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가난을 증명해야 하는 '선' 밖의 한부모
대한민국에서 아동은 그냥 아동이고, 노인은 그냥 노인이며, 여성은 그냥 여성이고 다자녀는 그냥 다자녀다. 신분증이나 등본에 나오는 주민등록번호 일부만으로 그 신분을 증명한다. 장애인도 장애를 인정받으면 일명 복지카드라고 하는 장애인등록증으로 그 신분을 증명한다. 다문화가족은 혼인관계증명서 등으로, 탈북자는 북한이탈주민등록 확인서로, 보훈대상자는 국가보훈대상자등록증으로 이를 증명한다.
소득이 있든 없든, 부자이든 아니든 그들은 모두 신분을 지닌다. 그들의 신분을 증명함에 있어 얼마를 벌고 얼마를 가졌는지 따지지 않는다.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그 당연한 일이 오직 한부모에게는 예외다. 한부모라는 신분을 증명하기 위한 서류로 ‘법정 한부모가족증명서’라는 것이 있는데, 그 종이 한 장을 갖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독한 가난’을 입증해야 한다. 애석하게도 가난을 입증하지 못하는 한부모는 대한민국에서 한부모 자격을 가질 수 없다. 믿을 수 없겠지만 사실이다.
한부모임을 증명해야 하는 상황, 그 증명서가 없기에 난처한 기색이 스칠 때마다 사람들은 의아하다는 듯 묻는다.
“혹시 배우자랑 헤어졌는데, 서류상으로는 아직 정리가 안 됐다는 말씀이신가요?”
그때마다 나는 대답해야 한다.
“아뇨. 저는 예전에도 지금도 서류상에 저와 아이 뿐인 한부모인데, 한부모가족증명서는 없어요. 애석하게도 제가 돈을 벌고 차가 있다는 이유로 국가에서 저를 한부모로 인정해주지 않아요. 여기 등본과 가족관계증명서 떼어온 거 봐주세요. 저랑 아이만 있는 거 맞아요.”
그나마 뭘 좀 아는 사람은 이럴 때 ‘비법정 한부모’냐고 되묻는다. ‘법정’, 그러니까 법으로 정해진 한부모가 아닌, 대한민국 어느 법에도 존재하지 않는, 그러나 분명히 살아 존재하는 나를 ‘비법정 한부모’라는 괴상한 단어로밖에 규정할 수 없는 현실이 우습다.
종이 한 장이 맞벌이보다도 못한 ‘한부모 역차별’을 낳는다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으로 돌봄교실을 신청하던 때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 학교도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는 탓에 순위가 낮으면 추첨을 해야 했다. 1순위는 저소득층·한부모가정·조손가정 등, 2순위는 자녀 셋 이상의 맞벌이가정, 3순위는 자녀 둘 이하의 맞벌이가정이다.
그 누구보다 돌봄이 절실했던 우리 가정은 당연히 1순위라 여기며, 서류를 제출했다. 우리 둘뿐인 등본과 가족관계증명서, 내가 경제활동 중임을 입증할 수 있는 재직증명서와 건강보험납입증명서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며칠 후, 학교에서 ‘한부모가족증명서’를 제출하라는 전화를 받았다. 소득이 있기 때문에 그 증명서 발급 대상이 아니라고, 거듭 설명해도 학교는 그 증명서 없이 우리 가정을 1순위로 인정해줄 수 없다고 했다.
결국 궁여지책으로 나의 등본과 가족관계증명서에도, 그 어느 서류에도 등장하지 않는 아이 친부의 재직증명서를 구해다 제출했다. 지나고 나서야 드는 생각이지만, 아이와 성씨가 같은 누군가의 재직증명서를 냈다고 해도 학교는 알아채지 못했을 테다.
그런 기형적인 서류를 제출하고 나서야 우리는 2순위도 아니고 3순위, 즉 ‘자녀 둘 이하의 맞벌이가정’ 조건을 인정받아 겨우 대상자가 됐다. 돌봄교실 입소 대상자가 아닌, 돌봄교실 ‘추첨’ 대상자 말이다.
한부모를 맞벌이보다 더 우선순위에 놓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후순위로 밀리고 마는 기이한 역전현상을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 맞벌이가정은 소득을 심사하지 않으면서 한부모가정만 소득 조건을 따지는 불합리한 기준이 말이 되냐고 따져 묻고 싶었다.
하지만 더 묻지 못하고 삼켜야 했다. 괜히 시끄럽게 굴었다가 학내에 말이 돌아 갓 입학한 아이에게 한부모 낙인이 찍히면 어쩌나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한부모가정이라고 말도 꺼내지 말고, 맞벌이인 척 두 명의 서류를 갖다낼걸, 나는 후회했다. 그 증명서 한 장 때문에 발생하는 이 어처구니없는 사태는 학교를 넘어 전국 단위에서도 반복된다.
정부의 ‘아이돌봄 서비스’를 신청하려면 일종의 복지카드 발급을 포함해 상당히 복잡다단한 단계를 거쳐야 한다. 그나마 맞벌이가정과 한부모가정을 위해서는 행정복지센터 방문 대신 온라인에서 신청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데, 온라인 신청 매뉴얼만 14페이지에 이를 정도로 복잡하긴 마찬가지다.
우여곡절 끝에 마지막 페이지에 다다른 순간 ‘배우자의 정보를 입력하십시오’라는 경고창과 함께 진행이 막혀 버리고 말았다. 맞벌이의 경우 양쪽 부모가 경제활동을 하고 있다는 소득 관련 정보를 끌어오고, 한부모의 경우 ‘한부모가족증명서’ 정보를 끌어오게 되어 있는데, 나는 이도 저도 아닌 사각지대에 있으니 온라인 신청을 할 수 없다는 거다.
결국 울분을 삼키며 귀하디귀한 반차를 내고 행정복지센터에 직접 가서 신청해야만 했다. 다시 말하지만 그래야만 했던 이유는 오직 내가 나라에서 증명해주지 않는 한부모라서다. 증명서가 있는 한부모이거나 맞벌이라면 아낄 수 있었던 반차다.
최저임금을 버는 순간 한부모임을 증명할 길은 없다
이렇게 말하니, 내가 되게 잘 버는 사람이라고 여겨질 지도 모르겠다. 얼마나 많이 벌기에 맞벌이보다도 후순위냐 생각이 오히려 합리적일 테다. 또 많은 이들이 한부모가정은 나라에서 이런저런 공적 지원을 받을 거라고, 최소한 어떤 우선권을 지닐 거라 생각하곤 한다.
그 상식적인 발상은 모두 사실이 아니다. 지난 10년간 한부모라는 이유로 국가에서 받은 지원이나 혜택은 오직 한 가지뿐이다. 연말정산 때 한부모에게는 부녀자보다 인적공제 50만 원을 더 얹어준다는 것이다. 그것 말곤 없다. 아예 없다.
한부모가족증명서를 발급받기 위한 기준은 ‘기준 중위소득 60% 이하’다. 요즘 코로나19 정부재난지원금을 ‘기준 중위소득 150% 이하’에게만 지급한대서 나라가 시끄러운데, 150%도 100%도 아닌 고작 60% 이하가 그 기준이다.
이를 2020년 2인 가정으로 환산하면 가구당 월 소득인정액 179만 5188원 이하다. 올해 정부에서 정한 최저임금이 월급 기준으로 179만 5310원이니, 최저임금만도 못하게 버는 한부모가정만이 그 증명서를 신청해볼 자격이 주어진다.
월 소득이 179만 5188원 이하라고 해서 다 발급해주는 것도 아니다. 근로소득뿐 아니라, 온갖 것을 환산해 소득인정액에 포함시키기 때문이다.
만약 차 한 대 굴리면 십중팔구 탈락이다. 오직 연식 10년 이상의 1600cc 미만 차량만이 소득인정액 환산을 피할 수 있다. 한부모이기에, 부부 둘의 몫을 혼자 해야 하기에, 1분 1초라도 아껴야만 경제 노동과 돌봄 노동을 병행할 수 있기에, 더 절실하게 차가 필요한 건데 말이다.
이보다 놀랄 일은 따로 있다. ‘한부모가족지원법에’는 중위소득 60% 외에도 중위소득 52%라는 기준선이 하나 더 있다. 아동양육비, 교육지원비, 생계비, 각종 요금 감면 등 거의 모든 복지정책은 바로 이 중위소득 52% 이하를 대상으로 한다. 차상위계층 기준이 중위소득 50% 이하이니, 사실상 한부모가정이 아니더라도 어차피 빈곤을 이유로 받게 될 지원들과 대동소이하다.
일·가정 양립 불가가 고용 불안정과 경력단절로 이어졌던 몇 차례의 위기 때마저도 나는 그 증명서를 가져보지 못했다. 심지어 취업이 안 돼 소득 한 푼 없이 구직자 신분으로 1년 중 8개월을 내리 보낼 때도 마찬가지였다.
다리가 부러져 몇 달간 그 어린 아이가 내 보호자 역할을 할 때도, 너무 올라버린 보증금을 메우려 큰 대출을 받을 때에도, 우울증으로 아이를 제대로 돌볼 수조차 없을 때에도, 그래서 삶을 포기하려 했던 순간에도, 국가는 단 하루도 우리 가정을 사회적 약자나 소수계층, 취약계층으로 인정해주지 않았다. 오직 그 증명서를 받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빈곤하지 않다는 이유로 말이다.
이 몹쓸 한부모가족지원법의 문제는 크게 여섯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 ‘All Or Nothing’이다. 특정 기준 이하의 빈곤층에게는 각종 지원을 몰아주지만, 그 기준을 1이라도 상회하는 이에겐 전혀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 아니, 아예 한부모라는 입증조차 할 수 없게 만들어버려 그 지위나 자격조차 부여하지 않는다.
둘째, 그 빈곤의 기준이 터무니없이 낮다.
셋째, 그 기준 이하에게 몰아주는 지원조차 애초에 빈곤층에게 지원하는 정도와 크게 다를 것 없는 수준이다.
넷째, 그 지원에 의존하기 위해서 계속 빈곤하기를 강요받는다. 이른바 탈(脫)수급 회피를 유도하는 것이다.
다섯째, 위법을 조장한다. 있어도 없는 척, 차 한 대를 굴려도 차명으로 굴리면서 거짓 수급자격을 유지하는 이들을 양산한다.
여섯째, 경제적 빈곤이 아니더라도 삶의 질을 결정하는 지표는 다양할 텐데, 오직 빈곤만을 척도로 삼는다. 이를테면 2인분의 몫을 해야 하는 한부모의 경우, 경제적 빈곤만큼이나 시간적 빈곤, 정신적 빈곤, 돌봄 자원의 빈곤에 시달리지만 이러한 빈곤의 정도는 안중에도 없다.
‘긴급재난지원금’ 중위소득 150%, 선별복지 vs. 보편복지 논쟁 키워
서울시의 ‘재난긴급생활비’를 비롯해 많은 광역·기초단체들이 다양한 명칭의 선별적 재난수당 지급을 결정했다. 반면 경기도와 경기도 내 대부분의 기초단체들, 그리고 다른 시도의 몇몇 기초단체들은 이른바 ‘재난기본소득’이라는 보편적 정책을 도입했다.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재난이 해묵은 선별복지 vs.보편복지 논쟁을 별안간 온 국민의 화두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특히 며칠 전 정부의 ‘긴급재난지원금’ 발표는 논쟁에 기름을 부었다. 소득 하위 70%, 대략 중위소득 150% 이하라는 기준선이 그어지면서부터 선별적 지원에 대한 갖가지 성토가 쏟아지는 중이다.
재난이 사람 가리면서 덮치는 것도 아닌데 왜 누구는 주고 누구는 안주나, 왜 하필 그 기준에 선을 그었나, 하위 70%의 근거는 뭐고 세부 기준은 뭔가, 지난해에 잘 벌었고 올해 못 버는 사람은 어떻게 하나, 재산 없고 소득 있는 사람은 안 주면서 재산 많아 소득 없어도 되는 사람은 왜 주나, 외벌이는 받고 맞벌이는 못 받는 게 말이 되나, 나열하면 끝도 없다.
여기서 잠깐, 앞서 지적한 한부모가족지원법의 여섯 가지 문제를 살펴보자. 모두가 이 선별적 재난수당의 이슈와 묘하게 맞닿아 있지 않나. 이번 ‘긴급재난지원금’을 계기로 선별 대 보편의 문제를 특정 취약계층이 아닌 내 삶의 이슈로 받아들이게 된 모든 이들, 특히 중위소득 150% 안팎의 경계인들에게 묻고 싶다.
마치 코로나19가 모든 이들에게 재난으로 다가온 것처럼, 모든 한부모가정은 그들 고유의 어려움을 겪는다. 특정 경제적 빈곤선 이하에만 어려움 존재한다고 볼 수도, 그 어려움의 정도가 경제력과 비례한다고 볼 수도 없다. 또한 다면적인 척도에 따라 어려움의 종류도 가지각색이다.
그런데 중위소득 60%와 52%에 그어진 이 선은 정말로 필요한 선일까. 만약 필요하다 해도 충분히 합리적인 기준일까. 과연 사각지대는 없을까. 경제력 외 또 다른 차원의 기준을 둬야 하는 것은 아닐까. 혹시 이 모든 사실을 지금 처음 알게 되었거나, 이 모든 고민을 처음 해보는가. 그렇다면 우리 사회가 왕따 시켜왔던 한부모가정의 문제를 지금이라도 함께 들여다보겠는가.
*칼럼니스트 송지현은 사회생활과 잉태를 거의 동시에 시작한 ‘11년차 워킹맘’이자 그동안 다섯 번을 이직(당)한 ‘프로 경력단절러’입니다. 한부모 가정의 가장으로서 2인분의 몫을 해야 하는 ‘시간빈곤자’이나 실상은 1인분, 아니 0.5인분조차도 할까 말까 하기에 스스로를 반쪽짜리 ‘파트타임 엄마’라 칭합니다. 신문방송학 전공 후 온갖 종류의 대필을 업으로 삼아왔지만 이번 연재를 통해 처음 자신의 이름으로 글을 쓰게 된 ‘생계형 글짓기 노동자’이기도 합니다.
*2020년 4월 3일 <베이비뉴스>에 기고한 칼럼을 브런치에 옮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