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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kukuna Jun 11. 2021

열차 안 상상 속 나만의 무대

너와 나 경계 그 사이에서


내가 평일 아침저녁으로 타는 지하철 분당선은 마주 보는 양쪽 의자 사이 바닥에 마치 열차의 좌석과 입석 자리를 구분 짓는 것 같이 파랗게 칠해진 부분이 있다.



© cobblepot, 출처 Unsplash



파란 선의 경계에는 암묵적인 규칙이 있다. 의자에 앉아 가는 이들은 바닥의 파란 칸으로 발을 뻗어선 안된다. 서서 가는 이들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다. 아주 가끔 어떤 이들은 파란 선의 경계를 넘는다. 명백한 규칙 위반이다. 특히 출퇴근 시간에는 경계를 넘는다는 것은 서로의 세계를 침범하자는 전쟁 선포나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은 두 눈을 감고 팔짱을 끼고 마치 이 세계는 자기 치하에 있다는 듯 거만하게 한쪽 다리를 다른 한쪽으로 겹쳐 올리고 쭉 뻗는다. 그러다 방금 열차에 막 올라탄 한 성깔 하게 생긴 이의 발이 쭉 뻗은 발에 걸린다. 한 성깔 하게 생긴 이의 온몸이 트위스트를 추면서 휘청거린다.




그는 다행히 천장에 매달린 손잡이를 잡고 중심을 잡는다. 두 발을 쭉 뻗은 이는 자신의 발끝에서 느껴진 푹푹함에 그제야 눈을 뜬다. 그리고 휘청거리다 겨우 중심을 잡고 선 한 성깔 하는 이와 눈이 마주친다. 파란 선을 넘은 쭉 뻗은 두발은 언제 그랬냐는 듯 예의 바르고 가지런하게 모아진다. 한 성깔 하는 이도 그의 다소곳한 자세를 보고 용서를 한 듯 두 눈에 준 힘을 푼다. 그리고 힘을 푼 두 눈으로 빈자리가 있는지 살핀다. 산삼을 발견하기라도 한 듯 빈자리를 발견한 기쁨에 눈에 활기가 돈다. 그는 재빨리 그곳에 자리 잡는다.




내가 그 둘을 지켜보다 놓친 내가 앉으려고 했던 그 자리에.




나는 지금 그 파란 선 안쪽. 마주 보는 좌석과 좌석 사이 파란색으로 칠해진 열차 안 통로에 홀로 서 있다. 열차 안 앉아가는 이와 서서 가는 이의 세계를 구분 짓는 파란색 부분의 네모난 면적. 아주 가끔 운이 좋은 건지 그 부분을 홀로 차지할 때가 있다. 오늘 출근길이 그랬다.




지금 이 영역은 이 순간만큼 온전히 내 것이다. 다음 정차할 역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나는 가사가 있는 음악보다 가사 없는 음악을 즐겨 듣는다. 그중에서도 재즈를 가장 좋아한다. 오늘은 멜론에서 오늘의 DJ 플레이리스트에 올라온 재즈 기타 연주곡 모음집을 듣고 있다. 재즈만의 묵직하고 감미로운 느낌이 귓가를 감싼다. 간밤 너무 더워 몇 번을 뒤척이다 제대로 잠들지 못해 쌓였던 피로가 스르르 녹는다.




기분이 좋았는지 나도 모르게 재즈 선율에 맞춰 어깨를 양옆으로 왔다 갔다 거리며 몸을 흐느적거렸다. 의자에 앉은 이들이 아무도 모르게. 나만 아는 몸짓으로 리듬을 탔다. 파란 선 안쪽. 내가 발을 딛고 있는 열차 안 파란색으로 채워진 바닥이 마치 나를 위한 무대처럼 느껴졌다.




'춤추고 싶다'




상상했다. 여기가 무대라면 나는 어떤 춤을 출 것인가. 열차가 다음 역에 다다를 때까지 다음 역에서 사람들이 열차 안으로 타기 전까지 나는 상상 속에서 이 무대를 장악했다. 열차 창문으로 춤을 추고 있는 내 실루엣이 보였다. 마음 가는 데로 몸이 가는 데로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은 채 무대 위에서 열정을 뿜으며 춤을 추는 내 몸짓에서 행복이 뿜어져 나왔다.




'이번 정차할 역은 죽전 죽전역입니다. 내리실 문을 왼쪽입니다'




2분이  되지 않아  무대는 끝이 났다.  무대 위에  다른 세계의 발들이 끼어들었다. 내가 끼어든 건지 그들이 끼어든 건지 모르겠다. 우리는 그렇게 뒤섞인  각자의 길을 향해 발끝을 돌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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