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2.20. 마흔다섯번째 시. 나태주 <행복>
2022.2.20. 일요일. 마흔다섯 번째 시인과의 대화
나태주 시인<행복>
-노트에 써 놓은 것을 옮긴거라 대화의 순서가 섞일 수 있는 점 양해 바랍니다^^
-첫 만남에 집중하기 위해 당분간 나태주 시인의 시를 계속 읽을 예정입니다.
요 근래 우울감이 찾아왔었다. 가족과 거리 조절에 실패했기 때문이었다. 관계의 균형을 잘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갑자기 사소한 사건으로 인해 관계도 감정의 균형도 와르르 무너졌다. 생각과 감정이 분노와 불안, 적개심, 우울감으로 쏠렸다. 태도의 균형도 깨졌다. 감정의 균형을 찾아야 했다. 우선 감정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바라볼 필요가 있었다. 느껴지는 모든 감정을 솔직하게 글로 쓰고 또 쓰며 객관적으로 상태를 체크했다. 상황을 살피고 나를 보듬었다. 조금씩 회복의 기미가 보였다. 생각도 태도도 점차 제 자리를 찾아갔다. 정신을 차려보니 여기저기 버려두었던 긍정적 감정들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그것들을 다시 주워 담았다.
감정에는 좋고 나쁜 것이 없다. 흔히 부정적 감정이라고 말하는 불안, 분노, 걱정, 두려움, 공포, 슬픔 등과 같은 감정은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한 감정이다. 그런데 우리는 부정적인 감정은 피해야 할 것으로 치부하고 외면한다. 태초부터 인간의 뇌는 생존을 위해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게끔 설계되었다. 외부 위협으로부터 나를 지키기 위해서는 부정적이라 말하는 감정들을 느껴야만 한다. 뇌의 변연계에 위치한 아몬드같이 생긴 편도체는 외부의 위협을 감지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위험을 감지한 편도체는 공포와 두려움 같은 반응을 이끌어 우리를 위협적인 상황에 대처할 준비를 하게 한다.
반대로 긍정적인 감정이라 불리는 행복, 기쁨, 즐거움과 같은 감정들도 생존에 꼭 필요하다. 양가감정이 균형을 이룰 때 항상성이 유지되면서 삶에 균형을 이룬다. 항상성이란 생명체가 생존을 위해 안정적인 상태를 능동적으로 유지하는 것을 말한다. 이 항상성을 위해서 양가감정은 필수다. 때문에 부정적인 감정을 외면해선 안된다.
인생은 온갖 감정이 비벼진 비빔밥 같다. 재료는 그때그때 다르다. 계절마다 나오는 식재료가 다르듯 감정도 어떤 경험을 하고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매일 행복하지도 매일 슬프지도 않다. 적당한 감정들이 잘 비벼져야 맛있는 인생이 된다. 요 근래 내게 일어났던 일이 그랬듯.
그래서 오늘 주어진 시의 주제가 행복이니만큼 행복을 비빌 수 있는 재료를 찾기 위해 눈을 부릅뜨고 나와 주변을 살펴보았다.
가진 건 쥐뿔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단단히 착각하고 있었다. 갖고 있는 게 생각보다 많았다. 전부 써보고 싶었는데 쓰다가 날 샐 것 같아 참기로 했다. 그동안 갖지 못한 것, 더 갖고 싶은 것에만 정신이 단단히 팔려 있었다. 불행한 인생인 줄 알았는데 아녔다. 지금껏 충분히 행복했고 앞으로도 행복이 충만할 예정이었다. 그렇다. 난 욕심쟁이었다. 인간은 뭐든지 눈에 확실하게 보여야 안심하는 존재다. 이래서 삶을 천천히 요리조리 살피고 뜯어보고 기록으로 남겨야 하나보다. 지금을 살고 싶으면 현재의 모든 걸 글로 써봐야 한다. 쓰는 행위를 통해 나를 알아차릴 수 있기 때문이다.
기록은 생각 속에 머물러 있던 두려움을 끄집어내서 눈으로 직접 볼 수 있게 한다. 이 방법을 통해 당신은 어떤 두려움이 자신을 보호하고 인도하는지, 또 어떤 두려움이 쓸모없는지 분별할 수 있게 된다. 이 사실을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상황은 180도 달라진다. 알아차림은 당신에게 선택권을 주고 선택은 당신에게 힘을 준다.
<감정은 패턴이다>p.45
To. 행복을 알려준 그대에게
속상할 때
마음 터놓을 사람이 있어서
지칠 때
기댈 수 있는 시가 있어서
그리울 때
그리움을 쓸 수 있어서
참 다행입니다.
@write_napul
시는 나를 세상의 중심에 세우고 내 발길이 닿는 곳이 곧 길이 된다는 걸 알려주고 있다. 앞으로 나는 어떤 재료들로 인생을 버무리게 될지 그 맛은 어떨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삶이 궁금해질 수 있는 시간을 살고 있어 참 다행이다.
참고도서: 나태주 시인<끝까지 남겨두는 그 마음>, <감정은 패턴이다>
# 매일 밤 같은 시간 시인의 마음을 읽고 제 마음을 들여다봅니다. 시인이 건네는 말에 잠시 사색의 시간을 갖고 시인에게 답장을, 무언가를 향해 꽁꽁 묻어둔 마음을 조심스레 꺼내어 끄적입니다. 그리고 내일을 살아갈 힘을 얻고 잠자리에 듭니다. 저는 당신과 함께 나풀나풀 세상을 걷고 싶은 생명체 81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