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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곱씹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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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까치 Oct 30. 2015

서로의 안타까운 처지쯤은

118번지 고양이 모자의 팍팍한 계절

작은 공원을 중심으로 빌라들이 빙 둘러 선 이 동네에는 유독 길고양이가 많다. 아마도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하는 방식(집집마다 작은 쓰레기통을 건물 앞에 내어둔다) 때문인 것 같은데, 덕분에 곳곳에서 고양이 울음 소리를 쉽게 들을 수 있다. 보통은 천방지축 까부는 새끼들을 찾는 어미들의 애타는 소리지만, 여름에는 발정기 녀석들이 구애하는 소리도 심심찮게 들려온다.


고양이는 영역 동물이다. 그들 사이에 구역이 명확하게 나눠져 있다. 그동안 살펴본 결과 이 동네 고양이들은 빌라 2~3동 정도를 한 가족이 차지한다. 내가 살고 있는 118번지도 예외는 아니다. 올 초부터 삼색이(암컷) 한 마리가 보이더니, 늦여름엔 배가 불러 있었고, 최근에는 손바닥 만한 새끼 두 마리를 달고 다녔다. 새끼들은 정말 귀여웠다. 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일지라도 어쩌지 못할 정도로 귀여운 생김이었다.




여자친구가 고양이를 키우고 있다. 나는 개를 더 좋아하거니와 옷에 털이 달라붙는 걸 질색하는 편이어서 집에서 동물을 키우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여자친구의 고양이는 어찌할 수 없다. 한 번은 '고양이냐 나냐' 유치한 질문을 던졌다가 충격적인 침묵이 돌아온 적도 있었다. 어쨌든, 그녀에게 118번지 고양이 가족의 이야기를 했더니 사료를 좀 싸줬다. 길 생활이 팍팍할 테니 눈에 보이면 가끔 배식하라는 당부와 함께.


당부대로 고양이 가족과 조우할 때마다 밥이며 간식을 조금씩 배식했다. 새끼들은 아직 물정을 몰라 참지 못하고 내게 다가왔다. 몇 번의 조우가 지나자 어미도 나를 알아보고 눈 인사를 하는 사이로 발전했다(그렇다고 다가오지는 않는다). 거리를 좀 두고 지켜보니, 어미는 체구도 작고 성격이 좀 물렀다고 해야 하나, 어쩐지 순해 보여서 새끼 두 마리 건사하는 게 쉽지는 않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사고가 생겼다


회사에서 돌아와 운동을 가기 위해 집을 나서는데 새끼 두 마리가 보였다. 방금 주차한 차 밑에서 장난을 치고 있었다. 그 작은 몸으로 타이어에도 오르내렸는데, 귀여우면서도 어쩐지 좀 위험해 보였다. 짠한 마음에 집에 다시 올라가 간식거리를 가져다주고 마저 길을 갔다. 문제적 장면을 마주한건 운동을 마치고 집 앞에 당도했을 때였다.


두 마리 중 하나가 건물 앞에 죽어있었다. 이유는 알 길이 없었는데, 마지막으로 본 모습과 몸에 난 상처를 보니 차에 치인  듯했다. 어쩌지 못하고 멀찍이 떨어져 한참을 고민했다. 그 사이에 어미는 쓰러져있는 새끼 앞에 앉아 울다 빙글빙글 돌다를 반복했다. 마침 위층에 사는 젊은 부부를 만나 같이 일을 수습했다. 빌라 건물 앞 화단에 새끼를 묻었다.



어미와 남은 새끼는 이날 밤 새 울었다. 나도 잠을 설쳤다. 쓰러진 새끼 앞에 대책 없이 앉아 울던 어미 모습이 자꾸 생각났다. 추워진 날씨도 걱정이었다. 자꾸 차 밑으로 들어가는 남은 새끼 하나도 같은 사고를 당할 것만 같았다. 슬픔이라기보다 그저 자식 잃고 추운 날 바람 막을 집도 없는 처지가 안쓰러웠다.


조금 돕자


이튿날 회사에 나가서도 서울 땅에 덩그러니 둘만 남은 고양이 모자가 생각났다. 셋이 둘이 됐으니 의지할 마음이 줄고, 그 자리에 슬픔이 채워졌을 거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짠했다. 이전과 똑같이 험난한 일이라도 이제는 힘이 빠져 헤쳐나가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내 부모님과 누나 생각이 났다.


고양이 모자가 겨울을 보내는 동안만이라도 조금 돕기로 했다. 매일 밥을 챙겨주거나 돌볼 여력은 없었다. 그저 빠져버린 힘을 다른 방법으로 채워주고 싶었다. 다시 차 밑으로 들어갈 필요가 없도록 돕고 싶었다. 적당한 종이 박스를 구해다가 자르고 붙여서 집 비슷한 걸 만들어 1층에 가져다 뒀다. 오래지 않아 모자가 입주했다.



서로의 딱한 처지쯤은


잘 놀라거나, 귀나 코가 예민한 사람들이 있다. 대체적으로 이런 타입의 사람들은 길고양이를 좋아하지 않는다. 길냥이들이 밤길에 놀래키고, 시끄럽게 울며, 음식물 쓰레기 봉지를 찢어 냄새를 풍기기 때문이다. 얼마전 옆 빌라에 사는 아저씨도 밤새 울어대는 고양이를 잡겠다며 심야에 건물 틈새로 뛰어들었다.


나는 좀 무딘 편이지만, 그런 이들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다. 다만, 조금 다른 방식으로 해결 방법을 찾아보면 어떨까 싶다. 다른 이유로 고양이 박스 집을 만들긴 했지만, 이틀 지켜본 결과 덜 울고, 눈에도 덜 띈다. 새끼가 차 밑으로 들어가지 않으니 험한 꼴 볼 이유도 없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길고양이들 역시 태어났으니 살아내야 한다. 그들이라고  정신없는 서울 길바닥에서 태어날 거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그것도 고양이로. 번듯하게 자라 밥벌이를 하는 나 조차도 내 한 몸 건사하기가 쉽지 않다. 그저, 그런 존재들끼리 서로의 딱한 처지쯤은 이해해줄 수 있으면 좋겠다.



이 모자가 올 겨울을 무탈히 잘 보낼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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