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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범수 Nov 18. 2015

#3. 까미노 첫 걸음, 피레네를 넘다

나와 아버지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 35일의 여정

  몸에 스민 와인 탓일까, 잠은 어느 때보다 고요했고 새벽 5시 반 가볍게 눈이 떠짐이 느껴졌다. 이제 시작이구나 라는 생각으로 짐을 챙기고 식당에 내려가 밥을 먹었다. 5유로나 되는 가격이었지만 아침 식사로 나온 것은 바게트와 잼 버터 그리고 주스와 커피가 끝, 조금 실망스러웠지만 억울한 탓에 바게트를 많이 우겨넣고 점심에 먹을 바게트 까지 챙기고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식사를 하며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당시 테이블에 있던 사람들은 거의 불어를 사용하고 있었기에, 봉주르~ 한마디 밖에 더 나누지 못했다. 방으로 돌아온 나는 짐싸기를 마무리하고 출발하려하다. 해창이 형이 생각나 방에 가보았더니 아직 꿈나라 여행 중이셨다. 그래서 나는 해창이 형을 깨워드리고 먼저 출발 하겠다 말을 전하고 아버지와 함께 길을 떠났다. 

생장 데 피드포르~론세스 바예스 25km

  출발 전 읽었던 책에서는 오늘 걷는 길이 순례자의 길을 시작하는 구간이지만 그중 가장 힘든 길이라고 했다. 왜냐 바로 피레네 산맥을 넘어야 하기 때문이다. 조금은 겁을 먹은 채로 나는 첫 발걸음을 땠다. 생장 드 피드포르가 내뿜는 아침 공기는 잔잔했고 신선했다. 작은 마을 을 휘감은 안개까지 기분좋은 아침이었다. 이른 아침 순례를 시작한 사람들과 눈인사를 하며 전진했다. 아직 체력이 남아도는 순례 초반이라 그런지 한 걸음 한 걸음이 가볍고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내가 순례자의 길에 있다니 내가 이 아름다운 프랑스의 시골길을 걷고 있다니, 이런 기분은 피레네 산맥을 오르기 시작할 때 절정에 이르렀다. 산을 올라가며 보는 유럽의 풍광은 실로 아름다웠다. 한국 산에서 볼 수 없는 잔디로 가득한 민둥산들, 그리고 그 위에 평온한 양, 소 이것이 바로 내가 꿈꾸던 유럽이었다. 그렇게 걷는 와중 나는 길 위에서 첫 번째 외국인 친구를 만날 수 있었다.(타고난 산악인 아버지는 이미 앞으로 치고 나가신지 오래였다..) 

벨기에 메튜와 아르헨티나에서온 성직자 파비안


메튜였다. 턱과 입가 가득 노란 수염이 가득했던 그는 겉으론 무뚝뚝해 보였지만 이야기를 해보니 생각보다 굉장히 사려깊고 따뜻한 친구였다. 그는 벨기에 인이며 오늘이 순례를 시작한지 30일째가 된다고 했다. 생장이 시작지점이 아니라 중간 지점이었던 것이다. 그는 내가 한국인이라고 하자 자신이 엔지니어라 삼성과 일하기 위해 3번정도 서울을 방문한 일이 있다 말해주었다. 뭔가 친근해 지는 순간이었다. 설렘가득 부끄러움 가득 말을 거는 나와는 조금 달리 매튜는 지나는 순례자와 대화를 나누는 것이 일상이 된듯 했다. 그래서 처음보는 나에게도 편한 웃음을 지어보였고 덕분에 이 길이 더 좋아지게 되었다. 


벌써 지친 양선이와 해창이형과 나

   20분여를 함께 걷던 매튜와 헤어지고 길을 좀 더 걷다보니 뒤에서 해창이 형의 목소리가 들렸다. 벌써 따라왔구나! 하고 뒤를 돌아봤더니 어떤 작은 동양 여자아이와 함께 있는 형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아이는 바로 김양선이라는 친구였다. 작은 체구에 운동화를 신고 올라오는 모습이 처음에는 이 친구 많이 힘들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엔 어느 나라 아이인가 했지만 곧 같은 한국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스페인에서 교환학생을 하고 돌아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순례길 여정을 하는 것이라 하였다.(나중에 알았지만 미국에서 대학교를 다닌다고 했다.) 어떻게 하나 싶었던 내 걱정과는 달리 생각보다 양선이는 우리보다 이 길에 더 적응을 잘 하는 것 같았다. 함께 도착한 피레네 산맥 중간 쉼터에선 몇몇 한국인들과 외국인들이 그녀를 알아보며 인사했다. 양선이는 수준급의 영어와 스페인어로 그들과 대화했다. 


피레네 중간 쉼터 오리송

나도 나름 영어에 자신있다 생각했지만 그 순간은 작아질 수밖에 없었다. 피레네 산맥 쉼터에서 물로 목을 축이고 해창이 형이 챙겨온 하리보로 당을 조금 보충했다. 우리가 쉬었던 곳은 오리송이라는 곳으로 피레네를 넘으며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알베르게 겸 바였다. 피레네 산맥을 한번에 넘기 어려워하는 사람들은 이곳 오리송에서 하루를 묵고 출발하기도 한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오늘 하루 만에 산을 넘기로 했기에 더 이상 지체하지 않고 길을 나섰다. 


피레네 산맥의 광경은 정말 내 지난날의 아름다움을 다시 돌아보게 만들었다. 산맥 위로는 광활한 날개를 뽐내는 독수리들이 날아다니고, 넓은 초원에는 작은 말들이 풀어져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었다. 하지만 아름다움이 있다면 그만큼의 고생도 찾아오는 법이다. 산의 경사는 완만했기에 괜찮았지만 예상하지 못했던 추위와 안개가 우리를 급습했다. 첫 번째는 안개였다. 아버지는 타고난 산악인이시기에 나보다 한참을 앞서나가셨고 나는 해창이형과 양선이와 함께 걸어가고 있었다. 근데 어느 순간부터 안개가 양 옆으로 가득차 1m 앞도 제대로 분간

치 못할정도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혹시나 아빠가 길이나 잘못들지 않았을까 걱정되기 시작했다.


 추위도 문제였다 안개가 끼고 바람이 불다 보니 반팔에 바람막이만 입은 것이 너무 얇게 느껴졌다. 앞서나간 아버지는 얼마나 추울까 걱정되었다. 하물며 우리도 양갈래 길에서 길을 잃을 뻔 하기 까지 했다. 다행히 빨간 바람막이를 입은 스페인 청년 미켈이 우리를 구해주었지만 말이다. (미켈도 여정중 나의 소중한 친구가 된다.) 산맥을 오르다보니 간식트럭이 있어 거기서 잠시 핫초코로 손을 녹였다. 정말 힘든 순간에 천사가 나타난다고들 하지 않나, 그 순간 트럭에 잠시 머문 그 순간 라파엘을 다시 만났다. 라파엘도 나를 알아보며 반갑게 인사해주었다. 나는 하루만에 만난 라파엘이 너무 반가웠지만 일단 아빠를 찾아야 했기에 발걸음을 재촉했다. 또 만나요 라파엘. 다행인 것이 거기서 조금 올라가자 아빠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추웠는지 내가 보이자 한달음에 내려오셨다. 아빠와 만나 그곳에서 조금 올라가 차가운 바람을 피할 수 있는 벽에 기대 잠시 추위에 언 몸을 녹이고 아침에 준비해온 빵으로 당을 보충하고 있었다. 그렇게 아빠를 만나 쉬고 있으니 몸을 녹인 라파엘이 어느새 따라와 인사를 하고 지나가는 것이 아닌가. 지나가는 라파엘은 나와 아빠에게 어젠 잘잤냐며 인사를 전했고 우리는 미소로 화답했다. 나는 뭔가 라파엘이라는 사람이 좀 더 궁금해져 아빠에게 양해를 구하고 라파엘과 함께 먼저 길을 나섰다. 높은 피레네 산맥에서도 라파엘의 파란 눈에는 선한 햇빛이 가득했다. 나는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라파엘은 프랑스 출신이지만 지금 남아공에 살고 있다고 했다. 산 정상에서 저 멀리 구름을 바라보며 탄성을 지르기에 나도 따라 지르고 나도 따라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그녀의 사진도 찍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안개가 걷힌 듯 따뜻한 순간이었다.


 나는 좀 더 대화하고 싶었지만 어느새 나를 추월해 앞에 걷고 있는 아빠가 재촉하는 듯 한 눈짓을 보내기에 먼저 앞으로 가야만했다. 라파엘은 산티아고 길을 부르고스까지만 걷고 포르투로 음악 축제를 즐기러 간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그럼 우리 10일 동안은 매일 볼 수 있겠죠?”라 물었고 라파엘은 또다시 파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웃어주며 “그럼! 물론이지!” 하며 밝게 대답해주었다. 


  내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아버지의 기분이 심상치 않았다. 내 생각엔 날 기다리느라 느낀 추위와 놓친 끼니 때문에 예민해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아버지는 나를 자꾸 빨리 가라 재촉 하셨다. 하지만 나는 나대로 산맥을 넘느라 지쳐 있었고 자꾸 빨리 가기만을 강요하는 아버지가 야속했다. 그러다 결국 아버지에게 언성을 높이고 말았다. “아빠! 왜 자꾸 빨리 가라고 재촉하세요! 저 지금 힘들어요!” 아버지도 내게 화를 냈다. “그렇게 느릿느릿가는게 무슨 순례야! 빨리 앞으로 가!” 이번 여행 첫싸움이다. 나는 해창이 형을 먼저 보내고 아버지에게 계속 언성을 높이며 화난 듯 내리막을 내려갔다. 도통 화가 풀릴 것 같지 않았다. 아버지가 왜 화가 났고 예민해 졌는지 이해는 가지만 화가 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분명 아버지와 싸우지 말아야지 싸울일 없을 거야 다짐하면서 왔던 길이지만 둘이 함께 뭔가를 한다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다. 하지만 늘 화는 정말 어이없게 풀리는 법인 것 같다. 아빠는 내게 조금 미안했는지 말없이 뒤에 따라 내려오고 있었다. 나도 아빠에게 언성을 높인 것이 죄송스럽던 차였다. 그런 와중에 갑자기 아빠가 뒤에서 갑자기 앉으시며 먼저 가라고 손짓 하시는 것이다. 아빠 다리가 쥐가 난 것이다. 아빠는 괜찮다며 먼저 내려가라고 했지만 내가 어떻게 또 그러겠는가, 우리는 그 자리에서 손에서 피를 빼고 쥐가 풀릴 때까지 앉아 있다가 또 아빠의 늦은 점심을 때우려 선식까지 만들어 아빠가 먹을 때까지 기다렸다. 아빠는 뭔가 조금 미안했는지 먼저 가라며 계속 그랬지만 나도 죄송한 마음에 가만히 앉아 아빠를 기다렸다. 그런 과정 속에 우리 마음의 응어리는 서서히 녹아 가는 듯했다. 가족 간의 싸움이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라는 생각도 들면서, 이런 내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아빠의 다리가 좀 괜찮아지자 우리는 언제 그랬냐는듯 고요히 산을 내려왔다. 내려오는 산길은 우리의 감정 곡선처럼 잔잔했다. 그렇게 내려오기를 한 시간 우리는 드디어 론세스 바예스에 도착했다.      


  론세스 바예스는 정말 순례자들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마을인듯 알베르게 레스토랑 그리고 성당이 전부였다. 그래서인지 정말 큰 공용 알베르게 하나만 있을 뿐이었다. 마을을 둘러볼 것도 없이 우리는 바로 알베르게로 향했다. 알베르게에 도착하니 등록을 기다리고 있는 순례자들이 줄을 서고 있었다. 무리 중에는 좀 전에 헤어진 해창이 형이 있었다. 신발의 진흙을 깔끔하게 닦고 나서야 알베르게 등록줄을 설 수 있었고, 한참을 기다린 끝에 우리는 알베르게 등록을 할 수 있었다. 우리는 알베르게에 등록을 하고 숙소로 올라갔다. 오래 된 듯 한 알베르게의 겉모습과는 달리 내부는 정말 깔끔했다. 어제 지었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깔끔한 목재와 깔끔한 침대, 내가 생각했던 알베르게와는 다른 생김이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조금만 늦었었으면 지하 숙소를 써야 했는데 지하숙소는 낡고 오래된 겉모습 그대로의 알베르게 였다고 한다.(지상 12유로 지하 8유로). 


아빠는 선식으로라도 끼니를 해결했지만 나는 아무것도 먹지 못했기에 배가 정말 고팠다. 해창이 형도 마찬가지 였다. 그래서 우리는 밥을 먹기전 가볍게 끼니를 해결할 것이 있을까 하여 마트를 찾으러 나갔지만, 여기서 3km 떨어진 곳 밖에 없다는 지역 주민의 말을 뒤로하고 돌아 와야만 했다. 그래서 그냥 우리는 조금 이른 시간이지만 순례자 메뉴(10유로)를 먹기로 했다. 


순례자의 길 중간 중간에 있는 마을의 레스토랑이나 길가의 레스토랑에서는 순례자 메뉴라는 것을 먹을 수 있다. 보통 메뉴라 함은 전식 본식 후식으로 나오는 코스 요리를 뜻하는데, 순례자들에게는 특별히 10유로의 저렴한 가격으로 메뉴를 제공한다. 메뉴를 시키면 와인 한병을 주기 때문에 하루의 피로를 풀기에 나쁘지 않다.


  아버지를 모시러 다시 숙소로 가는 길 라파엘과 함께 앉아 있는 양선이를 발견했다. 나는 휘둥그레 둘이 아는 사이냐며 물었고 지금 알게되었다고 했다. 둘은 어느새 친해진 듯 화기애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양선이도 라파엘이 참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했다, 그리고 우린 라파엘을 두고 라이벌(?)이 되었다.) 라파엘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아버지를 모시고 넷은 숙소 앞 레스토랑에 가서 순례자 메뉴를 주문했다. 메뉴는 감자스프-돼지고기-커스터드 푸딩 순이었다. 그렇게 메뉴를 시키고 음식을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와인을 한 병 가져다주는 것이다. 와인이 테이블에 놓이는 순간 왠지 모를 감동이 밀려왔다. 뭔가 긴 산맥을 넘은 보상을 받는 느낌이랄까, 분명 그리 비싸지 않은 저렴한 와인이겠지만 와인 한 병으로 식탁이 풍성해진 기분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메뉴를 시키면 와인을 주는 그 문화에 익숙하지 않았던 때라 그 감동이 배로 밀려왔던 것 같다. 감자 스프는 많은 조미가 가해지지 않은 듯한 담백한 맛이었고, 돼지고기는 한국에서 즐겨 먹는 돼지 목살 소금구이의 맛이었다. 마지막으로 커스터드푸딩은 계란 맛이 강했고 식감은 흐물흐물해 내 마음에는 들지 않았다. 하지만 와인은 맛있었다. 아무리 저렴한 와인이어도 꽤나 훌륭한 맛을 내는 것 같았다. 와인에 대해 잘 모르지만 레드와인을 맛있게 먹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역시 와인은 사람의 몸을 편안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는 듯하다. 식사 내내 우리는 지나온 산맥의 고됨과 수고한 우리들을 대견해했다. 아버지는 시종일관 밝은 성격과 긍정적인 마인드를 보여주는 양선이와 해창이형을 칭찬했고 저녁식사 자리는 화목했다. 그렇게 식사를 끝내고 숙소로 돌아오니 시계는 8시 반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른 시간이었지만 한 번 침대에 누워버린 나는 도저히 다시 일어날 수가 없었다. 일기를 쓰고 자려던 생각까지 와인과 침낭으로 덮어버렸는지 그 이른 시각에 나는 순례자 첫날 아름다운 기억을 안고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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