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이에 신입생이 되었습니다
교원자격증 2급을 이미 가지고 있고, 한국어 교육 경력 4년차인데 이제와서 석사과정에 들었다.
전공은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교육학'이다.
경력을 탄탄하게 쌓아가고 있어야 할 불혹의 나이에, 여전히 미혹인 나는 대학원생의 신분이 되어버렸다.
다행히도 개강한 지 이제 한달이 된 시점에서의 만족도는 상당히 높은 편이다.
수업도 재미있고, 교수님들도 정말 좋아서 존경심이 생기고, 같이 수업 듣는 분들의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공유받는 것도 커다란 도움이 된다.
나이는 신경쓰지 않는 편이라고 말하면서도 '이 나이에...'라는 표현을 종종 사용하는 것을 보면
역시, 나는 나이를 신경 쓰고 있다.
내 나이를 늘 만 나이로로 세고 있고, 외국에 있거나 다른 나라 사람들과 교류할 때는 나이를 언급할 일이 없기 때문에 지금도 친한 친구들(이라고 쓰고, '언니들'이라고 읽는다)의 나이가 헷갈린다.
그런데 말입니다.
얼마 전, 교내 근로장학생 알바에 지원하면서(결국 떨어졌다) '재학생이 아니고 신입생인데 지원이 가능한가요?'라고 물으면서 설명을 덧붙이는 자신을 발견했다. '앗, 그런데 제가 나이가 좀 많은 신입생이에요!'
'신입생'이라 했을 때, 20대 초중반의 학생을 예상했다가 나를 보고 당황할까봐 주절주절...
변명을 더하자면,
한국 사회에서는 내가 나이를 신경 안쓴다고 상대방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건 아니기 때문에 더욱 조심하고 눈치를 보게 된다고나 할까...
내가 오바한다고 생각하기엔 한국 사회에서 나이에 대한 엄격한 틀이 정해져 있는 건 사실이지 않나?
2년 전에 썼던 글의 부제를 보고 웃음이 났다.
https://brunch.co.kr/@mina3012/43
그때는 5년을 꽉 채워 일해보고 그때도 이 일을 계속할 마음이 든다면 석사를 하겠다고 했는데,
5년을 꽉 채우지 않은 시점에서 이렇게 사고를 쳐 버렸다.
한국어 교원을 하고 싶다 -> 교원 자격증이 필요하다 -> 대학원에서 석사를 하며 2급 자격증을 따겠다 -> 그리고 실무를 시작하겠다, 이러한 과정이라면 처음부터 고민할 일도 없이 진학하는 것이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한국어 교원을 하고 싶다 -> 교원 자격증이 필요하다 -> 학사 과정으로 교원 자격증 2급을 땄다 -> 석사 없이 실무를 시작했다 -> 석사 학위에 대한 욕심이 생겼다, 이렇게 되어버린 것이다.
처음부터 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하면서 자격증을 취득했다면 시간을 절약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이 일에 대한 확신이 없다보니 비싼 학비를 '투자'해서 직업을 바꾸는 것이 부담이었다. 그래서 비용을 줄이는 방안으로 자격증을 취득했다. 자격증이 나오자마자 운좋게 실무를 시작할 수 있었고, 해외 파견 교원을 두 차례 하고 나니 경력이란 것이 생겼다. 그리고 일을 하다보니 석사 학위에 대한 갈증이 생겼다.
욕심이 나긴 하지만 이제와서 대학원에 입학을 한다면 최소 2-3년은 국내에 머물며 공부를 해야 하는데 그 기간 동안 (당연히)해외 파견 업무에 지원도 못 하니 투자할 시간이 부담이 되었다. 학비와 생활비를 벌어야 하니 일과 병행하려면 아무래도 야간 대학원(특수대학원, 교육대학원)이 최선인 것 같은데, 이 직업 특성상 비전임으로 일하며 돈도 많이 못 벌면서 체력과 열정이 소진될 것이 걱정이었다. 무리라고 생각하니 부정적인 이유만 계속 생각났다. 비싼 학비를 내고 졸업을 해서 석사 학위를 가진다 해도 임금이 아주 높아지는 것도 아니니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강 과목을 잘 선택하면 되겠지만 학기마다 열리는 강의의 한계가 있을텐데, 자격증을 따며 이미 배웠던 과목을 다시 배우게 되면 돈낭비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결국 가장 큰 걸림돌은 '돈'이었던 것 같다.
그때 (친)언니가 말했다.
이렇게 고민을 하는거라면, 학위를 끝내지 못하고 도중에 그만 두는 한이 있어도 시작은 해 봐도 된다고. 돈을 갖다 버려서 아깝긴 하겠지만 후회는 안 할 거라고.
가깝게 지내고 있는 한 선생님께서는, 이미 일을 해 본 상태에서 학위의 필요성을 느끼는 거라면 진학하는 것을 추천한다며 본인은 석사 과정 수업이 정말 흥미롭고 재미있었다고 하셨다.
그래서 시작을 해 버렸다.
막상 지원서를 쓰려고 보니 연구 계획도 막막하고 훗날 졸업을 위해 논문을 쓰는 것도 걱정이 되었지만, 내후년의 내가 알아서 하겠지 하는 생각으로.
실무를 조금 맛보고 다시 공부하게 되니까 가장 좋은 점은 교수님께 질문을 할 수 있다는 거다.
혼자 수업을 책임지는 이쪽 업무 특성상, 특히 해외에서 일을 하다보면 언어 수업은 물론이고 문화 수업이나 활동까지 모든 책임이 나에게 맡겨지니, 나를 가르쳐 줄 멘토가 필요했다. 나는 선생님이지만 이제 나도 우리 선생님이 계신다!
지금의 나는 일본어 회화가 아주 조금 가능한 한국어 선생님인데, 같은 수업을 듣는 분의 자기소개를 들으니 일본에서 학교를 졸업해서 일본인 학습자 대상으로 한국어 수업을 해 보고 싶다고 했다. 친해지면 그 분에게 현지 사정에 대해서 자세한 질문을 더 할 수 있겠지만, 그렇게까지 하지 않더라도 각각 다른 배경에서 온 사람들과 모여 같은 공부를 하게 되니 타인의 스펙을 보며 감탄도 하고 그게 커다란 동기 부여가 된다. 나를 업그레이드 할 기회가 될 것 같다. (업up까지는 안되더라도 적어도 다운그레이드 되진 않겠지...)
그리고 무사히 학위를 취득한다면 선택의 창이 넓어지겠지. 그렇게 크게 넓어지지도 않겠지만 적어도 기준에 맞춰 나갈 순 있지 않을까, 하는 Better than nothing의 마음을 갖고 있다.
도중에 멈출 지, 무사히 마치고 졸업을 하게 될 지 지금으로서는 사실 잘 모르겠다.
이것은 2026년에 다시 볼, 2024년 10월의 내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