 퇴직 연금의 운용상황을 열어보고, 5년 후 그리고 10년 후의 우리 가족에 대해 머리를 굴려보고 그러면서 종종 심난했다.
그런데 며칠 전, 외할아버지가 했던 그 말이 불쑥 떠올랐다. 먹고살았잖니. 아이가 고2가 되도록 잘 먹고 잘 살았다. 지나온 세월은 자산이다. 내겐 열심히 건강하게 잘 살아온 가족과의 18년이 있다. 그게 참 든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