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 없는 자들의 소외와 탈락에 대해
"어렵게 경력단절여성으로 재취업 성공한 아이 셋 맘입니다. 코로나19로 돌봄 폐쇄돼서 직장을 그만두네요ㅜㅜ 아무도 종일 방치되는 초2 올라가는 9살 애들한테는 자비를 보여주지 않습니다. 반차 낸다고 그만두래요~ 일을 빵구낸 것도 아닌데... 엄마로써 넘 힘드네요."
경력단절여성의 실태를 다룬 기사에 달린 댓글 하나가 며칠째 명치끝에 걸려 있다. 어렵게 경력단절을 극복하고 재취업했지만 또다시 경력단절 위기에 놓이고 말았다는 한 초등학생 양육자의 하소연이다. 양육자의 돌볼 권리, 피양육자의 돌봄 받을 권리를 망각한 사회가 또 한 사람의 직장을 앗아가고 있다.
내 옆자리, 뒷자리 동료들도 발을 동동 구르긴 마찬가지다. 우리 지역에 코로나19 확진 환자가 발생하면서 유치원, 지역아동센터, 어린이집 모두 한동안 문을 닫게 됐기 때문이다.
별안간 맞닥뜨린 휴원 첫날, 한 동료는 자녀들과 같이 출근해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하던 중 다행히 한 친구 집을 섭외해 급히 자녀들을 데려다 놓고 왔다 했다. 또 다른 동료는 일단 자녀들을 부모님 댁에 보냈다며 내일부터 부부가 번갈아 휴가를 써서 버텨볼 요량이라 했다.
마침내 코로나 위기 경보가 최고 수준인 ‘심각’ 단계로 격상됨과 동시에 전국적인 개학 연기가 결정됐다. 전례 없는 일이다.
5년 전 메르스 사태 ‘양보 뺑뺑이’에 감격하던 나는 이제 없다
5년 전에도 감염병 재난이 갑작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당시 우리 아이의 어린이집과 한 메르스 환자 격리병원은 지척에 있었다. 당연히 아이들 부모 중에는 그 병원 종사자가 많았다. 2주간의 휴원 결정은 하룻저녁 만에 모든 학부모의 동의를 얻으며 일사불란하게 진행됐다. 나 또한 감염병의 위협으로부터 아이를 지키는 것 외에는 어떤 생각도 들지 않았다.
어느 날은 직장에 아이를 데리고 출근했고, 어느 날은 아이가 다니던 체육관에 아이를 종일 맡겨 놨다. 어느 날은 아이의 친구 집에, 어느 날은 우리 부모님 댁에 보냈다. 물론 또 다른 어느 날은 내가 휴가를 냈다.
그러고도 남은 며칠은 엄마를 아예 우리 집에 모셔놓고 아이를 돌보게 했는데, 엄마가 자리를 비운 가게를 대신 봐주느라 무려 이모까지 소환됐다. 그러니까 온 식구, 그 온 식구들의 일터, 그리고 여러 이웃까지 동원해 2주간의 돌봄 공백을 겨우 메운 것이었다.
메르스 환자 전원이 완치되던 날, 나의 일기엔 이렇게 적혀 있다.
"모두가 한마음으로 '양보 뺑뺑이'를 시전한 덕분에 이 시기를 무사히 극복했다. 그냥 지역사회, 그냥 동네, 그냥 이웃사람이 아니고, 진정으로 한마음으로 협력하는 마을 공동체라는 느낌이 온몸에 밀려와 감격스럽기까지. 개인의 힘으로는 누구나 버거운 일을 조금씩 힘을 보태 사회의 힘으로 극복한다는 것 – 지역 품앗이 공동체가 손에 잡힐 듯, 눈에 보일 듯하다. (중략) 1인 1양육 아니고, 다인 다양육이 가능한 함께 하는 공동체적 세상을 꿈꾸는 마음으로. 범국가적인 실현이야 먼… 미래겠지만, 왠지 내가 사는 이 마을은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냥 그런 희망이 생긴다."
아이를 낳고 처음 겪어보는 대규모 감염병 사태였다. ‘사적인 양보 뺑뺑이’로 ‘공적인 돌봄 시스템의 붕괴’를 메우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비록 그것이 누더기일지라도 어떻게든 짜기워지긴 했다는 현실에, 나는 감사를 넘어 감격했다. 앞으로도 극복할 수 있을 거라며 희망을 품기까지 했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것도 한두 번이다. 크고 작은 돌봄 공백을 메우기 위해 온갖 수를 다 동원하다보면 끝내 어떠한 방법도 남아 있지 않은 순간이 찾아온다.
경력 단절, 고용 불안정, 돌봄권과 피돌봄권의 박탈은 오랫동안, 반복적으로, 서서히, 양육자의 목을 조여 온다. 그 사이 무력감, 죄책감, 박탈감, 회의감, 좌절감 따위들도 차곡차곡 적립된다. 이 과정을 겪고도 여전히 감사할 줄 아는 양육자가, 여전히 희망을 품는 양육자가 존재할 수 있을까.
공적 돌봄 시스템 붕괴… 마땅한 사적 대안마저 갖추지 못한 나
우리 모자는 ‘감염병 재난 + 한부모 가정 + 겨울방학 + 학교 돌봄교실 미해당 + 지역아동센터 없음 + 시간제 아이돌봄 서비스 탈락 + 재난상황 시 업무 과중 + 재난상황 시 순번제로 야간·주말 비상근무’라는 무려 ‘8콤보’ 상태로 처참하게 한 달을 버텼다. 상황은 이내 ‘옆 단지 확진환자 발생 + 개학 연기’로 ‘10콤보’를 찍으며 절정으로 치닫는 중이다.
제일 먼저 한 일은 방학 중 ‘점심밥 주는 학원’을 수소문하는 것이었다. 마침내 조금 멀긴 하지만 이동시간 포함해서 하루 여섯 시간 삼십 분을 버틸 수 있는 데다 학원비가 월 백만 원이 넘지 않는 유일한 곳을 찾아냈다. 아이는 그 학원이 끝나면 체육관을 하나 갔다 와서 집을 지킨다. 혼자 있는 게 무섭다며 이 겨울에 현관문을 열어 놓은 채 엄마의 늦은 퇴근을 기다리기 일쑤다.
하루는 그 ‘점심밥 주는 학원’에서 주는 점심밥 사진을 보고 아연실색했다. 어처구니없이 부실한 식단에 터무니없이 적는 양이었다. 학원엔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별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친구들하고 나눠 먹으라며 매일 아침 김 몇 봉지를 들려 보내는 게 지금 선택할 수 있는 전부다.
코로나19가 내가 사는 도시를 덮친 이래, 그 ‘점심밥 주는 학원’은 두 반을 한 반으로 통폐합했다. 절반이 넘는 아이들이 더 이상 학원에 나오지 않는 까닭이다. “다른 아이들은 위험하다고 안 오는데 나는 왜 하루 종일 마스크 쓴 채 사람들 사이에 있어야 하나”며, “회사도 학원도 가지 말고 안전하게 집에만 있자”고 아이는 매일 아침 떼를 쓴다.
설상가상으로 우리 집 바로 옆 단지에서 확진환자 여럿이 나왔다. 우리 아이 학교와 같은 학군으로 묶이는 단지다. 보내던 체육 학원들은 모두 휴원을 통보해왔다. 이 ‘점심밥 주는 학원’마저 휴원하거나 확진자 발생 동네에 사는 우리 아이의 등원을 거부할까봐 조마조마한 마음이 들었다.
부실한 밥상은 차치하더라도, 이런 위험한 시국에 불안에 떠는 아이를 사람들 득시글한 곳에 떠밀어 넣고 있는 내 자신이 한 없이 부끄럽다.
개학 연기로 인해 당장 다음 주면 학교도 학원도 문을 안 연다. 상황이 악화일로를 걷는 만큼 돌봄 공백도 길어질 테고, 업무 부담도 지금보다 더 늘어날 테다. 아무리 수를 짜내도 더 버텨낼 재간이 없다. 이것이 나만의 고민은 아닐진대, ‘자녀 돌봄’을 이유로 순환근무를 거부하는 동료는 단 한사람도 보지 못했다. 여기는 모두가 너무나 당연하게 비상시국에 걸맞은 비상대응을 하는 곳이다.
사회인으로서 내게 주어진 무거운 책임과 유일한 양육자이자 보호자로서 아이를 감염병으로부터 지켜내야 하는 역할이 충돌한다. 공적 돌봄 시스템이 붕괴된 각자도생의 사회 속, 마땅한 사적 돌봄 대안마저 갖추지 못한 나. 이런 나라서, 이 직업을 가질 자격이 없는 사람인지를 나는 고민한다. 또다시 사회에서 소외되고 탈락될 거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모든 아이에게 평등하게 주어져야 할 ‘돌봄 받을 권리’
‘사적인 양보 뺑뺑이’ 이후 5년이 흘렀다. 지금도 양육자들은 코로나19가 몰고 온 돌봄 재난 앞에 사회에서 탈락하고 마는데, 여전히 이 사태에 아랑곳하는 이 하나 없다.
최초로 코로나19 아동 확진자가 발생했던 때, 중앙사고수습본부 브리핑에서 휴원에 관한 질의가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답변의 초점은 오직 휴원의 정도였을 뿐, 휴원 이후를 말하는 이는 없었다. 설상가상 지자체들은 아무런 대안도 없이 경쟁적으로 휴원 결정을 공표하기 바빴다.
얼마 전 코로나 3법 개정안 통과에 앞서 이른바 ‘자녀돌봄 유급휴가제’에 대한 보도가 있었다. 아동의 감염병 우려 시 부모에게 유급휴가를 허하는 감염병 예방법 개정안이다. 며칠간의 달뜬 마음이 무색하게도 이 개정안은 국회 보건복지위의 회의 안건으로 오르지조차 못한 채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코로나19 사태의 장기화 조짐이 있고 나서야 휴교 시 제한적으로 운영되는 ‘긴급돌봄교실’과 연간 10일까지 사용할 수 있는 무급의 ‘자녀돌봄휴가’ 제도가 뒤늦게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전화를 돌려보았지만 ‘긴급돌봄교실’은 애초에 돌봄교실에 입소해 있거나 입소 예정인 아이들, 다시 말해 선택된 소수만의 것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가족돌봄휴가’ 제도는 나의 직장과는 무관한데다 많은 이들에게도 신기루일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출산휴가나 육아휴직조차 오롯이 정착되지 않는 사회 속 이 현실성 없는 제도는 수준 높은 노동환경을 보장 받는 소수의 전유물일 뿐이다. 그러니까 다시 말해 돌봄 재난에 있어 실효적인 대안은 지금, 존재하지 않는다.
감염병으로 생사가 오가는 이들 앞에서 이 얼마나 배부르고 알량한 고민인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다시 곱씹어보아도 5년 동안 한 걸음조차 나아가지 못한 현실에 대한 분노는 유효하다.
양육자의 ‘돌볼 권리’는 나중으로 미루더라도 최소 피양육자의 ‘돌봄 받을 권리’만은 모든 아이들에게 평등하게 주어져야 한다. 부모의 존재 여부, 맞벌이 여부, 돌봄 자원의 정도, 경제력의 정도, 사는 지역, 다니는 기관과 관계없이 모든 아이들에겐 안전하게 보호받을 권리가 있지 않겠는가.
모두가 감염병 재난을 말하면서 모두가 그에서 파생된 돌봄 재난을 외면하는 사이, 어떤 아이들은 오늘도 사회 안전망에서 배제된 채 부실한 학원밥으로 끼니를 때우며 온종일 밀집된 채로 모여 지낸다. 돌봄에서 소외된 아이들이 정말로 위험에 처했을 때, 그 때 어른들은 무슨 변명을 할 수 있을까.
*칼럼니스트 송지현은 사회생활과 잉태를 거의 동시에 시작한 ‘11년차 워킹맘’이자 그동안 다섯 번을 이직(당)한 ‘프로 경력단절러’입니다. 한부모 가정의 가장으로서 2인분의 몫을 해야 하는 ‘시간빈곤자’이나 실상은 1인분, 아니 0.5인분조차도 할까 말까 하기에 스스로를 반쪽짜리 ‘파트타임 엄마’라 칭합니다. 신문방송학 전공 후 온갖 종류의 대필을 업으로 삼아왔지만 이번 연재를 통해 처음 자신의 이름으로 글을 쓰게 된 ‘생계형 글짓기 노동자’이기도 합니다.
*2020년 2월 25일 <베이비뉴스>에 기고한 칼럼을 브런치에 옮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