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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찬 이규봉 Aug 10. 2021

15.일차독립과장자의백보일음

ax+by=0 ⇒ a=b=0, 야생의 꿩이 될래? 새장의 새가 될래?

독립이란?


   독립(獨立, independence)이란 무슨 뜻인가? 사전을 찾아보니 다음과 같은 의미를 갖고 있다. 


“다른 것에 예속하거나 의존하지 아니하는 상태”, “개인이 한집안을 이루고 완전히 사권(私權)을 행사하는 능력을 가짐”, “한 나라가 정치적으로 완전한 주권을 행사함” 


독립의 반대는 종속(從屬, dependence)이라고 한다. 홀로 결정하지 못하고 남의 결정에 따르며 혼자 살 경제적인 능력이 없으면 누군가에게 의지해 산다. 그 대상이 부모라 할지라도 그러한 경우 우리는 종속적이라고 한다.

   나 자신을 생각해 보니 나는 자신 있게 독립된 개체라고 할 수 있다. 개인으로서 누군가에 예속하거나 의존하지 않으며 집안을 이루고 완전한 권한을 행사한다. 누가 시켜서 하기보다는 내 주관에 의해서 결정한다. 사전적인 의미에서 본명 나는 독립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결혼하여 아내에게 예속되고 의존하는 것을 보면 이 경우에 있어서는 종속적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아내도 그렇다. 그러니 정략적 결혼이 아니라면 부부는 서로 종속적이라 볼 수 있다. 물론 나이 들어 자식들에게 의지하여 살 수도 있다. 그러면 독립이라고 할 수 없다. 가족의 구성원은 완전히 독립하지 않는 한 서로 종속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반드시 독립이 좋고 종속이 나쁘다는 뜻이 아니다. 경우에 따라 어쩔 수 없는 경우 다른 누구에게도 의지할 수 있고 또한 도와줄 수도 있다. 물론 모나지 않고 자연스럽게 말이다. 모든 건 결국 주고받는 것 아닌가? 

   우리는 태어나서 적어도 경제적으로 독립할 때까지는 독립적이지 못하다. 대부분 부모에게 의지한다. 부모는 자식들이 경제적으로 독립하도록 도와주고 있다. 이 도움이 평생을 간다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적어도 결혼하여 집을 나가면 완전히 독립해야 한다. 이것을 위해 우리는 학교를 가고 공부를 하고 마음을 수양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공동체 생활을 하므로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것을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전혀 없다. 아마도 인간이 도움을 주고받는 것을 부정적으로만 보았다면 벌써 멸종했을 것이다. 필요한 곳이 있을 때는 도움을 주고 필요할 때는 도움을 받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다. 다만 일방적이지만 아니면 말이다.

   우리나라는 독립국가인가? 모두들 그렇다고 하겠지. 정말 자타가 공인하는 독립국가인가? 사전적인 의미로 보면 정치적으로 완전한 주권을 행사한다고 되어있다. 우리나라는 정말 정치적으로 완전한 주권을 행사하고 있나?

   미국은? 자타가 공인하는 독립국가이다 지나칠 정도로. 그러면 중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는? 역시 독립국가이다. 왜? 스스로 주권을 행사하니까. 아닌가? 누가 시킨다고 무조건 하는 나라는 않지 않은가? 필자가 보는 한 그렇다. 그렇다면 북한은? 중국이나 러시아가 뒤에서 조종하는 나라인가? 북한에는 중국 군대가 상주하여 보호하여 주고 있나? 북한의 군사주권이 중국에게 있나? 그렇지 않다고 본다. 그래서 북한은 독립국가라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경제적으로는 빈곤하다.

   일본은? 독립국가라 하겠지만 전혀 아니다. 그들은 아직도 미국의 지배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하다.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으로서 일급 전범인 일본 왕이 그 지위를 박탈되어야 했었지만 이를 유지하는 대신 미국의 지배를 받아들였고 지금도 진행형이다. 그래서 일본은 독립국가라 볼 수 없다. 그렇다면 남한은? 경제적으로 독립되어 있나? 글쎄! 국가 이익을 위해 외교권을 우리 뜻대로 행사할 수 있나? 아마도. 군사적으로 주권을 행사할 수 있나? 전혀. 대한민국의 군사권은 우리가 갖고 않다. 그나만 지금은 평화로운 시기에 한해 군사작전권을 갖고 있다. 전시에는? 미사일조차 우리 마음대로 사거리를 결정할 수 없었다. 제한받던 것을 최근에 돌려받았다. 대부분의 인민들이 모르던 사실을 자랑스럽게 알려주었다. 정말 수치스러운 일 아니었던가? 외교도 독자적으로 완전히 행사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독립국가가 아닌가? 하지만 독립국가라고 외치고 있고 그렇게 믿고 있다. 자존심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북한에 비해 남한은 경제적으로 풍요롭다.  


수학에서의 독립


   수학의 용어에도 독립이란 말이 있다. 바로 일차독립이라는 것이 있다. 반대되는 경우는 일차종속이라고 한다. 여기서 일차란 의미는 차수가 1차라는 뜻이다. 즉 x^2이나 sin(x) 나 e^x와 같지 않고 x 그 자체라는 뜻이다. 상수를 생략하면 바로 f(x)=x와 같은 선형함수라는 의미와 같다. 

   앞서 설명하였듯이 선형함수란 의미는 먼저 더한 다음에 그것의 함숫값이나 각각의 함숫값을 더한 것이나 같은 경우라고 하였다. 이러한 선형함수의 차수는 일차뿐이다. 그래서 일차함수라고도 한다. 서로 다른 일차함수 여러 개, 예를 들어 x ,y, z가 있다고 하자. 이런 일차함수에 각각 상수를 곱해서 합한 것을 일차결합이라고 한다. 즉 상수 a, b, c에 대하여 ax+by+cz를 x ,y, z의 일차결합이라고 한다. 예를 들면 2x-y+3z와 같은 것들이다. 이것을 확장한


a_1 x_1 + a_2 x_2 + … +a_n x_n


을 x_1 ,x_2 ,x_2 , …,x_n의 일차결합이라고 한다. 물론 a_1 ,a_2 ,a_3 , … , a_n은 모두 상수이다.

   이 일차결합이 0일 때 a_1 x_1 + a_2 x_2 + … +a_n x_n = 0, 일차결합을 구성하는 모든 상수가 0이 되면 이 때 x_1 ,x_2 ,x_2 , …,x_n을 일차독립이라고 한다. 다시 말하면 0 이외의 어떤 수를 곱하여 합해도 절대 0이 될 수 없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보자. ‘5’ 이 하나 자체는 일차독립이다. 왜냐하면 5에 어떠한 0이 아닌 상수를 곱해도 0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2, 8’은 일차독립이 아니다. 왜냐하면 -4x2 +1x8=0인 0이 아닌 수 –4와 1이 있어 이들과 일차결합하면 0이 되기 때문이다. 일차독립이 안 되는 경우 일차종속이라고 한다. 그래서 ‘2, 8’은 일차종속이라고 한다. 즉 x_1 ,x_2 ,x_2 , …,x_n이 일차종속이란 뜻은 적당한 0이 아닌 상수 a_k가 있어서 a_1 x_1 + a_2 x_2 + … +a_n x_n = 0이 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평면으로 가 보자. 평면 위의 점은 (x,y)와 같은 순서쌍으로 표시할 수 있다. (1,1)은 그 자체로 일차독립이다. 왜냐하면 (1,1)은 (0,0)이 아니므로 어떠한 상수를 곱해도 원점인 (0,0)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두 순서쌍 (1,0)과 (0,1)은 일차독립이다. 왜냐하면 여기에 상수를 곱한 a(1,0)+b(0,1)=(0,0)이라고 하면 (a,b)=(0,0)이어서 a=b=0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1,1)과 (3,3)은 일차독립이 아니다. 왜냐하면 3(1,1)-(3,3)=(0,0) 처럼 0이 아닌 상수가 존재해서 결합하면 0에 해당하는 원점 (0,0)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평면에서 일차독립 (1,0)과 (0,1)은 결합하면 평면 위의 모든 점을 만들 수 있다. 즉 임의의 평면 위의 점 (a,b)는 다음과 같이 (1,0)과 (0,1)의 일차결합으로 만들어진다.


(a,b)=a(1,0)+b(0,1)


공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1,0,0), (0,1,0), (0,0,1)은 일차독립이다. 그러나 여기에 (3,4,5)가 추가되면 (1,0,0), (0,1,0), (0,0,1)와 (3,4,5)는 일차독립이 아니다. 왜냐하면 


(3,4,5)=3(1,0,0)+4 (0,1,0)+5 (0,0,1)


이기 때문이다. 공간에서 일차독립인 (1,0,0), (0,1,0), (0,0,1) 역시 공간 위의 모든 점을 만들어 낸다.

   이처럼 어떤 구성원들이 일차독립이라는 것은 다른 구성원들이 아무리 작당을 한다고 해도 다른 구성원을 만들 수 없다는 뜻이고, 일차종속이라는 것은 다른 구성원들이 적당히 합하면  다른 구성원을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일차독립인 구성원들은 자기들 소신 것 일하는 것에 반해 일차종속인 구성원들은 서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판사 개개인은 독립성을 지닌다. 이 뜻은 다른 그 누구도 재판에 영향을 줄 수 없고 오로지 증거와 양심에 의해 판결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누군가 영향을 주어 재판의 결과가 달라진다면 그 판사는 독립성을 상실하고 종속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판사들은 독립성을 유지할까? 아니면 무언가에 종속되기를 바랄까? 과거 정권이 원하는 판결을 내려준 경우가 너무도 많았다. 지금은 단지 정권이 금권과 언론이 조작한 여론으로 대치되었을 뿐, 아직도 사법부의 독립은 요원하다. 유일한 무기는 탄핵뿐인데 그것마저 잘 실현되고 있지 않다.

   여러분들은 독립된 하나의 개체가 되기를 바라는가? 아니면 뭔가 혜택을 받고 종속되기를 원하는가? 결정은 오로지 개인의 몫이다. 물론 그로 인한 긍정적인 또한 부정적인 결과도.


장자의 백보일음


   사람들은 절대 홀로 살 수는 없다. 크든 적든 공동체를 이루고 산다. 공동체를 이루고 살다 보면 서로 도움을 주고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 아울러 피해도 주고 피해를 받기도 한다. 마치 남의 도움을 안 받는 것이 바람직한 삶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데, 그 뜻은 자신도 남에게 도움을 안 주겠다는 것과 다름 아니다. 서로 상부상조하는 것이 훨씬 바람직하다고 본다. 물론 상식이 통하는 선에서 말이다. 공동체를 이루다 보면 누구는 고용주가 되고 누구는 노동자가 된다. 이 둘의 관계는 노동과 임금이다. 노동자는 노동을 제공하는 대가로 임금을 받는다. 노동자가 노동을 제공하지 않으면 고용주도 이익을 창출할 수 없다. 그래서 둘의 관계는 대등하다. 문제는 공급보다 수요가 늘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현실에서는 고용주와 노동자가 거의 평등하지 않으므로 이를 돕는 장치가 노동조합이다. 

   노동자는 노동을 할 뿐이다. 그런데 고용주는 정당한 노동이 아닌 비합리적인 요구나 불법적인 요구를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럴 경우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노동자는 노동을 제공하는 대가로 임금을 받음에도 인격까지 무시당하는 경우가 많다.

   역사적으로도 불합리한 요구를 받아들여서 이익을 취하는 사례가 매우 많다. 대표적인 것이 일제강점기의 친일파들이다. 군사독재정부에 협력하는 수많은 권력기관 종사자들이 또한 그렇다. 그들의 공통점은 국가를 위한다는 포장 아래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의 불행을 유발하는 것을 스스럼없이 행하는 것이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수사를 조작하여 돈이 없고 힘이 없는 죄 없는 사람들에게 죄를 만들어 씌우는 대신 자신은 승진을 하고 금전적인 이익을 보는 사람들이 있는 가 하면, 반대로 죄를 아무리 지어도 돈 많고 강한 권력이 있다는 이유로 사건을 축소하고 무마하는 사례로 얼마나 많은 치부를 하고 승승장구하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래서 나온 말이 “죽이는 수사로 명성을 얻고, 덮는 수사로 부를 얻는다”라는 말 아닌가?

   이들은 하나같이 독립적인 인간들은 아니다. 왜냐하면 늘 부당한 지시를 받고 이행하거나 또는 스스로 권력자나 부자들의 취향에 따라 움직인다. 하늘이 내려준 양심은 사라진 지 오래다. 문제는 양심 것 사는 사람들보다 이들이 늘 금전적으로 사회적으로 더 대우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비교해 보자. 일제강점기 시절 광복군이나 그들의 후손이 현재 누리고 있는 현실과 민족을 배신해 일신의 영달을 위해 일제에 헌신한 매국 친일파들과 그들이 후손이 누리고 있는 현실을. 심지어는 일제강점기에도 일제에 잡히지 않은 광복군들이 해방 후에 친일파에게 체포되어 빨갱이로 몰리고, 고문을 당하고, 죽고, 그래서 월북까지 하는 처지에 놓인 현실을. 당당하게 독립적으로 살던 광복군들보다 일제에 종속적으로 살던 그들이 해방 이후에도 사회적으로 더 지위가 높고 경제적으로 더 잘 사는 현실을 볼 때 우리는 어떻게 교육을 시켜야 할까?

   장자는 『장자』의 「양생주」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澤雉十步一啄 百步一飮 不鄿畜樊中 神雖王 不善也

(택치십보일탁 백보일음 불기축번중 신수왕 불선야)


“꿩은 비와 이슬을 맞으며 열 걸음에 한 번 쪼고 백 걸음에 한 모금 마시더라도 조롱 속에 갇혀 길러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먹고 살기야 풍성하겠지만 그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라고. 

   새 장 속에서 주인이 주는 먹이에 안주하며 사는 새의 삶 하고, 비록 먹이도 구하기 힘들고 늘 주변을 경계해야 하지만 들판에서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꿩 하고 누구의 삶이 더 바람직할까? 집에서 주인이 늘 먹을 것을 주고 또한 온갖 귀여움을 독차지하면서 사는 강아지나 고양이하고, 비록 고달프지만 먹이를 직접 구해야 하는 야생의 늑대 하고 누구의 삶이 더 바람직할까? 현실과 이상이 다른 데 우리는 자라는 세대에게 어떠한 식의 교육을 시켜야 할까?

독립은 주춧돌


   다시 평면으로 돌아가자. 평면에서 x하고 y가 일차독립이란 뜻은 x하고 y가 일차결합하면 평면 위의 모든 점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주도적인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x하고 y가 일차종속이란 뜻은 둘의 크기만 다를 뿐이고 변경시켜 보았자 자신들을 벗어날 수 없다는 뜻으로 방향이 다른 점들은 결코 만들 수 없다는 뜻이다. 즉 우물 안의 개구리 신세로 보다 더 넓은 세상을 볼 수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 좁은 세상에서만 살고 있으니 마음은 편할지 모르겠다.

   이처럼 일차독립이 가지는 위상은 집으로 치자면 주춧돌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러나 주춧돌은 무거운 무게를 늘 짊어져야 한다. 독립한다는 것은 힘들지만 사람으로서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동물들조차 갇혀 사는 것을 원하지 않는데 하물며 사람들이?

   아니다. 사람들은 의외로 갇혀 사는 걸 원하는 사람이 많다고 본다. 양심 한번 숨기면 일생이 편한데 왜 나서는가?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어려서부터 부모들이 가르치지 않았던가? 멀리는 일제강점기부터 일제의 보호 아래 자국민을 핍박하며 사는 친일파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물론 조국의 광복을 바라고 가산을 정리하여 먼 타국으로 이주하여 독립운동을 한 사람도 친일파의 수만큼은 안 되어도 그래도 있었다. 그러나 해방 후에 오히려 독립운동을 한 많은 사람들이 탄압을 받았다. 독립운동의 일부는 친일파 정권에 빌붙었다. 과거 애국지사들이 일제가 망할 리 없다는 생각에 일제에 빌붙었던 것과 다름 아니다. 친일파와 친일파에 부역하던 그들이 이 나라의 주류가 되었고 정작 이 나라의 독립을 위해 헌신했던 많은 애국자들은 오히려 탄압을 받고 고문을 당하고 그래서 일부는 북한으로 건너갔다. 지금도 이것은 진행 중이다. 친일파 정권에 빌붙은 이들은 군부독재가 되니 또다시 군부 편에 섰다. 공식적으로 군부 독재가 사라지자 보수라는 탈을 쓰고 수구 세력이 되어 정권을 잡기도 했다.

   이러한 와중에 생겨난 것이 “모난 돌이 정 맞는다.”가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우리는 홍익인간을 부르짖으며 널리 인간에게 이로운 해왔다. 정 맞더라도 모난 돌이 되기를 자처하는 많은 인민들의 끊임없는 개혁 요구로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는 것 아니겠는가?

   일차독립에서 보여주듯이 자신의 주관이 뚜렷한 독립성이 강한 자신을 만들어 가는 것은 마치 단단한 주춧돌 위에 단단하고 아름다운 집을 지을 수 있는 것처럼 멀리 보면 이 사회를 건강하게 진보할 수 있게 만드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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