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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kukuna Jan 26. 2021

나만 아는 어떤 마음 이야기

일곱번째. 이제 우리 여기서 사는거야?


3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동생의 머리 가마엔 그때 육각 크리스털 재떨이로 맞은 흉터가 선명하게 남아 있다. 동생은 가끔 만나면 쓴웃음에 원망과 회한을 담아 그때 그 이야기를 꺼내며 머리카락이 자라지 않는 땜빵을 보여준다. 마치 그때의 상처를 내게 보듬어 달라는 듯. 아픔을 꾹꾹 억지로 눌러 담아 곧 터지기 일보 직전의 슬픔을 간직한 눈망울로 나를 바라보며.







그는 술이 깬 다음 날이면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아무렇지 않게 굴었다. 술을 먹은 간밤의 일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 어떤 미안함의 기색은 찾아볼 수 없었다.


정말 못 느낀 건지 모른 채 한 건지 모르겠다. 아마 모른 채 한 게 맞지 않았나 싶다. 그를 아는 몇몇 어른들은 종종 이런 말을 했었다.


'네 아부진 술만 안 마시면 세상 착한 사람인데'


착했으니 죄책감은 느꼈으리라. 그래서 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겠지.


며칠이 지난 후 그는 집안의 물건들을 정리했다. 오래된 몇 개의 가구들은 내다 버렸고 쓸만한 몇 개만 남겨두었다. 어딘가로 이사를 가려는 듯했다. 트럭에 짐 박스와 가구가 실렸다. 영문을 알리 없는 우리는 그가 하는 데로 따를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바닷가 근처 아무도 살지 않는 실내 양식장에 붙은 방하나가 딸린 집이었다. 가구와 짐들은 정리되지 못한 채 방 한구석을 차지했다.


소년과 누이는 처음 보는 양식장이 신기해 여기저기를 신나게 쑤시고 돌아다녔다. 오랜 시간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았던 양식장엔 물이 채워진 곳은 하나도 없었다. 한때 바닷물이 가득 차 있고 물고기가 있었을 양식장 통 안에 들어가 놀았다. 통 안 안 곳곳에는 이끼인지 곰팡이인지 검푸른 것들이 피어 있었다.


그곳에서 며칠을 지냈을까. 그는 갑자기 우리를 데리고 또 어딘가로 나섰다. 이번엔 입을 옷 몇 가지만 챙겼다. 바삐 나서는 바람에 아끼는 안네의 일기 책도 그 안에 꽂아둔 단풍잎도 곰인형도 챙기지 못했다.


이번에 도착 한 곳은 어느 오피스텔이었다. 넓직하고 깨끗한 침대가 있는 호텔 같은 오피스텔이었다. 우리는 태어나 처음 보는 하얀 시트가 깔린 침대에 올라가 팔짝팔짝 뛰며 말했다.


'아빠 우리 진짜 여기서 사는 거야?'


며칠이 지났을까.


그는 이 곳에 우리를 두고 또다시 어딘가로 훌쩍 떠났다.


늘 그랬듯 언제 돌아온다는 말 한마디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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