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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 변호사 Mar 11. 2023

무죄선고율이 낮은 이유와 그것에 따른 문제점(상)

무죄선고율이 낮은 이유

모 대학교의 심리학과 교수가 다음과 같은 내용의 칼럼을 어느 신문에 기고했다.


“대한민국은 무죄가 선고되는 재판의 비율이 보통법 국가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낮은 것으로 알려졌다. 무죄선고율의 분모에 피고인이 유죄를 인정하는 사건을 포함할 것인지, 분자에 일부무죄가 선고된 사건도 포함할 것인지 등에 따라 무죄선고율의 숫자는 크게 달라진다.


각국의 무죄선고율을 표준화된 방식으로 집계하는 통계자료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무죄선고율이 다른 나라에 비해서 얼마나 높은지 혹은 낮은지는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


그러나 대검찰청의 통계자료에 의하면, 제1심 재판에서 무죄가 선고되는 사건의 비율은 1%가 못 된다(2011년과 2012년의 경우 각각 0.63%). 반면, 미국의 경우는 주법원에서 무죄선고율이 16~41%에 이르고 (Coughlan, 2000. The American Political Science Review, 94, 375-393), 영국의 경우는 2009년에 크라운 법정에서 그 비율이 20%였다(BBC, 2012년 1월 6일). 이 비율들이 서로 직접비교가 될 수는 없더라도, 수십배가 넘는 큰 차이는 대한민국의 무죄선고율이 영미의 그것보다 현저히 낮을 것으로 의심하기에 족하다. 무죄선고율을 낮추는 요인은 많을 것이지만, 판사의 합리적 의심 기준과 더불어 검사의 기소 정확성이 중요한 요인이 될 수 있다.


합리적 의심 기준이 낮으면 무죄선고율이 낮아진다. 법원에서 사용하는 합리적 의심 기준이 현저하게 낮으면 무죄가 선고될 확률이 거의 없기 때문에 합리적인 형사피고인의 관점에서는 재판이 실질적으로 무의미하여 차라리 자백을 하고, 개전의 정을 연기해서라도 형량을 줄이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판단을 할 수 있다.


이때에는 ‘학습된 무기력’을 경험하는 피고인들이 유죄선고에 저항하지 않기 때문에 잠복된 유죄오판의 확률이 현저히 증가한다. 따라서 대한민국의 낮은 무죄선고율이 낮은 합리적 의심 기준에 기인한다면, 대한민국에서는 실체적 유죄오판의 빈도가 의외로 높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고, 유죄오판 확률에서 최소한 미국과 영국을 앞지를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반면, 무죄선고율이 낮은 이유가 판사들이 사용하는 합리적 의심 기준이 낮아서가 아니라, 검사들이 소위 ‘정밀사법’을 실천하고 있어서 기소가 정확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실체적 무죄인 피의자는 기소되지 않고, 실체적 유죄인 피의자만 기소되는 경향성 (즉, 기소의 진단성)이 높을수록 무죄가 선고되는 피고인의 비율은 낮아진다.


대한민국의 검사들이 정밀사법을 실천하고 있다면, 낮은 무죄선고율에도 불구하고 유죄오판이 거의 없거나 매우 적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검사가 영미의 검사보다 실체적 유무죄를 더 정확하게 파악하여 기소여부를 결정한다고 믿을만한 합리적 이유는 거의 없다. 다만, 대한민국의 검사와 판사는 지식구조와 교육적 배경 등에서 거의 동일하거나 유사하고, 비슷한 논리/경험칙을 사용하여 사고할 것이므로, 대한민국의 검사들이 판사가 유죄결정을 할지, 아니면 무죄결정을 할지를 배심원이 유무죄를 판단하는 외국의 검사들보다 더 잘 시뮬레이션하고, 더 정확히 예측할 것으로 추정된다. 검사가 판사에 대한 정확한 예측에 기하여 기소 여부를 결정하면, 무죄선고율이 현저히 낮아진다.


그 때문에 국민참여재판에서는 검사가 배심원들의 결정을 판사의 그것만큼 정확히 예측하지 못하여 무죄선고 비율이 법관재판에서의 그것보다 더 높게 나타나는 것일지도 모른다.


만약, 대한민국 검사들의 기소 정확성이 진실발견의 정확성이 아니라 판사행동에 대한 예측의 정확성이라면, 검사의 기소와 판사의 선고는 삼권분립제도가 가정하는 상호독립성이 없으므로 기소의 정확성은 무죄선고율에 영향을 전혀 주지 않는다.


이때에는 대한민국의 낮은 무죄선고율은 법원에서 사용하는 합리적 의심 기준이 상대적으로 비엄격하거나 낮은 것에 기인하고, 따라서 실체적 유죄오판이 상당수 잠복되어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무죄추정원칙과 적법절차에 헌법적 가치를 부여하는 대한민국에서 합리적 의심 기준을 국민참여재판의 배심원들에게 이해시키는 노력과 더불어, 그 기준에 대한 법관의 이해와 인식을 일반인들의 그것에 조화시켜서 제1종 오류 (무죄인 피고인에게 유죄를 선고하는 오류)의 가능성을 낮추는 것이 더 시급한지도 모른다. 판사의 제1종 오류 확률이 더 줄어들면, 판사의 결정에 대한 예측을 무시할 수 없는 검사의 기소도 더 정확해질 것이다.”


위 칼럼은 억측(臆測)으로 가득차 있다. 책상머리에서 아마 이럴 것이다 라고 자기 혼자 생각한 후 써 내려 간 것이다. 위 칼럼을 읽고 내가 느꼈던 감정은, 축구선수를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사람이 축구경기에 대하여 평을 할 때 축구선수가 느끼는 감정과 비슷했을 것 같다.


우리나라의 무죄 선고율이 서양의 선진국에 비하여 유독 낮은 것은 사실이다. 그 이유가 무엇이고, 어떤 문제점이 있을까?


먼저 위 칼럼에 대하여 같은 신문에 기고하여 반박한 내 글을 아래에 소개한다. 그리고 다음 번의 글에서 무죄선고율이 낮은 이유와 그 문제점에 대하여 설명하겠다.


“박교수님의 글을 흥미있게 읽었다. 영미법 국가에서는 무죄선고율이 16~41%에 이르는데 대한민국에서는 무죄선고율이 불과 1% 내외에 그치는 이유를 진단한 내용이었다.


박교수님은, 대한민국 판사들이 유죄에 대한 합리적 의심을 하는 정도가 낮기 때문에 무죄 선고율이 낮은 것이 아닌가하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이나 영국의 판사들보다 대한민국 판사들이 합리적 의심을 덜 하고 있다고 믿을만한 이유는 없다. 대한민국 판사들이 영미의 판사들보다 판단력이 떨어지는 집단이라는 근거도 없고, 유죄 선고를 할 때 검사에게 심리적 부담을 느끼는 일도 없기 때문이다.


무엇이 합리적 의심인가는 원래 매우 어려운 문제다. 신체 건강한 유부남, 유부녀가 대낮에 모텔에 들어 가서 1시간 뒤에 나온 것은 입증이 되었다. 그 유부남, 유부녀는 모텔에서 술만 마시고 나왔다고 주장한다. 그 경우 간통죄의 성립요건이 되는 성행위는 하지 않고 그들의 변명대로 단지 술만 마셨을 수 있다고 의심하는 것은 합리적 의심인가, 아닌가.


박교수님은, 대한민국의 검사와 판사는 지식구조와 교육적 배경 등에서 유사하고, 비슷한 논리/경험칙을 사용하여 사고할 것이므로 검사는 판사가 유죄결정을 할지 아니면 무죄 결정할지를 정확히 예측할 것으로 추정한다면서 무죄선고율이 낮은 것은 대한민국 검사들이 진실발견을 정확하게 하기 때문이 아니라 판사 행동에 대한 예측이 정확하기 때문인 것 같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대한민국의 검사와 판사는 지식구조와 교육적 배경 등에서 유사하고, 비슷한 논리/경험칙을 사용하여 사고한다라는 전제에는 수긍할 점이 많다. 따라서, 검사가 유죄라고 생각하는 사건은 판사도 유죄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많고 그 결과 무죄선고율이 낮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검사들은 유죄라고 판단해서 기소하는 것이지, 스스로 무죄인 줄 알면서도 판사가 이런 증거가 있는 사건에는 유죄를 잘 선고해 주더라는 식의 예측을 하고 기소하지는 않는다.


한편, 박교수님은 국민참여재판에서는 검사가 배심원들의 결정을 판사의 그것만큼 정확히 예측하지 못하기 때문에 무죄선고 비율이 법관재판에서의 그것보다 높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박교수님의 글에서는 일관되게 판사의 유죄 오판에 대한 가능성만 열어 두고 있다. 판사의 무죄 오판에 대한 가능성도 그에 못지 않게 존재한다. 국민참여재판에서 배심원들의 무죄 오판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감정에 휘둘리기 쉽기 때문이다. 유명한 O. J. Simpson 사건도 그 예 중 하나로 들 수 있다. 따라서, 국민참여재판에서 무죄율이 높은 이유는 실체적으로 무죄인 피고인을 판사보다 더 잘 찾아내서가 아니라 실체적으로 유죄인 사람을 무죄인 것으로 오판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에서의 무죄선고율은 고작 1% 정도이고 영미법 국가에서는 최대 41%에 이를 정도로 높은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영미법 국가에서 검사는, 경찰 등 수사기관이 수사한 내용을 기소하고 수사기관(행정부)의 대리인으로서 법정에서 공소사실을 입증하는 것이 주임무다. 우리나라의 민사소송에서 원고를 대리하는 변호사가 의뢰인의 말과 의뢰인이 수집한 증거로 소송을 제기하고 그 입증은 법정에서 하는 것과 유사하다.


반면, 우리나라에서 검사는 수사를 통하여 증거수집을 충분히 한 다음에 기소를 한다. 유무죄의 씨앗은 기소 단계에서 이미 잉태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즉, 부실 수사 때문에 무죄가 나지, 공소유지의 잘못으로 무죄선고가 나지는 않는다.


민사소송에서 변호사는 의뢰인의 말과 의뢰인이 수집한 증거를 바탕으로 소송을 제기하지만 100% 승소하리라고 믿지는 않는다. 법정에서 입증작업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영미법 국가에서는 형사소송 체계도 그와같다. 우리나라 형사소송법에서 수사기관은 참고인을 강제소환하지 못하게 되어 있고 법정에서만 증인을 강제소환할 수 있게 해 놓은 것도, 재판에 회부한 후 거기서 입증을 하라는 영미법적 사고에 바탕한 것이다.


정리하면 조금이라도 무죄의 의심이 들면 대한민국 검사는 기소를 하지 않기 때문에 무죄선고율이 낮은 것이다. 또한, 무죄선고율이 낮은 것이 수십년간의 관행으로 굳어져 있으므로 검사는 더욱 무죄 선고 받기를 두려워하게 된다. 박교수님이 사용한 심리학적 표현을 따르면 ‘학습된 무기력’인 것이다.


대한민국 검사는 영광스러운(?) 1%의 무죄선고율에 집착하면 안된다. 잘못 기소된 피고인은 재판을 통하여 억울함을 풀 수 있다. 검사의 나태한 수사 및 안일한 불기소 결정에 멍든 피해자는 누가 구제해주는가.(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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