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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나 Jan 12. 2023

기다리는 자에게 복이 없나니.  

강제 디지털 디톡스 


연말에 집을 비웠는데, 집에 돌아와보니 또다시 물이 새고 있었다.

더이상 당황스럽지도 않았다.

지난달에도 집을 비운 사이에 물이 새서 관리팀에게 연락했더니 다른 집 누수 문제라고 했는데 이번에도 또 이러네, 빨리 고쳐달라고 해야겠다, 라고 생각하며 아파트 프론트데스크에 왓츠앱 메시지를 보내버리고 청소를 하기 위해 음악을 틀었다.


....응? 스포티파이가 작동하지 않았다.

엇, 앱에 문제가 있나?

그러고보니 메시지 전달도 되지 않았다. 어? 뭐지, 와이파이를 못 잡는 건ㄱ....?

......집에 와이파이가 끊겨 있었다.

플러그를 다시 꽂아보고, 재부팅을 두세번 다시 해도 계속해서 신호없음 빨간불이 깜빡였다.

열흘정도 집에 없었으니 언제부터 안됐던 건지도 모르겠다.

인터넷 신청을 해 주었던 사무실 현지 직원에게 연락해서 이 사실을 알렸더니, 그녀는 지금 외출중이라며 내일 아침에 출근을 하면 바로 업체에 연락한다고 했다. 지금 당장 해줬으면 좋겠지만 근무일이 아니니 어쩔 수 없었다. 오늘밤은 강제 디지털 디톡스네, 하는 생각에 넷플릭스 없는 밤을 보냈다.


다음날 출근하자마자 직원에게 부탁해서 인터넷 업체에 고장 신고를 해 달라고 했다.

최대한 빨리, 가능한 오늘 중에 고칠 수 있도록 요청해 달라고 했다.

그녀는 이미 서비스센터에 연락을 했다고 말했다. 감사했다.

그리고 조금 후에 그녀에게 물었다.

기술자는 몇 시에 올 수 있냐고, 6시에 퇴근해서 가면 시간이 맞는 건지를 물어보았다.

서비스센터로부터 답이 없다고 했다.

하아, 그러면 나에게 그것도 말을 해 줬었어야지....ㅠㅠ

전화를 한 거냐고 했더니, 인터넷 업체의 앱에 신고란이 있는데, 거기에 메시지를 남겼다고 했다.

후우...그럼 진작 좀 말해주지...

아니야, 이 나라 말을 못해서 직접 연락할 수 없는 내 잘못이지...


앱 문의는 즉각적으로 답변을 받을 수 없을 것 같으니 미안하지만 전화를 좀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해서 인도네시아 서비스센터와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아침에 (그녀가)전화를 걸었더니 

엔지니어의 스케줄을 알아보고 한 시간 후에 연락을 준다고 했다(고 한다).

한 시간을 기다렸는데 연락이 없어서 다시 전화를 걸어 달라고 했다.

이번엔 다시 엔지니어의 사정을 살펴보고 30분 후에 연락을 준다고 했다.

역시나 또 연락이 오지 않아서 다시 (그녀가)전화를 했다.

당사자인 나는 물론이고, 이런 답답한 응대 방식에 전화를 대신 해준 직원도 슬슬 짜증이 나는 것 같았다.

결국 대여섯 번의 통화 끝에, 오늘 오후 5시 쯤이 될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 나의 퇴근 시간은 6시라서 직장에 양해를 구하고 조금 일찍 퇴근한다고 쳐도 몇 시까지 집에 가 있어야 하는지를 알아야 했다. 우리의 퇴근 시간을 잘 아는 그녀가 5시 라는 업체의 말에 오캐이를 했다는 것도 답답했다. ㅠㅠ


다시 전화를 해 달라고 했다.

한참 통화를 하던 그녀는 아예 수화기를 나에게 건네 주었다.

이번엔 내가 직접 영어로 통화를 했다. 지겹도록 반복되는 내용이었다.

5시 쯤이라면 오기 전에 미리 나에게 연락을 해야한다고,

우리가 지금 일터에 있어서 집까지 가는데 시간이 걸린다고,

대략 몇 시쯤에 오는지 말해줘야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거라고 설명을 하는데도

상담원은 5시쯤이 될 것 같은데 본인도 잘 모른다는 말만 반복했다.

5시가 되었고, 아무런 연락이 오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그대로 일터에 있었고, 6시가 되어도 아무런 연락이 오지 않았다.

퇴근하기 전에 다시 전화를 했다.

내일 아침 9시가 될거라고 했다.

오늘 될거라 믿었던 내가 바보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도 안되는 집에 일찍 가봤자 할 일도 없어서 마사지를 받고 밤 8시쯤에 집에 들어갔다.

아직도 집에 물이 새서 관리팀을 한번 더 불렀는데, 이번에도 해결이 되지 않고 뭔가 또 부품을 구해야 한다고 했다.

네 달째 물이 새는 집, 인덕션이 한번 터져서 불 쓰기도 무서운 집, 게다가 인터넷이 끊긴 집. 최악이었다.

그런데 부품이 구해지면 다시 오겠다며 나가던 관리팀 직원이 나에게 말했다.

"아참, 아까 퍼스트미디어에서 인터넷 고치러 왔는데 집에 아무도 없어서 그냥 갔어요."

......이게 무슨...? 집에 왔던거야? 왜 연락도 없이 온거야? 미쳐버릴 노릇이었다.

내가 하도 난리를 쳐서 오늘 중에 오려고 했는데 나에게 연락을 안하고 와서 집이 비어있었으니까, 그럼 예약한 대로 내일 아침 9시에 오겠구나..오늘도 인터넷 없는 밤.


다음날 아침, 9시 45분까지 기다렸지만 감감무소식, 결국 인터넷 기사는 오지 않았다.

10시까지 출근을 해야 하니 일단 집을 나섰다.

어제 전화를 해줬던 직원에게 9시에 아무도 오지 않았다고 말하자, 업체의 실수로 내일 9시로 예약이 되어있다고 했다. 

업체의 실수였을까 재확인을 안 한...짜증이 치솟은 나머지 애꿎은 그녀가 야속해지기 까지 했다.

오늘 하루를 더 참으라고? 이건 말도 안된다, 당장 오늘 안에 고쳐야 한다고 사무실에서 읍소했다.

그녀가 말했다.

어제 내가 마사지를 받고 있던 시간에 인터넷 기사에게 연락이 왔는데, 그 시간엔 자기도 오토바이를 타고 있어서 연락을 못 받았다고 했다.

운전 중이었으니 연락을 못 받은 건 당연히 그럴 수 있는데, 그때는 이미 6시 반을 넘은 시간이었다.

5시에 온다더니 아무 연락이 없다가 왜 그때 와서야 갑자기 찾아와놓고, 업체에서는 내가 집에 없어서 못 고쳤다고 말하는 건지 너무너무 화가 났다.


이 상황 설명을 들은 매니저는 직원에게 다시 한번 업체에 전화를 해서 오늘 중에 오도록 연락을 해달라고 했다.(어제는 쉬고 오늘 출근한) 매니저가 덧붙였다.

"아무도 9시라 확답한 적은 없다."

오늘 아침 9시에 오기로 했는데 무슨 말이냐고 하자,

9시쯤 가능할 것인데 가능하면 연락을 하겠단 소리였지 확실히 말했던 것은 아니라고 했다.

뭐지. 그럼 직원이 말을 잘못 전달해 준건가?  

그리고 나에게 설명했다. 서비스센터에서 접수를 받으면 엔지니어에게 전달을 하고, 엔지니어는 동선에 따라 순차적으로 처리한다고. 그 과정에서 앞 집 수리가 늦어져 밀릴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시간 약속이 무의미해 질 수 있다고.

엔지니어가 그런 상황을 서비스센터에 보고해 주는 게 아니라서, 전화로 접수를 받는 사람은 엔지니어가 실제로 몇 시쯤 방문이 가능한지 알 수 없다는 것을.

매니저는 오늘 안에 해결을 하기 위해서 한 시간마다 한번씩 전화를 해서 재촉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엔지니어는 어디에 있어요? 몇시에 올 수 있어요? 지금은 올 수 있어요? 를 될 때까지 반복해 물어야 한다고 했다. 이런 상황을 알았더라면 어제 화를 덜 냈을텐데...


매니저는 어제 전화를 해 주었던 직원에게 계속해서 확인하고 체크하도록 지시했다.

알아보고 연락을 준다고 한들 그쪽에서 바로 확인해서 연락하지 않는 경우가 많으니 1시간 후에 우리측에서 다시 전화해서 재촉해야 한다고 했다.

한시간 후에도 확인중이라 하면 다시 한 시간 후에 전화하고, 기사가 집에 도착했다는 확인이 될 때까지 끊임없이 연락해야 할거라고 했다.


덕분에 저녁 6시 반정도에 인터넷을 되찾을 수 있었다. 


엄청나게 짜증나던 2박 3일이었는데, 인터넷을 되찾고 침대에 누워 넷플릭스를 보고 있자니 화가 다 풀린 나머지 내일까지 질질 끌지 않아 고맙다는 마음까지 들었다. 


이 나라에서 언제까지 견딜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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