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useboat of Srinagar

진정으로 행복한 삶이란

by 물들래

새벽 3:30' 기상, 챙겨 둔 배낭을 둘러메고 약속 장소로 이동했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 다람살라에서의 시간을 마무리하고 어둠을 달리는 지프에 몸을 싣고, 생각했다. 여행은 사람의 마음을 확장시켜 주고 열리게 한다고.


아직도 다람살라를 떠나던 날 새벽, 가슴에 스며들던 아름다운 빛들과의 만남을 잊을 수가 없다. 그 빛은 환한 대낮에 만나는 빛과는 확연히 다르다. 그 빛은 뭐랄까? 옅은 안개 사이를 뚫고 미세하게 움직이는 빛이었다. 간밤 전신을 두드려대던 통증을 이겨낸 이의 눈에만 감지된 빛이랄까.


그 빛은 필요하면 언제나 꺼내볼 수 있는 상징적인 빛으로 내 마음 한구석에 강한 의지의 빛으로 아로새겨졌다. 돌이켜 보건대 그 의지의 빛은 남은 여정에서 어려운 일을 겪을 때마다 꺼내보고 내 주변을 밝히고 정리하는 도구처럼 사용했던 것 같다.


그 빛의 기운을 마음에 품으며 여행 수첩을 꺼냈다. 인도 여행을 떠나기 전, 서울에서 짰던 루트를 다시 점검해 보았다.


델리 인 - 암리차르 - 다람살라 - 자이푸르 - 푸시카르(은비의 버킷리스트였던 낙타 사파리를 위해서) - 아그라(타지마할만 보고 곧바로 이동 예정) - 바라나시 - 산티니케탄(볼푸르역 하차: 타고르가 설립한 비스 바 바라티 대학 캠퍼스를 거닐고 싶어서) - 다즐링(가장 가고 싶은 곳) - 네팔 카트만두 아웃


그러나 자이푸르와 푸시카르를 은비와 의논한 끝에 과감하게 빼고 그 자리에 '스리나가르'와 '레'를 대체했다. 여행에서, 특히 인도 여행에서는 꼭 루트를 따라 움직일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떠나기 전 꼭 가고 싶은 곳을 몇 군데 정해놓는 것은 모르겠지만 인도 여행에서는 늘 변수가 생기기 마련이니 직접 다니면서 루트를 수정할 수도 있다.


얼마나 달렸을까? 드라이버가 아침 식사할 수 있는 장소에서 차를 멈췄다.

어쨌거나 스리나가르는 진이가 가장 기대를 하고 있던 도시이기도 했다. 하우스보트, 하우스보트, 하우스보트, 하며 타령조 노래를 부르던 도시가 스리나가르였다. 하우스보트로 유명한 '스리나가르'는 대체 어떤 도시일까 궁금증을 품은 상태로 지프 여행이 시작되었다.


하루 종일 우리 일행을 싣고 다람살라에서 스리나가르까지 달린 9인용 지프를 기념으로 남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위험을 감수한 베스트 드라이버라고 해야 할까? 드라이버뿐이랴? 그 지프에 몸을 실은 7인 역시 대단한 모험자 들이었다.


다람살라에서 스리나가르까지의 지프 이용료는 Rs 6,500이다. 7인 N 분의 1.

전혀 정돈되지 않은 거리 풍경, 지저분하고, 어설프고, 냄새나는 거리의 모습이 오래 시선에 잡혔다. 생각을 달리한다. 어쩌면 너무 자연스러운 인간의 삶의 냄새를 풍기고 있는 거리가 아닐까. 인도의 거리를 걸을 때나 달릴 때나 모든 곳곳에서 내게 질문을 던졌다.


'진정으로 행복한 삶은 무엇인가'

우리보다 미개하다고 그들이 불행한 것은 아니다. 어쩌면 그들은 자기 앞에 주어진 삶에 만족할 줄 아는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지금 그의 행복지수가 그들의 행복지수보다 높다고 감히 어느 누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겠는가?

많은 원숭이 떼들, 저마다 특색 있게 뻗어있던 녹색 나무들, 산, 그리고 또 산, 다시 또 넘어도 산. 그런 산길이 끝없이 툭툭 튀어나오는 듯한 착각이 일 정도였다. 한낮에 강렬한 햇빛이 들이치는 차창을 내다보노라면 펼쳐지는 풍경들이 모두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지금 이곳에 앉아 있는 나는 과연 누구인가?


만상에 빠져들다가 어느 순간 생각을 멈추고 멍 때리고 있노라니 산속 도로 위에 갑자기 소떼들이 나타났다. 그러다 또 다른 순간 황톳빛 진흙 폭포가 눈에 펼쳐지는가 싶으면, 물줄기의 발원지가 너무나 궁금했던 산꼭대기에서 쏟아지던 하얀 폭포 줄기가 드러났다.


산 고개를 몇 개를 오르고 내리기를 여러 번 반복, 새벽 4:00에 출발했던 우리의 지프는 저녁 7:30' 경, 2003년 여름, 그 당시 카슈미르 분쟁 중이었던 삼엄한 기운이 감도는 스리나가르에 도착했다.

인도와 파키스탄이 서로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서 핵실험을 하게 된 게 원인이 된 이 분쟁으로 말미암아 우리 일행은 중간중간 군인들의 검문을 수차례 받아야만 했다. 스리나가르에는 힌두교인과 시크교인이 많았고 이슬람교인이 극히 드물었다.


그래서 그랬을까?

'레' 버스 티켓을 예매하기 위해 스리나가르 시내를 걷다가 거리에서 만난 이슬람교도의 옷차림에서 굉장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거기에 검은 천으로 얼굴을 거의 다 가린 행색에선 상당한 긴장감이 엿보였다. 그들을 보고 있는 내 마음에 묵직한 돌덩이 몇 개를 얹어놓은 기분이었다.


스리나가르 달 호수 일몰 풍경이 우리를 환영하고 있었다. 달 호수 위에 줄지어 서있던 각기 개성 있는 하우스보트의 전경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였다.


오렌지빛 일몰이 휘감아 돌던 하우스보트의 지붕들, 하우스보트를 떠받치고 있던 달호수의 밀감 빛 노을은 순식간에 주홍빛으로 번지다가 보랏빛을 감싸 안은 채 이내 어둠을 몰고 왔다.





이전 05화다람살라, 그곳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