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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필복감독 Jun 30. 2022

역사 교육의 현장. 유대인을 위한 기념물.

4일 차 베를린 : 유대인을 위한 기념물

4일 차 베를린 : 유대인을 위한 기념물

코로나로 인해 여행이 힘들어진 2022년에 자유로이 다니던 시절이 그리워
2019년 가을 베를린 여행기를 올려봅니다. 


2019/10/11


오전에 일어나면 베를린 관련 책을 보고 비긴어게인을 보며 감성을 키우며 샌드위치에 커피, 과일로 조식을 먹는 것이 루틴이 되었다. 속이 불편하여 컨디션은 좋지 않았다. 아마도 음식이 짜서인 거 같았다.

날씨가 흐리고 컨디션도 난조라 느지막이 집을 나섰다. 조카 부부랑 저녁 약속도 있고 해서 시내에 반나절 정도 머물기로 했다. 첫 방문지는 브란덴부르크 문으로 정했다. 가는 길에 유대인을 위한 기념물도 보기로 했다.


점심은 맥도날드에 가보고 싶었는데 그래도 동네 햄버거집을 한번 가보자는 마음으로 케밥 베이스 버거집에 들어갔다. 맛은 역시나 짰다. 베를린 음식점들은 하나같이 짜고 초파리가 많다. 위생상태가 별로 좋지 못한 것 같다. 대충 먹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지하철을 타고 mohrenstrasse 역에서 내려 걸어가다 보니 Mall of Berlin이라는 쇼핑몰이 하나 보였다.  호기심에 둘러보며 지나가는데 화장품 팝업스토어의 여직원이 날 붙잡았다. 손톱을 반질반질하게 해주는 도구로 내 손톱 빤짝거리게 해 주더니 로션이 포함된 세트를 40유로에 사라고 한다. 2개에 70유로지만 3개에 70에 준다고 한다. 바빠서 가야겠다고 하니 1개 25유로에 흥정을 했다. 여행 중이라 가방 무거워서 못 산다고 핑계를 대고 자리를 떴다. 여직원은 터키 사람처럼 보였고 문득 터키에서 끊임없이 붙잡고 흥정하던 상인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냉정한 독일의 이미지와는 어울리지 않는 생경한 풍경이었다. 터키 사람이기에 베를린에서 터키 방식으로 영업을 하는 걸까? 독일인들도 저렇게 영업을 할까?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Mall of Berlin



mall을 둘러보며 놀라왔던 점은 많은 공간들을 역사의식을 심어주기 위한 공간으로 활용한다는 것이었다. 비싼 땅에 매장을 하나라도 더 받아야 남는 장사일 텐데.. 경제논리만으로 따지자면 도저히 납득하기 힘든 일이었다. 물론 최근엔 국내에서도 몇몇 백화점들이 문화적 공간을 만들어 소비자의 유인책으로 쓰는 마케팅의 방식을 도입하곤 있지만 몰 한가운데에 오래된 자동차를 두고 탑승하면 VR을 이용하여 체크포인트 찰리를 통과할 때의 모습을 보여준다던가 당시의 교실의 모습을 재현해 둔다던가 하는 식으로 역사공부를 할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한다는 것은 마케팅을 위한 장치로만 보이진 않았다.


탑승하면 VR을 경험할 수 있는 자동차. 뒤에 보이는 미끄럼틀도 재밌어 보였지만 타보지는 않았다.


끊임없이 역사를 상기시킴으로써 다시는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겠다는 다짐과도 같아 보였다. 부러웠다. 몰의 위치가 역사적으로 중요한 베를린 장벽이 있던 곳 근처라 그런지도 모르겠다. 이제 4일 차니 좀 더 둘러보고 판단할 일이다. 


티어가르텐 옆 가로수길


포츠다머 플라츠를 지나 좀 걸어가니 티어가르텐(베를린 한복판에 위치한 공원)이 보였다. 티어가르텐의 방대한 사이즈에 한번 놀라고 그런 비효율적인 어마어마한 공간이 수도 한복판에 넓게 자리하고 있다는 것에 다시 한번 놀랐다. 가는 곳마다 비효율이라고 할만한 여유로움이 느껴졌다. 

합리적이고 정확하면서도 여유로운 삶은 그냥 만들어지는 게 아니었다. 

철저한 도시계획과 무분별한 개발을 막는 것. 국가의 역할이란 건 바로 이런 것이고 그것이 국가 존재의 이유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멋진 가로수길을 따라 브란덴부르크 문으로 향하다 보면 우측에 유대인을 위한 기념물이 보인다. 비석과도 같은 사각형의 큰 돌들이 수없이 놓인 길인데 묘한 느낌이 들었다. 무덤 같기도 하고 미로 같기도 하다. 반성과 미안함과 위로가 느껴지는 그런 느낌이었다. 

유대인을 위한 기념물. 단체관람을 온 학생들의 모습이 보인다.

관광객들이 꽤 보였는데 만든 이의 의도가 무색할 만큼 천진한 얼굴로 숨바꼭질하고 있는 청소년들이 눈에 띄었다. 역시 학생들은 어딜 가나 똑같다. 단체관람을 왔으니 지루하겠지. 별 생각은 없어 보였지만 그래도 좋아 보였다. 도심 한복판에 커다란 역사 교육의 장소를 만들어 기억하게 하고

조상이 저질렀던 과오를 다시는 범하지 않겠다는 각오 

그것이 독일의 힘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브란덴부르크 문이 있다. 그리고 멀지 않은 곳에 국회의사당이 있다. 수도 한복판 금싸라기 땅에 어떤 용도의 건축물이 있는지가 그 나라의 수준을 말해주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브란덴부르크 문. 시위하고 있는 사람들.

브란덴부르크 문에 도착하니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시위를 하고 있었다. 터키의 시리아 내전 참전 반대 시위였다. 자유로운 분위기. 타인에 조종당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분위기가 느껴졌다.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고도 이렇게 자신의 목소리를 높일 수 있다는 것이 보기 좋았다.


두스만 서점의 내부


브란덴부르크 문 주변을 둘러보며 조카를 만나기로 한 프리드리히 스트라쎄 역으로 걸어가다 보니 멋진 서점이 하나 보였다. 서점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지나칠 수 없었다. 우리나라 교보문고 정도의 사이즈인데 블랙과 레드 컬러로 세련되면서도 아늑하게 만든 인테리어가 돋보였다. 각양각색의 달력이 독일 물가에 비해 꽤 비싼 가격으로 팔리고 있었다. 한국에선 보기 힘든 아날로그 감성의 향연에 흠뻑 취하는 순간이었다. 헐리우드 고전 느와르 영화 포스터로 만들어진 달력이 너무 멋져서 냉장고 자석 몇 개랑 같이 구입했다.


작가 사인회가 있는지 사인을 받기 위한 줄이 길게 서있었고, 그 옆에 DVD 코너가 있었는데 요즘 같은 VOD의 시대에 DVD, 블루레이가 활성화되어있는 것도 신기해 보였다. 블루레이야 한국에서도 매니아들이 수집하다 보니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는데 아직도 DVD를 구입하는 사람이 있다는 게 놀라웠다. 

(이후 이 서점은 시내에 나갈 때마다 들리게 되는 최애 장소로 등극한다. 그 이유는 베를린 중심부에서 화장실이 무료인 유일한 장소였기 때문이다.)


어느덧 저녁 시간이 되어 조카를 만나 음식점으로 향했다. Tex-Mex라는 멕시칸 전문점이었는데 한국에서 경험한 멕시칸 음식점과 비슷한 맛이었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심하게 짜지 않았다는 의미) 베를린 중심부의 힙한 음식점들은 대부분 철로 밑에 자리 잡은 것 같았다. 분위기 때문인지는 모르겠는데 여하튼 그랬다. 덜컹거리고 시끄러운데 뭐가 좋다고.. 이곳만의 갬성인가 싶었다.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베를린 중심가의 음식점들은 모두 줄을 서서 먹는다. 초파리가 날아다니고 음식 맛도 보통인데 말이다. 한국의 80년대 풍경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뭐든 하면 잘되던 그런 시절. 지금의 한국에선 저런 식으로 영업하다간 1년도 안되어서 망할 것 같은데 말이다.

결론은

베를린 여러모로 살기 좋은 곳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브란덴부르크문 #포츠담광장 #티어가르텐 #베를린몰 #유대인학살추모공원 #두스만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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