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근처의 당근마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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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근마켓
세상이 미니멀리즘을 외칠 때 꿋꿋이 맥시멀리스트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나도 그중 하나다. 소비를 많이 하는 것은 아니고, 이미 철 지난 물건들을 꼭꼭 모아둔다. 중학교 때 풀던 문제집부터 탈덕한 연예인 앨범까지. 더 이상 소장 가치가 충분하지 않음에도 추억이라는 이유 하나로 쉽사리 내버리지 못한다. 그랬던 내가 요즘은 중고거래하는 재미에 푹 빠져버렸다. 중고거래의 원조인 ‘중고나라’나, 학생 때 메이커 옷의 성지였던 ‘번개장터’등 많은 중고거래 앱 중에서도 나를 끌어들인 장본인은 바로 ‘당근마켓’이다.
당근마켓을 지속적으로 이용하게 된 계기는 단 하나다. 동네를 중심으로 거래를 한다는 것. 동네 인증을 한 사람과 거래를 하는 거라서 비교적 안전하고 가깝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그것보다 나는 동네를 산책할 수 있는 핑계가 되는 점이 더 좋다. 당근거래를 시작한 이후 동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게 되었다. 자칫 집 안에서 마무리할 뻔했던 하루에 잠시나마 콧바람을 쐴 수 있는 강제적 기회를 제공한다. 보통 파는 사람의 동네로 가는 것이 원칙이라지만, 나는 판매자일 때도 아주 먼 거리만 아니라면 이렇게 말한다. "제가 그쪽으로 갈게요."
나에게 추억으로만 남았던 물건들이 필요한 사람에게 돌아간다는 건 굉장히 뿌듯한 일이다. 내가 제작자도 아닌데 말이다. 사 놓고 한 번도 틀어보지 않았던 방탄소년단 DVD를 애타게 구하고 있었다며 연신 고맙다고 하시던 분, 향수를 모으고 있었는데 덕분에 싸게 구매하게 되어 좋다고 하시던 분. 그런 이야기들이 하나씩 모여 나의 매너온도를 채웠다. 고맙다는 말 한마디 듣기가 어려운 요즘에 같은 동네에 사는 누군가를 만나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듣는 건 위로가 된다. 물건을 팔고 돈을 얻는 것 이상의 가치이다.
저녁 8시, 하루 종일 침대에서 밍기적 거리던 몸을 일으켜 5분 거리의 동사무소로 나간다. 당근거래가 잡혔기 때문이다. 동사무소로 가던 길 맛있어 보이는 음식점을 하나 찾았다. 동네 맛집 리스트에 추가하며 가벼이 발걸음을 옮겨본다.
insta. @h.dalla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