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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asteuryouth Feb 04. 2020

자취

혼자 사는 것은 나를 성장시킨다. 처음으로 자취를 시작한 지 어느덧 7개월이 되었으며 그동안 많은 것들을 느낄 수 있었다. 혼자 산다는 것은 고된 일이자 동시에 나를 한 계단 오를 수 있게 하는 일이다. 꽤 괜찮다.


그 전에, 우리는 혼자 사는 것을 흔히 자취라 부르는데, 정확한 뜻이 문득 궁금해졌다. 찾아 보니 스스로 자에 불땔 취를 써서 자취, 스스로 불을 뗀다는 뜻을 가졌다고 한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 자다. 스스로 해낸다는 것이다. 밥을 먹고,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하고 따위의 것들을 혼자 한다. 그것이 혼자 사는 것이고 자취다. 한국의 보험료는 내가 내지 않고 있는데 자취라고 해도 되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일단 자취라고 해두자.


혼자 산다는 것은 꽤 좋은 일이다.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거나, 글을 쓸 때 방해할 사람이 없다. 글을 쓸 때 시끄럽게 틀어두는 음악도, 영화를 볼 때 높이는 볼륨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 물론 옆집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말이다. 자취를 한다는 건 온전한 나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나는 이 점이 가장 좋다. 그 누구에게도 방해 받지 않는 공간을 갖는다는 건 참 좋은 일이다.


좋은 일만 있는 게 아니다. 지금 사는 집에 들어올 때 집주인으로부터 바퀴벌레가 나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집주인은 혀를 차면서 바퀴벌레 약을 줬다. 그리고는 가버렸다. 고작 이 에프킬라 같은 스프레이로 뭐 어쩌라고? 발견하면 이걸 뿌려서 죽이라고?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해주지 않았고 나는 두세 달 동안 바퀴벌레와 동침했다. 그러다 보니 집에서 이런저런 음식을 잘 해먹지 않았다. 괜히 바퀴벌레가 더 나올 것 같아서 한 가지 요리만 해먹으며 냉장고에 음식도 잘 두지 않았다. 요리하다 나온 음식물 쓰레기도 곧장 버렸다. 그 때 생긴 습관 덕에 집은 나름 높은 청결도를 유지하고 있다. 집안에서 담배를 피우는 탓에 나는 담배 냄새 빼고는 봐줄 만하다. 고맙다 바퀴벌레 새끼들아.


혼잣말이 늘었다. 작은 집에 혼자 지내다 보니 자연스레 늘었다. 입을 열지 않으면 입냄새가 날 것만 같아서 혼잣말을 한다. 양말이 어디 있는지, 바퀴벌레는 어디로 도망갔는지 혼자 떠든다. 가끔은 이게 외로워서 그런 건가 싶었는데 그냥 입냄새 나는 게 싫어서 그런 것이더라.


자취를 한다는 것에 익숙해질 때쯤 가장 생각나는 건 엄마였다. 어떻게 그녀는 이 고된 집안일을 혼자 수십 년을 해온 것일까. 3평 짜리 작은 방도 혼자 관리하기 벅찬데 그녀는 어떻게 이것의 몇 배나 되는 집을 혼자 청소했을까. 게다가 네 식구의 빨래와 식사, 설거지까지 다 할 수 있었을까. 엄마의 대단함과 미안함과 고마움을 동시에 느꼈다. 그 모든 일을 혼자 해내는 엄마는 결코 작지 않았다. 키가 조금 자라 엄마가 조금 작아졌다고 느꼈던 건 오만이었다. 엄마 미안해.


혼자 살게 되면 무엇이 소중한 것인지 알게 된다. 하루에 두 번 샤워하며 한 번 샤워할 때마다 수건을 두 장씩 쓰던 나는 이곳에서 수건 한 장을 며칠이고 쓴다. 속옷 역시 하루에 두 번이나 갈아입던 나는 이제 하루에 하나만 입는다. 흰옷에 물드는 게 아까워서 나누었던 빨래는 이제 한 번에 다 돌린다. 내가 한국에서 이 모든 지랄을 다 떨 때 우리 엄마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 생각하면 절대 한국에 있던 것처럼 살지 못한다.


게다가 이건 혼자 사는데 그것도 멀리 살다 보니 느끼는 것이다. 내 사람들에 대한 소중함도 다시 느낀다. 한국 돌아가면 정말 잘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잔뜩 든다. 멀리 떨어져 있으면 나의 가족과 친구들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알게 된다. 나도 알아버렸다. 그러니 돌아가면 잘 할 것이다. 제발 이 다짐이 한국에 돌아가도 유효하길 바란다.


자취는 여러모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와중에도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이 거슬린다. 돌돌이가 어디 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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