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라슈테 가는 법
시계 매니아들에겐 죽기 전에 꼭 가고 싶은 성지가 몇 곳 있다.
스위스로 말하자면 시계의 대명사 제네바를 필두로 박람회로 유명한 바젤, 공방(manufacture) 밀집지역인 뇌샤텔의 라쇼드퐁, 르로클, 그리고 IWC의 터전 샤프하우젠 등이 바로 그곳이다.
시계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시계 하면 스위스고 롤렉스가 좋은 시계라는 정도의 인식만 가지고 있지만 시계에 깊이 빠지다 보면 전통과 기술력을 보유한 독일의 브랜드들에도 관심을 갖게 되기 마련이다.
아름다움과 기술의 대명사 아 랑에 운트 죄네(A. Lange & Söhne), 랑에와 같은 DNA를 가진 글라슈테 오리지널(Glashütte Original), 바우하우스 디자인 전통의 신진 세력 노모스(Nomos), 그리고 모리츠 그로스만(Moritz Grossmann) 등이 바로 독일이 자랑하는 워치 컴퍼니다.
그리고 그 브랜드들은 독일 동부 아주 작은 마을에 옹기종기 모여있다.
바로 글라슈테(Glashütte) 지역이다.
글라슈테는 드레스덴에서 남쪽으로 1시간 정도 거리에 있다.
시계 외엔 관광객들이 좋아할 만한 볼거리들이 없기에 교통편도 많지 않고 출퇴근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길에서 사람 보기도 쉽지 않은 조용한 동네다.
베를린에서만 한 달을 지내려다가 드레스덴에 다녀오게 된 이유 중의 하나도 바로 글라슈테를 가기 위해서였는데 대중교통으로 글라슈테에 가기 위해선 드레스덴을 반드시 거쳐야만 했기 때문이다.
블로그에서 글라슈테에 가는 법에 대한 정보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구글맵을 이용해서 검색해보았더니 드레스덴 중앙역 기준으로 버스나 기차를 이용하여 한 번 이상은 갈아타야 한다.
버스를 탈까 했었는데 버스로는 1시간 7분가량 걸리고 기차로는 47분 정도 걸렸다. 기차는 1시간에 한번 정도 있어서 시간을 잘 맞춰야 했다.
같은 독일이지만 드레스덴의 교통 시스템은 베를린과 달라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베를린의 경우 전철역마다 판매기가 있어 티켓을 살 수가 있었는데 드레스덴의 역 판매기에선 기차표만 구입할 수 있었다. 전철을 이용해서 역으로 가 기차를 갈아타고 버스를 갈아타야 하는 경우 데이패스를 구매해야 하는데 정작 역에서는 표를 구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 티켓을 구매하기 위해선 트램역으로 가야만 했다.
또 하나의 난제는 전철역이든 어떤 정거장이든 자동 티켓 판매기만 있을 뿐 사람이 없어 어디 물어볼 곳이 없었다. 그래서 글라슈테까지는 몇 구역이며 얼마짜리 티켓을 사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드레스덴 운송회사 앱인 DVB(Dresdner Verkehrsbetriebe)를 이용하기로 했다.
앱을 이용하니 드레스덴에서 글라슈테까지는 level 4인 8.6 유로 구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회원가입을 하고 온라인 티켓을 사려고 시도했으나 전화번호에서 막혀 에러가 났다. 아무래도 아시아 국가번호로는 회원가입이 안 되는 듯했다.
오프라인으로 사자니 역무원이 없고 온라인으로 예매하자니 로그인이 안되고 난감했다.
결국 역에 가서 티켓을 구매하긴 했지만
언젠가 삶의 모든 영역이 무인화되고, 시대에 뒤쳐지게 된다면
여행도 맘대로 못 가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앙역까지 S1으로 가서 락커에 트렁크를 넣어놓고 글라슈테로 가는 기차를 타기로 했다.
기차 타고 글라슈테 갔다가 다시 드레스덴으로 돌아와 짐을 찾아 Felix 버스를 타고 베를린으로 떠나는 일정이다.
중앙역에서 Heidenau역까지는 4 정거장이다.
Heidenau 역에서 내려 다른 플랫폼(라인 5)으로 가니 글라슈테 행 아담한 기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환승 시간은 5분 정도로 군더더기가 없다. 쓸데없이 버리는 시간이 없으므로 바로바로 이동해야 한다. 어설프게 사진 찍고 있다가 기차를 놓치면 1시간을 다시 기다려야 한다. (베를린 아웃렛 가는 길에 이미 경험한 바 있다.)
정리하자면 드레스덴 중심지에서 Heidenau까지 오는 S1은 한 시간에 3번(중앙역 기준 13분 소요), Heidenau에서 글라슈테로 가는 기차는 1시간에 1번(24분 소요)이다. 이 시스템을 이해하지 못하여 한 시간 이상 허비하긴 했지만 시간만 잘 맞추면 웬만한 숙소에서 글라슈테까지 기차 1번 환승으로 편하게 갈 수 있다.
구글맵과 DVB를 이용해 가는 방법을 알아내긴 했지만 꽤나 헤맸던 여정이었다. 대중교통이 잘 되어있는 나라에 가면 구글맵을 맹신에 가까울 정도로 신뢰하지만 꽤 많은 오류가 있다. 이번의 경우는 정보가 틀린 것은 아니었지만 정보가 부족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어찌 됐든 여행의 묘미는 어린아이처럼 실수하는 것에 있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글라슈테 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