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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이 Nov 13. 2024

제 5부

결말이 아닌 죽음

2007

또 다른 범인     


   연휴에 주말까지 겹쳐있어서 나는 며칠 동안을 여유 있게 쉴 수 있었다. 그래서 현기증이 나는 일도 없어졌고 조만간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해봐야지 했던 생각도 지워지고 없었다. 또 며칠만 출근을 하면 정말로 새해가 온다. 또 다시 신정 연휴가 되면 나는 시골집에 다녀올 생각을 하고 있었다. 경찰서로 발령을 받아 오면서 맡았던 업무에 새로 적응하려니 주말에도 출근하는 날이 잦았었고 더욱이 단 몇 달 사이에 부서를 두 번이나 옮기지 않았던가. 나는 모처럼 집으로 내려갈 생각에 마음이 조금 들떠 있어서 그랬는지 시간이 평소보다 느리게 가는 것 같았다. 엄마는 모범생처럼 외래 날짜에 맞춰 병원을 성실하게 다니고 계셨고 아직까지 특별한 이상 증세 없이 잘 지내고 계셨으므로 모든 것이 순조롭다는 생각까지 들기도 했지만 물론 엄마가 완치판정을 받으신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마음속에는 항상 엄마에 대한 걱정이 마치 숨을 쉬는 것처럼 당연한 일로 여겨지고 있었다. 마침 엄마와 전화통화를 한 지도 며칠 전이나 되었고 이번 신정 연휴에는 집에 내려갈 것이라고 말씀도 드리려는 생각으로 전화를 걸었다. 나는 전화를 미리 걸어 보지 않았더라면 어떡했을까 싶었다. 엄마는 본래 바보같이도 그렇게 참을성이 많은 사람이었다. 어쩌면 내가 엄마의 그런 면을 똑 닮은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엄마는 지금 다시 병원에 입원하고 계시고 아버지는 병간호를 하시려고 함께 있기 때문에 어차피 연휴에 집에 내려가 봤자 아무도 만나지 못할 것이다. 아마 그곳에서도 나 혼자서 연휴를 보내게 될 것이리라.       

   나는 병원에 입원 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여태까지 모든 것이 순조롭게 잘 되어오고 있다고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내가 집에서 떠나오게 된 뒤로 사실은 그게 아니었단 말인가.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지면서 백혈병이라는 병은 현대 의학으로는 정말로 완치가 어려운 병인가 심각한 걱정이 들었다. 나는 왜 다시 입원을 하였느냐고 묻지도 않은 채 아무 말도 못하고 한동안 멍하게 있었고 그저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병실내의 알아들을 수 없는 잡담소리만 듣고 있을 뿐이었다.      

   “현이야, 너무 걱정하지 마. 엄마 대상포진이 와서 입원했어. 치료가 잘 되어서 지금은 많이 좋아졌으니까 걱정 말고 연휴 지나고 퇴원할지도 모르니까 집에는 가지마. 어차피 가더라도 아무도 없으니까. 그냥 거기에서 너도 좀 쉬어. 알았지?”     

   백혈병 환자에게는 마치 통과의례와도 같았던 대상포진이 엄마한테도 찾아왔던 것이다. 어릴 때 앓고 넘어가는 수두의 원인 균과 동일한 종류의 바이러스인데 눈 주위 혹은 옆구리와 등허리 쪽으로 바이러스가 잘 침투하여 수포와 발진이 일어나고 극심한 통증을 동반하는 것이 대상포진이었다. 누구나 걸릴 수 있지만 특히 이렇게 엄마처럼 면역력이 떨어져 있는 사람한테는 쉽게 올 수 있었던 흔한 질병이기도 했으나 엄마는 눈 주위부터 포진이 시작되었는데 그런 경우는 특히 바이러스가 시신경에까지 침투한다면 실명까지도 할 수 있을 정도로 심각한 질병이기도 했다.      

   크리스마스연휴가 지나고 출근을 해도 엄마와 아버지 걱정 때문에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았고 신정 연휴가 시작되자마자 나는 새벽기차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신정의 시작이라 여기저기로 이동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지 기차 안은 혼잡했으나 나는 미리 표를 예약해 두었기에 서울까지는 편안히 앉아서 갈 수 있었다. 병원 입구다. 저기에 있던 분수대에 무지개가 걸린 것을 보았던 그 날 아주 잠시 동안 정신을 잃고 쓰러졌던 곳도 바로 저기다. 겨울철이라 분수대는 멈춰 있었지만 이곳은 몇 년이 지났는데도 거의 변한 것이 없었다. 습관적으로 고개를 들어 무균 실 병동 쪽을 올려다보았다. ‘지금도 저 곳에는 우리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있겠지? 설마 그 때 같이 지냈던 사람들이 아직도 저기 저 꼭대기 층에서 지내고 있을까? 민영이와 자영이, 나 이렇게 텔레비전 앞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눌 때 언니는 몸집은 작지만 다부져서 경찰관 제복이 잘 어울릴 거라고 했는데....... 이제 정말로 경찰관이 됐는데 제복 입은 모습을 봐 줄 아이들은 여기 없구나.’갑자기 옛 생각이 떠오르자 마음이 슬퍼졌지만 이렇게 감상에 빠져있을 때가 아니었다. 엄마는 무균 실이 아닌 8층의 일반병실에서 보통의 입원환자들과 함께 6인실의 병실에 계셨기 때문에 입구에 설치된 병원 안내도를 살펴 본 뒤 가장 가까울 것으로 보이는 승강기 쪽으로 갔다.      

   엄마는 양쪽 눈이 마치 벌이라도 쏘인 것처럼 퉁퉁 부어올라 있었다. 그나마 그것이 이제는 붓기가 빠져서 눈이 조금 떠지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처음엔 아예 눈꺼풀이 딱 붙어버렸었다면서 전혀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고 하셨는데 수포가 커지기 직전에 극심한 통증이 왔을 텐데도 엄마는 아버지에게 말도 안하고 그냥 참고 있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왠지 그동안 나 혼자서만 즐겁고 편안하게 잘 지내온 것이란 생각 때문에 무척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온 지금은 이미 치료가 거의 다 끝나가는 중이라 견딜 만 하다고 하셨고, 사실 그 말 자체도 그동안 엄마의 성품으로 보아서는 완전히 믿을 수는 없었지만, 말씀을 나누시는 도중에나 식사를 하시는 모습에서 약간의 활기가 보였기에 나 또한 조금은 걱정을 덜 수는 있었다. 병원에만 오면 항상 하게 되는 생각, 정말로 세상에는 아픈 사람들도 많고 희귀한 병에 걸려서 치료의 시작조차도 못해보고 그냥 삶을 포기해야 되는 사람들도 많다는 것과, 반대로 바깥사람들은 대부분 건강하고 활기찬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근무하는 경찰서만 보더라도 사람들은 언제나 분주하고 거의 항상 예견치 못한 사건들이 터지고 또 그러면서 활기차게 움직이면서 살아간다. 병원의 안 과 밖에서 사람들은 각자의 주어진 여건대로 최선을 다하여 살아나가고 있는 것은 분명하였지만 단지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태도만이 다를 뿐이란 생각이 들자 건강하다는 것이 정상적인 생활에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새삼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병원에서 엄마와 아버지와 함께 2박 3일 동안을 보내고 신정 연휴가 끝나는 마지막 날 가까스로 표를 구할 수 있었던 무궁화 열차를 타고 자취집이 있는 곳으로 내려왔다. 나이 한 살을 병원에서 먹고 내려온 것이었다.      

   새로 시작된 해와 함께 또 다른 일상은 하나의 연장선상에서 이어져 있는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흘러가고 있었고 엄마의 일 때문에 잠깐 잊어버렸던 케이크의 주인을 알아내야 할 것 같은 막연한 의무감이 내 마음속에서는 다시 살아나고 있었다. 통신 장비를 담당하는 직원에게 이 번호를 쓰고 있는 사람을 직접 물어 보았지만 그 번호는 수사과 강력 팀에서 사용하고 있는 업무용 폰이고  누가 개인적으로 소유하면서 사용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였기 때문에 나는 정확이 ‘그 사람이 누구다.’라고 알아내지 못했다. 그저 나와 연배가 비슷한 몇 몇의 직원들을 상대로 추측만 해 볼 뿐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이제 와서 그 번호로 다시 전화를 해 볼 수는 없었다. 설령 전화를 한다고 해도 잘 못 걸었다고 사과하면서 전화를 끊어버릴 것인가? 내가 한 것이 뻔히 드러나고 말텐데 정말로 나에게 마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또 다시 문을 두드리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고 아니 그것도 아니라면 그 사건의 전개는 여기까지고 더 이상 진척되지 않을 것 이였기에 나는 더 이상 그 장본인을 찾아낼 생각을 하지 않게 되었던 것이다.      

   경찰서에서 1월과 2월은 매우 심란하기도 하면서 빠르게 흘러가는 시기였다. 1월에는 승진과 상반기 정기인사 발령이 있었으므로 부서를 옮겨가야 하거나 승진을 하거나 아니 혹은 떨어지게 되거나 하는 사람들의 심란한 기운이 나에게까지 느껴졌고 2월이란 본래에도 평 달보다 날짜수가 적어서 유난히 빨리 간다는 기분이 들었기에 그렇게 봄은 내 마음을 앞질러 와 있었고 나는 드디어 시보라는 수식어를 떼고 정식 임용 발령장을 받을 수 있었다. 이제 나도 남들처럼 승진할 수 있는 자격을 받은 것이구나, 그리고 정식 국가공무원으로서 인정을 받고 그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하는 무게감 있는 존재가 되었고 올 해 나의 목표중의 한 가지는 승진을 해야겠다는 것으로 생각이 굳어졌다. 늦은 만큼 남보다 한 발 먼저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또 다시 무언가에 도전하여 성취감을 맛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아, 그리고 나는 날씨가 풀어지기 시작하면서 다시 그 책방을 드나들기 시작하였다.      

   이제는 밤길을 혼자 걸어도 전혀 무섭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고 오히려 내가 그렇게 하고 싶었던 일을 마음껏 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만족감으로 마음이 활짝 열려 있었다. 누군가는 한창 연애도 하고 여행도 다니고 술도 마셔보고 해야 할 시기에 책방 드나드는 것을 유일한 취미와 재미로 여기는 나를 지나치게 금욕적인 인간이라고 고루하다거나 재미없는 사람이라고 욕할지도 모른다. 물론 전자의 생각대로 젊은 시기를 마음껏 누리고 즐기는 것이 절대로 나쁜 것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했던 것이 아니라 남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좋았을 뿐이다. 책을 읽으면 기분이 즐거웠고 몰랐던 것을 새로 알게 되는 순간에는 정말로 기쁘기까지 하였다. 가끔씩 경찰서 민원실로 주문한 책들이 배달되어 오면 그것을 찾으러 나가고 아니면 가끔은 먼저 받은 직원이 나에게 대신 가져다주시기도 하였는데 그럴 때는 ‘왜 이렇게 책을 많이 사? 다 읽기는 읽는 거야? 김 순경은 책을 정말로 많이 읽는 가 보네.’라고 말씀을 하셨지만 그 자리에서는 막상 별다른 말은 하지 않고 ‘집에 텔레비전도 없고 퇴근하면 특별히 할 일이 없어서 그냥 책이라도 읽는다.’고 대답했을 뿐이었다.      

   옷차림이 가벼워진 봄날의 정점인 4월의 끝자락이었다. 날씨가 거의 매일 좋았기 때문에 나는 도서관에 들리지 않는다면 항상 책방을 갔다가 자취방으로 걸어서 돌아오고는 했다. 적어도 내가 걷는 거리는 5킬로미터가 넘었기에 집에 돌아올 때는 항상 배가 많이 고팠고 목이 말랐기 때문에 집 앞에 있던 작은 슈퍼마켓에서 우유 1리터와 바닐라 아이스크림 한 통을 사 들고 집으로 들어가고는 했다. 그리고 아이스크림과 우유를 반씩 섞어서 마시기도 하고 아이스크림만 따로 떠먹기도 하면서 밥상의 겸용으로 사용하던 좁은 앉은뱅이책상에 앉아서 졸음이 올 때까지 책을 읽었다. 그날도 나는 아저씨가 혼자서 운영하는 3층 양옥집으로 된 1층의 책방에서 그냥 바닥에 주저앉아 책을 보고 있었다. 출입문이 열리면서 방울 소리가 났다.      

   “아직도 책에서 배울 것이 남았나보지?”     

   방울소리에는 무관심하게 넘어갔지만 지금 저 소리는 꼭 나에게 들으라고 하는 말처럼 들렸기 때문에 출입문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바라보았다. 그 사람을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아니 거의 매일 매일 마주치는 얼굴이니 못 알아본다면 더 이상한 일이지 않겠는가. ‘저 인간이 여기가 어디라고 들어왔을까? 책이라고는 평생가야 만화책 빼고는 읽어본 적이 없을 것 같은 건들건들 형사, 무뚝뚝한 김 경장이 아니던가.’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지나가는 찰나에 이번에는 또 누구를 보고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또 다시 한다는 말이란 게 나를 더 황당하게 만들었다.     

   “마르크스, 만세!”     

   이번에는 주인아저씨를 쳐다보았다. 아저씨는 마치 내게 어떤 잘못이라도 저지른 사람처럼 멋쩍은 표정으로 나를 보셨고 나는 지금 저 사람이 제 정신인 건지 오른쪽 두 번째 손가락을 왼쪽 귀 달팽이관 위치에 대고 혹시 머리가 어떻게 된 것이 아니냐는 식의 신호를 보냈다. 아저씨는 다시 눈을 한 번 찔끔 감았다 뜨셨다.     

   “저녁은 먹었냐? 오늘 비번인데 왜 이제야 퇴근이야. 늦는다는 전화 한 통도 없이.”

   “갑자기 다른 서에서 수배자 잡아 놓고 있다고 해서 다녀오느라고 늦었어. 아버지는 저녁 드셨어요?”     

   나는 아버지라는 이 단어 한 마디를 듣고 두 사람의 관계와 왜 김 경장님이 책방의 출입문을 제 집인 듯 그렇게 당당하게 들어올 수 있었는지 이해가 되었다. 정말로 이 책방이 달린 3층 양옥집이 김 경장님 네 집이었던 것이었다. 아저씨는 아들에게 손님한테 왜 그렇게 불손하게 말을 하느냐고 나무라셨는데 그 때 김 경장님의 말이란 것이 나를 더 기가 막히게 했다.      

   “아버지, 저 손님이 바로 경찰서 책벌레 여경이라고요. 걸핏하면 쓰러져서 남의 등 신세를 지고도 사과 한 번 안하고 고맙다는 인사는 절대로 할 줄 모르는 콧대 높은 그 여경이요.”     

   아저씨는 다시 내 쪽을 돌아보고 물으셨다.     

   “아가씨가 경찰서 직원이었어? 왜 진즉 말하지 않았어. 그러면 우리 아들도 경찰관이라고 말했을 텐데.”   

   “아니 그건 특별히 어디에 다닌다고 말씀드리지 않아도 이 책방에서 책 보는데 지장이 없을 것 같아서 굳이 그런 것까지 말씀드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요.”     

    나는 이렇게 대답을 하고 아까 머리가 어떻게 된 것 아니냐고 윙윙 돌렸던 손가락으로 내 뒤통수를 긁적였다. 그랬다. 내가 경찰서로 책 주문을 많이 하고 틈만 나면 책을 읽고 도서관에서도 책을 읽고 하던 것이 소문이 안 날 리가 없었다. 그래서 자기들끼리는 나를 ‘책벌레’라고 부르면서 그렇게 반은 조롱하면서 놀렸을 것이다. 또한 김 경장님이 ‘마르크스 만세’라고 말했을 이유에 대해 그 잠깐 동안의 추측한 결과는 마침 올 해가 러시아 혁명이 발생한지 딱 90주년이 되는 해였기도 했고 아저씨가 특히 유럽의 역사에 관한 책을 주로 많이 읽으셨다는 것과 마침 내가 주저앉아 있던 그 자리 앞에 밀란 쿤데라의 <농담>이 꽂혀 있었는데 책 속의 한 마디를 흉내 낸 것이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마 마지막 추측은 맞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평생 책 한번 읽지 않았을 것으로 보이는 김 경장님이 <농담>을 읽었을 리가 없다. 사실은 그것도 틀린 말이었다. 왜냐하면 책 속의 주인공 대학생 루드 빅이 여자 친구의 호감을 사기 위해 연애편지의 끝맺음에 ‘트로츠키 만세!’라고 쓰게 되면서 당시 사회 분위기 속에서 마치 금지어를 사용한 것으로 취급되어 그 젊은 나이에 시베리아로 유형을 떠나게 되는 농담 한번 잘 못한 것으로 인해 그의 삶 전체가 아이러니하게도 농담처럼 흘러가게 된다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는 책이었다. 나는 더 이상 그 곳에 머물러 있기가 싫었다. 그리고 한 방 먹여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마침 눈앞에 있던 농담을 꺼내어 들었다. 아저씨께 짧은 인사를 하고 여전히 출입문 근처에 서 있던 김 경장님 가슴팍에 <농담>을 떠 밀어 안겨주면서 이렇게 말하였던 것이다.      

   “좀 전에 그것을 농담이라고 하신 건가요? 마르크스가 아니라 트로츠키겠죠! 그리고 김 경장님이야말로 아직도 책 속에서 배울 게 많은 분 같은 데요!”     

   그것은 평소의 내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내가 그런 소심한 복수를 할 수 있다니. 우리가 여태 같은 경찰서에서 일 년 가까이 얼굴을 마주쳐온 사이라고 할지라도 개인적으로 단 일 분이라도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거나 – 아니 사무실 앞으로 야식을 가져왔던 그 날 외엔 – 우연히 구내식당에서라도 같은 라인의 같은 방향에 앉아서 밥을 먹은 적이 있었거나 한 적이 없었다. 아니 설령 있었다고 하더라도 의식하지 못했다. 그런데 우리가 나눈 첫 대화라는 것이 서로를 깎아내리며 어쩌면 상처를 줄 수도 있었던 비난 섞인 말이었다니. 처음엔 기분이 나빴지만 자취방으로 걸어오는 내내 이상하게 처음의 기분은 온데간데없이 자꾸만 김 경장님의 행동과 말투, 그리고 외모가 겹쳐졌고 지나간 소소한 일들이 하나 둘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함께 긴급배치 조로 편성되었던 유 경장님이 우리 두 사람에게 자리를 만들어 보겠다던 말, 야식을 먹겠다고 강력 팀 사무실을 따라 들어갔던 그날 밤 팀장님이 내가 사무실을 나오자마자 김 경장님한테 나와 연결해 주겠다는 장난이 섞여 있었던 불쾌했던 말, 또 자기 이상형은 아니라던 김 경장님의 대답, 이 모든 게 다 우연이었을 것이다. 그저 젊은 두 남녀를 두고서 자기들끼리 놀려대면서 일시적으로 재미를 느껴보려고 하거나 아니면 단순한 호기심으로 했던 말들이었을 것이다. 아, 그리고 툭하면 내가 쓰려져서 남의 등 신세를 지고도 사과 한 번을 안 하고 고맙다는 말 한 마디 하지 않는다고 말했던 김 경장님의 마지막 말이 자꾸만 계속 귓가에 맴돌았다. 설마 그날 쓰러져 있는 나를 들쳐 업고 병원으로 달린 사람이 김 경장님이었단 말인가? 그럼 혹시 케이크의 범인도? 아니, 하필이면 김 경장님과 내 이름이 아주 흡사한 것도 이것마저도 단순한 우연의 일치일까? 그날 밤 나는 무엇인가에 홀린 기분이 되어서 잠을 설치고 말았다. 이제 그 책방에 어떻게 또 다시 갈 수 있단 말인가. 한편으로는 그 사실이 너무 웃기고도 머리 아픈 일 이었다. 그리고 그 집을 나올 때 조금 더 참지 못하고 <농담>을 떠 안겨주면서 왜 하필 그런 하찮은 농담을 하고 나온 것인지 후회가 밀려왔다.      

   그 사건이 있은 후로 나는 평소와 다르게 김 경장님을 대하는 데 있어 매우 소심하게 변하게 되었다. 경찰서 내에서 멀리 걸어오는 모습이라도 보게 되면 일부러 벽 뒤에 숨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가 갔거나 앞 사무실 생활안전과 안 경장님과 일부러 더 친한 척을 했다. 그리고 더 이상한 일은 내가 수사지원팀으로 심부름을 가게 되는 일이 잦아졌고 정말로 피하고 싶었지만 수사과 앞에서나 아니 지원팀 사무실에 들어서면 언제나 김 경장님은 감식반장님과 대화를 나누고 있거나 강력 팀이 아닌 지원팀 사무실에서 서무의 컴퓨터를 사용해 가면서 바쁜 일처리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또 어떤 날에는 수사과 사무실 앞에 신발을 벗어던지고 술 냄새를 풍기며 난동을 피우는 사람을 달래고 있었는데 멀리 던져버린 신발을 주워 와서 신겨주기도 하고 물이라도 한 잔 가져다 줄 것인지 등 다소 격양되어 있는 사람을 진정시키고 있는 모습들이 자주 눈에 띄기 시작했다. 나는 그 일 있은 뒤로 여름이 오도록 책방에는 가지 못했고 바닷가에 해수욕장을 끼고 있었던 우리 경찰서는 여름 휴가철이 시작되면 직원들의 휴가는 금지될 정도로 이곳을 찾아오는 관광객으로 치안수요가 급증하였기 때문에 7~8월의 두 달 동안 해수욕장에서‘여름경찰서’를 따로 운영해야만 할 정도였다. 여름 경찰서의 운영은 다른 경찰서와 비교해 보았을 때 거의 우리 경찰서만의 유일한 특징이었던 것이다.      

   자연스럽게 본서와 파출소에 근무하는 직원들은 주말을 포함하여 주야간 교대 순번대로 여름 서에 동원 근무를 나가야 했는데 특히 일과 시간외에 야간 근무를 나가게 되면 새벽 두 세 시가 되어야 끝났기 때문에 항상 집으로 돌아올 일이 걱정이었다. 어떤 날엔 우연히 함께 시내로 돌아오는 직원의 차를 얻어 타고 오거나 그것도 아니면 택시를 잡아타고 오거나 했는데 이렇게 어디든 걸어 다니던 습관으로 자동차가 없었던 내게 그 당시 그런 문제들이 닥칠 때가 가장 애매하고 곤란하게 느껴졌다.      

   여름서도 막바지에 다다를 무렵 마지막 야간 지원근무가 끝나던 날 어쩌면 김 경장님과 나의 이름이 비슷하다는 것이 우연이 아닌 어쩔 수 없는 인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일이 생겼는데 다른 서에서 지명 수배자에 대한 사건 내용을 내부접속 메일로 보내면서 끝자리를 ‘희’에서 ‘이’자로 잘못 쓰게 되면서 그 메일이 내 앞으로 오게 된 일이 생긴 것이다. 이미 일과시간이 끝난 지 오래되었고 나에게 메일을 잘 못 보낸 다른 청 직원은 이미 퇴근을 한 상태였지만 애초부터 급한 일이기도 하여 연락을 하여 물어보니 ‘김현이’ 앞으로 정확히 메일을 보냈다는 것이었다. 내일이나 되서야 출근하면 다시 “김현희”앞으로 보내드릴 수 있다고 말한 것이다. 답답했던 김 경장님은 내가 여름 서에서 야간 지원 근무 중임을 알고 직접 해수욕장에 있는 그 곳까지 나를 찾으러 왔던 것이다. 근무가 끝나고 옷을 갈아입고 주차장으로 나왔는데 김 경장님의 회색 지프차가 시동도 끄지 않은 채 주차되어 있었고 차 안에서 내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리던 김 경장님은 나를 보자마자 마치 납치라도 하 듯 나를 자기 차의 조수석 쪽에 태우고 강제로 안전벨트까지 채우더니 급하게 핸들을 돌리는 것이었다. 나는 이게 무슨 행동이냐고 표정으로 항변하며 그 사람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던 나에게 이렇게 무례하게 행동해서 미안하다며 정말로 정중하게 사과를 하는 것이 아니던가.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이렇게 된 내막을 설명해 주었으므로 나는 이해가 되기도 하여 사무실로 돌아가 내 메일에 접속하여 자료를 다시 김 경장님 앞으로 전달하였다. 집까지는 이제 걸어가도 되는 거리였으니 그러겠다고 하자 끝까지 나를 집 앞까지 데려다 주겠다고 말했고 나는 얌전한 고양이처럼 그의 차를 타고 내 방 앞까지 올 수 있었다. 어색한 분위기에서 ‘데려다 주셔서 감사합니다.’하고 인사를 하고 차에서 내리려는데 갑자기 내 왼쪽 팔목을 잡더니 ‘잠깐만’이라고 말했고 나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김 경장님을 바라보았는데 글쎄 나에게 1리터짜리 우유와 바닐라 아이스크림 한 통을 손에 들려주는 것이 아니던가. 나는 얼떨결에 그것을 받아 들고 차에서 내렸다. 그의 차는 매운 매연을 내뿜고 집 앞 모퉁이를 돌아 나갔고 나는 자취방 안으로 들어왔다.      

   앉은뱅이책상위에 우유와 아이스크림을 올려놓고 불현 듯 들었던 생각은 크리스마스이브 케이크 주인은 정말로 김 경장님이 틀림없고 방금 전에도 나는 말 한마디 안했는데 어떻게 알려주지도 않은 길을 알아서 우리 집 앞까지 올 수 있다는 것도 그렇고 이제까지 김 경장님과 나 사이의 관계를 두고 떠벌리던 말들이 별스럽지 않다 여기던 주변 사람들의 조언이 단순한 장난이 아니라 정말로 진심으로 그렇게 해 주고 싶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이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처음 찾아온 이 낯선 감정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그 순간 나는 정말로 몰랐다.     


첫 만남     


   강력 2팀장님이 잠깐 민원실장으로 계실 때 나는 경비교통과 소속이었다. 민원실에 자주 드나들면서 얼굴을 많이 익혀왔던 터에 나에 대해서는 정말로 좋은 인상을 가지고 계신 분이셨다. 물론 지금은 김 경장님의 팀장님으로 계시기도 하지만 한 번씩 우리 사무실에도 오셔서 계장님과 차 한 잔씩 나누시면서 대화를 나누시는 것을 보면 두 분은 오래 전부터 친분이 두터운 사이로 지내 오셨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이제 여름서도 다 끝났고 여름 휴가철이 끝난 뒤 그제야 우리 서 직원들은 하나 둘씩 늦은 여름휴가를 떠나고 있었다. 계장님께서는 나를 보고 그동안 쉬지도 못하고 동원근무 다니느라 고생했다고 하시면서 저녁 식사를 하자고 말씀하셨는데 나는 그것이 보통 있는 과 회식과도 비슷한 것으로 생각하여 선 뜻 그렇게 하자고 대답했다. 보통의 회식은 나를 포함하여 과장님, 계장님 모두 술을 안 드셨기 때문에 늘 고기를 배불리 먹고 1차로 끝내거나 밥으로 저녁을 먹은 후 커피숍에 가서 차를 마시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시간을 보냈는데 이는 보통 술  자리부터 시작하는 다른 과의 회식과는 매우 다른 분위기였다. 그 날도 어김없이 그런 차례로 진행이 될 것이라 여기고 있었는데 계장님은 평소에 가던 시내 쪽이 아니라 해안 도로를 따라 차를 몰고 가셨고 오늘은 어디에서 저녁을 먹는 것인지 여쭤 보는 내게 경치가 아주 좋은 곳이 있다고 하시며 그곳으로 갈 것이라고 하셨다.      

   도착한 곳에는 정말로 현대식으로 지어진 건물로 전면이 유리로 된 기하학적 형태의 레스토랑이었고 아마 안쪽에서 내려다본다면 눈앞에 펼쳐진 바닷가가 한 눈에 들어올 것이란 생각이 들 만큼 직접 그 자리에 앉아 보지 않더라도 전망이 훌륭한 식당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나무로 된 계단을 올라가고 있는데 오늘은 과장님은 빠지시고 다른 과 직원들과 저녁을 함께 먹기로 하였다는 말씀을 하시는 것이 아니던가. 이미 자리는 예약되어 있는 것 같았다. 테이블이 들어앉은 자리들은 제 각자 칸막이로 구분되어 있었는데 우리는 종업원의 안내대로 따라 갔다. 예약된 자리에는 이미 강력 2팀장님과 김 경장님이 먼저 와 앉아계신 것이 아니던가.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아도 지금 상황이 어떻게 된 것인지 간파할 수 있었고 나는 일부러 마치 처음부터 알고 있기라도 했다는 것처럼 더 반가운 척 인사를 하고 준비된 저녁식사를 마쳤다. 후식으로 커피를 마시는데 계장님과 팀장님은 또 다른 약속이 있다는 눈에 보이는 거짓말을 하시고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셨고 그 자리에는 우리 둘만이 남겨지게 되었다. 차는 마시는 둥 마는 둥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 것인지 마음속으로 계속 갈등만 하다가 불현 듯 책방 아저씨가 생각이 났다.      

   “아저씨는 잘 계시죠? 그 뒤로 책방에 통 가보지를 못해서.......”

   “우리 아버지요? 아버지는 항상 책방에서 책 보시고 청소하시고 책 정리하시고 그게 일이신데요 뭐. 잘 지내고 계세요. 그런데 김 순경님이 요새는 왜 통 안 오냐고 물으셨는데 그냥 여름 서 일로 바쁘다고 얘기했어요.”

   “저, 지난번에 제가 조금 무례하게 굴었던 거 기분이 나쁘셨을 것 같아서 돌아와서 내내 신경이 쓰였어요.”

   “무슨 일? 아! 농담~~~”     

   그리고 김 경장님은 털털하게 웃으면서 말했는데 글쎄 정말로 그 책을 읽느라 혼 줄이 났었다는 것이었다. 그날 밤 내가 그 책을 자기 가슴팍에서 던지다시피 하면서 했던 말이 무슨 뜻일까 정말로 궁금해서 책을 어쩔 수 없이 다 읽어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고 하면서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책방을 운영하셨고 거의 항상 손에서 책을 내려놓는 법이 없을 정도였는데 보통의 경우라면 그 자식도 아버지를 따라서 책을 많이 읽게 되는 것이 순리인데도 자기의 경우에는 정 반대였다는 것이다. 책장에 꽂혀 있었던 책들이 집안의 장식품처럼 느껴지기만 했지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언제부터 책 읽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느냐고 물었는데 사실 나는 어릴 때부터 워낙에 산골짜기 마을에 살아서 책을 접할 기회가 별로 없었고 가끔씩 대학생이던 삼촌이 가져다주는 책을 거의 외울 때가지 반복해서 읽게 되면서 다른 책들도 읽어 보고 싶단 생각이 커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사실 산 속은 다른 곳보다 겨울이 유난히 길고 더 추웠으므로 몇 달 동안 집 안에 틀어박혀 있는 것이 심심해서 책을 읽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면 텔레비전이라도 보지 그랬냐는 김 경장님의 말에 나는 그만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는데 그게 사실은 우리 동네는 정말로 골짜기에 파 묻혀 있어서 공영방송 KBS1밖에는 전파가 잡히지 않았기 때문에 하는 프로그램이 보통은 교양 다큐멘터리나 뉴스가 전부였고 내가 볼만한 프로그램이 별로 없었다. 그 말을 하면서도 우리 동네가 얼마나 산골짜기인가를 생각하니 저절로 웃음이 나왔던 것이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나는 초등학교를 다닐 때도 왕복 이 십리 길을 걸어 다녔다면서 우리 동네의 특성을 더 강조해서 말했는데 김 경장님은 무척 흥미롭게 들으면서도 조금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기도 했었다. 자연스럽게 서로 어릴 때 이야기를 하게 되면서 말문이 트인 우리는 어차피 나이가 동갑이고 하니 서로 말을 편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합의했고 레스토랑을 나온 그는 나에게 보여주고 싶은 곳이 있다고 하면서 컴컴한 밤길을 계속 달려갔다.      

   자동차 계기판에 있는 전자시계가 빨간색글씨로 21:12를 나타내고 있었고 그렇게 약 30분 정도를 달리고 나서야 그는 이제 다 왔다는 말을 하였다. 나는 손잡이를 잡아 당겨 결궤에 걸렸던 문이 풀어지는 소리를 들었으나 밤길이므로 자기가 먼저 길 안내를 해야 하니 문을 직접 열어주겠다고 말했고 그는 재빠르게 차에서 내려 조수석 쪽 바깥에서 문을 열어 주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파도가 밀려와 해안가에 부딪혔다가 다시 밀려나갈 때 나는 소리가 들렸다. 신기하게도 파도를 타고 뭍으로 불어오는 바람에 두 볼이 부딪히는 느낌은 여느 바닷바람과는 다르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바닷바람만의 특유한 비릿한 냄새가 없이 향긋한 향기까지 느낄 수 있었다.     

   “여기부터는 모래밭이니 신발이 모래 속으로 빠질 수도 있어. 천천히 걸을 테니 내가 걷는 대로 따라 와.”     

   그가 앞서나갔고 나는 그의 발뒤꿈치를 바라보면서 모래위에 희미하게 남은 그의 발자국을 그대로 밟았다. 차라리 눈길이라면 더 좋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던 건 정말로 입자가 고운 모래는 바짝 말라있어서 걸을 때 내 발을 끌어당기는 것 같이 빨려들어가면서 다시 발을 뺄 때 오는 적당한 긴장감이 걸음걸이에 더 신경을 쓰도록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그와 나는 모래 위에 착한발자국을 남기고 달빛이 환하게 비추는 쪽으로 수풀을 완전히 빠져나왔다. 그 수풀이라는 것은 바닷가 옆에 이었던 작은 소나무 숲이었고 비릿한 냄새가 나지 않았던 것도 다 솔향기가 진하게 풍겨져 그랬던 것임을 알 수 있었다.      

   한 밤중이었는데도 파도에 앞장서 밀려들어오는 물거품이 하얗게 보였고 시원한 소리를 내면서 귀를 가볍게 간지럽혀 주고 있었는데 우리가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렇게 서 있는 조금은 어색하기만 한 분위기에 마치 낮은 음으로 깔리는 배경 음악이라도 듣고 있는 것 같은 기분에 오히려 이동하는 차 안에 있던 것보다 마음이 편안해 지고 있었다. 여름이 끝나가고 가을이 오기 직전의 밤 바닷바람을 계속 맞고 있으니 조금은 춥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그가 소나무 아래 놓여 있던 의자와 테이블이 연결되어 있는 탁자를 가리키며 ‘저 쪽에 앉을까?’라고 말했기 때문에 나는 그 상황에서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어떨까?’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여기 경치 참 좋다. 소나무 탓인지 향기도 좋아. 여태 바닷가에는 해수욕장만 있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좋은 데는 언제부터 알고 있었던 거야?”

   “나 여기서 나고 자란 게 벌써 30년이 다 됐어. 여기는 거의 내 손바닥 안이나 다름없다고. 아직도 사람들한테 알려지지 않은 곳이 많아. 다음엔 다른 곳에 가보자. 거기로 데려가줄게.”

   “아, 그렇지.”     

   이렇게 짧은 대화가 끝나고 우리 사이에 또 다시 긴 침묵이 흘렀다. 우리는 바닷가 쪽을 보면서 같은 쪽 의자에 나란히 앉아서 쉼 없이 밀려오는 파도를 바라보았다. 아니 그가 무엇을 보았는지는 모르나 나는 하늘을 볼 생각도 없이 그저 끝없는 파도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흰 물거품은 점 점 점 부풀어 오르다가 파도가 뭍에 부딪히자마자 조금씩 사라져갔다. 그 모습이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었다.      

   “너 안 추워?”

   “응, 괜찮아.”     

   사실 평소에도 추위를 쉽게 탔고 더욱이 지금은 밤바람을 계속 맞고 있어서 손발이 차가워졌는데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내 손을 잡아 보더니 입고 있던 잠바를 벗어서 내게 걸쳐 주는 게 아니던가. ‘이런 장면은 영화 속이나 책 속에 흔하게 등장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연인사이에 쉽게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면 우리가 연인 사이라도 되었단 말인가?’ 나는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가자고 말했다.      

    내가 방으로 들어온 시간은 거의 자정이 다 되었고 비록 솔향기 때문에 비릿한 내음은 나지 않았지만 그저 내 기분 탓인지는 모르나 몸에 끈적끈적한 소금 끼가 베었다는 느낌에 더운 물로 한참동안을 씻고 침대에 누웠다. 문자도착 진동 벨이 울렸고 그가 보낸 것임을 예감하고 휴대폰의 폴더를 열었다. ‘그냥 내 기분만 생각하고 너를 오래 찬바람을 맞게 한 것은 아닌지 조금 미안한 생각이 들었어. 다음엔 준비를 더 잘 하도록 해볼게. 잘 자. 참, 이 번호가 내 번호야.’나는 다시 폴더를 닫고 바로 보이는 천정을 멍하게 바라보았다. ‘괜찮아. 너도 잘 자.’라고 답장을 보내야 한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그냥 휴대폰을 베개 옆에다 내려 두고 잠이 들어 버렸다.     


2008

미묘한 감정     


   그와의 그런 첫 만남이 있은 뒤에도 생활에 큰 변화는 찾아오지 않았다. 나는 평소대로 출근을 하고 퇴근하면 도서관에 가서 책을 보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나와 특별하게 친분이 있었던 여경 선배님과 시내로 저녁을 먹으러 나갔거나 함께 차를 마시면서 이런 저런 수다를 떨기도 하면서 결코 특별하지 않아 보이는 평범한 시간들이 흘러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도 다른 지역으로 출장을 다니는 일이 많았으므로 우리가 따로 만날 수 있었던 시간은 별로 없었고 그저 낮 시간에 경찰서에서 오고 가면서 마주치면서 보는 것으로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는 정도였다. 간혹 늦은 새벽 나 혼자 당직근무를 하고 있는 당직실에 찾아와 어떤 용무가 있는 척 하고 들어왔지만 뭔가 필요한 것이 없는지 졸리지는 않은지 먹고 싶은 게 있는지 등등 나에 대한 안부를 물어보고는 또 다시 사무적인 태도로 변하여 당직실을 다녀갔다. 그 이유는 경찰서는 1년 내내 하루 24시간 동안 언제가 근무자가 있었고 우리 둘이 서로를 김 경장님, 김 순경님 이라고 부르는 사이가 아닌 양쪽 팀장님들을 통해 정식으로 소개받는 사이라는 것을 직원들에게 알려지게 되면 분명히 내가 또는 그가 근무하는데 불편한 일이 생길 수도 있었기 때문에 엄연하게 공과 사를 정확하게 구별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막상 그와 나의 관계를 생각해 보더라도 우리가 단순히 동갑내기 친구로서 말을 편하게 하면서 지내는 사이인지 이성으로서 서로 상대방에게 호감을 갖고 있어서 소위 ‘연애하는 사이’라고 말하기가 애매하였던 것이 그를 만나서 편안하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눌 때는 정말로 동갑내기 친구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어린 아이처럼 깔깔깔 웃어가면서 놀려주기도 하다가 늦은 밤 시간 막상 차 안에서 – 우리는 그가 나를 집에다 데려다 주는 길목에 있었던 해안가 언덕에서 캔 커피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곤 했으므로 – 있을 때는 마땅히 할 이야기도 없이 그저 커피만 홀짝홀짝 거리면서 마시기만 하면서도 미묘하고 어색한 분위기였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시간은 자연스럽게 지나갔고 나는 두 달 앞으로 다가와 있는 첫 승진시험을 준비하느라 퇴근 후에는 특별한 업무가 남아있지 않았다면 거의 매일 도서관으로 가서 시험 준비를 했다. 그는 나보고 ‘들어오자마자 승진을 하면 직원들이 나에게 더 가깝게 오기를 꺼리게 될 것이다, 안 그래도 지금 내 이미지가 똑똑한 김 순경으로 알려져 있는 마당에 들어 온지 일 년 만에 승진을 해 버리면 여직원들이 더 나를 시기 할지도 모르고 그러면 내가 정말로 여경들 사이에서 왕따가 될 것이다.’고 말하면서 내가 시간을 내지 않는 것에 그런 식으로 불만을 표시하기도 하였다. 그래도 나는 정말로 고집이 센 사람이라서 어지간해서는 내 계획을 그르칠 생각이 없었고 그리고 꼭 첫 번째 승진 시험에 합격해서 엄마와 아버지를 기쁘게 해 드리고 싶었기 때문에 거의 언제나 공용 도서관이 문을 닫는 23시까지 남아 공부를 하였던 것이다. 그도 내 고집을 이기지 못했던 것인지 근무가 아닌 날이나 혹시 근무 날이었더라도 그 시간에 맞춰 기다리고 있다가 나를 집까지 데려다 주었다. 그렇게 시간은 빨리 흘러갔고 언제나 1월 초에 있는 정기 승진 시험까지는 한 달도 채 남아 있지 않은 상태였다. 보통 1년이라는 근무 시간 동안 표창 점수를 다 채우기란 어려운 일이었고 또 다른 경쟁자들보다 시험을 더 잘 봐야 합격할 수 있다는 부담감이 있었고 사실 채용시험과목과 중복된 과목이라서 큰 걱정 없이 준비를 했지만 갑자기 큰 일이 터지고 말았던 것이다.      

   12월 7일, 인근 해안가에서 공사를 마친 크레인 부선이 예인선을 끌고 해안을 지다는 중 와이어가 끊어져 정박해 있던 유조선에 충돌하면서 탱크 안에 저장되어 있던 엄청난 양의 원유가 유출되어 그 해안가는 물론 인근 해안지역을 온통 검은 기름때로 뒤 덮어 놓은 사건이 터지고 말았던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국가 공무원의 신분을 갖고 있었고 언제나 그렇듯 대형사고가 터지게 되면 우리가 먼저 솔선수범하여 일을 처리하여야 했다. 이번에도 경찰서에 근무하는 전 직원들은 작년 여중생 실종사건 때처럼 교대로 조를 짜서 해안가로 떠 밀려온 기름때를 직접 손으로 걷어내는 작업을 해야만 했던 것이다. 언제 끝날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는 그 일로 인해 당연히 공부를 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하게 되었고 거의 한 달여 만에 기름때 제거 동원이 끝날 수 있었지만 이제 시험은 정말로 며칠 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솔직히 화가 났다. 다른 경찰서에 근무하는 직원들과의 경쟁에서 그렇지 않아도 이미 불리한 조건에서 시작하고 있는데 정말 중요한 시기인 마지막 한 달 동안을 기름때를 줍느라 시험공부마저도 제대로 못했다는 생각이 분하게 여겨졌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이미 전에도 이것보다 훨씬 더 나쁜 환경에서도 나는 무엇이라도 해내지 않았던가 하는 쪽으로 마음이 돌아섰고 설령 시험에 불합격하게 되더라도 내가 경찰관이 아닌 것도 아니었고 솔직히 정보과에 근무하면서 언제나 나를 눈엣가시라고 선배들한테 말하고 다닌다는 나 보다 3년 먼저 들어왔던 그 여경 선배만큼은 이기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았던 것이다. 며칠 전부터 그는 시험장과 자동차로 두 시간 거리에 있었던 그 곳까지 자기가 데려다 주겠다고 했고 나는 마음 편하게 버스를 타고 가는 것이 편하다고 그 사소한 것을 두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다. 시험장에는 8시까지 입실을 완료해야 했으니 시험응시자들은 대부분 미리 하루 전에 가서 근처에 숙소를 잡았고 만일에 새벽에 일찍 일어나게 되다면 당일 피로가 더 쌓여서 시험시간에 졸릴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설득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 전날 그는 당번 근무였기에 그렇게 사소한 신경전은 끝나는 줄로만 알았다. 터미널로 가려고 집을 나섰는데 그의 차가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니던가. 나를 보자마자 터미널까지만 데려다 줄 것이라 말을 하여서 차에 올라탔는데 갑자기 내 안전벨트를 채워주는 것이 아닌가.      


   “나 그냥 버스 타고 간다니까. 그게 더 편하다고.”

   “그래, 알아 이 아가씨야. 경찰관이 차를 타면 가장 먼저 벨트를 맬 줄 알아야지 이런 것도 내가 챙겨줘야 되니 원.”

   “정말로 터미널까지만 데려다 주는 거다?”


   그는 대답도 없이 기어를 넣고 달리기 시작했다. 그의 운전은 좀 거친 편이었다. 그런데 차가 가는 쪽은 터미널로 가는 길이 아니었다. 그는 미리 팀장님께 내 얘기를 하고 데려다 주고 숙소를 잡는 것까지 해 주고 오겠다고 이미 말을 해 두었던 것이었다. 그러면서 한다는 말이 도착할 때 까지는 눈을 조금 붙이라는 거다. 나는 새장에 갇힌 새는 아니었지만 차에서 내릴 수도 없었기 때문에 그냥 그가 하는 대로 지켜볼 수밖에는 없었다.      

   합격자 발표는 5일 뒤에 있을 예정이었다. 이제 시험도 끝났으니 발표가 나기 전까지는 몸도 마음도 좀 쉬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첫 출근을 했다. 아침 7시에 집을 나서도 한 겨울이란 아침이 더 늦게 찾아오는 법이었으므로 경찰서까지 걷는 길의 골목은 어둑어둑했고 무척 추웠다. 그리고 나는 그날따라 마치 기분전환이라도 하려고 작정한 사람처럼 색다른 경험을 느껴보고 싶었으므로 치마를 입고 그 길이가 덥히는 코트에 구두까지 신고 걷고 있지 않았던가.      

   경찰서에는 그와 친분이 두터운 선배들이 많이 근무를 하고 있었는데 나와의 관계를 어느 정도 알고 있었던 누군가 내가 오늘 치마를 입고 출근을 했다고 말을 전해 주었던 모양이었다. 문자를 보내 온 그의 말에 서로 답장을 주고받다가 우리는 그만 또 다투고 말았다.     


   ‘수원 선배가 그러는데 너 오늘 공주님처럼 입고 왔다고 하더라.’

   ‘공주님? 치마만 입으면 공주처럼 입은 건가?’

   ‘우리 오늘 저녁에 거기 갈까?’

   ‘오늘은 수배자 잡으러 안 가?’

   ‘있다고 해도 안가! 지금 지원팀으로 와서 차 마시고가. 공주님처럼 입었다고 하니까 보고 싶어 죽겠네.’

   ‘싫어, 일 해야 돼. 그리고 뭐 언제는 내가 네 이상형이 아니라며?’

   ‘내가 언제?’

   ‘나도 다 알고 있거든?’

   ‘나 그런 말 한 적 없는데?’

   ‘가만히 잘 생각해봐요!’

   ‘잠깐 왔다 가라. 나 점심도 구내식당에서 못 먹어. 좀 있다가 외근 나가야 돼.’     


   나는 그의 말에 더 이상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그리고 뭐 마치 나를 자기의 공식 여자 친구인 것처럼 친한 선배들한테 내 말도 듣지 않고 멋대로 얘기를 해 버리는 것 같단 생각이 들었고 그리고 사실 우리가 정말로 연인 사이였다면 최소한 다정하게 손이라도 잡고 데이트라도 한 적이 단 한번이라도 있었어야지 연인 사이라고 말하는 그의 말에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지 않았겠던가.      

   퇴근 무렵, 경찰서 옆 동사무소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그리로 나오라는 그의 문자를 받고 퇴근 정리를 마친 후 경찰서와 연결되어 있었던 작은 쪽문을 통해 동사무소가 갔다. 언제나 시동을 켜 놓고 기다리고 있었으므로 금방 그의 차를 찾을 수 있었고 차 안을 미리 데워 놓았기 때문에 매우 추운 겨울 날씨였는데도 차 안은 무척 따뜻했다.      


   “우리가 서로 소개 받은 지 얼마나 됐냐?”

   “그건 왜 갑자기?”

   “아니, 너 머리 좋으니까 빨리 대답해 봐라!”

   “여름서 끝나고, 그러니까 9,10월쯤인 것 같은데. 갑자기 그건 왜 묻느냐고?”

   “너 바보야 아니면 눈치가 없는 거야, 그것도 아니면 진짜 꼬리가 아홉 개는 달린 여우라서 일부러 모르는 척 하는 거야? 사람 애타서 죽는 거 구경하면서?”

   “아니, 정말로 갑자기 그건 왜 묻는지 몰라서 그래. 낮에 내가 답장 안보내서 화난 거야?”


   그는 고개를 흔들면서 ‘너 정말 바보 맞구나.’라고 말하면서 ‘이제까지 내가 너 시험 준비 한다고 여태 눈치만 보면서 너 하자는 대로 하고 싶은 대로 그냥 따라줬는데 오늘은 무조건 내 마음대로 내가 하자는 대로 할 거니까 그런 줄 알고 있어.’라면서 조금은 화가 난 사람처럼 말했는데 사실 그가 ’우리 바람이라도 쐬러 다녀오자.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는 말을 할 때마다 시험을 핑계로 아니면 일을 핑계로 그것도 아니면 책을 봐야 한다면서 매번 그의 말을 거절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엄마에게 혼이 나는 사람처럼 아무 대답도 못하고 얌전하게 앉아 있었고 그는 어느새 첫 만남 있었던 날 나를 데려왔었던 솔밭 해안가에 와 있었다.     

 

   “가만히 앉아 있어! 밖은 추우니까 내릴 생각하지 말고.”

   “여기까지 와서 그냥 눈으로 구경만 하다 가려고? 아주 잠깐만 구경하고 오자. 응?”

   “넌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아이 길래 내 말은 들은 척도 안하는 거니. 오는 내내 오늘은 분명히 내 마음대로 할 거라고 말해잖아. 내가 그 말 한 게 얼마나 오래 됐어?”       

   “아, 그래. 미안해. 나는 그냥 여기 오랜만에 와 보니까 좋아서 그런 건데 네가 내리지 말라고 하면 안 내릴게. 그냥 창문으로 보지 뭐.”    

 

   라고 말하며 그의 얼굴을 아래에서 올려다보면서 웃어 보였다. 그것이 내 딴엔 그의 상한 기분을 풀어주기 위한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이었는데 사실 아까부터 그의 표정과 말투와 목소리가 하도 심각하여 나까지 덩달아 기분이 심각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웃어 보였지만 그는 웃지 않았고 우리는 그렇게 한참동안 바닷가 쪽을 바라보면서 차 안에만 앉아 있었다. 히터 바람을 계속 맞아선지 점점 숨이 답답했고 나는 정말로 용기를 내서 말을 걸었다.      

   “정말로 안 내릴 거야?”     

   그는 그렇게 말하는 나를 보더니 갑자기 먼저 차에서 내렸고 내 쪽으로 와서 문을 직접 열어 주었다. 지프차는 디딤 발을 디디지 않고 내리면 점프를 해서 내려야 할 정도로  높이가 있었다. 그는 자기 손을 잡고 내리라고 말했고 나는 그렇게 해야 그의 기분이 상하지 않을 것 같단 생각에 조금은 어색하기는 했지만 그의 손을 잡고 차에서 내렸다. 그런데 평소와는 달리 그가 내 손을 놓지 않고 더 세게 잡는 힘이 느껴졌고 솔밭의 모래 길을 조심조심 지나서 항상 앉아 있던 탁자 옆까지 걸어왔다. 겨울 바닷바람, 더욱이 밤에 불어오는 바람은 매우 차가웠지만 그가 잡고 있었던 내 왼 손을 자기 잠바 주머니에 넣어주었기 때문에 잡은 손은 따뜻했다. 나는 빈혈과 지나친 저혈압 탓으로 언제나 손이 차가웠다. 그래서 여름철에는 항상 차갑던 내 손을 잡으면 시원함을 느꼈으므로 친구들은 내 손 잡는 것을 좋아했었다. 잡고 있는 손에서는 땀까지 났지만, 아니 그의 손바닥에서 나는 땀이 마치 내 손에서 땀이 나는 것처럼 보였는데, 이런 일이 있을 줄도 모르고 오늘은 짧은 치마를 입고 있었으므로 나는 이가 부딪힐 정도로 부들부들 떨고 있었는데 그는 내가 긴장을 하여 떨고 있다고 오해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잡은 손에 땀까지 났으니 내 손에서 난 땀이 아니었는데도 그는 충분히 그렇게 오해하고도 남을 만한 상황이었다. 


   “우리 차로 돌아가면 안 될까? 나 정말로 추워. 왜 하필 오늘 치마를 입고 와가지고서는. 여기에 올 줄 알았으면 좀 더 따뜻하게 입었을 텐데.”

   “내 옷 입어.”

   “아니 아니야, 그러면 너까지 추워. 우리 그만 차로 가자. 그리고 너 배 안고파? 우리 저녁도 못 먹었잖아. 우리 우동 먹으러 가자. 응?”


   그는 내 말이 다 끝나지도 않았는데도 제 옷을 벗어서 내 어깨에 걸쳐주고 있었다. 그리고 몸을 돌려 나를 똑바로 쳐다보더니 갑자기 두 손으로 내 허리를 감싸는 것이 아니던가. 나는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렸는데 그는 키가 컸으므로 내 얼굴이 그의 가슴 언저리에 가까이 닿았고 어색하게 늘어져 있었던 내 팔을 두고 그는 자기를 좀 안아달라고 속삭이듯 말했고 나는 마치 위로라도 해 주는 사람처럼 그의 등을 부드럽게 토닥토닥 거리면서 가볍게 두 손을 허리춤에 얹었다. 그는 처음보다 더 힘을 주어 나를 들어 올리다시피 하면서 내 허리를 끌어안았기 때문에 나는 어쩔 수 없이 까치발을 띠게 되면서 얼굴을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이 순간이 내 생에 처음 일어나는 첫 키스의 순간이란 말인가? 나 아무런 준비도 못했는데? 향수라도 뿌리고 아니, 아니 양치질이라도 하고나서 해야 하는 게 아닌가? 나 이렇게 첫 키스 해버리면 그럼 그 다음에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거지? 나는 그의 말대로 정말로 바보였다. 한참동안 그렇게 나를 꽉 끌어안고 있던 그가 말했다.  ’너 참 예쁘다.‘ 고. 그 순간 내 심장은 밖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세게 뛰고 있었고 그도 내가 떨고 있는 것을 느낀 것인지 ’다음에, 다음에........‘라는 혼잣말을 하면서 그만의 특유의 유쾌한 표정으로 돌아와 있었다. 나는 그제야 그의 얼굴을 보고 웃으며 그를 올려다보았고 그가 나를 꽉 끌어안은 것처럼 나도 그를 꽉 끌어안아 주었다. 


   “춥다. 돌아가. 차로. 응?”


   이번에 그는 내가 하자는 대로 했고 우리는 거의 뛰다시피 하여 차로 돌아왔다. 차 안은 아직 온기가 남아 있었기 때문에 몸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이 조금씩 진정되면서 심장박동수가 제 자리를 찾아가고 있었다.      

   “배 안고파? 아까 우동 먹고 싶다고 했던가? 우동을 잘 하던 집이 어디더라,”

   “그럼 넌 뭐가 먹고 싶은데? 오늘은 우동 말고 너 먹고 싶은 거 먹으러 가. 하자는 대로 할게. 정말로.”

   “그럼 너 술 한 잔 할래?”

   “갑자기 술은........ 좋아, 오늘 태어나서 처음으로 취할 때까지 한 번 마셔보자.”     

   그는 왼손으로만 핸들을 잡고 오른 손은 내 왼쪽 손을 계속 잡고 천천히 해안가를 빠져나갔다.      

   “나 한 가지 물어봐도 돼?”

   “응, 뭔데?”

   “너 허리사이즈가 뭐냐. 부러질까봐 더 꽉 끌어안지도 못했네.”

   “뭐라고? 됐어! 여자 신체사이즈를 물어보는 사람 태도가 그게 뭐냐. 그리고 뭐 언제는 내가 네 이상형이 아니라면서? 예쁘단 말도 그냥 한 말이지?”

   “아이쿠, 이 고집쟁이야!”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는 계속 내 손을 잡고 있었다. 그를 따라 들어간 곳은 그의 선배가 운영하는 와인 바였는데 이렇게 이곳에서 나고 자란 그와 함께 가는 곳에는 거의 언제나 그를 아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렇게 하나 둘 그에 대해, 그의 주변 사람들에 대해 알아가고 있었다. 그 선배는 내게는 선홍색의 칵테일을 내왔고 그에게는 언제가 그가 마시는 것으로 보이는 투명한 액체가 담긴 작은 병과 작은 잔이 함께 달려 나왔다. 혀끝으로 살짝 맛을 보니 알코올을 들어있지 않아 보였고 홀짝홀짝 시큼하면서도 달콤한 맛을 보면서 한 잔을 다 비웠다. 때가 지난 지 오래되어서 이제는 배가 고픈지 아닌지도 느끼지 못했고 아마 그도 나와 비슷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나는 오늘 평소와는 많이 달랐던 그의 행동을 보고 ‘그동안 나의 태도가 너무나 불분명했던 것일까? 그것이 그를 힘들게 했을까? 유행가 가사처럼 정말로 사랑도 아닌 우정도 아닌 어중간한 상황에서 나에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냥 내 주위에서 빙빙 맴돌기만 한 것일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그를 내가 친구처럼 대해주고는 있었으니 이런 애매한 내 태도 때문에 그가 힘들어 한 것이 분명하다면 나는 정말로 비겁한 사람이고 정말로 사랑이라는 것을 시작하는 것에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면 나는 겁쟁이고 용기가 없는 사람이었다.      

   그도 술을 잘 마시지 못했다. 알코올 냄새만 맡아도 취기가 올라올 정도로 술에는 매우 취약했다. 자동차 쪽으로 걸어가는 그에게 오늘 바에서 마신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지만 오히려 내가 마신 칵테일이 더 독한 술이라고 말하면서 웃었다. 그는 평소대로 내 방 앞에 서 있는 가로등 아래 차를 세우고 들어가라고 말했고 오늘 유난히도 달랐던 그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지만 그렇게 말하는 것이 오히려 그에게 모욕감을 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그냥 가볍게 그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주고 차에서 내릴 수밖에는 없었다.       

   내 방으로 들어와 온 종일 나를 귀찮게 했던 불편한 옷부터 벗어버렸다. 그리고 동화속의 공주가 제 자리에서 한 바퀴를 빙그르 돌고 침대위에 쓰러지는 것처럼 그냥 그대로 침대위에 쓰러졌고 마실 때는 느끼지 못했지만 칵테일에 정말로 알코올이 들었던 것인지 천장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것이 마치 회전목마를 타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머리가 어지러웠다.      

   점점 느리게 돌아가는 천정을 보면서 나는 ‘이렇게 시작되는 것이 사랑의 시작인 것일까? 남녀가 사랑을 하게 되는 것은 어떤 감정인 것일까?’ 하는 생각만으로는 도저히 느끼지도 답을 알아낼 수도 없는 것들을 고민했다. 아직도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는데 이렇게 그냥 흘러가도록 지켜보고 있으면 되는 것인가. 아니라면 나의 분명한 생각과 계획을 그에게 말해주고 더 이상 그가 힘들지 않도록 해 주어야 하는 것인가. 적어도 오늘 밤 나는 나의 애매한 태도 때문에 그가 고민해 왔던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앞으로도 나의 행동이 계속 이럴 거라면 아마도 그는 나와 친구처럼 지내는 지금의 이런 사이마저도 포기해 버릴 것이다. 그러면 내 마음은 지금 어떤 상태인 것일까. 아까 솔밭에서 그가 나에게 키스를 하려고 했었다는 것을 알 고 있었는데도 오히려 나는 그 자리에서 그런 분위기를 외면하려고 했었다. 단지 내 첫 키스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는 이유에서. 아니 준비가 안 되었다는 것은 변병에 불과한 것이고 사실은 아직은 그와 첫 키스를 나눌 만큼의 생각이 내 맘속에 자라 있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을까. 마음속에 친구라는 관계로 아예 처음부터 선을 그어 놓음으로써 그에게 다가갈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으면서도 그가 나에게서 멀어지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나는 정말로 아직은 마음의 준비가 안 되어 있었다. 아니 이십대를 꼬박 오로지 나만을 위해서 내가 좋아하는 것만을 위해서 살아왔던 내가 아니었던가. 엄마와 함께 병원에서 지냈던 기간도 결국은 엄마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나를 더 독립적인 존재가 되는 여건으로 여기면서 지내온 것은 아니었을까. 현재 나는 누구한테라도 아쉬울 것이 없고 매우 강하고 자립심이 있는 사람이 되어 있는데 이렇게 혼자서 지내는 것도 충분히 즐겁고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나인데 이런 상태로 누군가에게 내 마음을 열고 그 사람을 마음속으로 데리고 들어와 그를 위한 자리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여유가 있었던 사람인가. 갑자기 머릿속이 복잡해지면서 고질병, 두통이 오기 시작했다. 나는 책상위에 언제나처럼 올려있던 흰 약통에서 두통약 한 알을 삼기고 잠이 들면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기에 일부러 눈을 감았다.      

   이른 아침부터 부산을 떨었다. 엄마는 나에게 오늘은 특별한 날이니 꼭 이 옷을 입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면서 선홍색 치마와 색동으로  된 저고리를 가져와 직접 입혀 주고 계셨다. 엄마는 솜씨가 매우 좋은 사람이라서 옷고름을 대충 매는 것 같이 보여도 엄마가 해 주는 것은 언제나 완벽하게 어울리고 예뻤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나는 거울 앞에 서서 내 모습을 바라보았다. 여덟 살 꼬마 현이었다. 밤새 뒤척거리다 새벽녘이 되어서야 겨우 잠이 들었는데 그 잠깐을 편하게 잠들지도 못하고 고새 또 꿈을 꾼 것이다. ‘엄마가 한복을 입혀주는 꿈이다. 무슨 뜻일까.’나는 일부러 꿈이 어떤 예지라도 해 주는 것처럼 계속 꿈속에서 거울을 본 나를 생각했다. 오늘은 승진시험 합격자 발표가 있는 날인데 유난히 긴장을 하고 있어서 그런 꿈까지 꾼 것이라 생각을 하면서 나는 출근했다. 오전 열 시가 되면 지방청에서 합격자 명단을 게시판에 공지할 것이다. 이미 나는 경찰관인 신분이므로 되어도 그만 안 되어도 그만이라는 심정이 아닌 나는 정말로 첫 번째 승진 시험만은 정말로 꼭 합격하고 싶었다. 과장님께서 서장님 회의를 마치고 사무실로 내려와 계장님과 내게 간단한 전달사항을 말씀해 주시고 계시던 중 사무실 전화벨이 울렸다.      


   “감사합니다. 청문감사관실 순경 김현이 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업무적으로 걸려오는 전화는 이렇게 받아야 정석이었다.      

   “김 순경. 나야 지방청 송 행정관. 공부 열심히 안 했던 모양이야. 합격 축하해!”


   지방청 교육계에 근무하고 계시는 행정관님의 전화였다. 내가 계속해서 필기시험에만 합격하고 체력검정에서 떨어지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계시던 분이셨고 시험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가장 먼저 알려 주신 분이셨다. 통화하는 것을 듣고 계시던 과장님과 계장님께서는 ‘그래, 잘 했어. 나는 될 줄은 알고 있었는데 정말 잘 했네.’ 말씀하시면서 회의를 짧게 끝내셨다. 게시판에 공지된 명단을 확인해 보았다. 청 소속 근무자들을 포함하여 15개 경찰서에 근무하는 순경들 가운데 시험에 응시한 200명이 넘었던 수험생들 사이에서 총 12명의 합격자 중 나는 8등이었다. 노력에 비해서 내가 가진 조건에 비해서 선방한 셈이었다. 정말로 기뻤다. 생활안전계 안 경장님은 명단의 1, 2등에 내 이름이 없어서 떨어진 것으로 생각하고 명단을 끝까지 볼 생각도 없이 문서 창을 닫아 버렸다고 말을 해서 한참동안 나를 웃게 만들었는데 사실 나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잘 알고 있었던 사람이라면 분명히 상위권의 좋은 성적으로 합격할 것이라고 생각을 했던 모양이었다. 행정관님조차도 내게 공부를 열심히 안했던 모양이야 라고 말씀을 하셨으니.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지만 마음속으로 조금은 경쟁 상대자로 여겼던 정보과의 그 여경 선배는 명단에 이름이 없었다.      

   나는 엄마에게 전화를 하면서 마침 새벽에 꾼 꿈 이야기를 말 했는데 아마도 곱게 한복을 차려 입을 수 있는 날이 일 년 가야 며칠 안 되었기에 오늘 좋은 일이 있을 것을 예지하는 꿈이었던 모양이라고 말씀해 주셨고 어쨌든 나는 아주 오랜만에 느낄 수 있었던 내 자신에 대한 만족감과 성취감으로 정말로 기분이 좋았다. 마치 헤르만 헤세의 한스가 신학교 시험을 2등으로 합격했을 때 ‘이렇게 될 줄 미리 알았더라면 1등도 할 수 있었을 것 같아요.’라고 했던 그 말이 지금 꼭 내가 하고 싶은 말이기도 하단 생각까지 들 정도였으므로.      

   그러고 나서 보름이 넘도록 나는 그의 모습을 보지 못했다. 그리고 그에게서 단 한 통의 문자도 오지 않았다. 전화를 걸어볼까 생각하였지만 나에게도 우리 사이를 명확하게 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보름간 합숙 교육을 들어간 것이기는 했으나 나는 그가 나와 관련된 생각을 정리하고 싶어서 일부러 자진하여 교육을 들어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하루 이틀 모습이 보이지 않고 연락이 안 되는 그가 어느 쪽으로든 점점 마음을 굳혀가고 있는 것이란 생각이 들기 시작하고 있었다.      


진실과 진심     


   내가 이토록 이기적인 사람이었단 말인가. 그가 보이진 않았던 첫날은 괜찮았다. 단지 내가 시험에 합격한 사실을 그가 알고 있는지 모르는지 문자한통 보내주지 않는 그가 조금은 서운하기까지 하였고 나로서는 그 당일 하루 동안에 얼마나 많은 문자와 전화를 받았는지 셀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둘째 날, 그와 매우 친하게 지내는 수원선배가 내가 하는 인사를 평소와는 달리 아주 사무적으로 받았다는 것에 나는 조금씩 심각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가 보이지 않았던 처음 일주일은 그냥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그렇게 지나갔다. 승진 시험이 끝나고 합격까지 했는데도 내가 도서관으로 그동안 읽지 못했던 책을 들고 갔다는 사실을 안다면 나를 재미없게 사는 사람의 전형이라고 손가락질을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나는 그 유혹을 아니 별로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았고 그저 내가 원하는 것이면 그대로 했었다. 또 내가 책을 읽는 다는 것이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사실도 아니었으므로. 하지만 오로지 책 속에만 집중할 수가 없었고 혹시나 하고 그에게서 어떤 문자라도 와 있는 것인지 습관적으로 휴대폰을 열어보게 되었다. 더디게 가는 시간만 머릿속에 각인될 뿐이었다. 밤 10시, 동절기에는 평소보다 한 시간 빨리 문을 닫았으므로 나는 가방을 챙기고 밖으로 나왔다. 겨울비가 내리고 있었다. 날이 그다지 춥지 않았기에 눈 대신 비가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도서관 출입문을 삼삼오오 걸어 나가는 사람들 틈에서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한 참을 서 있었다. 관리인으로 보이는 사람, 아니면 오늘 당직인 것으로 보이는 사서가 도서관 출입문을 안쪽에서 걸어 잠그고 모든 전등에 불을 꺼버리고 건물 안 깊숙이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컴컴해져버린 현관 밖 입구에서 바로 앞 길가에 서 있는 가로등 불빛 아래를 바라보았다. 굵고 작은 빗방울들이 한데 뒤섞여 내리는 모습 속에서 나는 지난 여름밤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던 날을 회상하면서 그렇게 한참 동안을 서 있었다.     


   “나 도서관 나왔는데 비가 와. 우산도 안 가져 왔는데.”

   “조금만 기다려. 곧 갈게.”     

   그는 가로등 아래 타고 온 택시를 잠시 기다리게 해 놓고 내가 서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 내 손을 잡고 택시 쪽으로 달리다시피 하면서 함께 뒷좌석에 나란히 앉아서는 택시 기사님께 내 자취방이 있는 쪽으로 가 달라고 말했다.         

   “차는 어쩌고?”

   “팀장님이 소주를 몇 잔 주시는 걸 어쩔 수 없이 마셨어. 미안한데 또 거기로 가봐야 돼.”     

   그는 나를 집 앞에 내려 주고는 타고 왔던 그 택시를 타고 다시 돌아갔다. 나는 그것이 그가 내 말이라면 어떤 상황에 있더라도 한 걸음에 달려와 줄 정도로 나를 얼마나 좋아하고 있는지를 그 때는 정말 모르고 있었다.     

   언제까지 그 곳에 서 있을 수는 없었고 점점 빗줄기가 잦아들고 있는 것이 보였으므로 빗속을 맨몸으로 걸어 나와 집까지 왔고 집안으로 들어왔을 때는 다행이 코트 안까지는 빗물이 스며들지 않았지만 거의 20분이 넘도록 겨울비를 맞으면서 밤길을 걸어왔으므로 온 몸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져 있었고 나는 아무것도 할 생각도 하지 못한 채로 그대로 그냥 침대 속으로 들어갔다. 새우등을 하고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있는데 갑자기 그가 너무나 보고 싶었다. 이불속에서 휴대폰 불을 밝히고 그에게 ‘보고 싶어.’라고 짧은 문장을 써 놓고는 전송 버튼을 누를까 한참을 고민했지만 끝내 보내지 못하고 그렇게 잠이 들어 버렸다.      

   나는 다음 날 출근하지 못했다. 새벽녘에 온 몸을 바늘로 찔리는 듯 극심한 근육통과 머리가 깨질 것처럼 두통을 느끼고 잠에서 깼을 때는 이미 내가 봐도 내 몸이 펄펄 끓어오르는 물같이 뜨겁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 의사는 흉부선 사진을 보여주면서 폐 양쪽이 다 하얗게 되었다면서 급성 폐렴이 왔으니 입원을 해야 한다고 말했고 나는 사무실에 상황을 이야기 한 뒤 입원확인서에 직접 사인을 하고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병실 침대에 누웠다. 링거 수액이 몸속을 통과하면서 열도 조금 내려지는 것 같았고 숨을 내 쉴 때마다 나던 쌔하는 소리와 피 냄새도 한결 부드러워 지는 것 같았지만 오후에 회진하는 의사의 말은 나를 더욱 더 당황하게 만들었다. 혈액 검사 결과가 매우 안 좋게 나왔다면서 일시적으로 폐렴 탓에 염증수치가 그렇게 높게 나온 것일 수는 있지만 흔한 경우는 아니라서 다시 피 검사를 해 보고 이야기를 하자는 것이었다. 그 당시 왜 순간적으로 처음 엄마가 진단을 받던 날 붉은색과 푸른색으로 대조적인 결과 치를 나타내던 모니터 화면이 뇌리를 스쳐갔고 조금 불길한 예감이 들기는 했지만 의사 말대로 폐렴 탓에 고열이 나서 일시적으로 결과가 그렇게 나온 것일 뿐이며 내 빈혈 수치의 7을 보고 – 보통 성인 여성의 정상적인 빈혈 수치는 13이고 적어도 11까지는 유지가 되어야 정상이라고 인정되는 – 미리 앞서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입원 당일 날이 금요일이라서 주말 이틀 동안에 나는 컨디션을 거의 정상으로 회복하였기 때문에 월요일 아침 일주일 분의 약을 처방 받아서 바로 퇴원하였다. 약을 다 먹으면 혹시 중간에라도 증세가 나빠지면 다시 병원에 나오라고 말하면서  며칠은 충분히 쉬어야 한다고 했고 계장님께서도 사무실일은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기 때문에 나는 내 방으로 돌아와 말 그대로 며칠 동안을 온 종일 침대에 누워서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한참을 그렇게 아무것도 안하고 누워있으면서 운동을 안했던 탓인지 등허리 근육이 뭉쳐서 걸을 때마다 허리에 조금씩 근육통이 왔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사무실로 출근하는 걸음은 가볍고 – 그것도 그럴 것이 앓는 동안 몸무게가 3킬로그램은 더 빠졌으므로 - 폐렴이 싹 다 나은 사람처럼 숨소리도 부드러워졌으며 숨에서 약냄새도 거의 사라지고 없었다. 입원한지 정확히 8일만의 첫 출근이었다. 그리고 오늘 사무실에 나가면 그를 볼 수 있었다. 그도 분명히 교육을 마치고 본래대로 돌아와 있을 것이었다.      

   나를 보는 사람들은 얼굴이 반쪽이 되었다고 정말로 다 나은 것이냐고 하면서 안부를 물어왔고 나는 전 보다 일부러 더 씩씩하게 행동했기 때문에 다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와 친했던 여경 선배님은 이젠 완전히 깡마른 몸매가 됐다면서 몸보신 좀 해야겠다면서 저녁에 고기를 먹으러 가자고 하셨고 나는 선뜻 그렇게 하자고 대답했다. 이렇게 내게 반갑게 인사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로 넘쳐나는 경찰서가 내 직장이라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이며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지내는 것이 삶에 있어 정말로 큰 활력소가 된다는 사실을 새삼 느낄 수 있었지만 정작 정말로 보고 싶었던 그와는 온종일 단 한 번도 마주치지 못했다. 그 여경 선배님은 박 경장님이셨지만 나와 단 세 살밖에는 차이가 나지 않았으므로 편하게  언니라고 불렀는데 저녁을 먹는 도중 뜻밖의 소식을 듣고 나는 그만 가슴이 철렁 주저앉고 말았다. 그 언니는 그와 마찬가지로 그 곳이 고향이었고 가족들 모두가 그 곳에 모여 살고 계셨으므로 동향이던 직원들에 대해선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언니한테서 들은 놀랄만한 소식이라는 것은 강력 2팀 – 그 팀은 그가 속했던 팀이었다. - 이 오늘 새벽 중요수배자들을 검거하는 과정에서 몸싸움을 벌였는데 범인이 품에 숨기고 있었던 칼에 누군가가 좀 크게 다쳤다고 하는 말이었다. 그 도중에 범인 한 사람이 도망을 쳤는데 직원이 다친 마당에 놓친 범인 일도 그렇고 말하기 예민한 일이라 직원들 사이에서는 아직 쉬쉬하는 모양이고 다친 직원이 급하게 병원으로 이송되면서 정확하게 누가 다친 것인지는 자기도 모른다고 말했다.      

   나는 왠지 다친 사람이 꼭 그라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를 못 본지도 벌써 보름이 넘었다. 그가 장난 섞인 태도로 내 손목을 잡고 어디론가 급하게 간 것도 벌써 보름이나 되었다. 나는 언니와 헤어지자마자 그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그의 전화는 내 마음처럼 울리기만 할 뿐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나는 무조건 책방으로 달렸다. 분명히 책방 아저씨를 만나면 모든 사실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쉬지 않고 계속 달렸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면서 피 냄새도 함께 따라 올라왔고 심장이 터질 것같이 따가웠지만 그래도 쉬지 않고 달렸다. 책방 앞까지 거의 다 도착했을 무렵 3층 양옥 집 앞에 그의 지프차가 세워져 있는 것을 보았다. 분명히 집에 그가 있는 것이라고 확신했고 책방 문을 열었으나 문은 잠겨있었으며 안쪽의 불은 모두 꺼져 있었다. 나는 대문이 있는 쪽으로 돌아가 대문을 있는 힘껏 두들겼다. 철로 된 문이 작은 내 주먹에 부딪히면서 나는 소리가 컸던 것이 아니라 주먹의 힘에 대문이 밀리면서 틈새로 철문끼리 부딪쳐 나는 소리로 한 밤중 깊은 잠에 빠진 사람이라도 깨울 정도로 정말로 시끄러웠다. 그렇게 얼마나 대문을 두드리고 서 있었던 것일까, 어둠속을 쉬지 않고 얼마나 오랫동안 달려왔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나는 대문을 등지고 그만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온 몸에 남은 힘이라고는 그저 대문에 기대어 겨우 앉아 있을 정도 밖에는 없었다. 울고 싶었다. 그냥 어린애처럼 그 자리에 주저앉아서 울고 싶었다. 그런데 갑자기 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고 그가 내 앞에 우두커니 서 있는 것이 아닌가.      

   “너 왜 여기에 앉아 있어? 응? 왜 여기에 이러고 앉아 있냐고 바보같이.”


    나는 그를 올려다보면서 활짝 웃어 보였다. 그런데 막상 그를 보니 참았던 눈물이 터져 나와 버리고 말았다. 나는 그에게 앉은 채로 손을 내밀면서 나를 좀 일으켜달라고 말했는데 그는 오히려 무릎을 굽히고 내게로 가까이 내려와 앉았다. 그리고 두 뺨에 흐르는 눈물을 자기 두 손으로 닦아 주면서 가만히 내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너 괜찮아? 나는 네가 다쳤다고 해서 얼마나 걱정했는지 몰라. 너 정말로 괜찮아? 어디 좀 보자.”

   “이 바보야. 너 정말로 바보 맞구나.”

   “아니 박 경장님이 새벽에 강력 2팀이 수배자 잡는 곳에서 범인이란 몸싸움을 하다가 칼에 찔렸다고......... ”


   나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내가 더 말을 하지 못하도록 이미 그의 입술이 내 입술에 맞닿아 있었으므로. 그 순간 나는 아주 잠시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의 감은 눈을 바라보았지만 곧 바닥에 축 늘어져 있던 두 팔로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그가 내 두 볼에서 뗀 손으로 나를 끌어안아 일으켜 세우는 바람에 우리는 잠깐 입술을 떼고 서로의 얼굴을 쳐다볼 수 있었다.      

   “왜 이렇게 가볍니 꼭 깃털 같잖아. 그리고 왜 울어 바보같이.”

   “잊었던 감기가 왔었어.”     

    나는 울다가 살짝 웃어 보였다. 그렇지만 한시도 그의 눈에서 두 눈을 떼지 않았다. 그렇게 말하고 그는 다시 내 몸 전체를 끌어안았고 이번에는 내가 그의 양쪽 볼에 두 손을 올리고 먼저 그의 입술에 입을 맞추고 두 팔로 다시 그를 끌어안았다. 마치 멈춘 것 같은 시간 속에서 그렇게 얼마 동안을 서 있었을까. 그는 여전히 그의 품에 안긴 채로 그를 올려다보고 있는 나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보고 싶어서 죽는 줄 알았어. 얼마나 이렇게 안고 싶었는데 왜 이렇게 도망만 다니면서 애를 태웠니. 정말 너........”


    나는 그의 품에 안겨 그의 얼굴을 보면서 그가 말하는 것을 듣다가 말했다.      

   “나처럼 이렇게 변덕스럽고 나 혼자만 생각할 줄 알고 또 가끔씩은 한 번씩 엉뚱하게 생각하고 행동해서 사람 마음 놀래 켜고 애태우고 앞으로도 그럴지도 모르는데 아니 분명히 나란 애는 또 그럴 것인데 그러면서 너를 힘들게 할지도 모르는데 이런 나라도 괜찮니?”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대신 나를 더 가까이 그의 품으로 끌어안았다. 그리고 말했다. ‘사랑해. 어떻게 너를 사랑하지 않고 배길 수 있겠니. 사랑해 현이야.’라고.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심장이 바쁘게 뛰는 것을 서로의 가슴으로 느끼면서 그렇게 한참동안을 있었다.      

   사랑이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오랫동안 내 곁에 맴돌고 머물면서 나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려고 했었지만 나는 일부러 모르는 척 하면서 외면해 버렸다. 사랑을 머릿속으로만 하는 사람은 결코 충동적인 행동은 하지 않는 법이다. 처음에 그를 만나면서 나는 항상 머릿속으로만 생각했고 그 생각을 마음속 깊은 곳까지는 오지 못하도록 막아내면서 의식하고 염려했다. 난 생 처음으로 나에게 다가오는 남자, 그를 위한 자리를 내 마음속에서 양보해 줄 수 있을지 내가 그렇게 해 줄 수 있을 만큼 여유가 있었던 사람이었는지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그가 내 눈 앞에서 사라져 버렸던 날, 그렇게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가면서 점점 내 마음 한구석이 아프게 아려오는 것을 느꼈고 단순히 보고 싶다는 생각만으로는 눈물이 나지는 않았지만 그에게 나쁜 일이 생겼다는 직감이 들었을 때는 머릿속은 온통 흰 어둠으로 뒤덮여 버리면서 나는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그 순간에는 마음이 시키는 대로 마음이 내가 그렇게 하도록 마치 나를 조종하는 것 같았다. 머리로 생각을 한 것이라면 나는 절대로 한 남자에게 그렇게 미친 듯이 달려가지 않았을 것이다. 더군다나 보름이 넘도록 나를 외면하고 있었던 그 남자가 미워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바보처럼 온 힘을 다해서 달려가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저녁으로 삼겹살을 먹고 절대로 그와 키스를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적어도 내가 꿈꾸어 오던 첫 키스는 달콤하고 향긋하고 부드러운 맛이 나는 것이었고 꼭 그래야만 했으므로. 그리고 비록 내 모습이 내 마음에 쏙 들도록 예쁘지는 않더라도 할 수 있는 한 가장 예쁜 모습으로 그 앞에 나타났어야 옳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눈물과 땀으로 얼룩진 얼굴을 하고 그를 봐야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에게로 달려갔고 그를 보자마자 그런 바보 같은 얼굴을 하고서 웃었고 그리고 그런 얼굴로 그와 첫 키스를 나누었다. 이 모든 행동들이 머릿속으로 생각한 것이라면 상상 속에서만 일어나고 끝나버렸을 테지만 지금까지의 이 모든 상황이 비록 꿈같이 느껴지기는 하지만 전부다 사실이고 현실이었으니까. 그리고 그가 나에게 사랑한다고, 어떻게 나를 사랑하지 않고서 참아낼 수 있겠느냐고 내 이름을 불러주면서 고백하는 것을 분명하게 들으며 그의 품에 안겨 있었으므로.      

   누군가와의 관계가 애매하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를 모를 때에는 특히 그 관계가 그와 나처럼 막 시작하고 있는 연인들 이라면 이렇게 서로에게 시간을 주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비록 그 시간동안 나는 폐렴을 이겨내느라 많이 아팠고 그를 못 보는 데서 오는 상실감으로 지루한 하루하루를 견뎌내기 힘들었지만 그 과정 속에서 내 진심이 어떤 것인지를, 그를 향한 내 마음이 어떤 상태인지를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반대로 나를 못 보고 지내던 그의 생활이 어땠을지는 짐작만 할 수 있을 뿐 그의 마음이 어떻게 변해갔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내가 그를 많이 그리워했던 것처럼 그도 나 때문에 참아내기 힘든 시간을 보냈다는 것만큼은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우리가 다시 만났을 때 그 순간의 감정이란 그 이전에 매일 보아오던 사람들의 일상적인 반가움이나 즐거움이 아니라 마치 심장 속에서 불꽃놀이라고 벌어지고 있는 것처럼 따끔따끔 아플 정도로 어쩌지 못했던 설렘을 서로의 몸을 끌어안고 입맞춤으로 대신하고 있었으므로. 그것이 그와 내가 서로에게 마음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오히려 더 안아주지 못함에 안타까움을 느꼈을 정도였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으므로.     


시간은 비밀처럼 흐르고      


   예전에 나는 한 사람이 감당해 낼 수 있는 시련과 아픔이 도대체 어디까지일까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요즘 나는 한 사람이 누릴 수 있는 행복과 만족감은 어디까지일까 생각하곤 한다. 그는 모든 것을 나보다 먼저 나에게 주었다. 만일에 그가 가지고 있지 않는 것이 있었다면 하늘의 별이라도 따다가 가져다 줄 것처럼 나를 대했다. 반면 나는 그가 해주는 것을 받기만 하면서 지냈다. 언제나 거의 항상 그가 먼저 내 손을 잡았고 나를 먼저 안아 주었고 나보다 먼저 입맞춤을 해 주었고 그리고 언제나 그가 먼저 사랑한다고 말했다. 나는 늘 그보다 한 박자 늦게 그의 손을 잡았고 그를 안았으며 그에게 입을 맞췄다. 그리고 ‘나도 사랑해’라고 대답해야만 했다.      

   우리 둘 사이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 단 몇 명 뿐 이었었고 그래서 근무시간 동안만큼은 서로를 매우 사무적인 태도로서 대해야만 했고 가끔 그런 것을 두고 사소한 다툼을 하긴 했었지만 그런 일들은 가벼운 이야깃거리에 지나지 않았을 뿐 별로 신경 쓸 일은 아니었다. 하루는 경무과에서 언론 보도 자료를 내면서 내 도움이 필요하다고 하여 늦은 밤 시간까지 홍보 담당자와 야근을 한 적이 있었다. 당시 나는 글재주가 조금은 나은 편이라고 사실과는 달리 다소 과장된 소문이 나 있었고 그래서 전 경찰서 청문감사관실 직원을 대표해서 <청렴직무사례집> 발간 작업 때 지방청 담당자와 함께 일을 했었던 경험이 있기도 했으므로 업무적으로 해 오는 부탁은 다소 개인적인 면이 없지 않아 있었더라고 쉽게 거절할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언제나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그가 홍보 담당자와 함께 경찰서 정문을 걸어 나오는 것을 본 모양이었다.  

    

   “언제부터 그렇게 그 직원하고 친하게 지낸 거야? 되게 친해 보이더라?”

   “누구?”

   “다 봤다고. 정문 같이 나오는 거.”

   “아~! 갑자기 중요한 보도 자료를 내야 하는데 경무계장님께서 또 우리 계장님께 전화하셔서 말씀하시니까 계장님 얼굴을 봐서도 그렇고 나도 딱히 거절할만한 이유가 없었거든. 그리고 같은 경찰서 직원끼리 도움 주면서 일하는 것도 나쁘지 않잖아.”

   “내가 뭐 하나 하자고 하면 거의 맨날 생각해 본다 어쩐다 하면서 단 번에 오케이 한 적이 없잖아.”     

   나는 그가 아이처럼 질투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그의 팔짱을 끼면서 마치 아이라도 대하는 엄마처럼 말했다.      

   “아이 그랬어요? 그럼 우리 자기는 지금 뭐가 제일 하고 싶어요? 이 누나가 다 들어줄게요.”     

   으흐흐, 닭살이 돋는다. 나는 본래 애교의 ‘애’자도 모르고 살아온 사람인데 내가 그 앞에서 이런 코맹맹이 소리를 내게 될 줄이야. 그가 나를 변하게 만든 것인지 아니면 그에 대한 내 마음이 나를 변하도록 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나는 주변의 모든 것들에 조금씩 마음을 내어주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나 정말로 하고 싶은 게 있어. 정말로.”

   “그게 뭔지 얘기를 해야 할지. 그렇게 아이처럼 굴면 누가 들어주니? 들어주려는 마음이 들다가도 쑥 들어가겠다.”

   “주말에 여행가자. 모든 준비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너는 그냥 따라가기만 하면 돼.”

   “어디? 하루에 다녀오면 되는 거야? 거기가 어딘데, 응?” 

   “너는 왜 언제나 이렇게 질문이 많니, 그냥 단 한번이라도 내가 하자는 대로 그냥 따라와 주면 안 되니?”

   “아, 아니. 나는 갑자기 여행을 가자고 하니까, 그래서 궁금해서 그런 거야.”

   “너는 나를 아직도 그렇게 못 믿는 거야? 설마 무슨 일이라도 저지르게 될까봐? 설령 또 그러면 어때! 우리 둘 다 서른 살, 이제 거의 노땅들에 가깝다고.”

   “노땅? 노총각 노처녀?”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너야말로 이제 정말로 노처녀야. 내가 구제해 주지 않으면 아직도 도서관에서 책이나 보면서.........”     


   그가 생각해도 자기가 지나쳤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더 이상의 말을 멈추고 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사실은 내가 홍보 담당자와 다정하게 걷는 모습을 보고 화가 나서 그런 것인데, 내가 자기를 달래줄 때 그냥 못 이기는 척 하고 말았어야 했는데 그만 나에게 말실수를 해 버린 것 같다면서 미안하다고 사과했지만 나는 이미 기분이 상한 상태였고 아무리 그가 나에게 미안하다고 하더라고 지금 당장 풀릴 것 같지는 않았다. 그리고 ‘네가 나를 구제해 준거니? 안 그래도 됐었는데, 나는 너를 만나지 않았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일 들을 하면서 충분히 즐겁게 지낼 수 있어. 그만큼 나는 내 자신에 자신감이 있고 충만하다고. 이미 오래전에 큰 아픔도 경험해 보았기에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만큼 내면이 성숙했다고. 진심으로 네가 나를 구제해 준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거라면 우리 이제 더 이상 만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너를 전처럼 대할 수 없을 것 같아. 그만 만나 이제.’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에게 상처를 주기 싫었으므로 그리고 그의 기분도 내 기분처럼 엉망진창 속으로 빠뜨려 버리고 싶지는 않았었기 때문에 참을 수밖에 없었다. 표정이 변하는 것을 본 그는 정말로 내게 미안해하는 것 같았지만 나는 그냥 오늘은 생각할 것이 있다고 이야기를 하고 그의 말을 더 이상 들을 것도 없이 차에서 내려 집으로 걸어왔다. 오는 내내 그는 내 걷는 속도대로 나를 따라왔지만 단 한 번도 그를 쳐다보지 않았다. 집으로 오는 내내‘도서관에서 책이나 읽으면서, 책이나 읽으면서, 책이나 읽으면서.’라고 말하던 그의 말소리가 마음속에 메아리 쳐 울리고 있었으므로 그의 말이 귀에 들릴 리가 없었다. 그의 말이 내게 심한 모욕감을 안겨 주었던 것이다.      

   누군가는 이런 나를 보고 사소한 일로 너무나 터무니없이 행동하는 것이라고 내 연애하는 태도를 지적할지 모른다. 하지만 책에 대해, 특히 내가 책을 읽는 것에 대해 다른 사람도 아닌 그가 그렇게 말을 했다는 사실 자체가 내게는 용납되지 않았고 그동안 책을 너무 많이 읽어서 책속에 틀어박혀 버린 것은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언제나 책에 있어서만큼은 ‘너무 많이 읽었다.’는 식의 지나침의 표현은 해당될 수 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점점 더 고리타분하게 책의 정석대로 세상을 바라보던 사람도 아니었기에 더더욱 자존심을 건드린 것이다. 그건 마치 정말로 외모 콤플렉스가 심한 여자에게 그 점만을 콕 찍어서 ‘정말로 못났다. 못 생겼다. 전혀 예쁘지가 않다.’고 말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 뒤로 일주일이 넘도록 그의 전화와 문자에 대해 단 한 번도 반응하지 않았다. 사랑싸움에 있어서 단순한 신경전이 아니라 그의 말대로 정말로 나는 서른이었다. 그것은 이제 막 성인식을 지낸 사회 초년생들의 연애가 아니었고 적어도 비슷한 미래를 꿈꾸며 삶을 살아갈 평생의 동반자로서 남자를 만나야 할 시기에 있었고 누군가를 쉽게 만나보고 헤어질 수 없는 진솔함을 갖고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유난히 내가 연애에 대하여 고리타분한 생각을 갖고 있었는지는 모르나 적어도 내가 정말로 사랑하게 되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을 때 과거의 내 행동에 대해 적어도 미안한 생각이 들어서는 안 된다는 연애관을 갖고 있던 마음이 혼란스럽기까지 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끊임없이 나를 찾아왔고 나에게 사과했다. 이런 불편한 시간들이 길어지면서 나는 점점 왜 그날 그 자리에서 내가 속으로 생각했던 말들을 참고 있었는지 후회가 되기도 했었다.      

   전화의 진동벨이 계속 울렸다. 그의 전화를 이제 더 이상 외면할 수가 없었고 받기 전에 시간을 먼저 확인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새벽 세 시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통화 버튼을 누르고 전화기를 귀에 대자 그 너머로 그의 숨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이제는 내 전화를 받는구나. 이제 마음이 다 풀린 거니? 정말로 네가 그렇게 그냥 집에 들어가 버린 이후로 정말 지내는 게 말이 아니었어. 아, 미안해. 사과부터 해야 맞는데, 내가 생각이 짧았다 정말로. 어떻게 하면 전처럼 될 수 있는 거니?”

   “전처럼? 나한테 잘못한 거 없어 넌, 오히려 이유 없이 내 자존심이 센 것이 문제라면 문제야. 그러니 미안하다고 사과할 것 없어.”

   “..........”     


   그는 대답하지 못했다.      


   “나는 네 말대로 연애 경험을 다 책으로 해서 그동안 네가 힘들었을 거야. 그런데 어쩔 수 없어. 이제까지 이렇게 살아왔는걸. 너는 그래도 아버지가 책방을 하시니까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어떨지 어릴 때부터 봐 왔으니까 그런 말을 그렇게 쉽게 할 거란 생각은 못했어. 그래, 문제가 있다면 나에게 있겠지. 너무 틀에 박힌 사고방식에다 요즘 사람답지 않게 고루하고 진지하고 지루하고. 알아, 나의 이런 면이 너를 숨 막히게 할 수도 있었다는 걸. 전화로 이러는 거 소모전이라 생각해. 내일 시간이 되면 퇴근 후에 만나. 그러는 게 좋겠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이기적이다. 나도 그렇지만 그도 그럴 것이다. 사랑을 하는 데 있어서도 두 사람 중 조금 더 이기적인 본성이 강한 사람 쪽으로 이끌려지게 된다는 것을 알았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을 자신조차 사랑하지 않는데 타인인 누가 나 자신보다 나를 더 사랑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나는 내 자신을 사랑할 줄 몰랐다. 그저 끊임없이 내가 좋아하는 것을 시켜가면서 괴롭혀 왔을 뿐 진정으로 내 본심이 원하는 것을 그대로 따라가도록 내 버려 둔 적이 살면서 과연 몇 번이나 있었단 말이던가.      

   다음 날 그를 만나자마자 솔밭 해안가로 데려가 달라고 말했다. 평소보다 몇 배는 심각한 얼굴을 하고 일주일 동안 한 번도 면도를 하지 않았던 것인지 거뭇거뭇하게 수염이 자라있는 그의 얼굴이 조금은 안쓰러워 보이기도 했다. 늘 앉던 탁자에 나란히 앉아서 처음 몇 분 동안을 우리는 아무 말도 없이 수평선 너머로 이제 막 가라앉기 시작하는 해를 바라보았다. 여름 바닷가의 노을은 늦은 시간까지 붉게 타오른다. 동이 틀 때의 해보다 석양에 지는 해가 더 진한 붉은 색으로 타오르는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있었던가. 바닷가에서 단 한번이라도 떨어지는 해를 보았다면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게 될 것이리라. 해는 바다 깊은 곳으로 가라앉아서 낮 동안 흘린 땀을 식히고 있다가 달이 바다로 빠질 무렵, 즉 동이 틀 무렵이면 방금 세수를 마친 뽀얀 얼굴과도 같이 상쾌한 상태로 물 밖으로 나오는 것이라 그렇게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여름철에는 달이 늦게 떠오르는 만큼 해는 가라앉기를 주저한다. 그 모습이 마치 평생가야 단 한번을 마주치지 못하는 기구한 운명의 사랑이라도 하는 연인의 모습처럼 해와 달이 그날따라 서글프게 다가왔다. 노을이 번진 그의 얼굴이 붉어졌고 눈빛이 까맣게 반짝거리는 것을 보았다. 그가 먼저 내 손을 잡아 주었고 나는 그의 어깨에 기대었다. 그리고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행가자. 네가 원하는 곳에 가고 싶어.’라고.     

   젊은 남녀가 하룻밤을 염두 해 두고 여행을 간다고 한다면 누구나 반드시 하게 되는 생각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와 나도 그렇게 조금은 길다 싶은 사랑싸움이 끝나고 서로에 대한 마음이 전보다 성숙해진 것을 느낄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내가 순진한 척, 전혀 아무것도 모르는 척 하면서 그를 따라갔던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고백하고 싶다. 그도 나에게 특별한 무엇을 기대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고 나 또한 어떻게 하룻밤을 그와 꼬박 보내야 할 것인지 고민하고 걱정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를 데려간 곳은 바다의 정 반대 등산코스였다. 조금은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출발 전부터 나는 들뜨지 않고 차분한 마음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었고 이미 여름이 끝나가는 데도 여전히 짧은 소매 짧은 반바지를 입고 나타난 나를 두고 마치 학교 선생님이 잘못을 저지른 학생을 꾸중하듯 나를 혼냈던 탓도 있었지만 그런 차림으로는 도저히 자기 계획을 실현시킬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래서 나는 그렇다면 처음부터 최소한 옷차림에 대해 언질을 해 주었다면 이러지 않았을 것이냐고 다툴 뻔했지만 그는 그냥 자기가 알아서 하겠다면서 무작정 출발했고 천고지가 넘는 산을 등산하고 내려와 저녁을 먹고 숙소에서 다음 날 늦게까지 늘어지게 잠을 자고 일어나 다시 이곳으로 돌아온다는 것이 그의 여행 계획 일정이었다. 산이라면 원피스에 샌들을 신고서라도 그보단 잘 탈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어릴 때부터 기본적으로 해발고도 600고지를 뒷동산 오르내리 듯 하던 나였지 않았던가. 그에게 여행 일정을 듣고 걱정 말라고 만일 경주라도 한다면 이길 자신까지 있다고 큰 소리를 쳤는데 막상 평지부터 오르는 길은 쉬운 것이 아니었다. 섣불리 우습게 봤다가는 나중에는 걸어서 내려오지도 못할 정도로 가벼운 등산코스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정산의 반까지도 올라가지 못했다.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한다면 처음부터 내 옷차림 자체도 문제였지만 일부러 올라가는 길 중간 중간에 서 있는 나무와 꽃과 그 사이로 보이는 하늘에 한눈을 파느라 정상까지 오르겠다는 마음을 출발 직전에 고쳐먹었고 그저 우리 둘은 손을 잡고 – 그가 앞서 올라가면서 나를 끌고 가다시피 한 것이나 다름없었지만 – 오르내리는 등산객들에게 마치‘저희는 지금 연애중이예요.’라고 말하고 싶어서 산을 올라가는 것 같기도 했다. 중턱에 오르니 조금은 길다 싶은 평지길이 나타났고 몇 가지 생활체육 운동 기구와 중간 중간 긴 벤치가 설치되어 있었다.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산 속에서 인간이 만들어낸 조형물을 보게 되면 어떤 사람들이 이 무거운 쇠 덩어리들을 어떻게 여기까지 들고 올라와서 설치를 해 놓은 것인가 그 분들의 노고가 새삼 존경스럽고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거의 맨손으로 올라가는 우리들은 제 몸 하나도 힘에 부쳐 숨을 헉헉거렸기 때문이다. 시선이 탁 트인 가장 전망이 좋은 자리를 젊은 사람 둘이서 차지하고 앉아서는 물 한 모금씩을 나눠 마셨다. 이런 상태를 일상에서 벗어난 데서 만이 맛 볼 수 있는 소위, ‘기분전환’이라고 말하는 것일까. 아무튼 여행을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의 콧잔등에 나 있는 땀방울조차도 무척 귀엽게 보였으므로. 그저 부드럽게 불어오는 바람과 하늘의 무심히 떠 있는 구름과 심지어 숨 쉬는 데 방해만 되었던 뜨겁게 쏟아지는 햇살까지 이 모든 것들이 앞으로 다가올 시간들에 다가올 모든 기쁨과 슬픔들을 잘 이겨낼 수 있을 것 이란 여유로움마저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잡은 숙소는 산 아래 숙소가 삼삼오오 붙어 있던 곳 중 한 곳으로 주로 통나무로 지어진 집들이 대부분이었다. 각각의 별채로 되어 있어서 일단 안으로 들어가면 활동이 매우 독립적일 수 있도록 건물의 각도가 조금씩 틀어져 있었고 덕분에 창의 위치가 조금씩 달라져 맞은편 숙소에서는 도저히 우리들이 들어가 있는 곳을 절대로 볼 수 없는 구조로 되어 있었던 것이다. 건축설계가의 섬세한 고민이 돋보이는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나무 향인지 아니면 방향제 탓인지는 모르나 은은한 향기가 온 방을 채우고 있었고 1,2층의 복층구조로 어릴 때 동화책 속에서 그림으로나 보았던 꼭 그런 집이었다. 들어오기 전에 이미 저녁을 먹고 온 상태라 이미 완전히 어둠이 깔린 상태였고 그도 그랬을 테지만 나는 낮 동안 땀을 많이 흘리기도 했고 몸이 무척 고단했으므로 더운 물에 좀 몸을 씻고 싶었다.      


   “더운 물 잘 나와? 나는 한 여름에도 찬물로는 못 씻어. 네가 먼저 씻어봐 더운물이 잘 나오는지.”

   “응, 나도 사실 좀 씻고 싶으니 먼저 씻을게. 아니 그럴게 아니라 우리 같이 할까?”


   나는 눈을 흘기면서 등을 떠밀며 그를 먼저 욕실 안으로 들여보내고 가방 속에 간단히 챙겨 온 것들을 정리하다가 계단으로 연결되어 있는 2층으로 올라가 보았다. 내 자취방에 있는 침대보다 조금 커 보이는 침대가 놓여 있고 그 옆으로 큰 창문이 나 있었는데 창문으로 보이는 밤 풍경이 매우 운치가 있었다. 하기야 그것도 전부다 중간 중간에 서 있는 가로등불이 없었다면 컴컴한 암흑 속으로만 보였을 테지만 가로등빛에 반사하는 오솔길과 나뭇잎파리들이 마치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거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침대 난간에 살짝 걸쳐 앉아서 얼마동안을 그렇게 있었을까 그가 욕실을 나오는 소리가 들렸고 반팔과 반바지를 입고 있는 것을 보고서 ‘제법 갖추어 입었네.’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매우 반듯한 모습으로 욕실 문 앞에 서 있었다.      

   “뭐 갖고 들어가야 돼? 샴푸랑 비누랑 수건은?”

   “그냥 몸만 들어가. 다 있어.” 


   나는 그의 말을 못 믿었던 것은 아니지만 내가 챙겨온 세면도구와 갈아입을 옷을 챙겨 옥실 안으로 들어갔다. 욕실은 그가 막 나온 기운으로 습기가 가득 차 있었고 세면대 앞 커다란 거울을 손으로 닦아내자 비로소 내 모습이 나타났다. 누구나 나를 아주 말랐다고 말했다. 이것은 경찰학교에서 교육생으로 있을 때 생활실 동기들과 언제나 단체 샤워를 했으므로 그들이 내게 해 주었던 말이지만 정말로 내 몸매는 예쁘다고 했었지만 나는 정말로 내 몸이 예쁜 몸인지 조금은 어색한 기분으로 거울 속에 서 있었던 나를 바라보다 샤워기로 쏟아지는 물의 온도를 손으로 맞춰보고 소나기를 만난 사람처럼 물줄기 속을 한참동안 서 있었다. 목욕을 신의 축복이라고 말하는 이유를 제대로 알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나도 그처럼 잠잘 때 입을 만한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욕실을 나왔는데 그도 나처럼 2층의 침대에 누워서 창문 밖으로 보이는 밤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 했어?”

   “응, 그런데 지금 몇 시야?”

   “열시 조금 넘었는데, 왜?”

   “아니 그냥 몇 시나 됐을까 궁금해서.”

   “이리 올라와 봐. 참 좋다.”


   그는 나를 자기 옆에다 끌어다 앉히고 오늘 자기가 매우 특별한 일을 준비했다고 말했는데 혹시 나보고 와인을 마셔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래서 나는 가장 최근의 일이었던 일 년 전쯤 두 선배님을 만났을 때 점심을 먹는 자리에서 직접 가져오신 와인을 아주 살짝 맛보았던 것이 떠올라 그것으로 대답했다. 1층으로 내려간 그는 미리 준비해온 것으로 보이는 와인을 옆구리에 끼우고 잔 두 개를 양손에 나눠 들어 2층으로 올라왔고 침대 옆 탁자위에 놓았다.      


   “술 못 마시는 거 알면서!”

   “바보, 와인은 술 아니야. 오히려 너 같은 체질을 가진 사람한테는 약이라고.”     

   나는 정말로 도수가 없는 것인지 병을 들어 깨알같이 작게 써진 글씨를 보다가 ‘13.5% vol. 75 cl’이라고 표시되어 있는 것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게 알코올 함량 표시 아니니? 그럼 맥주보다도 독한 술이잖아. 나는 맥주 한 모금만 마셔도 반응이 온다고.”   

   “그럼 입만 대. 혀로 맛만 보면 돼.”     

   그는 배가 둥근 와인 잔에 5분의 2까지만 따랐고 색이 검붉은 빛인 것으로 보아 포도주가 확실해 보였다. 


   “근데 너도 술 잘 못하잖아. 괜찮겠어?”

   “무슨 걱정이야. 여기에서 자고 갈 텐데.”     


   그는 형식으로라도 건배를 해야 한다면서 잔을 살짝 부딪치자 그 소리가 맑고 투명하게 미세한 울림으로 번졌다. 쓰고 시큼한 향이 코를 자극했다. 나는 더 이상 와인에 입을 대지 않았고 그는 잔이 비워지는 대로 스스로 채워 마셨다.      

   그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강하게 느껴질수록 나는 일부러 더 무심한 듯 창문 밖을 쳐다보았고 그렇게 조용히 밤은 깊어가고 있었다. 


   “우리 결혼은 언제 쯤 할까? 집은 30평 정도면 너에게는 어때?.”

   “응?” 

    

   나는 그의 말을 정확하게 알아들었지만 너무나 뜬금이 없었으므로 마치 잘 듣지 못했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면서 대답했다. 


   “너와 진심으로 결혼하고 싶어. 더 솔직하게 말하면 너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부터 너와 결혼해야겠다고 마음먹었어. 너에게 많이 모자라고 부족하다는 건 알고 있지만 나와 결혼해 줄래?”     


   그렇게 말하면서 그는 내 왼쪽 손을 가져가 장식이 없는 반지를 손가락에 끼워주었는데 그 것은 언제나 그가 왼쪽 손 새끼손가락에 끼고 있던 반지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이거, 너에게 의미 있는 반지니?”

   “맞아. 돌아가신 어머니가 지금 아버지에게 받으셨던 거. 결혼반지는 아니었지만 나처럼 이렇게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청혼하실 때 끼워주셨던 반지.”


   그가 끼워준 반지를 남은 손으로 만지면서 조용히 그를 바라보았다. 나는 내내 그의 시선을 느끼고 있는 상태였으므로 우리는 두 눈을 서로 응시하게 되었다. 그리고 앉아 있던 자리에서 그의 손을 잡고 일어나서 창문이 가까운 쪽으로 가서는 그의 한 쪽 손을 내 심장위에 올려놓고 말했다.    

  

   “청혼하려고 여기로 오자고 했던 거니? 나에게 조금이라도 생각할 시간을 줄래? 오래 기다리게 하지 않을 테니.”     


   대답하지 않고 여전히 나의 왼쪽 가슴에 손을 올리고 있는 그에게 나는 가벼운 미소를 보여주며 마음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이 반지를 내가 받을 자격이 있다고 너의 어머니께서 허락하실지 모르겠지만  내 심장이 뛰는 것을 느끼고 있다면 조금은 짐작할 수 있을 거야.’     

   그는 평소에는 별달리 말도 없었고 정말로 무뚝뚝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유난히 나와 함께 있는 곳에서는 너무하다싶을 정도로 아이처럼 굴기도 했는데 그날 밤에도 가져온 와인을 다 비우면서 나에게 사랑한다는 말 이외에 얼마나 낯간지러운 말들을 반복했던가. 조금은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흥분한 아이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러면서 그는 무슨 일이 생겨도 나를 꼭 지켜줄 거라고 담담하게 말하면서 침대에 있던 베개 하나를 들어 품에 안고 자기는 1층에서 자겠다고 말하고 계단을 내려갔다. ‘잘 자.’라고 하면서.     

  그래서 남자를 단순한 동물이라고 말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니 와인 한 병을 다 마신 탓으로 취기와 피곤이 겹쳐서 그런 것일 수도 있었지만 그가 1층으로 내려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잠이 든 것으로 보이는 숨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려왔다. 만일 그가 나에게 청혼하지 않고 이렇게 먼저 잠든 것이라면 내가 쓸모없는 걱정으로 너무 앞서갔다는 생각을 했겠지만 정말로 나는 지켜주겠다는 그의 말을 들었을 때는 지금 그의 행동과 숨소리를 수긍할 수 있었다. 나도 쏟아지는 졸음에 금방 잠이 들었으므로.      

   잠자리가 바뀐 탓인지 도중에 여러 번 잠이 깨고 말았는데 유난히 크게 들리는 그의 콧소리에 그만 깜짝 놀랐고 어느 사인가 그가 1층에서 올라와 내가 누워있던 침대 아래에서 새우처럼 등으로 베개를 끌어안고 잠들어 있는 것이 아니었던가. 천정에 난 작은 조명 빛에 어슴푸레하게 보이는 시계는 새벽 3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그런 그가 조금은 애처로워 보이기도 했으므로 그를 살짝 흔들어 깨웠다.     


   “그러고 있지 말고 이리로 올라와.”


   그는 내말을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용수철이 튕기듯 침대위로 올라왔고 옆으로 누워있는 나를 등 뒤에서 끌어안았다.      

   서로를 사랑하고 있는 젊은 남녀가 한 이불속에서 서로의 몸을 끌어안고 있는 순간의 긴장감이란 앞으로 펼쳐지게 될 사건에 대해 두려움과 흥분으로 떨리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이미 사람이 아니거나 상대방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공포심을 동반하는 호기심과 긴장감으로 마치 바다 깊은 곳에 빠진 상태에서 눈으로 보이는 신비한 생명체에 대한 경이로움을 느끼면서도 질식에 대한 압박감으로 떨고 있는 무서움과도 같은 것이었다. 사랑하는 두 남녀가 서로의 몸을 만지고 끌어안고 싶은 것은 본능이며 인간의 본능만큼 가장 솔직한 감정표현도 없다. 나는 등을 돌려 누워서 그를 바라보고 말했다. 


  “부탁 하나 들어줄래? 가방 안쪽에 달린 작은 주머니를 보면 손수건이 있어. 그거 나한테 가져다 줘.”   

  

   그는 마치 전에 내 가방 속을 뒤져보기라도 한 사람처럼 순식간에 손수건을 가져왔고 나는 그것을 손이 닿는 침대 옆 탁자 위 가까운 곳에 놓으면서 ‘이걸 써야 할지도 몰라.’라고 말했다.      

   그가 바보가 아니었던 것처럼 나 또한 바보는 아니었다. 정상적인 발육 과정을 통해 이미 완벽히 성장을 끝낸 완전한 성인들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두 사람 모두 서로를 너무나 원하고 있었다.      

   완전히 날이 밝았고 잠이 깨서 눈을 떴을 때 먼저 깨어나 있던 그가 내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주고 있었다. 내가 가져 온 손수건에는 말라서 갈색으로 변하기 시작한 뻣뻣한 핏 자국이 선명하게 나 있었다. 나는 그를 향해 돌아누워서 웃어 보였다. 솔직히 저절로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에게 얼굴을 파묻고 ‘미안해.’라고 말했다. 미안하다고 말을 꼭 해야 할 것 같았다.    

  

   “아무튼 이제 넌 아무데도 못 도망가. 밤새 나와 함께 있었고 피까지 봤잖아.”   

  

   그의 말소리가 조금은 냉소적이며 유난히 진지하게 들렸기에 그에게 화가 난 것인지를 물었으나 오히려 그는 나를 가까이 안으면서 ‘아프면 아프다고 무슨 일이 있어도 참지 말고 말해야 돼.’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을 때는 진심으로 미안한 생각이 들기는 했었지만 그야말로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혹시 화난 거야? 근데 있잖아. 코피가 날 때 통증이 있는 사람은 없어.”     


   내 말에 그도 피식 하고 잠깐 웃어버리고 말았다.      

   그랬다. 그날 밤, 그와 나는 그렇게 하자고 말로써 서로 합의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미 상대에게 확신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 겁낼 것이 없다고 생각했고 사랑하고 있는 두 남녀가 상대방에게 몸으로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표현을 막 시작하던 순간, 그런 우리의 관계를 질투라도 하고 있는 것처럼 눈치 없이 터져나와버린 코피가 숨 막히던 그 순간을 웃지 못한 해프닝으로 만들어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그는 코피로 얼룩져버린 내 얼굴을 보고 당황했고 탁자위에 올려놓았던 손수건으로 내 코피를 닦아 주느라 긴장으로 떨렸던 그 순간의 감정은 이미 멀리 달아나버린 상태였던 것이었다. 어쨌든 그 날 밤 손수건을 써야 할 일이 생기기는 했었지만. 아, 그리고 내가 그에게 결혼을 하겠다고 분명하게 대답한 것은 아니었지만 내 손가락에서 그가 준 반지를 빼지 않고 있었으므로 그는 그것으로써 내 대답을 대신한 것으로 여기는 것 같았다. 그 때부터 나에게 약간의 애칭을 섞어서 ‘자기야’등 듣기에 어색한 말들로 나를 부르기 시작했으므로.     


걸림돌     


   이미 내 고질병으로 여겨지던 현기증과 빈혈 외에도 그 날 이후부터 툭하면 코피가 나기 시작했고 두통이 한번 오면 한 개의 알약으로는 진정이 안 될 정도로 심각하게 찾아왔다. 사람은 누구나 몸이 안 좋다고 느끼거나 컨디션이 나쁘게 되면 본성적으로 온 정신을 내 몸과 자신에게 집중하게 되기 때문에 모든 사람과 일을 대할 때는 자신도 모르게 신경질적으로 변하게 된다. 그것은 내 의지와는 상관없는 것으로 표출되는 행동이지만 타인들은 마치 자신에게 어떤 잘못이라도 있는 것처럼 충분히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하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이다.      

   또한 무엇이든 넘친다는 것에는 분명이 뒤탈이 나기 마련이다. 그 때 그와 나 사이에는 아무런 문제는 없었지만 어느 한편으로는 초겨울 처음 얼어붙은 물가를 건너가는 사람의 마음처럼 언제 차디찬 물속에 발이 빠지게 될지 모르는 불안한 위험이 있다는 것을 나는 느끼고 있었다. 갈수록 안색이 창백해지고 있다는 것이 눈에 띄게 보였고 병원에 가야 된다는 생각은 하고 있으면서도 검사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누구보다 백혈병의 초기증상에 대해서 알아볼 필요도 없을 정도로 잘 알고 있는 나였기에 내 몸 안에서 일어나고 있었던 이상한 변화를 분명하게 느끼고 있었으며 본능적으로 불길한 예감을 느꼈던 것이다. 사실을 직시할 용기를 내야 할 때가 왔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제 더 이상은 병원 검사를 미룰 수 없었다.       

   엄마가 다니시는 병원에 직접 예약을 했다. 그에게는 서울에 사는 친구와의 약속이라 말하고서 저녁이면 돌아올 것이라 했기에 더 이상 별다른 말을 묻지 않았고 나는 서울행 기차에 홀로 몸을 실었다. 검사실 입구부터 풍겨 나오는 크레졸 냄새, 너무나 익숙한 분위기였다. 주사는 맞는 당사자 보다 보는 사람에게 더 통증을 안겨주는 것처럼 사실은 찔리기 직전이 가장 아픈 순간이다. 막상 살 속을 비집고 들어오는 바늘은 불쾌한 감정이 들게 할 뿐 별다른 통증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간호사는 약 10센티미터 길이의 내 손가락 두께 정도의 유리관 두 개에 검붉은 피를 가득 채우고 고무마개로 막으면서 점심을 먹고 오면 곧 바로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12층 사람들이 궁금하기는 하였지만 엄마가 퇴원하시던 날 두 번 다시는 이곳에 오지 않을 것이라 다짐했던 것이 떠올랐고 그리고 지금 가 봤자 거의 변한 것이 없는 풍경일 거란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잠깐 머리를 식힐 생각으로 병원 출입구 앞에 있었던 분수대 앞으로 나가 그 옆에 나란히 있던 대리석으로 된 의자에 앉았다. 가볍게 불어오는 바람 속에서 가을 냄새가 났다. 너무 인상적이었기 때문에 결로 잊을 수 없었던 분수대에 걸려 있던 무지개를 혹시 또 다시 볼 수 있을까 싶은 마음에 솟아오르는 물줄기의 끝자락에서 계속 눈을 떼지 않았지만 두꺼운 구름 탓에 햇살을 똑바로 받지 못하는 수증기가 빛의 스펙트럼을 만들어내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그에게서 아직은 전화가 오지 않았다. 내가 오랜만에 갖는 시간을 방해하지 않으려는 그의 배려이거나 그것이 아니라면 무척 바쁠 것이란 생각을 했지만 지금은 아무런 연락이 오지 않는 것이 애써 거짓말을 꾸며내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에 오히려 마음은 편했다.      

   79.79.79.79....... 간호사의 안내대로 의사의 진료실로 들어갔을 때 조금은 사기꾼 같이 머리를 정갈하게 빗어 올리고 내 또래 정도의 젊은 사람으로 79라는 숫자를 반복해서 말하고 있었다. 보통 우리들이 의사가 되려면 머리도 똑똑해야 하지만 공부도 열심히 해야 한다고 알고 있듯 나는 속으로 ‘저 사람이 정말로 공부에만 미쳐서 약간 정신이 어떻게 된 것이 아닌가!’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매우 초조하고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앉으세요. 김현이 씨 맞으시죠?”

   “네, 맞습니다.”

   “음....... 나이가 올해 서른, 79년생이시니 딱 서른 맞으신 거죠?”     

   그럼 이 사람이 내 나이를 계산하려고 79를 반복적으로 말하고 있었단 말인가.      

   “혹시 언제부터 심각하게 빈혈이 있다는 걸 알았는지 기억나세요? 특히 두통이 심하고 현기증이 나고 몸에 멍도 잘 들고.”

   “음, 빈혈은 학생 때부터 그러니까 고등학생 때부터 보통 여고생들이 그런 것처럼 그렇다고 생각하다가 최근 몇 년 동안 증세가 조금씩 심해지기는 했어도 생활하는데 특별히 지장은 없었어요. 약을 먹은 것도 아니고........ 아, 그리고 멍이 잘 드는 건 그냥 어릴 때부터 피부가 약해서 그런 것인 줄로 알고 있는데.......”

   “흠, 그러니까 좀 시간이 됐다는 말이죠?”     


   나는 이상한 질문을 하고 있는 의사의 비정상적인 진료 태도와 심각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을 보고 분명히 나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내 예상대로 의사는 혈액 검사 결과가 매우 안 좋기 때문에 정밀 검사를 해봐야 한다고 말했는데 그 말을 듣고 ‘혹시 백혈병을 염두 하시고 하시는 말씀이시냐.’고 물었을 때 의사는 부정하는 대답대신 단정할 수는 없다는 어중간한 말로 나를 안심시키려고 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당장 입원을 해서 검사를 받으면 당직 의사에게 주말에라도 결과를 들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을 때 내가 꼭 그래야 하는 것인지를 물었지만 의사는 내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면서 간호사에게 오늘 골수검사 예약 환자가 몇이나 되는지 입원실 자리는 있는지 알아봐 달라고 지시했고 내 입원 수속이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의사의 전화 너머로 진행되어 수속이 거의 마무리가 된 상태였다. 내가 화를 내려고 하자 의사는 단호한 말 한마디로 나를 주저 앉혀버리고 말았다. 


   “네, 김현이씨 말대로 거의 백혈병이 맞아요. 아니 확실합니다. 나는 의사이고 내가 찾은 환자를 도와줘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절대로 개인적인 동정심으로 이러는 것이 아니라고요. 정 그러시면 시간을 좀 드릴 테니 다음 주 내로 꼭 내원 하세요. 더 이상 손 쓸 방법이 없게 될지도 모릅니다.”  

   

   나는 말도 안 된다는 생각으로 그냥 병원을 나와 버렸다. 내가 왜 이 순간, 이 시점에서 백혈병에 걸린 것이라는 말을 들어야 하고 왜 지금 병원에 환자복을 입고 입원해서 보기만 해도 끔찍한 검사들로 내 병명이 어떤 것인지 확인 받아야 한단 말인가. 악몽이라도 꾸는 사람처럼 눈에 보이는 것이 없었고 병원 앞에 길게 줄을 서 있던 손에 잡히는 택시를 타고 역으로 가자고 말했다. 두 시간이면 그가 마중 나와 있을 역에 도착할 것이다. 내가 너무나 많은 책을 읽어서 상상력이 풍부해진 상태로 잠을 오래 자는 바람에 이런 꿈까지 꾸는 것일까? 평소에도 워낙에 특별한 꿈을 자주 꾸었기에 지금 이 상황도 현실이 아니라 분명히 꿈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지만 나는 지금 분명히 어둠이 깔린 차창 밖으로 보이는 내 모습을 바라보면서 기차 안에 앉아 있지 않은가. 주머니에 든 기차표를 꺼내어 날짜와 시간을 확인해 보았다. 정확하게 ‘2008. 10. 19. 17:35’인쇄되어 있는 숫자들이 계속 흐릿하게 번지고 있었다. 내가 지금 울고 있는 것인가? 나는 다시 차창으로 보이는 나를 바라보았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나는 처음부터 무서운 표정을 하고 차창 밖에서 줄 곧 나를 따라오면서 거의 울고 있는 나를 지켜보고 있는 또 다른 사람과 마주 앉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울어도 그 여자는 울지 않고 계속 나를 응시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두 볼을 타고 차가운 물방울이 천천히 흘러내리다가 내가 눈을 깜박이던 순간 고여 있던 눈물이 한꺼번에 또르르 턱 아래로 굴러 떨어져 기차표 위에 뚝 뚝 뚝 무거운 소리를 내면서 번져나가고 있었다. 나를 노려보고 있는 창밖의 여자가 무섭게 보였으므로 나는 아예 눈을 감아버렸다.      

   그는 어김없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그에게 지금 당장 사실은 오늘 친구를 만나러 간 것이 아니라 병원에서 피를 뽑고 그 결과를 보고 오는 길인데 글쎄 젊은 의사가 한다는 말이 내가 백혈병이 의심되니 당장 입원을 해서 정밀검사를 해야 한다는 것을 콧방귀를 끼면서 이렇게 내려오는 것이라고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었다. 그는 내 말 한마디에 기분이 좋아졌다가 나빠졌다가 할 만큼 내가 전부가 된 사람이었고 나 또한 이제는 그가 내 곁에 있지 않았던 과거로 다시 돌아가고 싶단 생각이 없었다. 우리는 지금 평범하겠지만 결코 심심한 일상이 아닌 둘 만의 단란한 가정을 꾸릴 미래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내가 심각한 병에 걸렸으니 그런 미래가 불투명하게 되었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어서 엄마와 아버지를 만나 뵙고 정식으로 결혼을 허락받고 싶다면서 하루라도 빠른 시간 안에 뵈었으면 한다는 말을 하고 있는 그 앞에서 내가 어떻게 그 말을 꺼낼 수가 있단 말인가. 나는 알고 있다. 의사 말이 괜한 의심이 아닌 것을. 내가 정말로 심각한 상태까지 와 있다는 것을. 왜냐하면 몸이 반응하는 것은 언제가 가장 솔직한 정답을 말해준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많이 지켜봐 왔던 내가 아니던가. 하지만 언제까지나 숨길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도 알아야 하고 곧 엄마와 아버지도 알아야 하며 내 주변, 나와 관련이 되어 있는 사람은 결국엔 모두 다 알게 될 것이다. 이런 저런 복잡한 생각을 하느라 말이 없는 내게 그가 먼저 말했다.      


   “피곤해 보여. 안색도 별로이고. 친구와 얘기는 많이 했니?”

   “응, 그냥. 오랜만에 차를 많이 타서 그런가봐.”

   “내일은 비번, 일요일엔 휴무인데 어디 가서 바람이라도 쐬고 올까?” 


   내일이 비번이라는 말은 그가 오늘 당직을 서야한다는 뜻이었고 그는 지금 나를 집으로 데려다 주기 위해 잠깐 시간을 내어서 마중을 나온 것이다. 이제까지 살면서 나를 위해 이렇게까지 자기의 모든 것을 양보하며 아끼지 않고 내 주었던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그는 정말로 내게 너무나 많은 것들을 주고 있었으며 또 앞으로도 그렇게 할 사람이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또 다시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왔다. 우는 모습을 들키지 않으려고 고개를 창 쪽으로 돌렸으나 이번에도 보기 흉한 모습의 또 다른 여자가 나를 노려보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냥 무릎으로 고개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나는 콧물이 흐르는 척 몇 번을 코를 훌쩍거리면서 일부러 휴지에 코를 풀기까지 했다.     

 

   “저녁은 먹은 거니? 밤샘근무하려면 초저녁에 좀 쉬어 뒤야 하는 거 아냐? 고단할 텐데.”

   “오늘은 어쩐 일로 이렇게 순한 양이 되어 있을까? 저녁도 먹었고 있다가 야식도 먹을 테고 그리고 ....... 아무튼 걱정 마, 그런데 너 정말 안색이 안 좋아. 아무 일 없지? 그런 거지? 아! 왜 하필 이런 날 당직근무가 다 뭐람.”     


   그를 보내고 내 방으로 들어왔을 때 모든 것이 멈춰져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런 공간을 내가 간신히 살아서 조금씩 움직이고 있다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고 현관 출입문에서 침대가 있는 곳까지 걷는데 그 거리가 무척 멀게 느껴질 정도로 걷는 것조차 감당할 수가 없었다.     

   드라마 속에서 심각한 병에 걸린 인물이 가족들과 주변인들에게 대하는 태도를 보면 자신이 죽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처음 알았을 때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당분간은 평소와 다름없이 지내게 된다. 그러다가 가족들의 사소하고 일상적인 태도에 상처를 받게 되고 별일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마치 세상의 모든 형벌을 자기가 다 받는다는 기분이 들게 되면서 평소와 달리 불같이 화를 내거나 반대로 어디론가 사라지기도 한다. 그러다 결국엔 모든 가족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되고나서 그동안 잘 못해 준 것에 대해서만 생각을 하고 슬퍼하지만 이미 시간은 너무 많이 지나쳐 왔기 때문에 막상 도움을 주지 못하는 상황이 되어 버린다. 대부분의 공통점은 환자 스스로는 절대로 먼저 자기가 곧 죽게 될 것이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나는 침대에 누워서 빙글빙글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천정을 바라보았다. 이것은 드라마가 아니라 현실이다. 나는 평범한 사람이지만 내게도 가족들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 엄마가 처음으로 진단받던 날이 생각난다. 그 때의 경우는 보통 드라마와 정 반대의 경우였다. 우리들은 전부다 알고 있었지만 엄마 본인만은 모르고 계셨으니까. 병원을 옮겨가기 전 마지막 식사가 나왔었다. 나는 식판을 가져다 엄마를 일으키고 기운을 차려야 한다고 말을 하는데 엄마는 입맛이 없다고 하시며 식사를 도로 내가라고 말을 하셨다. 나는 억지로 엄마를 일으켜 앉혀 놓고 아이에게 밥을 떠 먹여주 듯 밥숟가락에 반찬을 올려 직접 먹여드렸던 것이 생각이 났다. 엄마는 당연히 직감하고는 계셨을 테지만 정확히 자신이 무슨 병에 걸린 것인지는 모르시던 상태였고 나는 엄마가 오래 사셔야 이제부터 앞으로 3개월밖에는 가망성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엄마의 입속으로 들어가는 밥 풀 한 알들이 그렇게도 슬프게 보였었다. ‘만일에 돌아가시게 되면, 정말로 엄마가 돌아가시게 되면 이런 게 다 무슨 소용이야. 정말로 이것이 마지막 식사가 될지도 모르는데.’이런 생각이 들었고 하염없이 흘러나오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 생생하게 떠올랐던 것이다. 고개를 돌려 누웠을 때 베개가 눈물에 젖어 있었으므로 맞닿은 볼이 차갑고 축축했다. 나는 흐느끼지도 소리를 내지도 목 놓아 울지도 않았다. 나에 대해, 내가 지금 심각한 병에 걸렸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누구하나 알고 있지 않는 이 순간, 정작 나 자신조차도 내 자신의 눈치를 보면서 마음껏 슬퍼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내 몸만이 이 현실이 안타깝다는 듯 슬프게 계속 말없는 눈물만 흘리고 있던 것이다. ‘이제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지? 아니 무엇부터 해야 맞는 거지?’이불을 머리끝까지 뒤 집어 쓰고 나서야 나는 아주 조용하게 흐느껴 울 수 있었다.     

   울다가 잠이 든 것인지 계속 울려대는 전화기의 진동 벨이 예민해진 내 신경을 건드려 깨웠고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어제 저녁, 그렇게 집으로 들어와 가방 속에서 전화기를 꺼낼 생각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였다. 막 전화를 받으려고 하니 바로 끊어지고 말았다. 문자를 포함해서 대 여섯 번의 연락이 와 있었다. 나는 통화버튼을 눌렀다.      


   “깊이 잠들었었어? 아까 집에 그냥 들여보낸 게 마음에 걸려서 일이 손에 안 잡히더라고. 약이라도 먹였어야 했나 하고. 괜찮아? 자고 있었니?

   “응, 괜찮아. 바로 잠들어서 전화가 오는 줄도 몰랐어. 너는 괜찮아?”

   “오늘 밤은 조용하네. 새벽에 눈 좀 붙일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침에 끝나고 보러 갈까?”

   “집으로 가서 너도 좀 쉬어야지. 일어나면 전화해. 나는 집에 있을 거야.”

   “그래, 그럼 내일 저녁은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얼른 더 자.”     


   그는 우리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고 나서 아저씨께 말씀을 드리는 것이 순서에 맞는 거라고 말하면서 책방 아저씨께는 아직 우리 둘의 관계를 말씀드리지 않고 있었다. 나는 알고 있다. 아저씨가 나를 많이 좋아하고 계신다는 것을, 나 또한 아저씨가 좋았으므로 분명히 그와 나 사이의 관계를 알게 되시다면 누구보다 기뻐해 주시고 반가워하실 것이란 것을. 나는 또 다시 눈물이 나왔다. 이것이 정말 꿈이 아닐까 몇 번 정신을 똑바로 차려보려고 했지만 헛수고였다. 이것은 너무나 확실한 현실이었으니까. 또 그렇게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 집어 쓰고는 울었다. 이번에는 흐느껴 울지 않았지만 콧물까지 같이 나왔으므로 훌쩍거리지 않을 수 없었고 창문으로 새벽빛이 새어 들어오는 것을 보고서야 겨우 잠이 들 수가 있었다.      

   그에게서 전화가 오기 전까지 이불속에서 꼼짝을 하지 않고 있었다. 책상위에 있던 수첩과 펜을 가져다 엄마가 처음 진단받던 날부터 기억을 더듬어 올라가 메모를 시작했다. 2003년 5월 입원, 2004년 3월 퇴원, 외래 시작, 2005년 5월 경찰학교 입교, 2006년 3월 경찰학교 졸업, 2006년 첫 발령, 2007년 그가 내 인생에 들어오던 해, 2008년 승진 시험 합격, 그에게 청혼 받은 해, 그리고 지금 여기. 내 나이 지금 서른 살, 결코 평범하지 않았던 내 이십 대 후반의 인생,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엄마의 치료 후 4년, 이제 완치 판정까지는 1년 남아있음. 그리고 나는 곧 그와 결혼을 하게 될 것이고 그리고 또 다른 삶이 기다리고 있는 이 순간, 이 시점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그동안 나는 몇 번의 고비를 겪었지만 그렇게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힘들더라도 견뎌냈기에 그래서 여기까지 와 있을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이렇게 중요하고 소중한 내 삶의 본격적인 시작인 이 시점에서, 그리고 이제야 비로소 나 정말로 사는 것이 즐겁고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내 삶의 걸림돌이 될 것이란 말인가. 거의 밤새 울다시피 했고 잠을 잔 것도 아닌 내 얼굴은 내가 보고 있어도 정말로 중병에 걸린 환자처럼 보였다. 낯빛이 창백하다 못해 회색빛까지 나고 있었으니.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그를 만나러 나가기 전, 나는 계속 손거울을 들고 얼굴을 바라보고 있다가 경비교통과에 근무할 적에 녹색 어머니 회장님으로부터 받았던 붉은 색 립스틱을 처음으로 발랐다. 그렇게 할 수 밖에는 없었다.      


2009

P. S. I love you     


   인생에서 5개월이라는 시간은 누군가에게는 눈 한번 깜짝할 정도로 짧은 시간일수도 있지만 또 어떤 사람에게는 정말로 고통스럽게 아파서 견뎌내기 힘든 길고 지루한 시간이 될 수 있다. 시간이란 이렇듯 공간을 초월할 수 있으며 비록 만질 수 있는 실체는 없지만 얼마든지 물리적인 현상을 만들어낼 수 있을 정도로 전능하다. 지금 나는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시트 한 장만만으로 내 몸을 가린 채로 끊임없이 들리는 기계소음과 너저분하게 얽혀 있는 수액 관들을 양쪽으로 두고 언제라도 이동할 수 있는 바퀴가 달린 철제 침대에 누워 있다. 온 종일 잠을 자고 있는 나는 누가 내 곁을 다녀가는지 내 손을 잡고 있는 사람은 누구인지 모른다. 그저 희미하게 들리는 말소리 – 오는 사람들은 거의 말이 없기 때문에 이마저도 구분하기가 거의 어렵게 된 상태이지만 – 로 혹은 걸음걸이의 속도와 느껴지는 미세한 진동으로 그리고 냄새만으로 그 사람이 누구인지 짐작만 할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양쪽 콧구멍을 통과하고 있는 산소호스는 그야말로 나의 외모를 최악으로 몰아넣고 있었기에 말만 할 수 있었다면 누구라도 이런 몰골로는 만나기 싫다고 ‘면회사절’이라는 푯말을 문 앞에 붙여 놓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런데 너무나 가련하게도 이제 그 산소통마저 내 곁에 없다면 나는 스스로 숨을 쉴 능력조차 없는 그야말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슬픈 일이지만, 아니 너무나도 참을 수 없을 만큼 화가 나는 일이었지만 이제 나 스스로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이렇게 가만히 누워서 머릿속에서 알 수 없는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희미한 지난 일들을 기억해 내는 것뿐이다. 왜냐하면 나는 곧 죽게 될 것이었으므로.      

   분수대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줄기는 정상에서 결국 수증기로 흩어져버리고 만다. 수증기로 변하기 직전까지 분수대는 자기 

힘이 닿는 높이까지 솟아오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노력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것만이 유일한 목표인 것처럼 그렇게 죽을힘을 다해 노력해서 최고의 높이까지 솟아오른 물줄기는 끝내는 수증기가 되어 없어져 버릴 것이란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지금 분명하게 느낄 수가 있다. 내 몸 전체의 무게가 순식간에 소멸되면서 마치 수증기처럼 그렇게 흩어져버리면서 점점 희미하게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생을 마감하는 그 순간에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렇게 되도록 노력한다고 해도 그것은 내 의지와는 상관이 없이 조금은 안 좋은 모습으로 떠나기 마련이다. 나 또한 혼수상태에 빠지기 전에 마지막 각혈을 하고 생쥐를 잡아먹은 들고양이처럼 끔찍한 모습이었으므로.      

   조금은 과해 보이는 입술을 보고서 오늘이 특별한 날인지를 물어 보는 그에게 ‘어쩌면 그럴지도 몰라.’하면서 생긋 웃음을 주었다. 이렇게 그를 다시 만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한 현실이 지금 이 순간 마치 큰 선물을 받고 있는 사람처럼 평소와는 다른 느낌이었고 그의 사소한 말투와 행동 하나 하나까지 매우 특별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거의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지만 마치 그에게 거짓말이라도 하고 있는 사람처럼 똑바로 바라볼 수조차 없었고 내 머릿속의 생각은 그에게도 반드시 꼭 말을 해야 한다는 쪽으로 굳어져 가고 있었다. 처음 엄마가 진단을 받으실 때 시한부 3개월을 선고받으셨던 것과 같이 만일 나에게도 남아 있는 시간이 별로 없는 것이라면 서둘러야 했고 내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어떤 것인지 부터 결정해야 했다. 거의 이틀 동안 방황했던 나는 그의 얼굴을 보고 나서 ‘현재 내 상태가 어떤지, 얼마나 심각한 상황까지 와 있는 것인지, 내 병명이 무엇인지부터 확인해야 한다. 그런 다음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확신이 섰고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다. 그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에 대한 나의 마음이 점점 더 커져가고 있었으므로.       

  만성골수성백혈병, 이미 급성기로 들어섰으며 급성백혈병기로의 전환되어 증가한 백혈구가 침착되어 눈에 띄게 비장이 부어 있는 상태, 조기 미 발견 탓으로 기존 만성백혈병 환자들에게 쓰이는 흔한 치료약 한 번 써 보지도 못하고 이미 치료시기를 놓쳐버린 상태, 더욱 더 나쁜 점은 만성골수성백혈병 환자의 유일한 완치를 기대할 수 있는 조혈모세포이식수술도 거의 불가능한 상태, 가장 나빴던 점은 만성골수성백혈병 환자의 95%이상에서 발견되는 필라델피아 염색체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치료를 한다고 하더라도 예후가 매우 안 좋은 나머지 5%에 해당되는 경우가 바로 지금 나의 상태였다. 그야말로 최악의 경우였다. 이대로 손 놓고 있다면 나의 짐작대로 살 수 있는 기간은 3개월도 안된다고 너무도 쉽게 말하던 의사의 입 모양이 그림처럼 그려지는 것을 창밖으로 보이는 내 얼굴과 겹쳐지는 것을 나를 조용히 바라보았다. 쭈글쭈글하고 앙상한 얼굴에 도드라진 광대뼈위에 검은 눈만 커다란 작은 원숭이 한 마리가 나를 노려보고 앉아 있었다.      

   검사와 결과를 보려면 하루 입원을 해야 했으므로 어쩔 수 없이 나는 하루 동안 집을 비워 놓은 상태였다. 아직 그에게 말하지도 않았고 내가 병원에서 받아야 할 검사가 있기 때문에 이틀 휴가를 내야 한다는 말도 하지 못했다. 점점 그 앞에서 진실을 말할 자신이 없어지고 있었다. 그저 사무실에만 다른 사정 핑계를 댔고 내 멋대로 48시간 동안을 그렇게 전화기조차도 꺼두고 잠수를 타 버렸다. 현관 문고리에 걸린 비닐 봉투를 열어 보니 우유 1리터와 바닐라 아이스크림이 한통이 들어있었다. 밤사이 그가 다녀간 것이 분명하고 집 앞에서 새벽까지 내가 오기만을 기다렸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이제 더욱 더 그 앞에 나서는 것이 어렵고 두려워졌다. 이제 막 그에게 내가 가진 것들을 내어주기 시작했고 그와 함께 할 미래에 부풀어 있었는데 그것이 다 허황된 꿈이라는 것을 어떻게 내 입으로 직접 말할 수 있단 말이던가. 아이스크림이 다 녹은 탓인지 종이로 된 동그란 모양의 통은 약간 비틀려 있었다. 지난 밤 그가 내 방 앞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핸드폰을 확인해 보기가 어려웠다. 이미 다 녹아버려 하수구에 버려질 쓸모없어진 아이스크림처럼 나도 곧 그렇게 될 것이라는 분명한 현실 앞에 앉아 있었으므로.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나는 인생을 어렵게 살면서 힘들게 끌고 오지 않았을 것이다. 단 일 년이라도 빨리 알았다면 승진시험에 붙겠다고 내가 남은 시간들을 그렇게 퇴근 후 도서관으로 달려가서 책만 보면서 바보처럼 지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 녹아버린 아이스크림을 개수대에 쏟아내는데 걸쭉한 액체가 비릿한 우유냄새와 바닐라 크림 향이 뒤섞여 쭉 늘어져 떨어지는 모습에 멀미가 나는 것처럼 속이 울렁거렸다. 나는 속이 뒤틀리는 것을 참지 못하고 끝내 화장실 변기에 노란 위액을 토해버리고 말았다. 입속을 헹구다 거울을 바라보았다. 차 창밖에서 오는 내내 나를 지켜보고 있던 깡마른 원숭이가 이번에는 거울 속에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미 일어난 상황을 어떻게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가 하는 일은 언제나 항상 이런 식이었다. 처음 경찰관이 되었을 때는 꼭 한 번이라도 내 손으로 직접 범인을 잡고 그 놈의 손목에 수갑을 채울 것이라고 다짐했었다. 그러나 파출소 근무 시절 음주운전 혐의가 명백했던 용의자조차도 바로 눈앞에서 놓쳐버리고 말았었다. 나에게 음주로 감지가 되었던 그 지역구 의원이라는 작자는 신출내기였던 나를 비웃으면서 자기가 타고 다니는 값비싼 외제차를 헌신짝 버리듯 길가에 버리고 인근 수풀로 도망을 가버렸고 다음 날 아침 그 인간이 제 발로 파출소를 찾아왔을 때는 이미 취기가 사라지고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그냥 돌려보낼 수밖에는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한꺼번에 세 사람을 죽이고도 버젓이 내 눈앞을 지나가던 범인을 오히려 내가 더 웃음을 산 모양으로 겁에 질려 입장이 바뀌어버리면서 그냥 유유히 보내주지 않았던가. 내 기억으로는 내가 파출소에서 몇 달 동안 근무 하는 동안 그 의원을 찾느라 몇 시간동안 잡초덤불을 헤집으며 찾았던 4월의 그 날 밤이 어느 겨울밤보다 가장 추운 밤이었다. 그 뒤로는 내게 그럴 기회조차도 없었지만 그 당시 나에게는 그런 일들이 목숨을 걸 정도로 그만한 가치가 있던 일이고 의미가 있었다. 내가 청문감사관실로 발령을 받아 시청 레미콘 건설현장 반대 집회에 동원이 되었던 날, 말끔하게 양복을 차려입은 남자가 나를 김 순경이라고 아는 체를 해 왔는데 관심 없이 그냥 고개를 수그렸지만 그 자가 바로 내가 놓쳤던 그 음주운전자라는 것을 알았을 때는 고개를 수그렸던 내 자신에게 무척 굴욕적이었고 화까지 났었지만 이미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이제까지 너무나 소소한 일에까지 쓸데없이 에너지를 낭비하면서 인생을 어렵게 살아왔다. 나는 그렇게 바보 같은 사람이었다.       

   아파서 병원을 찾아가는 사람들이 죽기를 원해서 그러는 것이라고 한다면 이상하게 느껴질 것이다. 어떡해서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살아보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이 옳은 것이지만, 아니 살아 있는 인간으로서 의무를 다하는 것일 테지만 이런 상식이 통하지 않는 경우도 가끔씩은 있는 법이다. 진단을 받기 전까지는 전혀 의식조차 되지 않았던 가벼운 옆구리의 결림, 침을 삼킬 때의 불편함, 앉았다 일어설 때 보이는 별과 현기증, 그리고 창백한 안색이 점점 나의 목을 죄어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진단을 받을 때 다른 병원에서의 치료를 대비하여 미리 받아 온 소견서를 외투 주머니에 찔러 넣고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숨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내가 그를 좋아하고 있는 만큼 그도 나를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나로서는 그에게 쓸데없는 오해를 안겨 주고 싶지 않았다. 나는 전화로 그에게 가능하면 빨리 만나자고 만나야만 한다고 말했지만 그는 당장은 곤란하니 만날 시간과 장소를 정하라고 했지만 나는 솔밭 해안가에서 그가 올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말하고 전화를 먼저 끊어버렸다.     

   늘 앉아 있었던 탁자에 밀려드는 파도를 마주하고 앉아 있었다. 흐느끼지 않아도 눈물이 저절로 흘러 나왔다. 가을 끝 무렵에 불어오는 바람 속에는 곧 겨울이 찾아온다는 것을 암시라도 해 주는 것처럼 코끝을 저절로 찡하게 만들었다. 어느 샌가 그가 와서 내 옆에 서 있는 줄로 모르고 나는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낼 생각도 하지 못한 채로 그저 성가시게 따라 나오는 콧물을 어떻게 해보려고 반사적으로 코를 훌쩍거리고만 있었다. 사람의 화도 다 같이 마음속의 감정이라서 최고의 정점이 지나버리고 나면 스스로 삭혀지게 되는 것 같았다. 차라리 그가 나에게 화를 냈더라면 나의 마음이 그것보다는 덜 아팠으리라.      

   “너는 왜 항상 사람의 마음을 조마조마하게 하니? 아직도 내 마음을 믿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너의 마음에 확신이 서지 않은 것인지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도대체 너에게 나는 어떤 사람이니?”     

   그가 충분히 그렇게 생각하고도 남을 일이다. 나는 그의 마음이 이해가 되고 그의 말도 알아들을 수 있을 만큼, 더 솔직히 말한다면 그에게 무슨 말로도 변명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고 오히려 그가 어떤 말을 한다 해도 받아들어야 하고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어떻게 하지 못할 정도로, 어떤 표현으로 말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너를 사랑해. 점점 그런 나의 마음이 커져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내가 그렇게 느끼고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 기쁘고 좋아. 이젠 너 없이는 숨조차 쉴 수 없을 만큼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 버렸는걸. 내 말을 믿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아니 나의 행동을 생각한다면 너에게 이런 말을 하는 내 모습이 가식처럼 보일 테지만 이제는 나도 어쩔 수가 없어. 너를 사랑해. 진심으로 사랑해서 미안해.”     


   그만의 무뚝뚝한 표정은 이제 냉정하고 원망의 눈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지만 차라리 그의 이런 태도가 내 마음을 더 이성적으로 만들어 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잔인한 일이지만 그에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주머니에서 소견서를 꺼내 그에게 내밀었다. 다만 그것이 내가 그에게 쓴 편지가 아니라는 것이 미안했다. 지금 이 순간, 이 표현을 쓰는 것이 어설프고 상황에 어긋나 보일지라도 어쩌면 용기란, 역시 결말이 끔찍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기꺼이 그 불행을 선택할 줄 아는 행동이 아닐까. 나에겐 그 어떤 치료도 의미가 없는 것임을 나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고 이미 마음속으로 그런 결정을 내렸다는 것에 대해 꽤 높이 평가하고자하기 때문이다. 나는 전부터 어머니께서 어떻게 돌아가시게 된 것인지 그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그의 슬픔까지 완전히 내 슬픔으로 보듬어 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기 시작했는데 이제는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그의 반응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나는 누구보다도 멋진 삶을 살아내고 싶었던 사람이었다. 인생이라는 것은 스스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 수 있을 때부터 조금도 시간을 낭비하면서 산다는 생각이 든 적이 없을 정도로 지난날을 열심히 살아왔다. 남들보다 먼저 일어났고 남들보다 조금 더 늦게까지 깨어 있으면서 쉬지 않고 일했다. 어떤 날에는 사람이 얼마동안이나 잠을 자지 않고도 견딜 수 있을까 생각했을 정도로 열심히 살았다. 그런 내게 이것은 마치 지나친 형벌과도 같이 불합리하고 억울한 현실이었다. 내가 이런 벌을 받아야 할 만큼 무엇을 잘못하고 살았단 말인가. 눈발이 희미하게 날리던 날 지금까지 모아두었던 적금을 해약하고 아버지 앞으로 보내드렸다. 엄마의 치료비로 팔렸나갔던 호두나무 밭을 도로 찾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을 드리고 싶었다. 그리고 그에게는 ‘P. S.  I love you.’라고 수를 놓은 베개를 남겼다.      

  나도 어쩔 수 없는 사람이었다. 심장이 멈추기 전까지는 살아 있는 사람이었다. 병원에서도 항암치료는 소용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처방약이라는 것은 대부분 진통제 주사였고 그 덕분인지는 모르지만 한편으로는 머리카락이 전혀 빠지지 않았다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거울을 거의 보지 않았기 때문에 간호사가 내 머리맡의 산소통을 제거할 때의 내 모습은 내가 기억하고 있는 가장 예뻤던 모습일 거라고 생각했다. 처음 의사의 말대로라면 나는 그해 겨울도 못 지나고 떠났어야 마땅했지만 사람이 죽기 직전에 마음이 변할 수도 있다는 말처럼 나도 그런 것이었는지 점점 게으른 사람으로 변해가고 있었기 때문에 내 머리 위로 한 겹의 하얀 면포가 내려오는 잠깐 동안에 연분홍 벚꽃 잎이 흩날리는 것을 보았으므로, 물론 그 옛 날에 보았던 기억을 그렇게 착각하고 있는 것인지는 몰랐으나, 아마 봄꽃이 흐드러지게 피었을 4월이구나 생각했다. 어쨌든 2009년이었다.      

   세상에서 하직하는 이 순간, 삶이 끝난 것일 수는 있어도 또 다른 세계의 시작이 될 수 있으니 아쉬움으로 서러워하지 않겠다. 다만 남겨진 이들을 위해 아주 잠깐만 슬퍼하기로 하자. 그저 산 사람들을 위한 의식인 며칠간의 장례 절차가 끝날 때까지만.      

   아! 삶이란 것은 이렇게 허무한 것이구나! 삶을 말할 때 얼마나 오래 살았는지를 놓고 평가를 내리는 사람의 기준대로라면 나는 턱없이 부족한 삶을 살다간 초라한 사람에 불과하지만 어떻게 살았는가를 두고 천국과 지옥으로의 갈림길에서 판결을 받는다고 한다면 전자보다는 유리한 평가를 받을 만 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죽음도 삶속 하나의 경험일 뿐이며 또 다른 세계로 연결되어 계속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이 죽음 또한 어떤 일시적인 현상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분수대에 잠시 걸렸다가 곧 사라져버리고 마는 희미한 무지개와도 같이. 다만, 몇 년 전, 무균 실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슬프고 안타까운 마음이었지만 수긍할 수 있는 결말이라고 생각했던 것처럼 내 곁에 살아 있는 사람들도 지금 나의 죽음 앞에서 눈물을 흘릴지 모르나 더 이상의 깊은 시름이 되는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비록 실체는 없지만 무엇보다 훌륭한 치료약인 시간이라는 힘이 마음속 슬픔까지 싹 가져가 주기를, 그래서 자연스럽게 잊을 수 있는 일이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랄 뿐이다.   

   병원 1층 로비, 중앙 시계 탑 아래, 나를 옮기는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는 공간 속 공기의 움직임으로 내 몸을 덮고 있던 하얀 면포가 가볍게 들리는 바람에 눈에 들어오게 된 아기 예수를 품에 안고 미소 짓던 성모마리아가 그 순간 눈썹을 찡그리고 고통스러운 슬픔으로 일그러진 피에타로 보였던 것은 내가 지금 막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잠시 당황한 데서 느낀 일시적인 환영일 뿐이지만 이제 이 모든 것들은 나와는 영원히 상관없는 일이 되었으므로 나는 그만 두 눈을 감아 버리고 말았다. 아, 그리고 슬픔에 있어 최고의 위로는 눈물일 때가 많으므로 나는 그냥 사람들이 그렇게 울도록 내버려 두었다. 


   내가 죽고 나서 알게 된 것이 있다면 죽은 뒤의 삶이란 무한하다는 것과 현세에서의 삶이란 것은 마치 봄날의 소풍처럼 현실성이 없다는 것이다. 비록, 엄마와 아버지, 그리고 그가 나를 못 견디게 그리워하고 있을지라도 그것은 아주 일시적으로 북받쳐 오르는 감정일 뿐 곧 희미해져갈 한 장의 흑백사진과도 같은 것임을 알고 있다. 나는 이곳에서 그를 기다리지만 조바심내지는 않는다. 머지않아 그는 더 이상 나를 생각조차 하지 않게 될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나처럼 이미 죽은 사람이란 어쩔 수 없이 살아있는 사람에게는 잊혀 지게 되는 것이므로, 내가 12층 무균 실 사람들을 잊어갔던 것처럼 그렇게 우리는 다른 숨을 쉬고 있는 존재들 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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