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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마 Jan 02. 2021

내 꿈은 ‘대단치 않은 사람’

싱글맘의 서사가 성립하려면

드라마 '멜로가 체질'은 싱글맘 한주와 아이 둘만의 동거 생활을 단 몇 장면으로 압축한다. 아이가 아파서 먼저 가봐야 할 것 같다며 클라이언트가 날리는 쌍욕을 뒤로한 채 달음질하는 한주, 소아과에 늦게까지 남은 아픈 아이를 데려가며 간호사에게 고맙다고 조아리는 한주, 돌아온 집에서 아이를 재운 뒤 혼술을 하다 오열하는 한주.


그런 한주네 2인 가정은 다른 세 명의 성인과 동거를 하게 되는데, 그게 벌써 1화에 등장하는 설정이다. 한주의 진짜 서사는 성인 양육자 네 명에 아이 한 명의 생활 공동체라는 꿈의 조합이 만들어지고서야 마침내 시작된다.

JTBC 드라마 <멜로가 체질> 싱글맘 한주의 서사는 성인 양육자 네 명에 아이 한 명의 생활 공동체라는 꿈의 조합이 만들어지고서야 마침내 시작된다.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의 싱글맘 동백이는 어떠한가. 이웃 할머니, 직장 동료, 아이 친구 엄마, 친정 엄마, 순정남 등 여러 인물들이 번갈아 가며 아들 필구의 보조양육자 역할을 맡는다. 동백의 일터인 까멜리아에 딸린 쪽방은 일-가정이 물리적으로 결합하는 공간으로서 기능한다.


아들 필구는 그 캐릭터 자체만으로도 초현실적이다. 스스로 잘 클 뿐만 아니라 엄마를 지킬 줄도 안다. 엄마를 거들어 혼자 강냉이를 서빙할 만큼 '짬바'가 가득하기까지 하다. 안 받겠다는 양육비를 구태여 주려 하는 아이의 친부도 빼놓을 수 없다. 이 많은 일-가정 양립의 조건들이 갖추어졌을 때, 비로소 동백의 이야기는 성립된다.

KBS2TV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싱글맘 동백의 아들 필구는 스스로 잘 클 뿐만 아니라 엄마를 지킬 줄도 아는 초현실적인 캐릭터다.


다른 픽션들도 대동소이하다. 픽션 속 한부모에게는 일과 가정, 즉 경제노동과 돌봄노동이 아닌 제3의 시간과 사건과 행위가 존재한다. 그러나 현실 속 한부모의 삶은 결코 그렇지 못하다. 삶에서 경제노동과 돌봄노동을 빼고 남는 것은 0에 수렴한다. 여가나 취미, 건강 증진, 능력 개발, 휴식 따위는 언감생심이다.


물론 이들을 누릴 방법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아이를 방임하거나 가정경제를 포기하면 된다. 참, 가장 현실적면서도 비현실적인 대안이 하나 더 있긴 하다. 바로 잠을 자지 않는 것이다. 잠과 맞바꾸어야만 제3의 무언가를 시도라도 해볼 수 있는 삶, 척박하다.


'대단한' 싱글맘의 삶, 그러나 이것은 결코 대단해선 안 될 일이었다 


저 언감생심의 것들을 차치하고서 보면 어떠한가. 한부모 개인의 삶은 척박하기 그지없다 치자. 과연 한부모 가정이 온전하게 굴러가는 것은 가능한 일일까. ‘일-가정 양립’은 한부모가정의 충분조건이다. 일-가정 양립이 성립해야만 가정이 가정으로서 기능할 수 있다.


지금, 여기는 아닐지라도 어딘가에는 그것이 가능한 삶이 있다고 믿었다. 그렇기에 생계를, 아니 인생을 걸고 이런저런 삶의 형태에 뛰어드는 모험을 감행했다. 시간이 갈수록 ‘내가 그것을 쟁취할 수 있다’는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과 더불어 ‘내가 그 존재를 증명해야겠다’는 사명감마저 싹 텄다. 대기업, 중소기업, 국내 공공기관, 외국계 공공기관, 재택 프리랜서, 그리고 맨몸의 백수까지. 일-가정 양립을 쟁취하기 위한 고군분투는 이어졌다.


그러던 어느 순간 임계점에 도달했다. 무슨 수를 써도 둘을 양립시키는 게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저 둘을 번갈아 가면서라도 할 수 있으면 다행이었다. 언제는 아이 팽개치고 바짝 벌다가, 아이한테 무슨 일 생기면 그만뒀다가, 돈 떨어지면 다시 일했다가, 또 아이 생각해서 저임금 노동을 감수하고서라도 일을 줄였다가 하는 식이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자 그마저도 불가능해져서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내 몫을 전가하면서 하루하루를 때우는 삶을 살아야 했다. 그렇게 버텨온 게 벌써 10년이다.


주변 사람들은 그런 내게 ‘대단하다’고 말한다. 나는 주변의 격려와 응원을 마치 생존에 꼭 필요한 전투식량처럼 여기며 거듭 살아갈 힘을 쥐어짜내곤 했다. 어쩌면 가끔은 그런 말을 듣는 스스로를 대견해하거나 자랑스러워하기까지 했던 것 같다. 그러나 10년 반환점을 지난 지금은 안다. 이것은 결코 ‘대단해선 안 될 일’임을.


남의 글만 쓰며 아이 키워온 '생계형 글짓기 노동자', 10년 만에 처음 내 글을 쓴다


일요일이었다. 그리고 아이의 생일이었다. 직장에는 비상 대응할 일이 생겼다. 다행히 물리적 출근은 면했지만 이틀 내내 집에서 업무를 봤다. 틈틈이 한 주 동안 미뤄둔 가사노동을 했고, 정신은 딴 데 팔린 채 간간이 아이랑 놀아주는 척도 했다. 그러나 아이는 내 영혼 없는 리액션에 속아 넘어갈 나이가 훌쩍 지났음을 안다. 집밖으로는 한 발짝도 내디딜 여유가 없었다.


생일을 맞은 아이의 아침 식사는 라면, 점심 식사는 배달시킨 부대찌개, 간식은 냉동 감자튀김, 저녁 식사는 점심에 먹다 남은 부대찌개에 라면사리 재탕이었다. 생일 케이크를 사다가 축하 노래를 부르고 초를 부는 것은 내일로 미루자고 했다. 아이는 언제나 그렇듯 수긍했다. 우리는 미루는 것, 그러니까 욕망을 지연시키는 것에 어느덧 익숙해져 있다. 버리기, 체념하기, 마음 비우기에도. 늘 시간이 부족한 탓이다. 아이가 잠들고 자정이 넘어서야 나는 이 원고를 쓰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을 수 있었다.


이 시시하다 못해 서글픈 삶이 대단한 삶으로 둔갑해선 안 된다. 이렇게까지 해봤는데도 일-가정 양립을 쟁취할 수 없다면 이건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문제다. 더 이상 한 사람을 갈아 넣어서도, 한 사람을 극한으로 몰아붙여서도 안 되는 문제다.


꿈같은 건 가져볼 수도 없는 이 척박한 일상 속에서 아이러니하게도 꼭 한번은 쟁취해보고 싶은 무언가가 아른거린다. 더 이상 대단하다는 말 듣지 않아도 되는 사람으로 사는 것. 그러니까 혼자서 일하면서 아이 키우는 것이 너무도 당연하고 쉬운 사회라서 전혀 대단할 것 없는 사람으로 사는 것. 그런 사회의 구성원이 되어보는 것.


앞으로 연재할 이 글은 어쩌면 그 꿈의 시작이다. 한 사람의 내밀한 경험이 담긴 일기이자, 한 사회구성원이 몸소 탐구하고 실험한 결과를 담은 리포트다. 세상에 내뱉는 10년 묵은 성토이자, 10년 만에 주어진 경제노동도 돌봄노동도 아닌 '제3의 무엇'이다. 그리고 남의 글을 쓰며 아이를 먹이고, 재우고, 입히고, 살아온 한 생계형 글짓기 노동자가 처음으로 자신의 언어를 찾아가는 치유의 여정이다.


*칼럼니스트 송지현은 사회생활과 잉태를 거의 동시에 시작한 ‘11년차 워킹맘’이자 그동안 다섯 번을 이직(당)한 ‘프로 경력단절러’입니다. 한부모 가정의 가장으로서 2인분의 몫을 해야 하는 ‘시간빈곤자’이나 실상은 1인분, 아니 0.5인분조차도 할까 말까 하기에 스스로를 반쪽짜리 ‘파트타임 엄마’라 칭합니다. 신문방송학 전공 후 온갖 종류의 대필을 업으로 삼아왔지만 이번 연재를 통해 처음 자신의 이름으로 글을 쓰게 된 ‘생계형 글짓기 노동자’이기도 합니다.

*2020년 2월 11일 <베이비뉴스>에 기고한 칼럼을 브런치에 옮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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