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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의근육 Jun 22. 2023

정부미 vs 일반미

제 남편은 사제입니다만...

공무원이 되고 놀랐던 것 중의 하나는 공무원 부부가 정말 많다는 것이었다. 몰래 사귀더라도 청첩장을 열어보면 사내 커플인 경우도 있었고, 한 부서에서 둘, 셋 이상은 부부인 경우도 흔하다. 같은 직장에서 마음에 드는 이성을 만나는 것만큼 자연스러운 일이 어디 있겠냐마는 공무원은 특히 공무원 배우자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내가 바라본 공무원 부부의 가장 큰 장점은 심리적 동질감이다. 직장생활의 고충을 가장 잘 이해해 주는 동료이자 남편, 아내라는 타이틀이 주는 안정감이 있다. 부부가 같은 지역에서 근무한다는 것은 정말 큰 축복이다. 조직 내 정보에도 발 빠르고 육아에도 큰 도움이 된다. 부부가 구청이나 시청으로 함께 출근한다면 아이는 직장 어린이집에 맡길 수 있고, 가족 나들이를 위해 휴가나 연차도 수월하게 맞출 수 있다.


반면 엄청난 투명성은 장점이자 단점이 될 수도 있다. 업무나 비상근무 스케줄에 훤하니 배우자의 일거수일투족을 알 수 있고, 급여 명세서 또한 마음만 먹으면 볼 수 있다. 내가 만난 주무관님은 결혼을 하자마자 남편의 새올(행정시스템 사이트)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알아내 급여명세서를 열람하고, 직접 돈관리를 한다고 해서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생각해 보면 공무원 호봉도 전 국민에게 공개되는데 배우자가 본다고 크게 다를 건 없겠지만 말이다.


공무원은 결혼을 하게 되면 이런 질문을 주고받는다.

신랑이 정부미야?


처음엔 무슨 말인 줄 몰라 당황했는데 배우자가 공무원이면 정부미, 아니면 일반미나 사제로 우스갯소리로 부르는 것이다. 내 남편이 공무원이 아니어서 뭔가 다른 품질이 되는 순간이었다.


영리하고 젊은 친구들이 9급 공무원으로 들어와 성실하고 똑 부러지게 일하는 모습을 많이 보아왔다. 어렸던 동기들이 하나둘씩 결혼을 하면 출산율 낮은 나라에서 대견하기까지 했다. 공무원 커뮤니티에서 경조사는 게시판을 통해 전 직원에게 공고되기 때문에 결혼을 하게 되면 예상치 못한 많은 축하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예식이 끝나면 답례나 인사드릴 사람이 많아지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공무원 아버지를 둔 공무원 커플의 결혼식을 간 적이 있었는데 축의금을 줄 서서 낼만큼 엄청난 숫자의 하객으로 북적였다. 끈끈한 카르텔의 결합을 보는 듯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행운이지 부부가 같은 직장에서 일할 필요는 없겠지만, 공직생활을 오래 하고 싶다면 공무원 배우자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부부가 아이가 생기면 대화가 점점 사라지는데, 퇴근 후 불평거리를 투닥거릴 공통의 화제가 있다는 것만으로 끈끈한 전우애가 생기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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