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란 것도 하려면 분위기를 탄다.
며칠전 생일을 맞아 장마기간에 갑자기 보고있던 TV 파워가 나갔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듯 싶어 당분간 TV 없이 지내볼 생각이다. 클래식 라디오 음악에 커피향으로 TV 쿠팡플레이와 넷플릭스 없는 빈 공간을 채운다.
최근 2-3년 사이에만 엄마집과 두군데서 대형 TV 망가진게 벌써 네대째다. (덩치가 커서 (고쳐볼까? 미루다가) 내다 버리질 못해 전파사 처럼 방안에 전부 팽개쳐 두고 있다.) 이젠 그러려니 한다. 시골에서 장마기간에 TV까지 먹통이니 생각을 하게되고 장마기간이라 커피맛도 좋아지며 더욱 집중이 된다.
살면서 (56년동안) 처음 맞아보는 대형 폭우에 일주일 내내 장마 예보다. 중국은 이미 물에 잠겼고 한국도 현재 물난리중이다. 이런 강도로 한달만 계속 내리면 노아의 방주 시대가 다시 도래하겠다.
https://youtu.be/9qDooCyLOMA?si=BtrHFy702OrNmAMx
내면으로 시선을 모으니 몇달간 기괴했던 꿈의 메세지 들의 연속성이 한 줄기로 이해되다. 꿈풀이에 꽤나 신중했던 셈이다. 가끔 꿈속의 스크린에 비치는 뜬금없는 기괴함은 그 출처 탐색에 모든 기억의 데이터를 뒤지고 탐문해야 하는 탐정 놀이와 같다. 귀찮아서 저절로 풀릴때까지 생각않고 놔둬본다.
기괴한 꿈의 영상은 내면 무의식의 떠오름 아니면 외부에서 송출된 메세지가 나의 휴식공간에 침투한 것인데 자는동안은 무방비 상태로 필터에 의해 왜곡되기 마련이다. 꿈 해석은 왜곡시킨 무의식의 필터를 제거해야 정확한 내용이 드러난다. 무의식이 벌리는 난장이 아닌 외부 메세지에 대한 꿈풀이의 방식이 대충 그러하다. 당연히 의식이 맑을수록 왜곡이 적다.
* 잠자리가 너무 덥다던지 소변이 마렵다던지 해서 꾸게되는 잡스런 꿈도 무의식과 결탁하는 외부(육체 감각이 송출하는) 메세지에 속한다.
깨어있는 동안 허용을 통해 수신되는 메세지들은 전화 통화를 하듯 비교적 정확하다. 보고싶다는 누군가의 생각은 정확하게 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전달된다. 반대 경우도 마찬가지다.
생각을 파장으로 전달하는 방식을 일반적으론 ‘텔레파시’ 라고 하는데 대다수의 인간들은 뚫리지 않기위한 방벽을 쌓는데 열중한다.
왜 사람들이 모두 차단벽을 설치하느냐 당연한 현상이다. 부모 잔소리도 듣기 싫은데 온갖 잡소리 개소리 들어서 뭐하겠나. 속마음 대부분이 온갖 비난과 공격들 투성이다. 내 경험에 의하면 텔레파시는 지금의 인류에겐 연애할때 아니면 그다지 쓰잘데기가 없다. 오리발 내밀기 딱 좋아서 도리어 무례한 짓꺼리로 온갖 문제만 일으킨다. 극소수 그룹에서만 자신들끼리 텔레파시를 활용한다. 자기들끼리 텔레파시를 아주 유용하게 잘 활용하는 그룹도 한번 본적있다. (그만큼 상호간 깊은 신뢰가 바탕이 되야한다.)
귀신들의 청원도 그와 비슷하다. 깨어있는 의식에 철통같은 방어막과 검문을 통과하고 무의식에게서 방문을 허락받을 정도면 보통 사람들과 귀신들은 아닌것이다.
나 역시 깨어있는 동안은 강력한 차단벽을 가동시키고 지내므로 보통은 메세지들이 무방비 상태인 자는동안 침투하는 것인데 방어막과 만나 기괴한 꿈으로 변형되는 것이라 왜곡점을 찾아내야만 출처와 전달코저 하는 원형이 드러난다.
왜곡점들은 자신의 무의식속에 있으므로 뒤지면 나온다. 깊이 숨어 있을수록 시간이 좀더 걸릴뿐이다. 평상시 갖고있던 생각 관심들이 가장 앞줄에서 떠오른다. 매일 해야 하는 설거지 같은거다.
내 살아본바 개소리 하던 종자가 어느날 깨닫고 사람말을 하는 경우 대부분은 ‘말’ 만 이다. 순간적 치기 아니면 꾸미기 인데 원래 자리로 돌아감은 과거 습성을 떨구지 못해서 이다.
재생의 첫 단추가 과거 습성과의 단절이라. 무너진 골격을 다시 세우려면 하드한 고생과 트레이닝이 요구된다. (허리가 꺽여 우물에 던져진 다크나이트가 라이즈 하는 과정처럼) 뭘하던 만만한게 없다. 몸뚱아리 하나 갖고 있는게 나이먹고 병걸리면 이렇게 까다롭고 번거로울줄 내 젊은날엔 미처 몰랐노라.
https://youtu.be/ynrq9ayTiQY?si=L6-TrQPssNJrjPRb
내 지난 삶 그냥 먹고 마시고 자고 놀고 하는게 삶인줄 알았던 것이 고양이들과도 같았도다. 돼지들보다 더 먹겠다고 먹방에 열광하는 모습이 말세기 인간들의 일반적 현상인데 한국이 앞장선 덕분에 ‘먹방’ 이란 한국말 단어가 세계 공용어로 자리잡았다. 헤어질땐 잘먹고 잘살아라 만나면 식사 하셨습니까로 인사를 대신하던 먹거리에 대한 한풀이다. 적당히가 없다. 뭘하던 끝장을 보는 한국인들 대단들 하다.
https://youtu.be/CKiN9KbJksQ?si=0LtlXc4gk8SYDSo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