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3개월의 육아휴직을 마치고 회사로 복직하면서 아기를 어린이집에 보냈다.
친정엄마는 어린 아기를 오랜 시간 어린이집에 맡기는 게 안타깝다며 퇴근하고 올 때까지 아기를 봐주시겠다고 하셨다. 잘할 수 있을까 막막했던 복직 생활.
닥치면 한다고 때가 되니 우리는 연습이라도 한 것 마냥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스케줄을 소화했다.
일정은 이랬다.
6시에 출근 준비를 하느라 일어나면 거실에서 자고 있던 남편이 아기 곁으로 간다. 7시쯤 출근을 하고 8시쯤 엄마가 우리 집으로 오신다. 그때 남편과 아기가 일어나 남편은 출근 준비, 아기는 등원 준비를 한다. 고로 엄마는 늘 8시쯤 우리 집에 오셨다. 그렇게 생활한 지 3개월 만의 일이다.
여느 때와 같이 퇴근하고 집에 왔더니 엄마가 아기 저녁을 먹이고 계셨다. 덕분에 시간이 생겨 저녁 산책 나갈 겸 엄마를 집으로 모셔다 드리기로 했다.
집을 치우고 아기 옷을 챙겨 입히는데 엄마의 행동이 이상했다. 뭔가를 자꾸 생각하는 것처럼 눈을 치켜뜨며 중얼중얼.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엄마에게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아니 가스 밸브를 잘 잠갔나?" 하시며
밸브를 확인하셨다. 이제 나가자는 내 말에 엄마는 또 가만히 서서는 골똘히 뭔가를 생각하셨다.
"엄마 왜 그래!" 하고 소리치자 엄마는 또 가스 밸브를 보시며 안 잠근 거 같다며 밸브를 확인하셨다.
묻는 말에 자꾸 횡설수설하며 같은 말을 반복했다.
엘리베이터에 타서 보니 엄마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맺혀 있었다. 저혈당이 온 것이다.
괜찮다고 집에 가서 저녁 먹으면 된다는 엄마를 억지로 앉혀 1층 마트에서 당 흡수가 빠른 오렌지 주스를 사서 먹였다. 그제야 안색이 조금 나아졌지만 아무래도 불안해서 같이 저녁을 먹자며 퇴근한 남편보고 식당으로 오라고 해 함께 저녁을 먹었다.
식사를 마치고도 불안한 마음이 가시지 않아 커피를 마시겠다는 핑계로 친정집에 엄마를 모셔다 드리고 혈당 체크하시는 것까지 보고 나서야 우리는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날 아침 8시, 나는 이미 출근해 회사 책상에 앉아 있었고 남편은 일어나 출근을 준비했다. 하지만 엄마는 오시지 않았다. 계속 전화를 드려봤지만 30분이 지나도 엄마가 오시지 않자 남편이 내게 전화해 오늘 아침에 어머님과 통화했냐고 연락이 되지 않는다고 알렸다. 그 연락을 받자마자 곧바로 그때의 일이 떠올랐다.
결혼 전, 밤에 엄마가 주무시다가 저혈당 쇼크가 왔던 그날 말이다. 어제의 엄마 상태를 알기에 분명 밤 사이 저혈당 쇼크가 왔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남편에게 아기를 안고 엄마네로 가보라고 말한 뒤 전화를 끊고 곧바로 119에 신고했다.
"네, 119입니다."
"어머니께서 집에 혼자 계신데 지금 연락이 안 되시거든요. 저혈당 쇼크가 오신 적이 있어서 한번 가봐주셔야 할 것 같아요. 어젯밤까지 연락이 됐는데 아침부터 연락이 안 됩니다."
"네, 바로 출동하겠습니다."
어제 엄마의 모습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어제의 저녁식사가 엄마와 함께한 마지막 식사였으면 어떡하지? 그 날이 엄마의 마지막 모습이었으면 어떡하지? 우리 집에서 주무시고 가라고 할 걸.
그냥 우리가 친정에서 같이 자고 올 걸.
엄마가 괜찮으니 잘자라고 문자 했을 때 피곤하다고 잠들지 말고 전화 걸어볼 걸.
짧은 순간 온갖 생각이 들며 한번 터진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남편이 아기를 안고 친정집으로 향하는 동안 119 구급대원분들이 먼저 도착했다. 역시나 엄마는 저혈당 쇼크가 와서 바닥에 누워계셨다.
구급대원께서는 신고자인 나와 통화하며 집의 비밀번호를 물어 집안으로 들어가셨다.
전화기 너머로 상황을 실시간으로 들을 수 있었다.
"지금 집으로 들어왔습니다."
"어머니는요? 어머니 괜찮으신가요??"
"아 네 거실에 계시네요"
"의식 있으신가요?"
"네. 의식은 있으시네요"
- "어머니! 정신이 좀 드세요?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 "네?? 누구세요? @#$%#@%"
전화기 너머로 혼비 해 보이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경험이 있기에 엄마의 상태가 상상되었다.
그저 엄마가 살아 숨 쉰다는 것만으로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때 마침 남편이 아기를 안고 집으로 들어갔다.
"어머니, 저희 왔어요. 저희 알아보시겠어요?"
"누구세요?"
전화를 끊고 팀장님께 양해를 구해 휴가를 내고 곧바로 응급실로 향했다.
남편의 말로 전해 듣기로 구급대원분들께서 혈압측정 후에 링거를 꽂고 한참 뒤에 남편과 아기를 알아봤다고 한다. 저혈당 쇼크로 인한 응급처치로 정신이 돌아올 수 있지만 계속 엄마 혼자 계시는 건 무리였다.
응급실로 이송해 정밀 검사를 받고 안정을 취해야 하는데 택시 안에서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완전히 정신이 돌아오지 않은 엄마가 병원으로 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피우신다며 내게 엄마를 바꿔주었다.
"이제 괜찮아. 안 가도 된다고! 내 상태 내가 제일 잘 알아!" 막무가내로 안 간다는 엄마에게 속상한 마음에 울며 소리쳤다.
"구급대원분들도 엄마가 병원으로 가셔야 상황이 종료되고 남편도 출근할 거 아니야. 지금 내가 병원으로 가고 있으니까 빨리 와. 고집부려서 여러 사람 힘들게 하지 말고!"
결국 엄마는 마지못해 구급차에 올랐고 남편과 아기 모두 구급차를 타고 병원에 도착했다.
병원에 다 와 갈 때쯤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아기가 너무 어려 응급실에 들어갈 수 없어 남편이 아기를 안고 밖에 서 있고 엄마는 보호자 없이 들어가셨으니 빨리 와야 할 것 같다고.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응급실 앞에 서 있는 남편과 아기에게 인사할 틈도 없이 엄마가 계신 응급실로 달려들어갔다.
의료진들이 엄마가 누워있는 침대에 둘러 서서 당시 상황을 물어보고 있었다.
엄마는 의식이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내가 어젯밤부터 증상이 있었음을 말씀드리며 엄마 곁을 지켰다.
그 후 여러 검사가 진행되었다.
동맥검사를 위해 주사 바늘을 꽂는데 혈관을 찾지 못해 여러 번 시도했지만 계속 실패했다.
혈관을 찾기위해 굵은 주사 바늘을 꽂아 휘저을 때 너무나도 아파하셨다. 결국 베테랑 선생님이 오셔서야 한 번에 혈관을 찾아 검사를 진행했다. 굵은 주사 바늘로 들쑤시는 바람에 엄마의 손등은 시퍼랗게 멍이 들었다. 아파하시는 엄마를 보며 깨달았다. 아픈게 겁이나 병원으로 오기 싫어하셨던 거구나.
응급실에 누워계시는 내내 엄마는 아기는 어떻게 하고 있냐며 너무 춥게 입힌 거 아니냐며 손주를 걱정하셨다. 9시쯤 병원에 도착해 여러 검사를 마치고 12시가 넘어서야 귀가조치를 받고 응급실에서 나왔다.
엄마는 나오시자마자 시퍼랗게 멍든 손으로 아기의 손을 잡으며 말씀하셨다.
"오늘 어린이집에서 캠핑 놀이하면서 놀았어야 하는데 할머니 때문에 못 가서 어쩌면 좋아. 미안해. 할머니가 미안해."
육아하느라 끼니도 제때 못 드시고 자기 몸을 돌볼 시간이 없어 이런 일이 생긴 것은 아닌가.
상황이 안되면 아기를 어린이집에 조금 더 오래 맡겨둬야 했는데 내 새끼에 대한 욕심 때문에 내 어미가 병들어가는 것도 모르고 맞벌이한다고 몸도 성치 않은 엄마에게 아기를 맡겨 이런 일이 생긴 것만 같아 죄스러운 마음이 드는 건 나인데 엄마는 연신 아픈 할미 때문에 오늘 하루 친구들과 놀지 못했다며 손주에게 미안해하셨다.
그런 엄마의 모습이 나를 더 죄인으로 만들었고 가까이 살며 엄마를 지키고자 했는데 내가 엄마를 지키는 것이 아닌 엄마가 나를 보살펴주고 있었다.
그렇게 친정집으로 들어와 엄마에게 아침의 상황을 물었다. 언제부터 기억이 나는지.
정신이 들었을 때 가장 먼저 알아본 사람은 손주였다고 한다. 낯선 사람들도 많고 할머니의 처음 보는 모습에 울 법도 한데 울지 않고 빤히 할머니를 바라보고 있더란다.
"아기를 봐준다고 하지 않았으면 어떻게 돼도 몰랐을 텐데. 덕분에 살았네. 고마워 아가. "
생각이 많고 자책하고 있을 딸의 성격을 알기에 미안해하지 말라는 듯 오히려 아기 덕분에 살았다는 엄마.
자식을 가진 부모가 되어도 자식은 결코 부모님의 마음을 넘어설 수 없음을 깨달았다.
부모는 늘 자식에게 미안하고 고맙다.
허나 자식도 부모님께 늘 죄송하고 감사하다.
미안해할수록 죄송하고 죄송할수록 미안한 관계.
고마워할수록 감사하고 감사할수록 고마운 관계.
표현의 정도만 다를 뿐 그 마음은 같다.
다만 배 속에 아이를 품었듯이 자식의 어떠한 마음보다 부모의 마음이 크게 품고 있을 뿐이 아닐까?
이래서 어머님의 은혜가 높고 높은 하늘이오 넓고 넓은 바다라 하나보다.
언젠가는 마주할 엄마와의 마지막 순간.
마지막 통화, 마지막 식사, 마지막 대화, 마지막 인사 그 모든 모습에 엄마를 향한 사랑이 담겨 전해지길.
진심이 왜곡돼 차가움이 느껴지는 일 없이 그저 사랑으로 가득해 따뜻하길 바란다.
이토록 따뜻함을 바라는 이유는 내 삶의 시작점에서부터 엄마의 삶이 녹아져 있기에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키워주신 그 시간과 희생에 조금이나마 보답이 되고자 하는 마음 때문이다. 엄마의 삶이 따뜻함으로 기억되길 바란다.
그 마지막이 언제인지 알 수 없으니 오늘도 내일도 우리는 매일같이 사랑한다 말하고 손을 잡고 꼭 안아드리며 감사함을 표현해야 한다. 서로에게 마지막에 대한 기억이 후회가 아닌 따뜻함이 될 수 있도록 말이다.
사랑하는 엄마께
엄마, 어려운 형편에서도 부족함 없이 건강하게 잘 키워주셔서 감사해요.
엄마가 내 엄마라 너무 자랑스럽고
엄마의 딸로 태어나 엄마와 함께한 모든 시간이 너무 행복했어요.
더 잘 살아서 더 좋은 것들 사드리고 편하게 해 드려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죄송해요.
다음 생에도 우리 꼭 엄마와 딸로 만나요.
그때는 차라리 내가 엄마의 엄마로 태어나는게 좋을 것 같아요.
그래서 내가 엄마가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자라도록 지켜줄게요.
누가 엄마의 마음에 상처를 준다면 따뜻하게 안아 마음을 치료해줄게요.
그렇게 엄마가 하고 싶은 것 마음껏 하며 살 수 있게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줄게요.
그러니 다음 생에 우리 꼭 다시 만나기로 해요.
사랑한다는 말로 부족할 만큼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