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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 Oct 30. 2019

신혼집을 떠나다

신혼집에서 지금 이곳으로 이사를 오게 된 이유는 바로 "위치" 때문이었습니다.

신혼집에서 출퇴근 시간은 왕복 3시간... 아침, 저녁으로 1시간 반씩 총 3시간을 길에서 소비해야 했지요.

신혼집을 그곳으로 정할 때는 그렇게 시간이 오래 걸릴 줄 예상하지 못했고, 광역 버스 자리 맡기도 그렇게 어려운 줄도 몰랐었지요. 마을 버스는 또 어떻구요... 지하철이나 광역 버스를 타기 위해서는 마을버스를 타야했는데, 이 마을버스는 바쁜 출 퇴근 시간에도 10~15분에 한번씩 오기 때문에 항상 마을 버스를 놓치지 않으려 높은 힐을 신은채 뛰어다녀야 했어요. 그렇게 아침에 7시에 집에 나서서 칼퇴근을 해도 집에 오면 8시가 넘었습니다.

정말 하루하루 출퇴근이 전쟁 같았어요. 힘들게 퇴근해서 집에 오면 저녁도 먹고 남편과 도란도란 이야기도 하고 다음날을 위한 휴식을 취해야 했지만, 저희의 현실은 퇴근하고 집에 와서 저녁을 차려 먹으면 금새 10시가 되었고 저녁밥이 소화가 되기도 전에 잠이 들었어요. 


달콤해야했던 신혼생활은 조금씩 씁씁해져갔습니다.

제가 생각했던 결혼생활은 이게 아닌데 말이죠... 퇴근후엔 남편과 포장마차에서 한잔 하기도 하고, 저녁먹고 손잡고 동네 산책도 하는 그런 삶을 생각했었는데.. 현실은 도무지 그런 짬을 내어주지 않았습니다. 

제가 신혼집에서의 출퇴근을 그렇게나 힘들어 했던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어요.

결혼 전 오랫동안 자취를 했었는데, 회사와 거리가 걸어서 10분도 되지 않는 가까운 곳이었고, 역세권의 번화가 였기 때문에 많은 것들을 집 주변에서 걸어서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또 가까운 곳에 친구들도 여럿 살고 있어서 평일 퇴근 후에도 종종 만나 담소를 나누고 술도 한잔 기울이는 말 그대로 재미난 싱글 라이프를 10년 넘게 하다가 갑자기 이런 신혼집의 지리적 단점이 적응 되기란 더욱이 쉽지 않았었지요.

아무리 집이 좋아도 그 집으로 가는 길이 이렇게 힘드니, 집이 더이상 예뻐보이지도, 좋아보이지도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임신을 했고, 임신 후 더 힘들어진 출퇴근 환경과, 여러 가지 상황들을 고려해서 드디어 저희는 이사를 결심했습니다.



신혼집에서의 2년간의 생활은 "집" 이라는 공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었어요.

"집" 자체로만 보면 정말 좋았습니다. 이사하기 전 마감재 하나하나 제 손으로 골라 리모델링을 해서 깨끗하고 넓고, 수납공간도 많고, 또 우리의 취향들로 선택한 가구와 소품들... 모두 다 좋았어요.

집에 있을 때는 모든 것이 완벽한 그야말로 "home sweet home" 이었지만 정작 그 집으로 가는 길은 멀고 지쳐서 더이상 그 집은 우리의 라이프스타일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집이라는 것이 현실이었습니다.

집은 이제 단순히 집이 아파트인지, 주택인지, 구조가 어떤지, 남향인지 아닌지 .. 이런 집 자체의 컨디션을 떠나서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라이프 스타일과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는 공간이며, 집을 선택할 때는 지금 자신이 어떤 생활을 하고 있고, 어떤 삶을 살기를 원하는지를 깊이 생각해보고 결정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희 부부 같은 경우에는 둘다 직장을 다니고 일에 집중해야 하는 시기 였기 때문에 신혼 때 작더라도 회사 근처에 있는 집을 선택했더라면 시간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훨씬 여유 있고 재미있는 신혼 생활을 보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그렇게 신혼집을 떠나 이사한 집이 바로 지금 6년째 살고 있는 이 집이에요.

처음 신혼집과 차로 15분 정도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지만 도보로 갈 수 있는 지하철역이 있어서 출근 시간은 45분 정도로 예전에 비해 반이 줄어들었습니다. 지하철은 마을 버스와 달리 배차 간격이 짧고 비교적 정확한 시간에 도착하기 때문에 더이상 뛰어 다니지 않아도 되었어요. 

그렇게 출퇴근 시간이 단축되자 생활에 여유도 생기고, 생활에 여유가 생기자 마음에도 여유가 생겼습니다. 

집 주변도 화려한 번화가는 아니지만 슈퍼나 카페, 병원도 걸어서 갈 수 있고, 차를 타고 조금만 이동하면 대형마트와 백화점도 갈 수 있는 위치여서,  이제 아이까지 함께 한 우리 가족이 생활하는데 지형적으로 여러가지 편리한 점이 많이 있는 곳이에요.

6년째 살아오는 동안 (특히나 아이와 함께) 생활하는데 크게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고 여러모로 살아가는 데 

"거리"가 주는 편리함이란 생활에서 예상보다 많은 행복을 누리게 해주거든요.

이제 우리 가족도 "집"이 주는 휴식과 편안함을 진정으로 느낄 수 있는 "우리집"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이 집에서의 6년간의 기록들을 이제 천천히 써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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