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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오뉴 Mar 03. 2023

직장 생활 10년을 앞두고

나는 무슨 일을 해야 할까

나의 첫 직장경험은 인턴십이었다. 


대학생활 내내 영문학 교수가 되겠다는 꿈을 현실의 문제들로 인해 접고, 앞으로 무슨 일을 해야 할지 굉장히 고민을 하던 시기였다. 나의 은사님은 내가 무엇을 해도 잘할 것 같다고 지지해 주셨었다.

여러 고민과 시도 끝에 HRD를 시작했고 지금은 10년을 앞두고 있다.


처음에 이 일을 시작했을 때 썼던 노트, 업무 일지가 아직도 있다. 

(사실 이 업무 일지를 쓰도록 조언주신 분이 계신데, 나중에 그 분과의 일화/인연도 풀어보겠다.)

나는 프랑스 명품회사의 트레이닝팀 인턴으로 시작했고, 트레이닝팀답게 필드에서 아주 혹독하게 배웠다.

그 당시의 나는 매일 업무일지를 적었는데, 그게 큰 도움이 되었다. 그 업무일지는 이렇게 구성되었다.


1. 내가 해야 할 일

2. 내가 오늘 한 일

3. 내가 오늘 하지 못한 일

4. 내가 발전해야 할 부분

5. 코멘트


아주 사소한 것도 매일 적었고, 그 사소한 것들이 쌓였고, 그중에서 가장 도움이 되었던 건 내가 발전해야 할 부분이었다. 내가 발전해야 할 부분에 가장 많은 지분을 차지한 것은 "디테일"이었다.

그 당시의 나는 매일 사수에게 "디테일이 부족하다"라는 말을 귀에 딱지가 않도록 들었다.


예컨대, 서류 작업을 하고 스테이플러를 일정한 방향으로 찍지 않다.

교육장 세팅을 하는데 모든 물품의 칼각이 맞지 않았다.

다과나 음료를 세팅할 때 해당 브랜드가 보이게 세팅하지 않았다.

강사님 물을 드릴 때, 컵 안쪽에 튄 물기를 닦지 않았다. 등이었다.


그 당시에 이 말을 듣고 네! 시정하겠습니다. 하며 바로바로 적용했지만, 내 진심은 "아니 디테일 디테일 하는데 이런 게 무슨 디테일이야 진짜 짜증 나게"라고 생각했다. 현장 업무 외에도 문서 작성이나, 정말 수많은 업무에도 혹독한 평가와 가르침을 받았다. 


그 짧은 인턴 기간 동안, 나는 일을 대하는 태도를 배웠다. 내가 그곳을 나올 때, 나를 혹독하게 가르쳐준 사수와 나의 팀장님께 정말 감사한 마음이었다. 이제 와서 보니, 신입이나 인턴으로 온 친구들에게 사소하지만 정말 중요한 그 "디테일"의 부족이 너무 크게 눈에 보였다. 그 디테일이 업무의 완성도를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혹독했던 트레이닝은 나를 다음 회사로 이끌어주었고, 내가 쓴 업무 일지는 인턴이 아닌 사원으로서 첫 회사에 들어가는 큰 역할을 해주었다. 


다들 첫 회사를 첫 단추라고 표현한다. 그만큼 처음 만나는 상사, 팀장, 조직, 업무가 중요하고 그 업무의 경험과 일하는 방식과 커뮤니케이션 등이 나의 일하는 성향/ 추구하는 가치/ 업무 스타일을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나의 첫 단추는 정말 완벽했다. 조직 규모도 작지 않았고, 팀장님은 부족한 나에게 계속 기회를 주셨다.

그 기회를 나는 놓지 않고 잡았고, 욕심을 냈다. 내가 부족한 것은 늘 솔직하게 말해주시고, 동시에 지원도 해주셨다. 그렇게 좋은 조직에서 일할 수 있던 것은 나에게 축복이었고 여전히 나에게 가장 아름다운 기억이다.

그렇게 일하다 보니 자연스레 인정 받았고, 부족하다고 말씀주신 부분들도 많이 성장했다. 지금의 내가 하는 모든 일은 그때 배운 것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신입시절의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직장생활을 10년 정도 하면 엄청난 경지에 올라있지 않을까- 예컨대 전문가 라든가, 누가 무엇을 물어보아도 설루션을 제안하고, 어떠한 어려운 상황도 잘 대처하며, 조직 내에서 능숙하게 커뮤니케이션하는 그런 모습. 


이제 직장생활 10년을 앞두고 있다. 지금의 나는, 내가 생각한 10년 때와 좀 다르다.

이 일을 적지 않게 했지만, 업무의 부족함은 계속 경험한다. 그것이 어디서 오는 것인지 계속 고찰한다.

교육하는 사람들은 다들 아는 70:20:10 중에서, 지금은 나에게 10이 부족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대학원을 가야 할까, 계속 이직을 하는 게 답일까. 

HRD를 계속하는 게 맞는 걸까, HRBP로 커리어를 더 확장해야 하는 건 아닐까.


요즘 내 머릿속은 그렇다.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은 HRD인데, 내가 다니던 조직들은 외국계 지사들이었고 외국계 지사의 특성상, 회사가 어렵거나 조직이 타이트해지면 HRD 보다는 조직의 기본 생리들 위주로 돌아갔다. 그러다 보면, 내 업무가 등한시되거나 조금 뒤로 밀리거나, 우선순위에서 뒤처지는 조직들이었다.


그게 그렇게 싫었다. 

물론, 어떠한 특정 상황에서 조직에 대한 솔루션을 제공하거나 교육이 아닌 진단이나 문화적 차원으로 접근하여 훌륭한 파트너로서 나의 역량을 보여주지 못한 탓도 있었겠지. 

그렇지만, 돌아보면 직에서 HRD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리더/HR Head가 없었다. 

조직이 나의 업무를 채용이나 보상 혹은 운영보다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는 건, 결국 내가 이 조직에서 그렇게 여겨진다는 것과 같았다. 


그래서 이제는 첫 직장처럼 내가 현장에서 보고 배울 사람이 있고, 함께 고민하고 논의할 사람이 있는 팀을 원한다. 계속 한국에서 혼자 Individual Contributor로 일하는 것이 오래되어 아등바등 모든 것을 해야 했기에 이제는 구조화되어있는 팀에서 깊게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정말 커리어의 가장 중요한 변곡점에 와 있는 기분이다. 

직장생활 10년을 앞두고, 신입 때보다 더 치열한 고민을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얼마 전, 곧 있을 세계 여성의 날 행사로 모시게 될 코치님과 사전 미팅을 했다. 

코치님께 직장생활을 어떻게 그렇게 잘하실 수 있었느냐고 여쭈었더니 코치님이 웃으며 대답하셨다.


"존버하면 됩니다!"


정말 의외의 대답이었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 생각해 볼 만한 대답이었다.


일단 존버하자, 그리고 기회를 놓치지 말자. 대학원이 될지, 새로운 회사가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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