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도 띠뱃놀이 - 중요무형문화재 82-3
칠산 바다는 전라남도 영광군 백수면 앞바다에서 시작하여 법성포 앞바다를 지나 전라북도 부안의 위도, 곰소만, 고군산군도의 비안도에 이르는 해역을 일컫는다. 백수면 앞바다에는 모두 일곱 개의 크고 작은 섬들이 모여있는데 칠뫼, 즉 일곱 개의 산이 있다하여 칠산 바다라 불리었다. 칠산 바다는 조기들의 고향이었다. 3월에서 4월 무렵, 산란을 위해 회유하는 조기 떼들로 바다는 넘실거렸고, 이맘때면 전국의 어선들이 칠산 바다로 몰려들어 성시를 이루었다. 그야말로 물반 고기반, 사흘 동안 조기를 잡아 평생을 먹고 산다는 '사흘칠산' 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또 칠산 바다의 연평 어업협동조합 일일출납고가 한국은행의 출납보다 그 액수가 높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래서 어부들은 칠산 바다에 조기 잡으러 간다 하지 않고 돈 실러 간다고 말했다.
"밤에 선주들이 산 꼭대기에 올라가보믄 바다에 도깨비 불이 보인당께? 도깨비 불이 보인 자리에 담날 배를 몰고 나가보믄 조기가 있지. 바다에 대나무를 박고 가만히 소리를 들어보믄 우웅우웅 조기 우는 소리가 들려. 꼭 바람소리 같다니께. 한창 때는 한 번 나가믄 30동 까지 잡아온 적도 있어. 일주일에 나가 100동을 잡아온 적도 있다니께. 한 동이 천 마리니께 100동이면얼매여? 우리 애덜이 일곱인디 모두 전주에서 학교 댕겼지.."
칠산 바다에서 잡힌 조기는 대부분 영광군 법성포나 줄포로 들어가 굴비로 가공되었다. 영광굴비의 명성이 바로 여기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칠산 바닷물을 먹어야 알을 낳는다는 조기 떼가 사라진지도 어느새 20여년이 흘렀다. 지금 칠산 바다의 어민들은 멸치와 해태양식을 주업으로 하고 있으며, 조기철에는 9시간이나 배를 몰고 나가야하는 흑산도 인근까지 가서 조기를 잡아온다.
칠산 어장의 중심이었던 위도 대리마을. 정월 초사흘 날 이곳에서는 띠뱃놀이라는 풍어제를 지낸다. 풍어제는 마을 뒷산인 당젯봉에서 지내는 원당제와 마을 선착장에서의 용왕제, 바다에 띠배를 띄워 보내는 순서로 이루어진다. 먼저 제를 준비하고 진행하기 위해 섣달 10일에 마을 정기총회가 열린다. 총회에서는 제의 규모와 비용을 정하고 제를 진행할 제관을 선정하는데 제관은 제만(화주) 1명, 원화장 1명, 부화장 2명을 정한다. 상가나 임산부가 있는 집안의 사람은 절대 제관이 될 수 없으며, 정월 초삼일에 생기복덕(生氣福德)이 맞는 사람이어야 한다. 제만은 총책임자로 제주가 되고 원화장은 제사에 쓰일 음식 준비를 맡는다. 부화장은 원화장을 도와 음식을 장만하고 여러 잔일들을 도맡는다. 제관이 선정되면 독축관도 1명 정하는데, 독축관은 보통 한번 정해진 사람이 계속 맡게 된다. 원당제를 사제하는 사제무는 원래 무녀가 진행하는 것이 상례이지만 무계세습이 끊긴 이후로 현재는 위도 띠뱃놀이 전수자인 전금례(89세) 할머니가 맡고 있다. 또 다른 전수자로 이영금(55세)씨가 함께 참여하고 있다.
초사흘 아침. 7시 반에 전수관에 모인 사람들은 함께 식사를 하고 당젯봉 원당에 오른다. 마을과 칠산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원당은 맞배지붕의 2칸 기와집으로 되어있고 안에는 열두 서낭이 모셔져 있다. 원당제는 제관의 독축으로 시작되어 바로 당굿으로 들어간다. 당복을 입은 사제무는 긴 흰 천을 들고 가벼운 몸놀림으로 한 거리씩 굿을 해나간다. 굿거리는 성주굿으로부터 시작되어 산신굿, 지신굿, 서낭굿, 깃굿, 문지기굿과 뒤풀이로 이어진다. 깃굿은 각 어선의 선주들이 열두 서낭 중 일년 동안 자신의 배에 모실 서낭을 내림 받는 굿이다. 사제무는 선주의 손바닥에 쌀을 몇 알 집어 주는데 쌀의 수가 짝수이면 선주가 원하는 서낭을 내림받게 되고, 홀수가 되면 다시 짝수가 나올 때까지 다른 서낭을 내림받게 된다. 서낭이 내려지면 그 서낭의 이름을 한지에 적어주고 선주의 배에 걸릴 오색 뱃기 꼭대기에 묶는다. 이것을 '깃손 받기' 라고 한다. 굿이 열리는 동안 한쪽에서는 고기를 굽고 굿장단에 맞추어 춤을 춘다. 당굿이 끝나면 다시 농악을 울리면서 뱃기를 들고 하산한다.
용왕굿은 바닷가에 띠배와 용왕상을 차려놓고 장구와 징 반주로 시작된다. 원당제와 다른 점은 이때부터 부녀자들이 중심이 되어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흥을 돋운다는 것이다. 마을 앞 바닷가가 떠들썩하게 흥을 돋우던 용왕제가 끝나면 차렸던 제물을 띠배에 싣고 퇴송밥(고수레용 허드레밥)을 만들어 선창 곳곳에 뿌린다. 부녀자들은 퇴송밥을 뿌리고 마을사람들은 일제히 따라다니며 덩실덩실 춤을 추고 노래한다. 띠배는 원당제가 열리는 동안 마을에 남은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것인데 모든 행사가 끝나면 띠배에 동서남북, 중앙에 짚으로 만든 허제비를 만들어 싣고 오방기도 꽂아 넣는다. 드디어 띠배가 띄워지고, 모선에 연결되어 바다로 나가게 된다. 그리고는 먼 바다에 나가 줄을 끊어 띠배를 풀어놓는다. 황혼 속으로 사라지는 띠배를 보며 사람들은 이 띠배가 마을의 모든 액운을 실어 갈 것이라고 믿고, 잊혀졌던 풍어의 꿈을 다시 소망한다.
에이야 술배야 술배로구나
이 술배가 누구 술배냐/ 홍동진이 술배로세/ 술배소리 맞아주소
먼데 사람 보기 좋고/ 가까운 사람 듣기 좋게/ 술배소리 맞아주소
미끄런 조기야 코코에 걸려라/ 에이야 술배야
껄끄런 박대야 코코에 걸려라/ 에이야 술배야
나오신다 나오신다/ 에이야 술배야
선주에 마누라 술동이 이고/ 발판 머리에 엉덩이 춤 춘단다
에이야 술배야 술배로구나
걸렸구나 걸렸구나/ 우리 배 망자에 걸렸구나 이놈의 조기야 어디 갔다가 이제 왔냐/ 에이야 술배야 술배로구나
- 위도띠뱃놀이는 1978년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1985년에는 중요무형문화재 82-3호로 지정되었다. 그러나 현재 위도띠뱃놀이의 미래는 불투명하기 그지없다. 여느 시골마을들이 그렇듯이 계승해야할 젊은 사람이 없는 것도 문제이고, 종교적인 문제도 고민거리가 되고 있다. 위도띠뱃놀이가 계속 이어지고 칠산바다의 조기들도 돌아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