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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매영 Apr 26. 2024

불안은 마음보다 몸에 먼저 닿는다

 반차를 쓰고 일이 있어 부산에 왔다. 오랜만에 탄 KTX는 사람이 많았다. 통로 좌석이어서 화장실 갈 일은 걱정 없겠다 싶었는데 호실 통로가 북적이는 통에 화장실을 한 번도 가지 못했다. KTX가 이렇게 좁았던가. 창 측에 앉은 사람은 수시로 왔다 갔다 하는 통에 일어나 자리를 비켜주고 다시 앉기를 반복하느라 노트북을 꺼낼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불안은 마음보다 몸에 먼저 닿는다. 기차를 타고 있는 내내 식은땀이 났다. 앞머리가 젖었다. 사람이 많다는 것은 눈치를 봐야 할 대상이 많다는 것이다. 눈치보기에 숙련되어 어려운 일이 아니라 생각했는데 몸은 아니었나 보다. 


 배려심이라 믿고 싶지만 좋지 않은 시선으로 보일까 눈치를 보는 것이었다. 눈치를 많이 보는 것은 배려심이 많은 것으로 착각되기 쉽다. 6학년 때 친구들과 복도에서 물장난하던 것이 떠오른다. 선생님에게 걸려 복도에서 수업시간 내내 손들고 서 있었다. 손을 들고 서 있는 동안 물바다가 된 복도가 신경 쓰였다. 정확히는 고여있는 물이 신경 쓰였다. 빨리 잊히고 싶었다. 자그마한 웅덩이가 남아 있는 동안 계속 미움받을 것 같았다. 


 벌이 끝나자마자 걸레를 들고 복도를 닦았다. 물이 아니라 웅덩이에 담겨 있는 나를 지웠다. 선생님은 그것이 좋게 보였나 보다. 아이들이 미끄러질까 봐 닦은 줄 아셨다. 얼마나 감명 깊으셨는지 그날 일기 주제로 내 이름까지 칠판에 쓰이기까지 했었다. 지워지고 싶었는데 더 선명해지다니 기분은 좋았지만 불안했다. 눈에 띄면 더욱 크게 혼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 후로 친구들과 놀지도 자발적으로 무언가를 하려고 하지 않았다.


 땀방울이 바지에 떨어지기까지 했다. 결국 손선풍기를 꺼내 땀을 말리며 왔다. 나는 정말 괜찮은데 몸은 언제 괜찮아질 수 있을까. 글을 쓰는 지금도 식은땀이 난다. 내가 내게 눈치를 보는 것 같다. 나도 그렇지만 다른 사람들도 자신을 의식하지 않는다는 것을 몸은 언제 인정할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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