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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침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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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매영 Apr 22. 2024

콩나물국이 먹고 싶다.

 텃밭을 다녀오고 아침밥으로 편의점 도시락을 먹었다. 제육볶음과 소시지케첩볶음 그리고 닭강정이 들어있었다. 전자레인지에 돌린 후 그대로 바닥에 두고 먹었다. 상체를 숙인 채 먹어서 그럴까. 소화가 안된다. 어렸을 때라면 눈이 뒤집혀서 달려들었을 메뉴다. 예전 같았으면 누워서 먹어도 소화가 잘 됐을 텐데 이제 안되나 보다. 밥상을 펼치고 먹을 걸 그랬다. 대충 살지 말고 사람답게 좀 살자던 친구가 생각난다. 대충 사니까 사람 아닌가. 짐승들은 항상 치열하다.


 출근길, 밥을 먹었는데도 허하다. 콩나물국이 먹고 싶다. 맑은 국물에 고춧가루를 넣고 밥을 말아먹고 싶다. 아삭한 콩나물과 시원 칼칼한 국물을 머금은 밥을 한 숟가락 퍼서 먹고 싶다. 콩나물국은 집을 떠올리게 하는 몇 안 되는 음식 중 하나다. 항상 위태로운 밥상 앞에서도 맛있게 먹었던 기억들만 있다. 


 엄마는 항상 특정 음식이 당기면 그 음식에 주로 들어 있는 영양소가 부족해서 그렇다고 말했다. 콩나물국이 맑은 국물에 고춧가루를 넣은 콩나물국이 먹고 싶은 것은 어떤 영양소가 부족한 것일까. 해장이 필요하다는 것일까. 술 안 먹은 지 일 년은 더 된 것 같은데. 알코올 말고 해독할 것이 몸에 많다는 것일까. 


 아랫입술 정중앙이 터졌다. 엄지손가락에 습진도 도졌다. 면역력이 많이 떨어지긴 한 것 같다. 요즈음 뭘 제대로 먹은 기억이 없긴 하다. 통증으로 신호를 보내도 무시하니 콩나물국을 떠올리게 한 것 같다. 생존 본능아 너는 생각보다 시적이구나.


 아쉽게도 생존 본능은 현실을 모른다. 물가가 올랐다는 것을 모른다. 내가 돈이 없다는 것을 모른다. 혼자 살면 요리하는 것보다 버리는 것이 많다는 것을 모른다. 아프지 않으려고 골고루 먹는 것이 비싼 것을 모른다. 아는 것이라곤 병원비가 비싸다는 것 밖에 없다.


 몸 건강도 중요하지만 마음 건강도 중요하다고 했다. 퇴근길에 콩나물을 사야겠다. 어렸을 때 먹은 콩나물국은 다진 마늘 조금과 콩나물 밖에 건더기가 없었다. 그 정도면 재료비는 부담 없다. 엄마에게 전화해서 콩나물국 끓이는 법을 물어봐야겠다. 생존 본능이 속 터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콩나물국을 먹고 싶다는 생각을 곧이곧대로 듣고 콩나물국 먹고 끝내려고 하는 거냐고 화내는 소리가 들릴 것만 같다. 텃밭에 상추를 조금 뜯어 반찬으로 상추 무침이라도 하면 잠잠해지지 않을까 싶다. 건강을 아주 안 챙기는 것은 아니라고 사는 게 생각보다 많이 빡빡해서 아무렇게나 먹었다고 말해야겠다. 


 자꾸 피곤하다. 하품 때문에 입을 벌리면 아랫입술의 터진 부분이 찢어질 것처럼 아프다. 일해라 노예야라며 채찍질당하는 것 같다. 다시 사람답게 좀 살자던 친구 말이 생각난다. 함께 버스를 탄 사람 중에 사람답게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나. 모두 눈이 죽어 있다. 나중에 친구를 만나면 음머 소리 내면서 가볍게 가슴에 박치기를 한 번 해주어야겠다. 당황해하면 넌 무슨 짐승이냐고 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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