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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 변호사 Mar 20. 2023

무죄선고율이 낮은 이유와 그것에 따른 문제점(하)

무죄선고율이 낮을 때의 문제점

우리나라의 무죄선고율은 해마다 다를 수 있고 통계방법에 따라 다르게 나올 수 있지만 많아봤자 3%를 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억울한 사람이 3%나 된다고? 하면서 3%의 수치도 많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3% 안에는 유죄선고를 받아야 하는데 판사의 오판으로 무죄를 받은 경우도 있고, 도덕적으로는 분명히 감방에 들어가야 할 나쁜 짓을 했는데 법리적으로 무죄를 받은 경우도 있으니까 3% 모두가 억울한 사람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반대로 유죄선고를 받은 사람 중에서 억울한 사람도 있음은 물론이다.)


이렇게 낮은 무죄선고율이 사법 체계가 갖추어진 1953년 이후 일관되게 유지되고 있다.


무죄선고율이 낮은 이유는 무엇일까? 판사가 넙죽넙죽 검사가 기소한 대로 유죄선고를 잘 해 줘서 그럴까?


또는 앞의 글에서 인용한 심리학 교수의 주장대로 법원에서 사용하는 (무죄일지 모른다는) 합리적 의심 기준이 현저하게 낮거나, 대한민국의 검사들이 판사가 유죄결정을 할지, 아니면 무죄결정을 할지를 외국의 검사들보다 더 정확히 예측하기 때문에, 즉 대한민국의 검사들이 진실발견을 잘하는 것이 아니라 판사행동에 대한 예측을 잘하기 때문일까? 


그러나 우리나라 판사들은 합리적 의심을 외국의 어느 판사 못지 않게 잘해서 무죄선고를 거뜬하게 해낸다.


검사가 피의자가 유죄인지, 무죄인지 증거판단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저렇게 주장하면 판사가 유죄선고를 해 줄 것이라고 예측해서 기소를 한다고? 황당하기 이를데 없는 소리다.


“대한민국 프로 야구 선수들은 대부분 중, 고등학교 때부터 같은 학교나 이웃 학교에 다니면서 친했고, 특히 A선수와 B선수는 국가대표를 할 때 같은 방에서 숙식하였으므로 시합에서 공정한 승부를 하지 않는다.”라고 누가 말하면 프로 야구선수들은 어이없어 할 것이다. 친한 것하고 승부는 별개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검사, 판사도 같은 대학을 다녔다거나 사법연수원 동기였다고 하더라도, 설사 형제지간이라고 하더라도 짜고 치는 고스톱 같은 짓은 하지 않는다.


무죄선고율이 낮은 이유는, 지난 70여년간 유지되어 온 낮은 무죄선고율에 검사들이 길들여져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로 약간이라도 애매한 회색지대(grey area)에 있는 사건에 대해서는 손쉽게 불기소 결정을 해버리기 때문이다.


잘못 기소된 사건은 법원에서 치열한 공방을 거쳐서 무죄로 구제된다. 피고인과 변호인은 검사가 제출한 증거를 모두 볼 수 있고 그 증거에 대하여 일일이 반박할 수 있다. 판사는 제3자적 입장에서 검사와 피고인(변호인)의 공방을 지켜보고 신중한 판단을 내린다.


기소된 사건에서 검사, 피고인(변호인)이 치열하게 공방하고 판사가 객관적 입장에서 심판을 보는 것과 같은 엄격한 심사가 불기소 결정이 되는 과정에서도 똑같이 행하여질까?


검찰개혁 이후에는 경찰이 독자적으로, 즉 검사의 개입없이 불송치 결정을 하게 됐다. 불송치 결정이란, 혐의가 없다고 경찰이 판단하였으므로 사건을 검찰에 송치할 필요가 없다고 결정하였다는 뜻이다.


불송치 사건은 경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검사에게 일단 넘어가서 – 사건 ‘송치’가 아니라 사건 기록 ‘송부’라고 한다 - 검사가 재검토를 하기는 한다. 형사소송법 제245조의 5와 제245조의 8에 의하면 경찰은 불송치결정한 사건기록(관계서류와 증거물)을 검사에게 송부하고 검사는 불송치결정이 위법 또는 부당한 때에는 경찰에게 재수사를 요청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검사가 “종전처럼 모든 사건을 경찰로부터 송치받아서 직접 보완수사 하는 것”과 “마치 판사처럼 사건기록을 검토한 후 서면으로 수사요청을 하는 것”은 사건처리의 속도 면에서도 크게 차이가 날 뿐만 아니라 지난 번의 글, “검찰개혁은 잘한 일일까?(4)”에서 설명했다시피 강력사건 외에는 아무래도 경찰의 수사능력이 검사보다 떨어질 수 밖에 없으므로 재수사 요청을 해봤자 여전히 부실수사로 끝날 가능성이 많다.


그런데 사실은 검찰개혁 이전에도 여전히 불기소 결정 과정은 제대로 심사를 받지 않았다. 단지 검찰개혁 이후로 더 나빠졌을 뿐이다.


기소된 사건은 제1심, 항소심, 상고심의 3번의 재판, 즉 3번의 심사를 받는다. (대법원이 담당하는 상고심은 사회적 이목을 끄는 중요 사건이나 전직 대법관이 소송대리인으로 나서지 않는 한 유명무실하므로 실제로는 2번의 심사를 받는 것과 같다.)


제1심이 지방법원 단독판사의 관할이라면 항소심은 지방법원의 항소부에서 담당하고, 제1심이 지방법원 합의부의 관할이라면 항소심은 고등법원에서 담당한다. 반드시 그렇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항소심의 판단이 대체로 더 현명하다. 항소심 판사의 경험이 더 많기도 하지만 제1심을 거친 사건을 다시 한번 더 정밀하게 검토하기 때문에 그렇다고 볼 수 있겠다.


불기소 결정도 제도상으로는 그렇게 세 번의 심사를 받을 수 있다. 지방검찰청 검사가 불기소 결정을 하면 고소인은 항고를 할 수 있고 고등검찰청 검사가 항고사건을 담당한다. 고등검찰청 검사가 항고기각 결정을 하면 고소인은 대검찰청에 재항고를 하거나 법원에 재정신청을 할 수 있다.  


검찰개혁 이후에도 경찰의 불송치결정에 대하여 고소인이 이의신청을 하면 형사소송법 제245조의 7에 따라 경찰은 검사에게 사건기록을 송치하므로 송치받은 검사가 불기소 결정을 하면 위와 똑같이 항고 및 재항고(또는 재정신청)의 절차를 거칠 수 있다.


문제는 고등검찰청의 검사들이다. 고등검찰청 검사의 상당수는 정년퇴직할 때까지 검사로 있기로 굳게 결심한 사람들이다. 그게 어때서? 라고 할 수 있겠지만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일의 의욕이 없는 사람들이다. 검찰총장보다도 사법시험을 먼저 합격한 늙은 검사들이 수두룩하다. 정년 퇴직할 때까지 이 고등검찰청에서 저 고등검찰청으로 떠돌아다닌다. “배째라!”, “아무 데나 보내라!”라고 버티는 이 사람들에게는 인사권 행사가 의미가 없으므로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아도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그러니 항고 사건은 법원의 항소심 재판과는 다르게, 아주 일부 뜻있는 고등검찰청 검사가 사건을 맡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여지없이 기각된다. 기각하는 이유를 쓰라고 해도 고등검찰청의 고참 검사들은 말을 듣지 않는다. 고등법원 재판부의 판결문 같은 것을 고등검찰청 검사의 항고기각 결정문에서 기대하기는 힘들다.


한편 재정신청은 법원에서 사건기록을 검토하여 기소할 수 있는지 여부를 결정하라는 것인데 수사미진의 경우에는 법원이 직접 수사할 수도 없으므로 큰 의미가 없다. 형사소송법 제262조 제2항에서는 “법원이 필요한 때는 증거조사를 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여 놓았으나 법원이 그 조항을 활용하여 수사기관이 하듯이 적극적인 수사를 하지는 않는다. 법원 입장에서는 본연의 업무인 재판을 하는 것만 해도 벅차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문제점이자 가장 큰 문제점은 기소된 사건에서는 피고인과 변호인이 검사가 제출한 증거를 모두 열람, 복사할 수 있으므로 각 증거에 대하여 반박할 수 있는데 수사 중인 사건에서는 고소인은 피고소인이 도대체 뭐라고 거짓말을 하고, 무슨 부합 증거를 냈는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기소된 사건에서는 검사와 피고인이 사건의 당사자, 즉 민사소송의 원고와 피고에 해당하므로 모든 소송자료를 공유할 수 있지만, 수사단계에서의 고소인의 지위는 피의자와 대립하는 당사자가 아니라 증거 수집 대상에 불과하다. 따라서 경찰이나 검사가 알아서 판단하면 되는 것이고 참고인이나 피의자의 진술은 사생활 보호 차원에서도 공개할 수 없다고 하는 법률이론이 근거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우스꽝스러운 형식논리에 지나지 않는다.


피고소인의 거짓말을 고소인이 가장 잘 반박할 수 있고 사생활 보호의 문제는 기소된 사건에서도 똑같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수사 중인 사건에서도, 피고소인이나 관련 참고인들의 진술, 피고소인 제출 증거 등을 수사의 필요상 당장 공개할 수 없는 경우가 있을지라도 적어도 수사종결 이전에는 고소인이 접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고소인으로 하여금 탄핵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안된다고 하면 적어도 항고사건이나 재정신청사건에서는, 즉 일단 지방검찰청 검사가 종결처분(불기소결정)을 한 사건에 대해서는, 고소인에게 사건기록 ‘전체’의 열람, 복사를 허용해야 한다. 기소된 사건에서 피고인이 고소인의 주장을 탄핵하여 무력화시킴으로써 무죄 선고를 받을 수 있는 것처럼 수사 중인 사건에서도 고소인이 피의자(피고소인)의 주장을 무력화 시켜 피의자를 기소시킬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서이다.


검사가 기소한 사건이 무죄가 될 경우에 검사는 여러가지로 피곤해진다. 그러나 현행 시스템에서는 더 열심히 수사하여 기소할 수 있는 사건을 불기소 결정했을 때 검사는 아무 견제도 받지 않는다. 그렇다면 검사는 회색지대에 있는 사건을 어떻게 처리하겠는가. 당연히 불기소 결정으로 간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직접 뇌물을 받은 것이 한 푼도 없었는데 뇌물죄로 처벌받았다. (어떻게 뇌물죄로 처벌받게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은 다른 글에서 설명할 생각이다.) 대법관들 사이에서도 치열한 논쟁이 있었지만 그런 유형의 뇌물죄도 성립한다고 최종결론이 났고, 그 판례에 기초하여 이전에는 유사사건에서 처벌을 피했던 공무원을 뇌물죄로 처벌할 수 있게 되었다. 제1심에서 무죄선고가 되었지만 곽상도 전 의원도 그 판례에 근거하여 뇌물죄(수뢰죄)로 기소된 것이었다.


똑같은 종류의 사건이었는데 당사자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아니라 평범한 공무원이었다면 검사는 보나마나 그 공무원에 대하여 불기소 결정을 하였을 것이고, 그렇다면 공무원 본인은 뇌물을 한 푼도 받지 않아도 민간인인 공범이 뇌물을 받으면 공무원도 뇌물죄의 공범으로서 처벌받는다는 판례가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검사는 무죄선고 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회색지대에 있는 사건을 기소해야 한다. 그래야 전향적인 판례가 나온다. 전향적인 판례라는 것은 처벌받아야 마땅한 범죄인을 처벌할 수 있게 하는 판례를 뜻한다.


현재의 우리 사법시스템 하에서는 죄가 없는 사람이 억울하게 처벌받을 확률보다는 처벌받아야 할 사람이 처벌받지 않을 확률이 훨씬 크다. 그 증거가 무죄선고율이 3%도 안된다는 통계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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