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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 변호사 Dec 09. 2023

영화 더블크라임과 일사부재리

법률이란...

영화 ‘더블 크라임’은 1999년에 나온 영화다. 아주 예쁜 애슐리 쥬드가 주인공이다. 리비(애슐리 쥬드)는 남편 닉과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다. 부부가 바다에 띄워놓은 요트에서 와인을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잠에서 깨어나보니 자기의 양손과 옷이 피칠갑이었다. 닉은 보이지 않았다. 요트는 항구로 돌아오고 대대적인 수색이 벌어졌지만 끝내 닉의 시체는 발견되지 않았다.


검사는 애슐리를 살인죄로 기소하였다. 살인죄가 성립하려면 사람을 죽여야 하고 피해자가 죽었다는 증거는 시체다. 이 사건에서는 시체가 발견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바다로 나갈 때 요트에 닉과 애슐리 두사람만이 있었고, 닉은 사라졌고, 애슐리의 양손과 옷에 묻은 피는 닉의 혈액형인 것이 확인되었다면 닉의 시체가 발견되지 않아도 살인죄로 기소할 수 있다.


형사사건에서는 합리적 의심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피고인이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고 그 의문이 합리적일 때는 무죄를 선고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따라서 유죄는, 무죄일 수도 있다는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때에만 선고되어야 한다. 영어로 표현하면 ‘beyond reasonable doubt’이다.


리비와 닉이 산에 놀러가서 캠핑을 하였고 똑 같은 상황이 발생하였다면 검사는 살인죄로 섣불리 기소하지 못한다. 닉이 산 속에서 몰래 다른 곳으로 떠나 버렸거나 산에 놀러 온 양아치에게 납치됐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합리적인 범주에 속한다.


바다에서 사라진 것은 상황이 다르다. 닉이 바다 한 가운데에 있는 요트에서 수영으로 헤엄쳐 빠져 나가거나 해적이 몰래 요트에 접근하여 쥐도 새로 모르게 닉을 납치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하고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합리적인 의심이 아니기 때문이다.


닉은 사라지기 전에 해안경비대에게 다급하게 구조요청을 하였고 그것이 녹음되었다. 칼에 찔렸다고 하면서 맙소사, 맙소사 하고 비명을 지르다가 무전이 끝겼다. 그것도 닉이 칼에 찔려서 살해당했다는 간접증거가 된다.


리비는 유죄선고를 받았고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교도소에 들어갈 때 가장 절친한 친구였던 앤지에게 서, 너 살 정도 되는 아들 매티를 입양해 달라고 부탁했다. 닉은 자신이 사고로 사망하면 리비가 200만 달러를 받을 수 있는 보험을 들어 놓았다. 리비는 그 보험금을 신탁하고 앤지에게 그 돈으로 매티를 양육해달라고 부탁한다.


여기서 첫번째 엉터리가 나온다. 이 세상의 어떤 보험회사도 아내가 남편을 죽였는데 남편의 생명보험금을 지급하는 곳은 없다. 약관에 면책조항이라고 하여 그런 경우에는 보험금 지급을 하지 않는다고 명시해 놓는다. 상속도 마찬가지다. 아버지를 죽인 자식은 민법 제1004조에서 규정해 놓은 상속인 결격사유에 해당되어 아버지 재산의 상속을 받지 못한다. B가 죽으면 A가 경제적 이득을 얻는 지위가 될 때  A가 B를 살해하면 A가 그 경제적 이익을 누리지 못하게 법률 시스템을 만들어 놓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앤지는 처음에 몇 번 매티를 데리고 면회를 오더니 어느날 갑자기 연락이 뚝 끊긴다. 리비는 여러가지 방법을 동원하여 마침내 앤지의 집 전화번호를 알아냈다. 그리고 앤지와 닉이 함께 살고 있고 이 모든 일을 앤지와 닉이 꾸민 짓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교도소 동료 중에는 한 때 변호사였던 사람이 있다. 그 사람으로부터 이중처벌 금지의 원칙을 배운다. 닉을 살해한 죄로 이미 유죄 확정판결을 받았으니 또 다시 닉을 살해한다고 해도 처벌받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나중에 출소하여 닉을 찾아내면 당당하게 닉을 처형해도 된다고 하였다.


리비는 6년을 복역하고 가석방된다. 그리고 마침내 닉을 찾아낸다. 또 한 번 닉에게 살해당할 뻔하지만 위기를 넘기고 우여곡절 끝에 닉을 총으로 겨누게 된다. 닉은 “당신이 나를 쏘면 살인죄로 감방에 가게 된다”라고 경고한다. 리비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면서 이중처벌금지의 원칙이 있어서 그럴 일이 없다고 말한다. 그 옆에 있던 전직 법대 교수도 그 말을 보증한다. 닉은 리비의 총에 맞아 죽고 영화는 끝난다.


이 영화의 원래 제목은 Double Jeopardy다. 이중 위험(이중으로 소추될 위험)이라는 뜻이다. “한 범죄로 유죄확정을 받은 피고인은 같은 범죄로 또 다시 재판을 받지 않는다”는 원칙으로 미국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다. (The Double Jeopardy Clause in the Fifth Amendment to the US Constitution prohibits anyone from being prosecuted twice for substantially the same crime.)


우리나라에서는 일사부재리(一事不再理) 원칙이라고 한다. 말 뜻 그대로 풀이하면 동일한 사건은 다시 심리(審理)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헌법 제13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은 행위시의 법률에 의하여 범죄를 구성하지 아니하는 행위로 소추되지 아니하며, 동일한 범죄에 대하여 거듭 처벌받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는데 두번째 문장이 일사부재리 원칙을 선언한 것이다.


영화에서는 리비가 닉을 살해한 사건으로 이미 유죄확정을 받았으니 닉을 다시 죽여도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다고 설정했다. 이것은 매우 황당한 발상이다.


철수는 2023년 5월 7일 새벽 4시경에 서울 서초구 서초대로 50길에 있는 세븐일레븐에 몰래 들어가서 라면 10개를 훔쳤다. 그리고 그 다음날 새벽 4시경에 다시 똑 같은 세븐일레븐에 몰래 들어가서 라면 10개를 훔쳤다.


철수는 두 번째 범행 때 붙잡혀서 두 건의 절도에 유죄선고를 받고 징역 1개월을 복역하였다. 그런데 사실은 첫번째 범행은 영희가 한 것이었고 나중에 CC TV와 영희의 자백에 의하여 그것이 사실로 확인되었다.


철수는 이제 그 세븐일레븐에 들어가서 언제든지 라면 10개를 들고 나올 수 있는 권한을 얻은 것인가? 아니면 타임머신을 타고 정확하게 2023년 5월 7일 새벽 4시경의 과거로 돌아가야만 라면 10개를 가지고 올 수 있게 되는건가?


영화에 따르면 리비는 억울하게 감방생활을 하였기 때문에 이제 닉을 언제든지 살해할 수 있는 살인면허를 받은 것이 된다. 영화 속의 대사를 빌리면 축제 퍼레이드 가운데서 닉을 죽여도 처벌받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리비가 (1) 1993년 7월 1일에 닉을 워싱턴 주 시애틀 앞바다의 요트에서 칼로 찔러 닉을 살해한 범죄와 (2)1999년 10월 2일에 루이지애나 주 뉴올린즈에서 총으로 쏴서 닉을 살해한 범죄는 동일한 범죄가 아니라 별개의 범죄다. (영화 속에서는 범행 일시가 나오지 않는다. 내가 예를 든 것이다.


따라서 (1)의 범죄와 (2)의 범죄는 무관하다. 피해자가 동일하다고 동일한 범죄가 되는 것이 아닌 것이다. 리비는 (2)의 범죄로 또다시 철창 신세를 져야한다.


영화가 아니라 진짜였다면 교도소에서 만난 전직 변호사, 닉을 총으로 쏠 때 옆에 있었던 전직 법대교수의 말을 믿은 것을 리비는 뼈져리게 후회하게 될 것이다.


(1)의 사건에 대하여는 재심을 청구하여 무죄를 받아야 한다. 억울하게 교도소에서 보낸 6년의 세월은 어떻게 하는가? 딱하지만 국가에서 돈으로 보상받는 것, 닉의 재산이 있다면 닉의 재산으로 배상받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끊임없이 엉터리 법률 지식을 전수하고 있다. 엉터리 역사도 전수하고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진짜 법률이 그렇게 만들어져 있고 법률이 그렇게 집행되고, 진짜 과거에 그런 일이 그렇게 발생하였던 것으로 믿는다.


일사부재리 원칙이 적용되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법률가들을 헷갈리게 만드는 사건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이것은 실제 발생한 사건이다.


박모는 81세의 김모씨를 승용차로 들이받아 사망케하였다. 처음에는 단지 교통사고인 줄 알고 검사는 교통사고처리특례법위반(업무상과실치사)죄로 기소하였고 금고 6월에 집행유예 1년의 형이 선고되고 확정되었다.


그런데 박모는 사실은 상습적으로 교통사고를 이용하여 보험금을 편취하는 인간이었고 그 이후에도 여러 번 일부러 교통사고를 내고 보험금을 편취한 일이 발각되었다. 그러자 검사는 과거에 김모씨를 승용차로 들이받은 사건도 사실은 실수에 의한 교통사고가 아니라 일부러 들이받아 김모씨를 사망케한 것이 아닌가하는 의심을 하게 됐고 수사 끝에 박모를 살인죄로 기소하였다.


이 때 법률가라면 마땅히 "아, 그것은 일사부재리 원칙이 적용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가?" 하는 의문을 품게 된다. 박모가 짐승보다 못한 놈이라는 점에 대하여는 어떤 법률가도 다른 생각을 하지 않지만, 법률은 법률인 것이다.


법률은 박모 한사람을 단죄하기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미란다 원칙의 주인공인 미란다도 천하에 나쁜 잡놈이었다. 그렇지만 그 미란다를 풀어주더라도 경찰관이 범인을 체포할 때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 묵비권을 행사할 권리 등을 ‘반드시’ 알려주게 하는 법을 만들자는 목적에서 탄생한 것이 미란다 원칙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경험없는 일반인을 수사기관이 체포할 때 겁을 주거나 살살 꼬셔서 허위자백을 받는 일이 많아질 것이므로.


검사가 일사부재리 원칙을 모를 리가 없다. 그래서 박모를 기소할 때 기자들에게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살인죄와 교통사고처리특례법위반죄는 구성요건의 구조나 죄질, 법정형이 현격히 다를 뿐만 아니라 행위태양도 현저히 다르다고 볼 수 있어 양죄는 전혀 별개의 범죄이므로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죄의 기판력은 살인죄에는 미치지 않는다. 다만 이미 확정된 교통사고처리특례법위반죄의 판결은 재심절차에 의하여 구제받을 수 있다.”


자,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특정한 일시, 장소에서 같은 피고인이 같은 자동차로 같은 피해자를 들이받은 사건을 두 개로 쪼갤 수가 있는가? 두 개로 쪼갤 수 있어야 일사부재리 원칙 적용을 피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전주지방법원 군산지원(2009 고합 132)에서는 일사부재리 원칙을 피할 수 없다고 보았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그 규범적 평가에 있어서는 교통사고처리특례법위반죄와 살인죄는 구성요건이나 보호법익이 다르다고 하더라도, 판결이 확정된 사건과 이 사건은 모두 피고인이 동일한 일시 및 장소에서 동일한 자동차로 동일한 피해자를 충격하여 사망에 이르게 하였다는 것을 그 범죄내용으로 하고 있어 피고인의 범행 동기, 고의 등에서만 차이가 있을 뿐 범행의 일시, 장소, 범행의 방법이나 태양 등이 동일하므로 피고인이 받은 확정판결의 범죄사실(교통사고처리특례법위반)과 이 사건 공소사실(살인)은 그 기초가 되는 사회적 사실관계가 기본적인 점에서는 동일하다고 봐야 한다. 따라 이 사건 공소사실에 대해서는 이미 확정판결이 있었다고 봐야 하므로 면소를 선고한다.


검사는 항소를 했지만 항소심인 광주고등법원(전주)은 항소를 기각했고(2010노31), 검사는 상고를 했지만 대법원에서도 상고가 기각됐다.(2010도7050)


살인죄가 인정됐으면 최소한 징역 15년을 교도소에서 복역했어야 하는 박모가 불과 금고 6월에 집행유예 1년의 형으로 김모씨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죗값을 치른 결과가 되어 버렸다. 


이런 기사를 신문에서 보면 법원의 판사라는 인간들은 도대체 정의감이 있니, 없니 하겠지만, 위에서 본 것처럼 법률의 일반원칙을 지켜나가기 위하여서는 구체적 사건에서는 어이없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이것이 싫으면 판사에게 엄청난 재량을 주는 것이다. 판사 네 마음대로 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재량을 주는 것은 더 위험하다. 인간은 권력을 주면 타락하기 때문이다.


영화나 드라마 제작자들이 법률점검을 미처 하지 못해서 또는 역사적 사실이 실제로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몰라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 영화의 재미를 위해서 즉 돈을 벌기 위해서 일부러 왜곡하는 경우가 많다. 어떻게든 돈을 벌고 싶은 사람에게 양심을 기대할 수는 없다. 결국은 시청자들이 가려서 보고, 가려서 해석할 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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