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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 변호사 Mar 25. 2024

루니 이야기

생로병사

아시는 분은 이미 다 아시겠지만, 루니는 우리집 강아지 세마리 중 한마리의 이름이다.


아메리칸 코카 스패니얼(American Cocker Spaniel) 종족 출신이며, 현재 1살이 채 안됐다.


네이버 지식 검색에서 루니 종족에 대하여 찾아 봤더니 다음과 같이 되어 있었다. 


<코카 스패니얼은 조렵견 그룹에서 가장 작은 견종이다. 튼튼하고 꽉 짜여진 몸을 가졌고 깔끔하게 조각된 듯하며 세련된 머리를 가져, 전체적으로 완벽한 균형과 이상적인 크기를 갖고 있다. 상당한 속도와 내구력을 갖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자유로우며 행복하고 건실하며 좋은 전체적 균형을 지니고 있다. 배와 다리의 두껍고 깃털처럼 화려한 털은 땅에 닿을 정도로 길며 매우 아름답다. 그러므로 털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낙천적이고 즐거운 성격을 가졌기 때문에 거의 어느 가족에나 다 잘 어울리고 적응한다.> 


위 내용은 칭찬일색이지만, 키워 보니 맞는 말이다.^^ 


그런데, 위 문장을 보면, 어법에 맞는 글을 쓰는 것이 쉽지 않음도 새삼 알 수 있다. 


<세련된 머리를 가져 : 이게 무슨 뜻일까?> 


<내구력을 갖고 있으며 : 생물에 ‘내구력’이라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다.> 


<좋은 전체적 균형을 지니고 있다. : ‘좋은 전체적’이라고 쉼표없이 형용사와 형용사를 바로 연결시켰기 때문에 어색하며 ‘균형을 지니고 있다’라는 술부의 주어가 무엇인지 모호하다.> 


위에서 '조렵견'이라는 어려운 말이 나왔는데 '사냥을 도우는 개'라는 의미이다. 추측건대, 한자로는 助獵犬이라고 쓸 것 같다. 영어로는 Gundogs라고 한단다. 우리가 사냥개라고 흔히 부르는 것은 수렵견이라고 한다.


루니라는 이름은 아내가 붙였다. 영국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악동이지만 천재적인 축구선수인 '웨인 루니'(Wayne Mark Rooney)의 이름에서 따 왔다.


그러나, 미국 사람처럼 영어를 하는 웅봉은 루니를 부르는 내 발음을 듣더니 Looney처럼 들린다고 주장하였고, 영문학과를 나온 은희는 선배님의 일기에서 묘사되는 루니의 행태를 보니, Rooney가 아니라 Looney가 맞겠다고 저 멀리 부산에서 친전글을 보내 왔다. 


사전 찾기 귀찮아 하는 분들을 위해서 영한사전에 나와 있는 Looney의 뜻을 옮겨 보면 '얼간이, 바보'라는 의미다. 하하, 물론, 웅봉이나 은희는 루니를 모욕주기 위하여 그런 것이 아니라 천방지축 날뛰는 모습이 귀엽다는 의미로 그렇게 불렀다고 본다. 


루니는, 처음에는 답답하게 보였던 것도 사실이다. 다른 강아지들인 까미와 코코는 금방 배변판에서 볼 일을 보는 것에 익숙했졌으나 루니는 배변판을 무시하였다. 


지나고서 보니, 루니는, 자기가 거주하는 좁은 평수의 펜스 안에 있는 배변판에 용변을 보기 싫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것도 모르고 아내는 배변판에 일단 용변을 봐야지 펜스에서 꺼내 주겠다고 고집하였고, 루니는 일단 풀어줘야지 용변을 보겠다니까 하고 고집을 피웠다. 루니는 자기가 자는 침소 바로 옆에다가 어떻게 오줌, 똥을 쌀 수 있겠냐는 깊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침소 옆의 배변판은 정말 급할 때만 비상용으로 쓰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아내와 루니 사이의 오해 때문에 까미와 코코는 얼른 용변을 보고 펜스에서 해방된 반면에 루니는 끝까지 용변을 보지 않아 혼자서 오랫동안 갇혀 있는 생활을 하기 일쑤였다. 그래도 루니는 불평 한 번 하지 않았다. 자기의 뜻을 알아줄 때까지 말없이 기다렸다. 


어느 날 드디어 양자 간에 의사소통이 되었고, 그 다음부터는, 루니는 펜스에서 풀어 놓으면 그 긴 귀를 휘날리면서 달려 나와 먼저 거실 한구석에 놓여 있는 또 다른 배변판 위에 올라가서 보기에도 시원하게 오줌을 한가득 싼다. 


큰 일을 볼 때는 우리 부부와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뒤로 돌아 서서 부끄러운 듯이 어색한 자세로 쭈그려 앉는다. 이윽고 배변이 시작되면 배변작업이 완성될 때까지 약간 흰자위가 보이는 몽환적인 눈빛을 하고서 고개를 들어 천장을 응시하며 그 후련함을 즐긴다. 


처음에는 까미, 코코와 다를 바 없이 루니의 집도 펜스였다. 다만, 까미와 코코는 같은 펜스에 있었고, 루니는 옆집이긴 하나 별도의 펜스였다. 같은 곳에 넣어 두면 루니가 까미와 코코의 밥을 빼앗아 먹기 때문이다. (카미는 요크셔 테리어 종이고, 코코는 말티즈 종이다.)


루니는 수초안에 자기 밥을 다 해치우고, 까미와 코코의 밥을 노린다. 아내가 한눈을 팔면, 펜스와 마룻바닥이 접촉하는 면의 밑으로 어떻게든 머리를 밀어 넣어(정말 놀라운 재주라고 아니할 수 없다.) 펜스를 들어버리고 까미와 코코의 밥그릇에 돌진힌다. 펜스를 등에 얹은 상태로 루니는 무념의 상태로 음식을 즐긴다.


혼비백산한 아내가 루니를 혼내고 그 다음부터는 까미와 코코가 밥을 다 먹을 때까지 루니를 지키고 서 있게 되었다. 


이 때의 루니의 표정은 혼자 보기 아깝다. 우선, 루니는, 아예 까미와 코코를 보지 않으려고 180도로 등을 지고 엎드린다. 막상 보면 마음이 동하니 아예 쳐다보지도 않겠다는 것이다. 얼굴에 잔뜩 심통이 나 있다. 


어떨 때는 그 놀라운 힘으로 펜스를 밀고 나오는 바람에 거실 한구석에 있어야 하는 펜스가 마루 한 중앙으로 진출해 있기도 하였다. 


어느 날 아내는 결단을 내렸다. 까미와 코코의 집은 그대로 놓아두되, 루니의 집은 튼튼한 쇠창살로 만들어 진 것으로 바꾼 것이다. 콘테이너 박스 같은 직사각형의 이 새집은 루니 아니라 덩치 큰 세퍼드가 와도 형태 변형 불가능이다. 


20년 동안 살면서 아내의 목수 능력에 늘 놀란다. 개를 키우자마자 부엌과 다용도실을 연결하는 문 밑에 무릎높이의 여닫이 칸막이 문을 만들어 달았다. 강아지들은 그 문 때문에 그곳을 지나가지 못하지만, 우리는 그 위로 빨래 통에 빨랫감을 던져 놓을 수 있다. 


이 새로운 개집도 재료를 배달받아 집에서 조립하였는지, 아니면 완성품을 배달받았는지 (완성품이라면 그 크기 때문에 현관을 통과하지 못했을 것인데…) 모르겠다. 


루니가 가장 행복해 할 때는 물론 식사 시간이다. 아내가 거실 한쪽에 있는 선반에서 사료봉지를 만지면, 거의 날아 다니면서 뛰어 놀던 루니는 일체의 동작을 중지하고, 재빨리 자기 집의 문 앞으로 가서 엉덩이와 뒷다리를 바닥에 얌전히 붙이고 두 앞발을 가지런히 모아 세운 채 시립의 자세로 정좌하여 있다. 영화나 그림에서 흔히 보는 명견의 자세 있지 않은가. 또는 덕수궁 박물관 같은데 가서 보면 수염을 기른 옛선비들이 의자에 단정히 앉아 있는 자세 있지 않은가. 바로 그런 모양과 그런 마음가짐이다.


루니는 그 자세로 눈을 초롱초롱 빛내면서, 사료봉지에서 밥그릇으로 사료를 옮겨 담는 아내의 일거수, 일투족을 주목한다. 


루니가 두 번째로 즐거워 하는 시간은 내가 퇴근할 때이다. 퇴근을 하여 아파트 출입문의 키패드를 누르면 강아지 세마리가 경쟁적으로 현관으로 뛰어 나오면서 짖는 소리가 들린다. 


우리 집은 신발장이 있는 현관에서 거실로 들어가는 곳에 문이 하나 있다. 그 문은 유리 칸막이가 있는데 왜 그렇게 만들어 놓았는지 몰라도 밑에서 세 칸까지는 간유리로 되어 있다. 그래서, 안이 들여다 보이지 않는다. 강아지 세마리는 그 안에서 난리다. 빨리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문을 여는 순간 세마리가 내 품에 안겨든다. 강아지들은 질투심이 강하다. 자기를 먼저 안아달라고 필사적이다. 처음에는 루니도 까미와 코코와 비슷한 크기였다. 그러나, 지금은 루니는 까미의 다섯배, 코코의 세배 덩치로 컸다. 그러니 루니가 설쳐대면 까미와 코코는 발밑에서 차인다. 


궁여지책 끝에 코코는 자기의 사랑을 증명하는 방법으로 내 발가락을 깨무는 방법을 택했다. 바닥으로 기면서 발가락을 깨문다. 나는 아프다. 그래서 코코가 그 진한 애정표현을 안해줬으면 좋겠지만 그것을 알게 해 줄 방법이 없다. 그래서 얼른 두꺼운 실내화를 꺼내 신는다.


루니의 키가 큰 것을 어느 순간 알았다. 퇴근하고 집에 들어오는데 아니나 다를까 현관문 저편에서 세마리가 요란하게 짖어대고, 엉켜서 뒹구는 소리가 들렸다. 무심코 신발을 벗던 나는 깜짝 놀랐다. 


밑에서부터의 세 칸의 간유리를 지나 네번째 칸부터는 투명한 유리인데 루니의 얼굴이 그 네 칸 째의 유리 위로 달뜨듯이 둥실 떠올랐던 것이다. 루니는 기쁜 표정으로 헐떡거리고 있었다. 나 이렇게 컸어요 하듯이. 


루니는 서두에서 설명하였듯이 조렵견 품종이다. 조렵견은 여러가지 역할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땅에 있는 새떼에게 달려들어 세때를 하늘에 날리거나 총에 맞아 숲속 깊이 떨어진 새를 수색하여 찾아오는 일이다.


기골이 장대한 무인의 아들이 무인이 되고, 글 한 줄 읽으면 하늘의 이치를 깨닫는 선비의 아들은 선비가 되듯이, 루니에게는 그 조렵견의 피가 연면히 이어지고 있다. 


루니는 한시도 쉬지 않고 집안 곳곳을 수색하고 다닌다. 이젠 키가 커서 높은 식탁 위도 수색 대상이 된다. 뒷발을 까치발로 만들어서 선채로 앞발로 식탁 위에 있는 물건들을 죄다 바닥으로 끌어 내린다.  


강아지들의 활동 구역은 거실과 주방처럼 오픈된 공간에 한정된다. 방은 일체 출입이 허용되지 않는다. 한 번은 어머님 방에 들어가면서 잠시 문을 열어 놓았다. 루니는 번개처럼 들어와서 아무 거나 눈에 띄는대로 덥썩 몰더니 번개처럼 도로 튀어 나갔다. 자기에게 허여된 시간이, 즉, 잡혀서 쫓겨 나갈 때까지의 시간이 지극히 찰나적인 줄 알기 때문에 루니는 천천히 물건을 고를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루니는 끊임없이 물어 뜯는다. 텔레비젼과 연결된 서라운드 시스템의 스피커의 선은 벌써 결딴 냈고, 우리 집의 벽 귀퉁이와 거실 탁자 다리 등도 한참을 갉아 먹었다. 


며칠 전에는 루니와 코코는 개껌을 빼앗으려고 아이스 하키 선수들처럼 서로 다투었다. 작지만 다부진 코코의 보디 체크에 밀려 루니는 텔레비젼에 쿵하고 부딪혔다. 제법 오래 된 우리집 텔레비젼의 화면은 순간 흔들리면서 녹색으로 변하더니 곧이어 꺼지고 말았다. 루니가 안락사를 시킨 것이다. 


나는 여름에 집에서 대부분 팬티 바람으로 있다. 팬티 바람으로 저녁을 먹고, 거실 소파에 앉아서 텔레비젼을 보고 있노라면 루니는 긴 개 껌을 물고 내 허벅지 위에 자기 배를 깔고 엎드려 눕는다. 그리고, 담배를 피우듯이 한가한 표정으로 질겅질겅 개껌을 씹는다. 벗은 내 허벅지에서 루니의 더운 입김이 느껴지고, 때로는 침까지 떨어지며, 루니의 입속에서 놀던 축축한 개껌이 내 허벅지 위로 떨어지기도 한다. 나는 그게 싫다. 그러나, 루니의 행복을 방해하기 싫어서 참는다.  


루니는 개껌을 씹다가 지겨워지면 그것은 아무데나 뱉어 놓고, 이번에는 작은 고무공을 어디선가 물고 온다. 그리고, 내 허벅지에 떨어뜨린다. 던져 달라는 것이다. 텔레비젼을 보면서, 또는 책을 읽으면서 나는 한 손으로 이 방향, 저 방향으로 공을 던져준다. 


루니는 키가 제법 높은 소파에서 한달음에 점프를 하여 거실 마룻바닥에 착륙한 후 전속력으로 공을 추격한다. 때로는 미끄러운 마룻바닥에서 브레이크가 잡히지 않아 주르륵 미끄러지기도 한다. 


10여 차례 공을 던져주다가 지겨워진 내가 그만두려고 하면 루니는 내 얼굴을 빤히 처다 보면서 고개도 갸웃거려 가면서 잠시 기다리다가 내 손을 아주 아주 약하게, 그보다 더 약할 수 없게 살살 문다. 좀 더 놀아주세요라고 말하는 것이다.


끊임없이 수색하고, 공 던져 달라고 하고, 그것을 전속력으로 뛰어 가서 물어 오고 하는 모습은 루니가 조렵견이라는 증거다.


또 하나 루니가 조렵견이라는 증거가 있다. 아내가 외출을 할 때 루니는 자기 집에 갇힌다. 나만 집에 있을 때는 루니를 잘 풀어주지 않는다. 똥도 왕창 싸고, 잠시만 한 눈을 팔면, 핸드폰이 입안에서 씹히기 직전에 발견되고, 신문같은 것은 한석봉의 엄마도 더 이상 잘게 썰 수 없을만큼 갈기 갈기 찢어 발겨 놓는 등 나로서는 루니가 감당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루니가 풀어져 있으면 아무 것도 못하기 때문이다. 


어떨 때는 하루 종일 갇혀 있기도 한다. 그런데, 너무 신기한 것은, 풀어 놓으면 잠시도 쉬지 않고 이 소파에서 저 소파로 날아 다니기 까지 하는 루니가 일단 자기 집에 있으면 하루 종일 갇혀 있어도 풀어 달라고 낑낑대거나 짖지 않고 조용히 잘 견딘다는 점이다. 


이것은 정말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마도 주인이 사냥을 할 때 사냥감을 포착할 때까지 숲속에서 몇시간이고 소리없이 매복하는 유전자가 남아 있어서인 모양이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그렇게 인내심이 있겠는가.


다만 가끔 너무 심심하면 자기의 크고 단단한 플라스틱 밥그릇을 가지고 심술을 부린다. 털이 북실북실한 그 뭉툭한 앞발로 밥그릇을 친다. 그러면 그 밥그릇은 쇠로 만든 창살에 부딪혀서 요란한 소리를 낸다. 반동으로 댕그르르 구르는 밥그릇을 루니는 냅다 한 번 더 갈긴다. 밥그릇은 죽는다고 소리를 지른다. 


이제 이 글을 다 읽었다면 은희는 견해를 바꿔야 한다. 또한, 나는, 웅봉 앞에서 루니를 발음할 때 L과 R발음에 신경을 쓸 것을 엄숙하게 맹세하는 바이다. 루니의 명예를 지켜주기 위해서이다. 루니는 결코 Looney가 아니라 Rooney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루니 종족을 소개한 글 중 특히 다음 부분이 맞다고 여러분들에게 확인해줄 수 있다. <무엇보다도 자유로우며 행복하고 낙천적이고 즐거운 성격을 가졌기 때문에 거의 어느 가족에나 다 잘 어울리고 적응한다.> 


아파트에서 코카 스패니얼을 키우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러나 그만큼 즐거움을 준다. 왜냐하면, 그 견종은, 자유로우며 행복하고 낙천적이고 즐거운 성격을 가졌기 때문에 그 개를 키우는 사람도 자유롭고 행복하고 낙천적이고 즐겁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행복 바이러스라는 말이 괜히 생겼겠는가. 


위 글은 2009년 10월 27일에 내 개인 홈페이지에 썼던 것이다. 


위 글에서의 루니는 1살 정도였지만 이제는 16살의 노견이 되었다. 


눈이 멀었고, 귀도 먹었다. 그런지 제법 됐다. 털이 거의 다 빠져서 가죽이 보이고 비쩍 말랐다. 목을 가누지 못한다. 걸어 다닐 때 목이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하루종일 웅크리고 있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하염없이 돌아다닌다. 그리고 똥과 오줌을 이곳저곳 싸댄다. 외출해서 돌아오면 거실에 똥냄새가 진동한다.


말을 할 수 없으니 어떤 육체적 고통을 겪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충분히 비참하다는 것은 넉넉히 짐작할 수 있다. 동물은 묵묵히 견딜 수밖에 없다.


어제 밤에 거실에서 루니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루니가 갑자기 일어설 수 없게 되었다. 눈이 안 보이고 귀가 들리지 않게 되었을 때는 감정표현을 하지 않았는데 일어설 수 없게 되니까 루니는 극도의 공포를 느꼈던 모양이다.


루니는 엎드린채 마치 헤엄치듯이 미끄러운 마룻바닥을 계속 앞발로 헤집고 있었다. 일어서려고 필사적으로 용을 썼다. 루니는 자신이 갑자기 일어설 수 없다는 것을, 더 이상 걸을 수 없다는 것을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던 것이다.


아내는 그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어서 동물병원 의사에게 보냈다. 동물병원 의사는 병원으로 데리고 와도 병원에서 해줄 수 있는 일이 없다고 하였다.


불굴의 의지를 가진 루니는 계속해서 일어서려고 마룻바닥을 헤엄치고 있었다. 보다 못한 아내는 루니의 등을  부여잡고 일으켜 세워 주었다. 그러자 루니는 마구 뛰려고 했다. 아내가 종종걸음으로 따라다녔다.


지친 아내가 루니를 놓아주면 루니는 또다시 마룻바닥을 헤엄치는 일이 되풀이 되었다.


아내는 어젯밤 루니 옆을 지키느라 밤을 샜다. 


새벽 출근 길에 보니 루니는 보이지 않는 눈을 뜬 채로 헐떡이고 있었다. 


이제 헤어질 때가 됐다. 루니는 떠나야 한다. 아내는 루니의 안락사를 절대 반대한다.


나는 사람들에게도 안락사가 허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는게 고통의 연속에 불과하다면 살아 있는게 무슨 의미가 있다는 말인가.


죽음은 불가피한 일이다. 불가피한 일은, 쉽지 않지만 담담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루니는 집에 데리고 온 첫날에도 울지 않았다. 다른 강아지들이 첫날에 낑낑거리면서 우는 것과 달랐다. 용맹스러운 숫컷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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