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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nseen Universe May 10. 2020

축제기획자 딸이 아빠에게 쓰는 편지

[나도작가다] 공모전 참여글





그저 집에 들어가면 몇 시간 잘 수 있는지
속으로 세어보며 눈만 껌뻑거리고 있었다. 


아빠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지금으로부터7년 전이다. 아빠가 떠난 지 벌써 그리 되었다는 사실이 나는 아직도 생경하다. 7년 전. 아빠에게 큰일이 생긴 것 같다는 친척 민수의 전화를 받던 저녁 열 시 반, 나는 마감회의를 하고 있었다. 유통업계 중에서도 힘들기로 소문난 곳이었다. 스물 넷 신입사원이었던 나는 도대체 뭘 해야 하는지도 모른 체 그저 집에 들어가면 몇 시간 잘 수 있지 속으로 세어보며 눈만 껌뻑거리고 있었다. 


 

이상하게 처음 보는 전화번호로 자꾸 연락이 왔고, 그것은 사촌 민수의 바뀐 전화번호였으며 주변의 경황없고 산만한 소리와 함께 아빠의 소식을 전했다. 집이 다 불타버렸다, 아빠는 주무시고 계셨는데 병원으로 이송 중이야, 상황이 안 좋으신 것 같다 빛나야. 아빠를 마지막으로 본 건 까마득하고, 통화는 언제가 마지막이었더라… 잠시 떠올리다가 그마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사실에 나는 바닥에 주저앉아버렸다. 

 

인생은 덧없고, 짧고, 다 죽는 것이라는
사실을 만난 건 그러니까 스물넷의 일이다. 


아빠는 그렇게 사진 한 장 남기지 않고 생을 마감했다. 모든 것은 불씨 속에 타올라 훨훨 날아가 버렸다.  아빠의 형제들은 불타 이내 스러져버린 집을 정리한 뒤 터를 다듬어 새 집을 올렸다. 아빠는 그렇게 언제 이 세상에 오기나 했었냐는 듯이 흔적 하나 남기지 않고 떠났다. 인생은 덧없고, 짧고, 다 죽는 것이라는 사실을 만난 건 그러니까 스물넷의 일이다. 

 


아빠와 가을에 이별하고, 나는 이듬해 초에 퇴사를 했다. 그 두 사건 사이의 연결고리가 있었는지, 있었다면 얼마만큼의 연계성이 있었는지 재 볼 수는 없지만 아빠의 떠남으로 어떤 결심이 내게 섰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중 하나는 인생이 너무나 짧고, 유한해서 내가 가진 것이 ‘지금’밖에 없다는 사실이 담담하게 다가왔다. 아빠 생의 마지막 날, 잠자리에 들던 아빠에게 그것이 마지막 밤이 될 줄은 몰랐던 것처럼 내 삶에서도 내일을 기약한다는 것은 어쩌면 교만한 기대일지도 몰랐다. 무릇 아낄 것 중에 더욱 때를 아끼자. 


무릇 아낄 것 중에 더욱 때를 아끼자.  


나는 주저함 없이 곧장 내가 바라던 행복의 원형으로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퇴사 후 나는 무용을 좋아하던 철부지 여섯 살부터 키워온 예술판에 발을 들였다. 축제 기획자로서 나는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축제기획자로서 내디딘 새로운 삶의 시작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통장의 잔고는 빠르게 사라졌고, 다음 달 급여일은 손에 잡히지 않을 만큼 멀리 있었다. 

그토록 바란 꿈이 고작 이 정도의 열정이었다는 생각에 
나는 입이 마르는 기분이 들었다.


증발하는 잔고보다 두려운 것은 미래였다. 미래가 전혀 그려지지 않는 매일은 차가운 밥과 같아서 나는 하루하루를 찬밥 삼키듯 열심히 씹어 간신히 소화했다. 이윽고 사 계절을 다 소화하기도 전에 나는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목 끝까지 울컥울컥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부끄러웠다. 그토록 바란 꿈이 고작 이 정도의 열정이었다는 생각과 나를 과대평가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나는 입이 마르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벌써 7년이나 지났다. 


가진 것 하나 없던 그가
영원히 떠남으로 남겨준 무수한 별들에
나는 고맙다고 해야 할지. 


서울세계무용축제를 시작으로 전주국제영화제, 제천국제영화제를 거쳐 지금은 아시아최대음악시상식인 MAMA(Mnet Asian Music Awards)와 세계최대 케이컬쳐 페스티벌인 KCON을 만들고 있다. 유산이라고 물려준 것은 깡밖에 없던 아빠가 영원한 이별로써 내 인생에 이토록 많은 선물을 남길 것이라고는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가진 것 하나 없던 그가 영원히 떠남으로 남겨준 무수한 별들에 나는 고맙다고 해야 할지. 평생 그리던 축제기획가로서의 꿈은 강렬하게, 어쩌면 떠밀리듯이 그렇게 시작되었다. 




참고

1. 본 글은 [나도 작가다] 공모전 지원글입니다.

2. 하이라이트된 부분을 제하면 A4용지 1.5장분량(공백포함 1,690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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