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지곤지 Apr 24. 2019

5일차 : 반차쓰고 점심약속을 잡았다

시간을 내어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

[하루 30분 30일 글쓰기 프로젝트 - 하루 1개 안하던 짓 해보기_3일차]

평일 하루, 매일 아침 30분씩 30일 글쓰는 프로젝트 참가 중, 사소한 일상에서 생각보다 글 쓸 거리가 없다는 것을 발견. 나처럼 잘 질리고, 산만한 사람이 꾸준히 뭘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30일동안 하루 1개씩 삶을 바꾸는 좋은 습관을 만들어보자(!)라는 의미로 하루 1개씩 평소 안하던 짓을 해보기로 했다. 이 얼마나 산만하고 새로운 것 좋아하는 사람다운 프로젝트인지! 하루에 1개지만 매일 매일 뭔가 하다보면 뭐라도 좋아지지 않을까?


성수에서 같이 점심 어떠세요?


우리 회사는 시청역 부근에 있다. 시청과 성수라니. 택시를 타고 간다고 해도 30분은 족히 잡아야 이동할 수 있는 거리였다. 그냥 점심 약속은 아니었고, 비즈니스적으로 누군가를 소개해주는 자리인지라 내가 가진 않아도 크게 무리는 없었다. 하지만 정말 오랜만에 보는 사람들인지라, 내심 안가기는 너무 아쉬웠다. 그래서 고민하다 일단 안가는 것으로 잠정 결론을 내고는 있었다.



"엠마(회사 내 영어 이름) 은 휴가를 잘 안쓰네요."



그러던 중 우연히 회사에서 휴가 이야기를 하다가, 우연히 그런 이야기가 나왔다. 전혀 나쁜 뉘앙스가 아니라, 신기한듯 궁금해서 물어보는 말이었는데 생각을 해보니 작년 입사 이후, 하루 몸이 안좋아 쉰 것 외에는 별도로 휴가를 쓰진 않았던 것을 발견했다. 휴가를 안쓰려고 안쓴 것은 아닌데 연말에 어디 오랜기간 놀러가지도 않았었고, 나름 회사다니는 것이 즐거운(?) 사람인지라 굳이 쉬려고도 안했던 것 같다.


별 것 아닌 말이었는데도 나는 내 시간을 어디에 많이 쓰고 있는가 괜히 생각하게 만들었다.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귀찮아하면서도), 잘 모르는 사람들을 만나 왁자지껄 노는 것보다 소수의 친분 있는 사람을 만나 같이 맛있는 것을 먹으며 속깊은 대화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는데, 지금껏 바쁘다는 핑계로 내 주위의 사람들을 잘 챙기지 못하지 않았나 생각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래서 썼다. 반차.

점심 약속에 가고 싶어서. 



금요일 오후 반차도 아니고, 오전 반차를 쓰고 나니 아침에 무엇을 할까 내심 설레였다. 일단 글쓰기를 해야 하니 6시 30분에 일찍 일어나고 여유있게 씻고 사과를 챙겨 먹고 30분 글쓰기도 하고 나니 시간은 아직 시간은 7시 조금 넘은 시간. 준비하고 출근하듯 나와 집 앞 스타벅스에 구석 자리를 잡았다. 내가 자주 좋아하던 자리.


출근하는 시간, 창 밖 다른 사람들은 분주한데 카페 안에서 그걸 구경하는 나는 한없이 여유롭고 관대(?)해지는 마음이 들었다. 곧 나가게 되겠지만, 어쨌든 이 잠깐의 여유를 만끽하고 있자니. 행복은 참 먼 곳에 있는 것도 아니구나. 하는 마음이랄까.


주말 아침과 평일 아침은 정말 분위기가 다르다. 평일 아침은 늘 분주함으로 시작하고, 오늘은 무슨 일을 할까 생각하며 출근하니 아무래도 생각이 복잡할 수밖에 없고, 주말 아침은 (특히 토요일 아침!) 은 모든 짐을 벗어던진 것 같은(?) 휴식 그 자체의 기분이라면. 금요일 아침 반차는 뭐랄까, 도심 속 나만의 휴양지에 와있는 듯한 산뜻한 기분인 것 같다.


오전 반차, 좋다!

프랑크소세지가 들어간 매콤한 카레 ♥


커피를 마시고 아침에 운동을 빠짝 하고 여유롭게 점심 약속을 갔다. 오랜만에 보는 사람들. 비록 완전히 가볍거나 편한 자리는 아니지만, 그래도 시간을 내어서 오랜만에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 자체가 정말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요즘 느끼기에, 식사 자리 내내 오고 가는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꽤나 즐거웠다. 


심지어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길거리에서 우연히 선물처럼 카페를 가는 길에 전 직장 동료분을 만나 잠깐의 커피 타임을 또 여럿이 가지게 되었다. 길을 걷다가 우연히 만나다니. 선물같은 날에는 선물같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나보다 싶었다. 비록 점심 이후 회사로 복귀는 해야 했지만 짧고도 다채롭게 즐긴 시간이었다. 이만하면 알찼다, 오전 반차.


뜬금포 내 사진


거짓말을 하지 않기로 했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을 내어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이 얼마나 드물어지는지. '한 번 다음에 봐요~' 라는 말을 인사치레처럼 으레 하곤 하는 직장인이 되고나서는 매번 정말 만나야지, 만나야지- 이런 이야기는 오고 가지만, 실제로 시간을 내어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이 정말 귀해진 요즘이다.


늘 나는 내 주위의 사람들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하지만 정작 내 주위 사람들에게 내 시간을 기꺼이 내어주는 일을 나는 얼마나 하고 있었을까. 생각보다 나는 내 시간들을 내 계획이나 타임라인에 맞춰 활용하는 것을 더 중요시할 때가 많았다는 것을 요즘 깨닫는다. 요즘엔 내 일정이 먼저고, 내 루틴을 지키는 것이 먼저고 시간을 내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나면' 사람을 만나는 그런 느낌이었다고 할까. 내 시간이라는 작은 세계 속에서 나만 중요해지는 것 같은 그런 느낌.


아주 찰나의 순간이었고, 크게 특별한 일정은 아니었지만 내 일상의 루틴을 깨고 누군가에게 시간을 내어준다는 것은 참 특별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기로 했다. '언제 한 번 만나요' '다음에 꼭 뵈어요.' '밥 한 번 먹어요.' 같이 일상적으로 인사처럼 하는 말대신, 진짜 내 시간을 내어주고 진짜 그 사람을 만나기 위해 '밥 한 번 먹어요.' 말해야겠다고. 그리고 시간이 나면 누군가를 만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만들어서' 내 주위 사람, 누군가에게 대접하는 시간을 가져야겠다고. 별 것 아닌 일상 속에서 별 것 아닌 깨달음과 이야기지만, 그래도 무엇인가 특별한 순간으로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4일차 : 퇴근길에 책 읽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