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기 전, 두려워하는 당신에게
모든 꽃이 시들듯이
청춘이 나이에 굴복하듯이
생의 모든 과정과 지혜와 깨달음도
그때그때 피었다 지는 꽃처럼
영원하진 않으리.
삶이 부르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마음은
슬퍼하지 않고 새로운 문으로 걸어갈 수 있도록
이별과 재출발의 각오를 해야만 한다.
무릇 모든 시작에는
신비한 힘이 깃들어 있어
그것이 우리를 지키고 살아가는 데 도움을 준다.
우리는 공간들을 하나씩 지나가야 한다.
어느 장소에서도 고향에서와 같은 집착을 가져선 안 된다.
우주의 정신은 우리를 붙잡아 두거나 구속하지 않고
우리를 한 단계씩 높이며 넓히려 한다.
여행을 떠날 각오가 되어 있는 자만이
자기를 묶고 있는 속박에서 벗어나리라.
그러면 임종의 순간에도 여전히 새로운 공간을 향해
즐겁게 출발하리라.
우리를 부르는 생의 외침은 결코
그치는 일이 없으리라.
그러면 좋아, 마음이여
작별을 고하고 건강하여라.
-헤르만 헤세 / 생의 계단 of 유리알 유희
독일의 유명한 작가이자 1964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헤르만 헤세의 유명한 시이다.
헤르만 헤세는 신학자 집안에서 태어나 삶, 철학, 종교, 정의와 자연 등 이념적인 것들에 대해 탐구하고 고뇌한 시인이다. 무엇보다 그는 휴머니즘을 지향하며 청춘들의 고뇌와 성장의 아픔, 순수 자연에 대한 찬양과 동경, 그리고 인간이 가지고있는 내면의 양면성 등을 탐구하며 자유에 대해 이야기 한다.
그의 후기 대표작인 유리알 유희(Das Glasperlendspiel)는 히틀러에 의해 죄와 어둠 그리고 살인이 세상을 드리우던 시기에 씌였다. 헤르만 헤세는 역설적으로 이 작품 속에 평화와 생명 그리고 자유 등의 이념을 담아낸다. 유리알 유희는 1943년 발표되고, 3년 후인 1946년 헤세는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그의 젊은 날은 그의 작품이 지향하는 바를 대변하듯, 치열한 바람잘 날 없는 삶을 살아왔다.
신학교에 입학했으나 뛰쳐나와 자살기도를 하고 신학교가 아닌 다른 학교에서도 퇴학 당하여 시계공장의 견습공으로 취직한다. 이후로 헤세는 문학에 대한 열정이 커져가서 시계공장을 그만두고, 서점에서 일한다. 서점에서 일하며 그는 글을 쓰고 그가 쓴 첫 시집 '낭만의 노래'를 시발점으로 문학가의 삶을 살게 된다. 이후 그는 결혼하여 슬하에 아들 셋을 두고,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작품을 쓴다.
시를 읽고 삶으로 그 의미가 뿌리내리려면 시인의 삶과 연대기를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대학시절 19세기, 20세기의 영미시 수업 때 작가의 삶을 이해하고, 연대기를 알고 그의 삶에 특별한 사건들을 외우곤 했다. (윌리엄 브레이크는 흰옷만 입고 다녔다! 등의..) 그때는 몰랐으나 문학을 깊이 공부하다보니, 작가에 대한 이해와 그의 삶을 아는 것은 작품으로 한층 깊이 들어갈 수 있게 했다.
여러 문학작품을 공부하다보면, 몇 가지 기억에 남는 작품들이 있다. 나는 영문학을 전공했으나 다른 학생들과는 다르게 주전공이 영미시(English&American Poetry)였기에 대부분의 시간은 시를 읽고, 작가의 삶을 이해하고, 나의 삶에 접목시키며, 좋은 시와 글을 기록하는 데에 보냈다. 내가 이렇게 문학에 빠질 수 있었던- 특별히 어려운 영미시를 연구했던-것은 나의 삶이 너무도 연약했기 때문이다.
문학작품은 근본적으로 삶, 사랑, 죽음, 생명, 청춘, 자연 등 이념적인 것들을 주제로 한다.
그리고 문학작품의 저의에는 인간에 대한 찬양도 있으나, 인간의 연약함으로 인해 발생하는 감정 (예컨대 사랑, 두려움, 슬픔, 환희 등)들을 풀어낸다. 나는 나의 연약한 삶을 마주할때마다 문학작품 속 시인들의 위로와 공감에 깊이 빠져들곤 했다.
이 시는 영문학은 아니지만 너무도 유명한 시인의 시였기에, 스스로 공부하며 기록에 남겨두었다.
헤세는 인간의 삶을 담담하게 시간적 풀이로 서술한다.
모든 꽃은 시들고 청춘도 나이에 굴복한다. 매 순간 우리가 깨닫는 감정과 지혜도 영원하지 않다. 하지만, 그 영원하지 않은 시간의 '시작'에는 신비한 힘이 깃들어 있어 우리를 지키고 살아가는데 도움을 준다.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시작이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무언가를 시작하는 것이 두려울 수 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 새로운 일을 찾는 것, 새로운 학원을 다니는 것, 새로운 공부를 하는 것 등등.. 하지만 이 새로운 것이 가지고 있는 두려움은 이내 익숙해지고, 안정기에 접어들면, 꽃이 지듯 사라지게 된다.
나는 늘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 게 두려웠다. 여전히 두렵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야 할 때,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새로운 학원을 등록 할 때, 새로운 사랑을 시작할 때 등.
새로운 것이 두렵지만, 이내 그것에게 작별을 고해야 할 때가 있는 것이 너무도 어려웠다.
그때마다 이 시를 읽었다.
삶에는 영원한 것이 없다. 따라서 당신이 두려워하는 그 두려움과 불안도 이내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두려움을 넘어 안정기에 접어들고 그것을 유지하고 싶을 때 즈음, 작별을 고하고 새로운 여행을 떠나야 한다. 인생의 그 어느것도 나의 계획과 힘으로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맺어지는 것이 없다. 심지어 죽음마저도.
요즘 나는 새로운 것을 시작하고 싶은데, 여전히 찾아오는 두려움때문에 발을 떼지 못하고 있다.
나의 두려움의 감정은 곧 사라질 것이지만 두려움은 자연스러운 것.
이 두려움이 지고 익숙함이 피어나, 그것에게 작별을 고할 때까지의 모든 시간에 오롯이 나를 바쳐야겠다.
내가 걷는 길에 함께 하는 그 모든 감정들을 마주하며 걸어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