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크래프트 오리지널이 1998년 3월, 확장팩인 브루드 워가 같은 해 11월에 출시되었다.
마침 군대에 있을 때라 상병 휴가때 비디오 대여점에서 게임을 대여해서 플레이했다. (당시엔 비디도 대여점에서 게임도 빌려줬는데 시디키는 누가 먹었을까?)
여하튼, 입대 직전 플레이했던 워크래프트2와 디아블로 (생애 최초의 정품 구매 게임)로 알게된 블리자드라는 게임 개발사의 게임이라 덜컥 해봤고 내 상병휴가 9박 10일은 니똥캬라멜, 마이라이프포아이어, 아둔 또 어디갔어 등 다양한 스타 유닛의 음성과, 술과 함께 지나가 버렸다.
99년 5월 제대 직전, 신병 세명이 들어왔는데 사회에서 뭐하다 왔냐고 물어보니 한 명이 스타하다 왔다고 하더라. 게임방에서 알바하다가 입대했는데 스타 배틀넷 200승 하다가 왔다고 한다. 그래서 노트와 연필을 준비하고 PX로 신병을 데려가서 담배 한갑과 콜라, 상당량의 냉동 식품으로 이등병의 말라 비틀어진 위장과 입술을 기름지게 해 준후 스타 200승의 비법을 전수받았다.
하지만, '스타게이트 3개를 빨리 짓고 질럿을 뽑으면서...'라고 하는 순간 난 당혹스러웠다.
"야 그걸 왜 3개나 뽑냐 ㅎㅎㅎㅎ, 낭비지 낭비. 하나만 뽑아야지"
했더니 '뭐 이런게 다 있어'라는 표정으로 날 쳐다보더라.
어쨌거나 배틀넷 200승의 고수로 부터 (하지만 몇패 했는지는 안물어봤다) 전수받은 비법 (일꾼을 9~10마리까지 뽑고 스타게이트를 3~4개 뽑으면서 상대방의 전술 전략에 대응하라)을 머릿속에 꾹 담고 제대하던 그날 군복을 입은 채로 휴가 나오는 일병 한명과 함께 게임방으로 달려갔다.
수많은 인파 속에 군복 입은 두명이 단축키사용따윈 모른 채 마우스로 꾹 꾹 유닛을 생산해 가면서 약 2시간 반동안 스타크래프트를 플레이했다. 물론 1승도 못올리고 게임방을 나왔지만 뭐랄까 난생 처음 지구 어느 지역에 있는지 모를 사람과 경쟁한다는 사실 자체가 상당한 흥분을 불러일으켰다.
싱글 게임만 줄기차게 즐겨온, 즉 게임 제작자가 만들어 준 가상의 세계에서, 짜여진 틀 안에서 게임을 플레이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동일한 조건 하에 같은 인간, 휴먼, 사람과 함께 경쟁한다는 사실은 생각 외로 흥분되는 일이었다. 지고 나면 가슴이 두근거리면서 다음 매칭을 기다리고, 이기면 그 짜릿함이 온 몸을 휘감았다. 그 맛은...... 머리속에서 뭔가가 펑펑 터지고 심박수가 빨라지면서 얼굴이 상기되고 내 몸이 공중에 붕 뜬 그런 느낌이었다. 화학적 반응의 음주와는 다른, 약간은 위험하면서도 그리 죄책감이 느껴지지 않는 자극. 국가가 허락한 뽕.
어쨌거나 내가 근 20년 이상 게임을 플레이해 온 기간동안 게임이라는 콘텐츠가 '현상'으로 확대되는 경우를 경험해 본 최초의 예가 스타크래프트였고, 내 군대 생활 및 대학 생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 존재였으니 리마스터를 예약 구매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
하지만 이것은 마치 첫사랑을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상황과 비슷하다.
20대 초반에 만났다가 헤어진 여자친구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물론 난 남자니까)
20대 후반에 우연히 길거리에서 만났다면 '아...많이 예뻐졌구나'
30대에 만났다면 '아..... 이제 결혼 했겠지 그래도 예전 그모습 그대로네'
하지만 40대에 만났다면 '체중관리와 식습관 조절이 필요하구나'
라는 반응을 보일 것 같다 (실제로...그렇더라)
[하하...너도 예전 그대로구나. 건강하니?]
스타 리마스터는 나에게 있어 40대에 우연히 길거리에서 마주친 20대때의 첫사랑같은 느낌이다.
사귈때, 즉 1990년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이르는 시기에는 그 어느때보다도 빛나보이고 아름다웠던 스타크래프트가 20년쯤 지나서 만나보니 얼굴에 주름도 생기고 (리마스터 했지만 그래픽적 한계가 분명한), 옛 이야기를 함께 회상해 보려고 대화도 나눠봤지만 서로 사는 인생이 다르고 현재의 상황이 다르다 보니 뭔가 말이 잘 통하지 않는 (이전에 재미있게 플레이했던 싱글모드였지만 이제 와서 플레이해보니 최신 게임에 비해 신선함은 전혀 없이 익숙하다 못해 지겹기까지 하고 구닥다리 방식인 게임 플레이) 그런 느낌이다.
하지만, 게임 구매한 것이 후회되지는 않는다. 스타 리마스터의 게임 플레이가 지겨운건 스타 이후에 출시된 RTS 게임류가 대부분 스타의 그늘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는 방증일 수 있겠고 그 그래픽적 한계는 이것이 서비스 차원의 '리마스터' 판이라는 점을 기억하면 될 듯 하다. 게다가 한글 자막 및 한국 성우분들의 음성 지원도 되니 싱글 미션의 몰입감은 예전의 그것과 한참 다르다.
물론 절지동물의 움직임과 같은 유닛 동작이나 유닛 해상도 개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옛스러운 그래픽은 최신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쉽게 넘지 못할 벽이 될지 모른다. 뭐 소장판이라 생각해도 될 듯 하고, 친구들과 술마시고 다시 게임방에 가게 만드는 그런 도구로 생각해도 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