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그램을 삭제한 것은 5개월 전이었다. 휴대폰에 깔린 앱 중에서 가장 수시로 드나들던 이 신박한 플랫폼은 오랫동안 나의 사랑을 받았다. 처음 가입한 계기는 좋아하는 유명인의 일상을 볼 수 있다는 이유였다. 이미지 중심의 가시적이고 감각적인 레이아웃은 페이스북보다 신선했다. 장문의 글을 쓸 필요도, 읽을 필요도 없어서 좋았다. 글로 표현하는 SNS의 시대는 저물고, 사람들은 화려한 사진과 짧은 영상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것을 더 좋아하기 시작한것이다. 인스타그램을 열면 온갖트렌드,연예인, 음식, 패션, 뉴스 등가장 최신의 정보가있었고, 때로는 과제에 필요한 영감과 아이디어도 얻을 수 있을 수 있어서 참 좋았다.
간접외상
이태원에서 인명사고가 났다는 기사를 포털사이트에서 접하고 도대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의구심은 오래가지 않았다. 언론보다 빠른 사고영상과 사진들이 인스타그램에 업데이트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곳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블러도, 모자이크도 없는 생생한 것들이었다.
꽤 시간이 지났음에도영상이 머릿속을 자꾸 맴돌았다. 그리고 마음이 너무 아팠다. 우울한 감정으로점점몰입도가 높아지는 나를 발견한 후 내린처방은 앱을 지우는 것이었다. 비슷한 일이 반복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SNS는 인생의낭비일 뿐이야'를 수없이 주문 걸어도 결코 쉽지 않았던 삭제는 신기하게도 단번에 이루어졌다. 그리고 놀랍게도조금의금단현상도 없었다.
세계인의 축제 월드컵이 끝나고 우연히 유튜브로 개막식 행사를 보게 되었는데(뒷북도 이런 뒷북이 없다), BTS 정국이 불렀던 주제가 공연에 매료되면서 나는 별 관심이 없던 이 보이밴드를 집요하게 공부하기 시작했다. 어린 친구들이 이뤄낸 세계적인 성과에 감탄하면서 뒤늦게 영상들을 찾아보기 시작한 것이다.알고리즘의 덫에 사로잡혀 봐도 봐도 계속 나오는화면들을 클릭하다 보면밤을 새우는 것은 부지기수였다. 규칙적으로 잠자리에 들던 일상이 무너지면서 다크서클이 찾아왔다. 참 무서운 늦바람이었다.육아와 자격증 준비를 함께 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또 한 번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처음이 어렵지 두 번째는 쉬울 거야.'
그 뒤로도 나는 휴대폰 속 앱을 선택해서 하나씩 지워 봤는데, 별 문제가 생기지 않는 걸 보니 처음부터 꼭 필요한 것은 아니었나 보다. 손 안에서 뭐든지 다 되는 참 편리한 세상에서 쏟아지는 콘텐츠를 절제할 자신이 없는 나는 이렇게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사람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