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아침 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매영 Apr 29. 2024

아이도 우리도 다를 것 없다.

팝업 놀이터

 코로나 이후로 첫 팝업 놀이터였다. 장소가 부산이라고 했지만 오랜만에 지인들을 볼 생각에 하고 싶다고 했다.      


 전날에 도착해 게스트 하우스에서 하룻밤 잤다. 아침 일찍 일어나 팝업 놀이터를 만드는데 오랜만이라 그럴까. 몸이 말을 잘 듣지 않았다. 모두 오랜만이라서 그런지 조금씩 삐걱거렸다. 사실 내가 제대로 숙지하지 못한 것이 컸던 것 같다. 다행히 행사가 시작하는 시간에 맞춰 세팅을 끝낼 수 있었다.     

 

 나는 박스 놀이를 맡았다. 쌓기도 하고 아지트를 만들기도 하는 놀이다. 나는 웬만해서 놀이에 대해 개입하지 않으려고 한다. 개입을 하게 되면 놀이라기보다 워크숍이 되는 것만 같았다.


 초등학생 고학년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박스로 탑을 쌓다가 걷어차고 있다. 그것도 모자라 발로 밟거나 엉덩이로 깔아뭉개기까지 했다. 나는 멀리서 그것을 가만히 바라봤다.


 얼굴에 열이 오른다. 몸이 마음보다 먼저 반응할 때가 있다. 괜찮다 싶었는데 화가 난 걸까. 얼굴을 만지니 따갑다. 그냥 땡볕에 얼굴이 익었을 뿐이었다.


 아이들은 자원봉사자 주변을 서성거리며 박스를 부시고 있었다. 팝업 놀이터를 할 때마다 매번 저런 친구들을 본다. 미움도 관심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 계기가 궁금하다. 폭력은 주변에서 배운 것일까. 애초에 내재되어 있던 것일까.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다면 상자를 부시는 것보다 막춤을 추는 것이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


 언제까지 저러나 그냥 두고 싶었는데 그럴 순 없을 것 같다. 그대로 계속 두다간 자원봉사자가 터지던가 박스가 남아나질 않을 것 같다.

   

 햇빛에 얼굴이 절로 인상이 써진다. 내가 얼굴이 익은 것을 화로 오해했던 것처럼 아이들은 잔뜩 구겨진 내 얼굴을 분노에 차있다고 오해할 것 같았다. 팝업 놀이터에서 총괄 기획을 맡은 누나에게 부탁했다. 누나는 내 얼굴을 쓱 보더니 납득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박스놀이존으로 향했다.

  

 놀이터에서 아이들은 뭉치고 흩어지기를 반복한다. 텃밭에서 나비를 보는 것 같다. 처음 만난 아이들이 금방 친해지고 금방 서로에게 악담을 퍼붓는 것을 볼 때마다 귀여우면서 끔찍하다. 혼자 조용히 아지트를 만들고 있는 여자 아이에게 돼지라고 놀리는 남자아이들을 가만히 바라봤다. 남자아이들은 자신이 뱉은 말이 좋지 않은 말인 것을 알고 있었는지 내 눈치를 보더니 다른 곳으로 도망갔다. 여자 아이는 창문이 없는 아지트를 만들고는 그곳에 들어가 가만히 누워 있었다.

   

 더운 공기가 아지트 안에 가득할 것 같았다. 창문을 만드는 것은 어떻겠냐고 물었다. 아이는 웃으며 창문을 만드는 것에 허락했다. 창문을 통해 바람이 들어가고 나올 것이다. 아이를 찌르던 말들도 창문을 통해 나올 수 있으면 좋겠다.


 아이들은 코로나 이전에도 코로나 이후에도 달라진 것이 많지 않았다. 우리가 어렸을 때와 지금의 아이들도 생각보다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아이들을 가두고 싶어 하는 글을 커뮤니티에 올리는 사람들도 이렇게 뛰어노는 아이들을 보면 좋을 텐데. 우리가 어렸을 때와 다를 것이 무엇이냐고 더 영악하지 않다고. 우리가 덜 영악했다고 말하고 싶냐고. 절대 그렇지 않았다고. 말해주고 싶은데 눈을 막고 귀를 막은 사람들에게 설명하기 쉽지 않다. 눈과 귀를 막을 것이 아니라 건강하게 애정을 갈구하는 법을 알려줘야 하는데. 알려주면서 우리도 배워야 하는데.



매거진의 이전글 불안은 마음보다 몸에 먼저 닿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