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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의근육 Jul 20. 2024

우물쭈물하다가 또 공무원 시험 볼 줄 알았지

의원면직 후기나 공무원 퇴사 브이로그 영상이 참신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몇 년 사이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듯 공무원에 대한 인식이 변하면서 판이 바뀌었다. 바늘구멍을 뚫고 어렵게 공직에 들어간 저연차 공무원들이 용감하게 사직을 감행하는  콘텐츠는 이제 너무 흔해서 조회수 경쟁력을 잃어버렸다. 채 10년도 되지 않은 기간 동안 대한민국 공무원 조직에선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공무원 탈출은 지능순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공무원은 최악의 직장일까?


사실 조직은 죄가 없다. 오래전부터 그래왔고, 그렇게 잘 굴러왔고 앞으로도 크게 변하진 않을 것이다. 그 시절에는 겸손과 순종이 미덕이었고, 공복이니 상명하복이니 하는 말들이 크게 거슬리지 않은 분위기 속에서  공무원 관료제는 그들만의 방식으로 진화하고 고착되었을 것이다.


연금이라는 꽤 달콤한 당근도 있었고, 착한 사람들이 대부분인 공무원들은 부조리하거나 시대에 뒤처진 관행도 그런가 보다 하고 받아들이며 성실하게 일해왔을 것이다. 이곳도 사람이 있는 곳이고 시민을 위해 일하는 곳인데, 상종도 못할 만큼 최악의 사람과 상황만 있을까. 절대 그렇지 않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지옥처럼 느껴질 만큼 힘든 직업이 공무원일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책임감이 강할수록, 일을 잘하려고 노력할수록 힘들어진다는 것이다. 성과제가 아닌 이곳에서 나만 좀 고생한다고 알아주는 사람도 없고, 오히려 조금 뻔뻔하게 일하고 베짱이 자세를 가져야 정신 건강에 좋다. 만약 공무원이 죽을 만큼 힘들다면 미련 없이 그만두는 게 맞다. 죽을 만큼 힘든 것을 참아가면서 일할 정도의 숭고한 직장도 아니거니와 무엇보다 나만큼 소중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공무원으로서 별 저항 없이 받아들였던 관행이나 절차들이 얼마나 우스꽝스럽고 한심했는지 지금에서야 깨닫는 것을 보면 나도 순종과 집단우선주의를 강요받은 옛날 사람인게 틀림없다. 남들이 하니까 시보떡을 돌렸고, 국장님 모시는 날이라고 먹기 싫은 어탕집에 내 돈 내가며 뻘쭘히 따라갔다. 무슨 업무인지도 모르면서 주는 대로 일을 받았고 공무원은 알아서 배워야 한다고 해서 하루하루 버티며 일더미 속에서 발버둥 쳤던 것 같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면 된다. 그만둔 게 실패도 아니고 자랑도 아니니, 성실하게 묵묵히 일하고 있는 무원들에게는 박탈감이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조용한 퇴사에 성공한 나는 우물쭈물하다가 또 다른 공무원을 기웃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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