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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나 Apr 13. 2022

제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요...

모른다는 것을 솔직하게 고백하면 의외로 사람들이 친절하게 잘 도와준다.

무시당할까봐 최대한 미리 정보 수집을 하고 가야한다고만 생각했는데, 막상 경험해보니 모든일은 결국 사람이 하는 거고 세상은 아름다운 곳이었다.

 회사다닐때 내가 정말 좋아하고 존경하던 한국인 사수로부터 업무 이외에도 많은 걸 배웠다. 

한국인이 우리 둘 밖에 없다보니 회사에서는 한국 법이나 한국식 비즈니스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는데,

나 또한 햇병아리 사원이니 도움될 리 만무하고, 그 사수 또한 외국에서 대학을 나오고 쭉 영국에서 일을 해 온 터라 모르긴 마찬가지였다. 그때마다 여기저기 물어보며 해결책을 찾아야 했는데, 그녀가 문의할 때 시작하는 말은 "제가 이걸 잘 몰라서 그러는데요...." 였다. 

옆에서 들으면서, 어라? 저렇게 말하면 우습게 알텐데? 라고 생각했는데, 이건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그녀가 출산휴가에 들어가고 나만 홀로 남아서 회사의 서류 문제를 해결해야 할 일이 있었다. 

일년에 한번 할까말까한 일이어서 제대로 인수인계를 받지 못하고 주워 들었던대로 일단 관공서에 갔다. 

공무원들은 기계적으로 안내를 하는데, 거기 온 사람들은 나만 빼고 그걸 다 알아듣는 것 같았다. 

하필 말투가 참 무뚝뚝했던 담당자에게 걸려서 쫄았는데, 담당자가 나보다 훨씬 어려보여서 많이 부끄러웠지만 눈을 딱 감고 고백했다. 

"저...제가 한심하게도 이 분야가 처음이라 하나도 몰라서 그런데요...."

그녀는 조금 한숨을 쉬는 것 같았지만 의외로 기초부터 하나하나 알려주었다. 이미 모른다는 것을 솔직히 밝히고 난 터라 마음이 편했다. 

 어릴때는 고급 호텔같은 곳에서 메뉴를 잘 못알아들으면 부끄러운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나의 걱정을 깨 주었던 부자 언니도 있었다. 같이 비싼ㅋ밥을 먹으러 갔을때 직원에게 메뉴를 물어보는 걸 보며, 이렇게 해도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학생이었을땐가, 패밀리 레스토랑이 한창 유행이던 시절, 

학생들 사이에는 아웃백 스테이크에서 본전을 뽑을 수 있는 메뉴얼이 돌았었다. 

무슨 메뉴를 시켜서 사이드로 무엇을 추가하면 되는지, 미리 외워가면 학생신분으로는 꽤 비싼 식당에서도 가성비 좋은 한끼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 직원들도 이미 모든 어린 손님들이 그렇게 주문한다는 것을 다 알고 있었을것인데, 직접 물어봤어도 될 일이라 생각하지만 그때의 우리는 그걸 몰랐으니까. 정보수집만이 경제적인 방법이라 생각했으니까. :) 


초보운전 스티커를 고르고 있는데 타투 디자인을 고르던 때처럼 심각해지고 말았다.

그냥 '초보운전'만 붙이기엔 이런 나를 좀 불쌍히 봐달라고 뒷차에게 한마디 전하고 싶고,

무례한 문구는 당연히 싫고, 

배려 감사해요,는 정중해 보이지만 양보와 배려를 강요하는 것 같아서 맘에 들지 않는다. 

정신 바짝 차리려고 카톡은 커녕 음악도 못듣고 있는데도 여기서 이러면 안되는 걸 모르고 저질러버리는 실수를 깨닫고 있는 상태라서, 

'운전이 미흡해서 죄송합니다, 실수가 많을텐데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등의 문구를 붙이고 싶은데 너무 길기도 하고 비슷한 걸 찾아봐도 시중에 판매하는 건 없고 주문제작을ㅎㅎㅎ해야 한다. 

그래서 겨우겨우 찾아낸 건! 

"초보운전 

답답하시죠? 죄송합니다." 이건데,

답답하시죠에 물음표를 넣는건 당연한 걸 묻는 것 같아 왠지 마음에 들지 않고,

내가 표현하고 싶은건 '답답하시죠 ㅠㅠ 죄송합니다'라서, 붙일 때는 물음표를 빼려고 한다. ㅋㅋㅋㅋ

스티커가 오기 전까지는 어쩔 수 없이 A4용지를 붙이고 다녀야 하는데 

저걸 떡하니 붙여놓고 나니까 조금 안심이 된다... 

역시 모른다는 것을 고백하고 나면 마음이 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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