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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하이팅 Feb 11. 2017

[제 22 잔] 지역의 특별함을 마시는 것

쾰른(Köln)의 맥주 '쾰쉬'


2015.09.10

자전거 여행 30일 차







사실 독일 친구들이 맥주 여행을 한다는 내게 꼭 방문해야 한다는 곳이 '쾰른'이었다.


독일의 지역 맥주 중 하나인 '쾰쉬'가 만들어지는 쾰른. 바로 남쪽에 있는 뒤셀도르프의 '알트비어'와 마찬가지로 지역 맥주에 대한 자부심이 어마어마한 곳이다. 이는 이름이 붙여진 데서 알 수 있는데, '쾰쉬'는 법률로 쾰른에서 만들어진 맥주만을 '쾰쉬'라 이름 붙일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친구의 말에 따르면 쾰른에서 알트비어를, 뒤셀도르프에서 쾰쉬를 찾으면 여기 저기서 불꽃 레이저가 나올 수도 있다고 했다. 자칫 말 실수라도 했다간 살아남지 못하겠구나. 조금은 섬뜩하기도 했다. 


그래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로컬 맥주가 되기까지 그러한 자부심이 한몫했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 명성에 대한 궁금증을 한가득 품고 쾰른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날이 좋았던 이유도 있었지만 라인강을 따라 달리며 쾰른에 들어서면서부터 줄곧 활기찬 기운이 전해졌다. 저 멀리 보이는 쾰른 대성당. 강에 비친 건물들은 찰랑찰랑. 덕분에 따스히 내리쬐던 햇빛이, 흔들리는 건물들에 부딪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강아지들과 산책하는 사람들, 그저 앉을 곳만 있다면 자리를 잡아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 나도 그 속에 섞인 한 일원이 되고 싶었다. 설레는 마음에 호스트 Bruno집에 도착하자마자 자전거를 내려놓고 관광을 시작했다.


 맥주를 마시기 전에 먼저 쾰른 대성당을 찾았다. 누가 그랬다. 쾰른 대성당 투어 후 쾰쉬 맥주를 마시는 건 꽤나 유명한 조합이라고. 역사적으로 그 의미가 대단한 곳이기도 하지만 여행 전 엄마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한 것도 있었다. 저 멀리 성당이 보인다면 꼭 한 번 찾아가 보라는 것. 사실 난 그렇게 절실한 신자는 아니지만 여행 중 자연스레 찾게 되는 것 중 하나가 '신'이었다. 하루에도 수십 번 제발 무사히 완주하게 해주세요. 자전거 도난 안 당하게 해주세요. 다치지 않게 해주세요. 혼자서 헤쳐가야 하는 여행에서 의지할 곳이라곤 나 말고 그뿐이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했다. 그러다 보니 엄마와의 약속이 아니더라도 중간중간 성당을 찾아가는 건 큰 위로가 되었다.


 쾰른 대성당은 외관부터 그 웅장함과 정교함이 대단했다. 저 높이 솟은 첨탑과 함께 투샷을 찍으려는 관광객들도 많았다. 근처에서 내부로 들어서니 그 기운이 온전히 전해졌다. 하나하나 작품 같았던 스테인드 글라스. 높이 뻗은 기둥으로 떠받치고 있는 아치형 천정. 다소 차갑고 냉랭한 기분이 들었지만 그 웅장함에 괜스레 숙연해졌다. 성당을 쭈욱 한 바퀴 돌고 나선 비어 있는 좌석을 찾아 한참을 앉아 있었다.


 

어느덧 여행의 중반이 되었고, 나는 그토록 원하던 독일에 도착해있고. 이 모든 것이 꿈같기도 하다가 어디 넘어지기라도 하면 지극히 현실로 다가오고. 반틈이나 달려와서 수고했다 싶으면서도 아직 반틈이나 더 달려가야 한다는 사실에 두려움이 찾아오고.
스스로 질문하고 대답하다 보니 갑자기 엄마 생각이 났다.
엄마 나 잘할 수 있을까?  나도 모르게 시야가 뿌옇게 흐려졌고 행여나 이 모습을 누가 볼까 싶어 두 눈을 질끈 감고 두 손을 모았다.

그래. 넌 잘 해내고 있어.



그렇게 또 한참을 있었다.


 성당 밖으로 나오니 차분했던 내부와 달리 다시 활기찬 기운이 전해졌다. 덕분에 가라앉았던 내 기분도 다시 활기를 찾았다.


 쾰른 대성당 뒤편으로 가면 쾰쉬를 판매하는 맥주집들을 쉬이 접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눈에 띈 건 빨간 글씨로 쓰인 100여 년 전통의 '프뤼 쾰쉬'. 정통파로 잘 알려진 가펠 쾰쉬도 있지만 한국에서 자주 접할 수 있었고, 외국인 친구가 추천해준 곳이기도 했기에 이곳을 택했다.


 역시나 그 유명세답게 대낮임에도 안 밖으로 사람들이 많았다. 실내로 들어서 혼자 앉기에 마땅한 자리를 찾으려고 두리번두리번 거렸더니, 지나가던 직원이 혼자 왔느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했더니 남자 친구는 어디 갔냐며. 무슨 일이 있느냐고 했다. 아, 눈물에 젖은 눈과 코에 붉은기가 덜 가신 탓이다. 나는 아무 일 없다며 혼자 쾰쉬를 즐기러 왔다고 하니 따스한 볕이 드는 창가 자리가 좋을 것 같다고 했다. 나름 신경 써준 것 같아 괜히 고마웠다.


자리에 앉자마자 이 구역을 담당하는 직원이 다가와 맥주를 먼저 주문하겠느냐고 했다. 물론이죠.라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크란츠라 불리는 독특한 형태의 쟁반에 맥주잔을 담아 서빙해줬다. 크란츠는 주문과 동시에 빠른 속도로 많은 잔을 빠르게 회수하고, 이동하기에도 좋아 보였다. 쾰쉬는 200ml의 슈탕에 잔에 담아 제공되는데 탄산기가 적고 부드러워 가볍게 마시기 좋다.

맥주를 마시면서 메뉴판을 보는데 내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sausage'. 독일에 와서 소시지를 먹지 못했는데 오늘이 그 역사적인 날인가 보다. 담당 직원을 불러 감자를 곁들인 소시지와 함께 쾰쉬 한 잔을 주문했다.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한 모금, 두 모금. 어느덧 잔을 비워버렸다. 빈 잔을 본 직원이 "한 잔을 더?"를 묻자 당연히 좋다고 했다. 잔이 작다 보니 빨리 많이 마시는 사람도 많았고, 그 속도에 맞춰 직원도 빠르게 서빙해주고 있었다. 이를 부담스러워 할 사람도 있겠지만 맥주를 빨리 많이 마시는 내겐 큰 장점이었다. 그 찰나 잠시 잊고 있었던 음식이 내 테이블에 놓였다.


 소시지 한 입에 맥주 한 모금. 그 짭조름한 소시지와 쾰쉬의 깔끔한 맛이 뒤엉키면서 짜릿하기까지 했다. 그래. 늘 책에서만 봐오던 크란츠, 슈탕에, 쾰쉬. 이렇게 직접 마주하고 있잖아. 행복했다. 불과 몇 분 전, 여러 걱정에 눈물을 글썽이던 내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입 안 한가득 음식을 머금고 신나게 칼질을 하고 있는 내게, 아까 자리를 안내해주던 직원이 지나가며 물었다. 맛이 괜찮냐고. 나는 엄지를 쭉 내밀며 최고라고 말했다. 직원은 흐뭇한 미소와 함께 다행이라며 크란츠를 들고 다른 테이블에 맥주를 서빙하러 갔다.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문득 노트를 꺼내 들었다.



맥주는 맛도 맛이지만 이런 복합적인 것들로 하여금 특별함을 마실 수 있도록 하는 것


 

 유럽, 특히 독일 맥주의 맛이 뛰어나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지만 조금 더 특별하게 느껴진 이유다. 쾰쉬가 쾰른을 대표하고 또 지역민들의 오랜 사랑을 받아온 이유가 있었다. 오랜 전통을 가진 양조장, 또 이를 통해 형성되는 다양한 문화들. 단순히 맥주 하나만이 아니라 그와 관련된 복합적인 요소들이 그 지역만의 특별한 문화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덕분에 맥주 한 잔을 통해 그 도시, 그 지역 사람들의 문화를 마시고 경험할 수 있었다.  

 그것이 지역 맥주가 가진 매력이고, 이렇게 두 바퀴로 달리며 그들을 찾아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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