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육아휴직을 시작하며
누구나 자기 삶의 우선순위가 있다. 2달 전만 하더라도 내 우선순위는 나 자신의 성장이었다. 자연스레 어떻게 하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나'를 더 발전시킬 수 있을까 고민하고, 커리어 기회를 찾고, 공부하고, 시간을 쏟았다. 그렇게 20대를 '나' 중심으로만 살아왔다.
2달 전 나는 출산을 하고, 육아휴직을 시작했다. 몇 개월 전만 하더라도 나는 매일 출퇴근을 하고, 마케팅 계획을 세우고, 예산을 수립하고, 광고를 집행하고, 팀원들과 회의하고, 요즘 사람들은 무엇에 관심이 많은지 살피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고,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기는 일상을 살았다. 주말은 전시회를 보거나,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거나, 산책을 하면서 온전한 내 쉼을 위한 시간을 가졌다. (결혼은 했지만) 온 우주의 중심은 '나' 하나였다.
아이가 태어났다.
나는 '엄마'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었다.
아이에게 "엄마야" 라고 불러볼 때. 나는 '엄마'라는 이름이 너무나도 어색하다. '나'라는 작은 우주 속에 새로운 생명체가 갑자기 뛰어들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고작 2달만에 내 우선순위는 '나'에서 '아이'로 180도 바뀌었다.
나는 매일 모유를 먹이고, 말도 못하는 아기와 노래를 부르고, 흔들흔들 놀아준다. 어렵사리 낮잠에 들면 제일 먼저 밥을 후다닥 챙겨먹고, 빨래를 돌리고, 설거지를 하고, 더 틈이 나면 발빠르게 청소도 해낸다. 아기가 우는 소리가 들리기라도 하면 재빠르게 침실로 달려간다. 오죽하면 샤워할 때마다 아기가 우는 소리가 마치 환청처럼 들릴까. 낮에 씻으려고 하다가도 아기가 우는 것 같아서, 몇 번을 샤워기를 끄고 아기가 울고 있는지 귀를 기울인다. (대체로 환청일 때가 많다)
매일 읽는 책은 마케팅/경제경영/에세이가 아닌 육아서적으로 바뀌었고, 찾아보는 유튜브도 육아, 공부하는 분야도 육아와 아이의 발달, 관심사조차도 나보다는 항상 지온이와 관련된 것들로 바뀌었다. 고작 몇 달만에 내 모든 우주는 내가 아닌 '아기'가 중심이 되었다.
그래서 그럴까. 육아휴직을 하고나서 문득 불안감이 올라올 때가 있다. 더욱이 트렌드를 발빠르게 읽고 한발 앞서 행동해야 하는 마케터였다보니, 집에서 청소하고 빨래하며 아기와 시간을 보내는동안 나는 세상의 뒤켠으로 처지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들이 가끔 올라온다. 평일 낮에는 항상 사무실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었는데, 아기를 안고 밖에서 여유지게 산책을 하다보면 '내가 이렇게 있어도 되나?' 어색하기만 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불안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인생의 길이를 생각해본다.
나는 오랫동안 (어떤 형태로든지) 내 일을 하고 싶은 사람이라는 건 확실하니. 20년 뒤에 지금 이 휴직의 시간을 다시 돌아보면 어떨까, 조용히 상상해본다. 100세 인생 통틀어 본다면 아이와 함께하는 1년은 아주 찰나의 시간이지 않을까.
그래, 지금 이 시간은 그동안 경험하지 못한 방식으로 나 자신의 성장과 경험을 쌓아가는 시기라고. 그동안 삶의 우선순위는 이기적이게도 '나'를 중심으로 만들어져왔었지만, 좁디 좁았던 내 세계가 알을 깨고 나와 새롭게 확장되어지는 성장의 시기라고.
지금은 그저 우선순위가 '나'에서 아기와 내 가족으로 바뀐 시기일뿐이라고. 누구나 삶에서 우선순위가 바뀌는 시간이 있을 수 있다. 육아를 하거나, 누군가 아프거나, 나를 돌보아야 하는 시간이 필요할 때가 있다. 내 인생의 타임라인에 따라 언제든지 우선순위는 내가 조정할 수 있다. 지금은 잠시 나보다는 다른 우선순위들이 먼저 올라와있는 시간이 어색할뿐이다. 그뿐이다.
돌이켜보면 아이와 가족에게 들였던 지금 이 시간은 분명 후회없이 행복했던 나날들로 기억될 것이다. 지금 당장 나와 다른 사람들을 비교하자면, 불안하고 두려움이 앞설지 몰라도. 그래도 지금의 이 시간은 내게 꼭 필요한 시간이라고. 내가 선택한 '엄마'라는 삶이기에 지금의 이 불안감은 이겨낼 수 있다고. 그렇게 되뇌여본다.
그래서 지금 이 멈춤의 시간들이 참 소중하고 사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