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이 뭔지는 잘 몰라도 공무원이 되면 시키는 일만 열심히 하면 되는 줄 알았다. 일반행정직은 전문성이 없는 전형적인 사무직이다. 그 말인즉슨 위에서 시키면 뭐든지 해야 된다는 말이다. 즉, 어느 과에도 배치될 수 있고, 투입 시 모든 업무를 할 수 있어야 한다. General이 갖는 이 두루뭉술함은 공무원에 처음 진입하는 사람에겐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다. 특별한 기술이나 높은 학력이 필요하지 않고, 모집입원도 가장 많기 때문이다.
인사철이 되면 한 부서에서 2~3년 근속한 직원들의 인사이동이 이루어진다. 마치 쌓았던 레고 블록을 다시 허물고 새로 조립하듯이 공무원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새로운 부서에 투입된다. 이 과정이 참으로 신속하고 예고 없이 이루어지는데, 금요일 오후에 인사이동 공문이 공개되면 월요일부터 새로운 부서로 출근해야 하는 식이다.
새로운 부서로 가는 걱정이나 설렘은 사치에 가깝다. 하던 일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업무분장을 맡기까지 하루 이틀이 채 안되기 때문에 꼼꼼한 인수인계는 물리적으로 힘들 수밖에 없다. 행정복지센터에서 인감을 발급하던 직원이 구청에서 서무를 할 수도 있고, 사업소에서 자동차등록을 하던 직원이 시청에서 계약업무를 맡을 수도 있다. 위에서 꽂아주는 대로 자리 잡고 일을 배워야 한다.
사수가 있을 리 만무하다. 전임자도 일이 익숙해질 때쯤 떠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매뉴얼이나 편람이 있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새 업무는 전임자나 비슷한 일을 하는 동료 공무원을 찾아서 전화나 메신저로 물어 물어 파악하는 경우가 많다. 천운으로 전임자가 같은 부서에 있으면 모를까 인수인계는 간단한 메모나 전화로 이루어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특성화된 교육이나 사수를 기대하고 들어오는 신입 공무원에게는 그야말로 멘붕이 오는 것이다.
도대체 왜 이런 식으로 직원을 배치하고 비생산적으로 인력을 사용하는 걸까? 직업공무원제의 일반행정직 인사이동의 바탕에는 모든 직원들이 모든 업무를 할 수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아무 데나 보낼 수 있다는 것은 조직의 입장에서는 굉장한 장점이지만, 당사자에게는 업무분장의 모호함과 난잡함으로 다가온다. 서무, 회계, 복지, 계약, 인사, 보건소, 대민지원까지 일반행정직이 하는 일은 한계가 없기 때문에 2~3년 동안 쌓았던 전문성은 다시 리셋되고, 담당자는 바위에 달걀을 치듯이 고통스러운 '스스로 학습'을 해야 하는 것이다.
위기가 찾아온 것은 신생 부서에 발령이 난 첫날부터 일어났다. 새로운 동료, 새로운 사무실에 적응할 틈도 없이 나에게 떨어진 업무분장은 수학포기자에게 가혹하리만큼 어렵고 생소한 대형사업 회계였다. 신생 부서라 전임자도 없고, 전전긍긍하고 있는 나를 도와줄 만큼 한가한 동료도 없었다. 공무원 업무분장이란 게 감히 침범할 수 없는 신성한 바리케이드와 같아서 내 업무 외에는 알려고 하지도 않고, 하나라도 일을 덜 떠맡기 위해 보이지 않는 기싸움이 펼쳐지기도 하는 민감한 사안이다. 그 전쟁터에서 발언권을 내기 힘든 연차 짧은 공무원에게 몰아주기 업무분장을 주기도 하는 것도 사실이다. 유능할수록, 성실할수록 또는 인맥이 없을수록 기피부서로 가거나 과도한 업무를 맡게 되는 웃픈 현실을 맞닥뜨리게 된다.
공무원이 되어서 흔하게 들었던 말이 나서지 말고 관례대로, 하던 대로 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무사안일도 일을 좀 알아야 누려보지 나 같은 공무 원에게는 그림의 떡이었다. 행정직이라면 두루두루 뭐든 잘해야 하는데, 이런 경지에 오르려면 몇 번의 인사이동을 거쳐 뼈를 깎는 스스로 학습을 반복해야 하는지 딜레마에 빠지는 순간이었다. 이토록 비전문적인 공무원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