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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 변호사 Jan 01. 2024

대학전쟁

高大  同門의 관점에서^^

대학전쟁은 쿠팡플레이에서 방영하고 있는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의 이름이다. (참고로 쿠팡의 와우회원이라면 쿠팡플레이를 무료로 볼 수 있다. 나는 뒤늦게 알았다.)


서울대, 카이스트대, 포항공대, 연세대, 고려대에서 각 4명의 학생들이 대표선수로 선발되어 두뇌 배틀을 한다. 


암기하고 있는 지식을 단답형으로 묻고 답하는 퀴즈 게임이 아니다. 미션을 해결해야 한다. 미션은 수학적 과제다. 수학적 과제라고 하여 수학 경시대회처럼 고차원의 수학문제를 풀라는 것은 아니다. 시청자들이 스스로 문제를 풀 수는 없지만, 보면서 문제 풀이 과정을 이해할 수는 있다.


예를 들면 이렇다. 번호 자물쇠가 달려 있는 조그만 금고 28개가 우편함 모양으로 배열되어 있다. 각 금고 안에는 숫자가 적혀 있는 숫자카드와 플러스, 마이너스, 곱하기, 나누기, 루트, 팩토리얼, 제곱 등의 연산자가 적혀 있는 수식카드가 한 장씩 들어 있다. 


각 팀은 암기를 맡는 선수와 연산을 맡는 선수로 나뉜다. 암기를 맡는 선수는, 게임판에 적혀 있는 28개 금고의 4자리 자물쇠 번호 28개를 5분 동안 외운다. 5분이 끝나면 그 기억으로 각 금고의 자물쇠를 10분의 제한시간 동안에 연다. 


금고를 열면 숫자 카드와 연산자 카드를 꺼내서 연산을 맡은 선수에게 전달한다. 금고를 많이 열면 숫자와 연산식을 그만큼 풍부하게 공급받게 된다. 


이제 타겟 숫자가 제시된다. 연산을 맡은 선수는 가지고 있는 숫자 카드와 연산식을 배열하여 그 타겟 숫자를 만들어 낸다.


비슷비슷한 4자리 숫자 28개를 5분 안에 (시간을 많이 줘도 나 같은 사람에게는 똑같을 것 같다) 외운다는 것도 너무너무 어렵고, 주어진 숫자와 연산식으로 까다로운 타겟 숫자를 10여 초 이내의 시간 내에 만들어 낸다는 것도 보통 사람으로서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4박 5일 동안 시합이 진행된다. 시합의 방식은 다음과 같다. 각 대학의 선수들은 베이스 캠프라고 부르는 각자의 방에서 대기한다. 에이스 선발전이 열린다. 주어진 문제의 해답을 베이스 캠프 안에 설치되어 있는 숫자 패드에 가장 빨리 입력하는 사람이 그 팀의 에이스가 정해진다.


첫날의 첫번째 문제는 다음 수식의 답을 암산으로 맞추는 것이었다.


428+591+972+879+919+174+342+567+603+298=?


문제를 맞추면 베이스 캠프에서 나와 메인홀로 나온다. 그렇게 해서 1등부터 20등까지의 순위가 정해진다. 전체에서 6등이라도 그 대학팀만 놓고 볼 때는 1등이라면 그 학생이 그 대학팀의 에이스가 된다.


1등을 한 에이스는 나머지 4개 대학 중 아무나를 대전 상대로 지목할 수 있다. 첫날에 전체 1등을 하면서 서울대의 에이스로 선발된 정현빈(의예과)은, 전체 4등으로 연세대 에이스로 선발된 박나윤(치의예과)를 에이스 매치 전의 상대로 지목했다. 에이스 매치를 이기면 메인 매치인 단체전에서 사용할 수 있는 베네핏(benefit)을 얻을 수 있다.


첫날의 에이스 매치 게임은 소수(素數) 맞추기다. 많은 숫자가 나열되어 있는 게임판에서 암산으로 소수들을 골라내야 한다. 무지 어렵다. 1141은 소수인가, 아닌가? 더구나 황당한 것이 중간에 히든 소수까지 있다. 


1100~1180 사이에 있는 물음표로 표시된 숫자가 무엇인지를 알아 맞춰야 한다. 즉 1100~1180 사이에 있는 소수 중에 게임판에 나와 있지 않은 소수 1개를 추측해서 알아 맞추는 것이다. 그런데 정현빈은 놀랍게도 알아 맞춘다. 서울대 후배는 말한다. “저 형은 머리에 뉴런이 아니라 반도체가 들어가 있어.”


메인 매치가 시작되었다. 게임판에는 300개의 연산문제가 빼곡하게 기재되어 있다. 쉽지 않은 문제들이다.


각 대학 팀들은 300개의 연산문제를 풀어야 한다. 풀고 난 다음에 정답은 태블릿에 입력해야 하는데 태블릿의 입력 칸은 10페이지로 되어 있다. 한 페이지에 30개씩 정답을 입력하여야 하는 것이다. 


300개의 정답을 입력하면 컴퓨터가 오답 개수를 알려준다. 가장 빨리 300개의 정답을 입력하면, 즉 오답 갯수가 0이 나오게 하면 그 팀이 우승한다.


그 오답 갯수가 0이 나오게 하는 순서대로 1위부터 5위까지 정해지고 상위 3개팀은 다음 라운드에 진출하고, 하위 2개팀은 데스 매치에 들어가서 1팀은 탈락하게 된다.


첫 날에 포항공대가 탈락하였다. 이제 서울대, 카이스트, 연세대, 고려대, 4개 대학이 남은 경기를 치르는가 했는데 서프라이즈가 있었다. 하버드 대학이 등장한 것이다. 하버드 팀은 한국말을 이해하는, 그러나 자기들끼리 대화할 때는 영어가 더 편안한 교포학생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첫 게임 부전승의 혜택을 입었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4박 5일 동안 5차전을 벌여서 최종 우승팀이 결정된다. 물론 에이스 매치와 메인 매치의 미션은 매 게임마다 다르게 주어진다. 


대학전쟁에서 고려대는 서울대, 카이스트, 포항공대, 연세대, 하버드대의 팀원들에게 시종일관 무시당했다. 데스 매치의 상대로 고려대가 이구동성으로 선호되었다. 수능평균으로 측정되는 평균학력에서 참가팀들 중에서 제일 떨어져서 그런 모양이다.


나는 고려대를 나왔다. 그러다 보니 마치 내 자식들이 출전한 것처럼 느껴져서 대학전쟁 프로그램을 객관적으로 즐길 수가 없었다. 


고려대 선수들이 타 대학팀으로부터 업신여김을 당할 때는 나라 잃은 백성처럼 분했고 고려대 선수들이 게임을 하고 있을 때는 올림픽에서 한국팀이 경기할 때 그러듯이 조마조마 가슴을 태웠다. 회가 거듭할수록 너무 긴장돼서 한 번에 다 보지 못하고 중간 중간에 쉬면서 마음의 안정을 구하기도 했다.


고려대는 타 대학들로부터 제1 순위의 탈락 후보로 평가되었지만 끈질겼다. 내가 대학 다니던 시절에 ‘3대 바보 이대생’이라는 우스개가 있었다. ‘서울대생과 사귀면서 이 남자와 결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이대생, 연대생과 사귀면서 이 남자의 여자친구가 자기 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이대생, 고대생과 사귀면서 이 남자를 찰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이대생’


서울대팀의 개인역량은 막강하였다. 수능만점을 받고 의예과에 입학했다는 정현빈, 수능 1개를 틀리고 서울대 사회과학대 수석을 했다는 경제학부 경도현은 무시무시했다. 과학고를 나왔다는 전기정보공학부 송현석도 결정적인 순간에 큰 역할을 했다. 


축구선수 메시의 플레이를 보면서 늘 드는 의문이 있었다. 세계 최고의 수비수들이 왜 메시에게 추풍낙엽처럼 나가 떨어질까. 


대학전쟁에서 정현빈을 보면서 그 의문이 어느정도 풀렸다. 왜 메시를 인간계가 아닌 신의 경지라고 부르는지도 알았다. 


정현빈의 두뇌는 그냥 달랐다. 출연자 중 누군가가 말했듯이 뇌의 용량이 보통사람들의 2배는 되는 것 같았다. 메시의 운동능력도 그럴 것이다.


고려대 선수들도 우수했지만 압도할만한 역량을 가지지는 못했다. 홍일점 여학생인 이지수는 팀의 전력을 누수시킬 때도 있었다. 그렇지만 고려대의 김정민이 1:1 매치에서 하버드의 제니스를 이기는 순간 옆에 있는 서울대의 경도현에게 귀여운 삿대질을 하면서 "봤냐? 우리 오빠, 봤냐구?" 할  때 이지수가 얼마나 예쁘게 보였는지 모른다. 고려대 여학생은 늘 그렇게 남학생을 지지해줬다.


포항공대, 카이스트, 연세대, 하버드대가 하나 하나씩 탈락했다. 놀랍게도 고려대는 끝까지 살아 남았다. 


연세대와 고려대가 데스 매치를 할 때는 나는 너무 긴장을 해서 숨도 못 쉴 정도였다. 다른 대학에서 고려대를 만만하게 볼 때보다 연세대가 그럴 때 더욱 괘씸했기 때문이다. 바깥에 나가면 연세대와 고려대가 특별히 친하게 지내야 한다고 믿어서 그랬다. 연세대 화력이 센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기어코 고려대가 이기고 말았다. 


5일째인 마지막 날, 결승전에서 고려대와 서울대가 붙었다. 나는 안다. 고려대가 서울대를 이길 확률은 서울대 농구팀이 고려대 농구팀을 이길 확률만큼 거의 희박하다는 것을. 


기적을 바라면서 봤다. 선전하였지만 졌다. 준우승을 했다. 그렇지만 대학전쟁에서는 학교 이름을 나열할 때마다 고려대를 맨 꼴찌에 두었었는데 장한 일을 한 것이다. 충분히 박수받을 자격이 있었다.


우리가 보는 경기는 대부분 몸으로 하는 것이다. 운동경기도 그렇고, 춤 시합도 그렇다. 


대학전쟁은 넷플릭스에서 하던 데블스 플랜보다도 훨씬 수준이 높았다. 당연하다. 선수들의 수준이 데블스 플랜의 출연자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았으므로. 


게임 방식에서도 잡것을 일체 섞지 않고 순수하게 두뇌로만 승부를 하였다. 그러면서도 어느 스포츠 경기 보는 것 이상으로 박진감 넘쳤다. 9회말 투아웃에서의 만루상황과 같은 쓰릴을 과장없이 여러 번 느꼈다.


두뇌는 수리능력 말고도 예술능력 등 다른 여러가지를 포함한다. 하지만 그런 능력을 테스트하는 경기를 만들기는 어려울 것이다. 수리능력 테스트는 결과가 분명하므로 즉 승패가 분명하므로 스포츠 경기처럼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우수한 학생들의 맹활약을 보면서 저런 사람들이 과학기술을 발전시켜 인류에게 이바지하는구나 하는 안도의 마음도 들었고 저런 우수한 학생들이 의대나 치대에 몰리는 현상이 안타깝기도 하였다.


‘대학전쟁’!, 아주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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