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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침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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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매영 Jun 20. 2024

병원에 통역사를 만나러 간다.

 한동안 괜찮더니 손가락 습진이 재발했다. 처방받은 약은 그때뿐이다. 의사는 별다른 설명을 해주지 않았다. 물을 자주 먹고 무리한 운동은 당분간 하지 말라고만 했었다. 갈라진 틈에서 진물과 피가 섞여 나온다.


 상처가 입처럼 보인다. 몸이 내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다. 최근에 읽은 무협 소설이 생각났다. 좌선을 하며 몸이 내는 소리를 귀 기울이는 고수들이 있었다. 자신 안의 소리를 깨닫는 것이 강해지는 첫걸음이라고 했다.      


 눈을 감았다. 몸이여, 피 토할 정도로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가. 물었다. 손가락은 쓰라린 것도 모자라 온몸이 근질거린다. 오버하지 말고 병원에 가라는 것 같다. 이런 내가 제일 큰 스트레스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눈을 뜨고 남은 연고를 발라도 쓰라림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요즘 부쩍 몸도 건조해진 것 같다. 전기 발전기도 아니고 만지는 것마다 정전기가 인다. 병원에 가기 위해 샤워를 하고 보습제를 듬뿍 발랐다. 몸은 아직도 화가 가라앉지 않았는지 정전기가 일었다. 옷소매를 손가락 끝까지 잡아당겨 문을 잡았다.     


 나이 드는 일은 오래된 책처럼 종이 색이 바래고, 기억의 잉크는 흐릿해지다 결국엔 수분 한 방울 머금지 못하고 바스러지는 일이라고 했다. 이렇게 건조해지다가는 남들보다 배는 빨리 나이를 먹겠다. 화장도 따로 필요 없겠다. 금방 재가 되어 날아다닐 테니까. 황사가 자욱한 봄이다. 이 먼지에는 누가 섞여 있으려나.    

  

 병원으로 향한다. 친절하지 않아도 좋으니 이번에는 몸이 내게 하는 말을 제대로 통역해 주면 좋겠다. 말이 통하면 나쁘지 않을 친구다. 고집도 세고 화도 많지만 똑똑한 친구다. 서로의 말이 왜곡만 되지 않는다면 협조적일 것이다. 백혈병도 같이 몰아낸 친구 아닌가. 등이 간지럽다. 몸이 등을 떠미는 중인 것 같다. 잡생각 말고 빨리 가기나 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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