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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Ah Nov 18. 2024

소크라테스가 현대를 말하다.


진보는 현재 상황을 긍정이 아닌 잘못됐다 부정하는것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진화도 마찬가지다. 더 이상 과거와 현재 상태에 만족할수 없을때 돌파구를 찾기위한 노력이 원동력이 된다. 모든 생명체들은 현재 상황에 만족할때 안주하려는 속성이 있으며 누리는 혜택이 많을수록 변화를 원치않는 보수적 성향이 된다.


기록된 역사는 인간종이 야만에서 개화로 전개되는 과정들이다. 모든 문명의 진화와 진보가 순순히 발전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부분이 기득권과 피지배층이 맞서는 투쟁의 역사로 무지와 야만이 지배할때 마다 그만한 피의 댓가를 요구한다. 히틀러의 나치가 악행을 할만큼 하고 만족해서 스스로 쇠퇴하고 물러난것이 아니다.



그 많은 피의 역사를 치루고도 현재의 인간종과 사회가 모두의 이상향이자 완성형이 아니란것은 누구나 체감으로 공감한다. 과학기술은 발전해도 이기심으로 자연과 생존 터전을 위협하고 야만또한 더욱 드세져서 사건사고 전쟁과 범죄로 문명이 공멸의 길로 폭주하는 중이다.


문제점을 해결하고 공동체가 유지되는 시스템을 조율하는것이 곧 정치다. 귀족 왕권에 맞서 민중들이 투표제도로 정치에 주권을 행사한다고 사회 시스템이 합리적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민주주의라 한들 여전히 인간의 본성과 습성은 동물들과 다를바없이 먹이를 두고 다툼하고 전쟁을 벌리는 야만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합리적이지 않는데 정치가 따로놀수는 없다.


구성원들 집단지성의 수준에 맞는 지도층을 갖게됨이 민주주의 시스템이 지닌 한계다. 국민이라는 미명아래 무지와 악이 주권을 행사하고 사기 도박꾼들이 정치에 참여할때 국정이 제대로 굴러갈리 만무하다.



결국 그리 되고만다. 어설픈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민주주의 모두 인류 문명사에서 시행착오로 자멸의 길로 종결돼 가고있음을 보고있다. 시스템 문제가 아니라 인간종 수준과 자격의 문제다. 생각과 본성이 일치하지 않는 현 인간종이 지닌 한계다. 민주주의 하에서 야만이 힘을 얻어 권력을 휘두르는것은 민중들이 주권을 책임질만한 자격이 부족한 탓이다.


한국도 5공을 롤모델로 삼겠다는 지도자를 선택했고 미국도 트럼프 시대의 회귀로 다시 냉전시대로 돌아가는듯 하다. 자유 민주주의를 전면에 내세운 아메리칸 드림이 2백년 역사끝에 결국 무력적 힘을 앞세운 야만으로 회귀 하고야 만다. 민중들이 원함이 그것이다.


애초 태생 자체가 유럽에서 건너간 부량아 죄수들이 남의 땅을 강탈하고 원주민인 인디언 학살하는 총잡이들을 영웅으로 삼아 탄생한 국가가 자유 민주주의 라는 미국이다. (이스라엘 건국도 별반 다르지 않다.) 미국 지도층이 ‘아바타’  영화에 대해 경기를 일으키며 비난하는 이유가 자신들의 역사를 패러디 하는 내용 때문이다. 거울을 보기가 불편한거다.



무지하고 야만스런 민중이 나라의 주인이라고 정치의 주권을 휘두를때 어떤 사태가 벌어지는가 고대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최악의 정치 시스템 이라고 민주주의를 혐오했다. 지금 현대사회를 보면 이해가 된다. 소크라테스가 지적했듯 현 인간종에겐 정치는 합당한 지성체들이 리더가 되서 방향을 세우고 우매한 민중이 그 지도를 순종하고 따르는것이 평화를 누릴수있는 유일한 해결책으로 보인다. 민주주의가 지닌 치명적 문제는 현자를 알아볼수 있는 안목이 인간종 스스로에겐 없다는거다. 야만이 득세하게 만드는 무지가 곧 그것을 말해줌이다.


https://youtu.be/mZDmFo27vM0?si=GRw-4TB5z_-Bl-Jx


말세기는 양단간 극단적 갈림길에서 선택을 해야하는 시대다. 과거의 유산들을 움켜쥐고 과거 방식을 고수하느냐 새로운 탈출구를 찾아 나아가느냐 이다. 환경이 과거와 같지 않기에 생존이 걸린 문제가 된다.


세대간 갈등에서 자녀 세대가 부모 세대를 존경하고 따를수 없는것은 그만한 무지와 아집을 노인세대가 실생활에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급변하는 현대 사회에선 부모의 삶을 보면서 본받으려 하는 경우보다 저렇게 살면 안된다는 다짐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고 무작정 과거만 붙잡으려 하는 보수적 성향에 노쇠에 따른 퇴보적 행동에서 젊은층이 본받을만한 부분 보다는 단점들이 부각 되기에 필연적 갈등이 발생하게 된다. (키오스크 주문이 어렵다고 테이블에서 주문 받으라 소리치는 모양새다.)



결정권에 있어 부모라 할지라도 잘못된 생각에 무조건 따를수 없는 경우가 많다. 성인이 되면 부모품안에서 공간적 경제적으로 독립해야 하는것도 그 때문이다. 집안 어른을 공경하는것과 결정에 따르는것은 다른 문제다. 효도 한다고 노망이 든 노부모의 결정과 고집에 생활이 휘둘리는 바보같은 마마보이를 정상적 성인이라고 할수는 없다. 대부분 부모 자식간 경제적으로 종속관계가 그러한 상황을 만들게 되는데 젊은층의 보수화는 그만한 혜택을 부모세대로 부터 누리고 있기에 안주를 택한것이다. 진화와 진보에서 멀어질수 밖에 없다.


현재 한국의 많은 젊은층이 지난 대선에서 마마보이 기질을 발휘해 5공을 롤모델로 내세웠던 후보를 택한 결과가 지금의 정치 상황이다. 정의가 아닌 상놈은 무조건 양반 하는일 참견말고 순종해야 한다는 논리가 한국 기득권 계층의 기본 정서다. 말세기에 진보가 아닌 기득권 보수의 주장을 선택한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주권이 어떤 의미인지 민주주의를 원치않는 자들이 민주주의를 부르짖는 모순된 형태를 이제서야 젊은층은 체감하기 시작한다. 북한도 자신들은 인민 ‘민주주의’  공화국이라 말한다.



각자 느끼는 말세기가 전부 다름에 설득이 무의미하다. 의식 체계가 무지와 아집에 사로잡히면 옳고 그름을 구분 못한다.


잘못을 저지름이 무지의 소산이고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 함이 곧 야만이다. 무지와 야만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대중들은 현자들을 비난하고 마녀사냥에 몰려다니는 광기가 지배한다. 무지는 소크라테스 같은 현자를 자신과 같은 수준이라고 폄하해야 스스로 위안이 된다. 야만과 무지가 힘과 권력을 지니는 사회에서 현자들이 숨게되는 이유다. 뱀파이어나 좀비들이 득세하는 세상을 그린 영화들이 쏟아져 나오는 이유는 현대 사회가 그러한 모습을 닮아있기 때문이다. 기득권의 횡포가 뱀파이어를 닮았고 흽쓸려 다니는 민중들의 광기가 좀비때를 닮았다.


민주라 해서 전부 주인이라 날뛰는데 난장판이 벌어짐이 필연적이다. 원하는 행복과 천국이 다를땐 종이 갈리는것 외에 해결책이 있을리 없다.  각자 만족하고 행복해야 평화가 올것 아닌가. 다른 종끼리는 공간 분리가 답이다.


무지와 야만이 지배하는 세상인지라 상식과 법칙을 무시하고 감옥에 누가 들어가야 하는지를 두고 힘의 논리로 박터지게 싸운다. 법치국가를 무너뜨리는 주권을 누가 행사했는가? 법을 수행하는 집단이 범죄집단이 된것은 법보다 힘쎈놈이 갑질하는 세상을 민중들이 원했던 탓이다. 옳고 그름이 아닌 양반 상놈이 편갈라 이기고 지는것에만 몰두하는 야만과 억지를 대화로 설득함이 의미가 없는것은 인간이 지닌 야만의 본성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수천년전 소크라테스가 말하던 인간 종의 사회와 지금이 별반 다를바 없으니 역사가 반복됨은 종의 본성이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부질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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