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같이 나누자면서 10에서 절반이라고
내 손에 쥐어준 것은 돌아보니 6이었다.
누군가 배려와 계산을 가르쳐줄 때
아무렇지도 않게 두고 온 것들이
궁금해지기 시작하고 어디쯤 살고 있을까
돌보는 부류 중에서, 황혜경'
이제와 돌아보면
나는 돌보는 부류에 속해있고
먼저 주는 부류에 속해있고
뒤에서 가만히 바라보는 부류에
속해 있는 것 같습니다.
나는 그것이 나의 성정이어서
기쁜 줄 알고 살았지만
이제와 돌이켜보니
내 마음엔 1 아니면 2 정도
어쩌면 마이너스 어치의 사랑도 괜찮다고
아무도 모르게 위안하며
견뎌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당신이
당신의 걸음속도로
나를 뒤돌아보지 않고 걸어갈 때,
허공에 내 두 손이 낙엽처럼 뒹굴어
당신이 손잡아주기를 기다릴 때,
식사를 할 때 먼저 권해주지 않아
숟가락을 내려놓고 물을 한 모금 먼저 마실 때,
점심식사 여부를 항상 나 먼저 묻다가
어느 날
그 마저도 내가 그만두었을 때.
나는
다정한 부류였고
돌보는 부류였는데
이제 나는 그 부류에 속해 있는 내가
나 자신인 줄 알고 싫어졌습니다.
나는 나의 그러한 성정을
내 둘째 딸이 닮아
살아가면서 마음 아프고 다칠까 무섭습니다.
나는
내 둘째 딸의 손에
적어도 6을 쥐고
삶을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아뇨.
그 아이가 돌아보면
그 예쁜 손에
아주 따뜻한 4가 있어도
나는 기꺼이 행복하겠습니다.
나는,
진실로
다시 내가 따뜻한 4를 쥐고도
돌보는 부류에 속하고 싶습니다.
그것이 나 자신이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이 기억하는 나이기도 하고
그 부류여서
행복했던 적이 있었다고
여전히 믿고 있으니까요.
부디,
친애하는 당신.
내 가장 가까운 곳에서
내가 나답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기를
정중히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