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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 변호사 Dec 25. 2023

데블스 플랜에서 본 전략

전략의 좋은 예시

넷플릭스에서 ‘데블스 플랜’을 봤다. 머리 좋다고 소문난, 또는 추측되는 연예인들을 모아서 여러가지 게임을 하게 하고 최종우승자를 가리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다.


12명의 참가자들은 6박 7일 동안 합숙을 하면서 다양한 종류의 게임을 한다. 게임을 통하여 코인을 얻기도 하고 코인을 잃기도 한다. 코인을 다 잃은 사람이 탈락하는 방식이다. (여기서는 코인을 piece라고 부른다)


게임이 진행되면서 한 명, 한 명씩 탈락하고 마지막 날에 두사람의 후보로 압축되었다. 유튜버인 궤도와 탤런트 하석진이다. 두사람이 세 종류의 게임을 하고 그 중 두 판을 이긴 사람이 우승자가 되는 방식이다. 우승상금은 2억 5천만원이다.


결승전의 두번째 게임은 헥사곤(육각형)이다. 큰 육각형 모양의 게임판에 숫자가 적혀 있는 작은 육각형 19개의 패널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참가자는 30초 동안 그 숫자와 그 숫자가 적혀 있는 패널의 위치를 암기하여야 한다. 30초가 지나면 패널들은 뒤집어 지면서 알파벳이 적힌 패널로 바뀐다. 게임판 옆에 타겟 숫자가 제시된다.


두사람은 알파벳의 조합으로 타겟 숫자를 만들어 내야 한다. 예를 들어 3의 숫자가 적혀 있던 패널이 뒤집어 지면서 알파벳 A로 바뀌었고, 7의 숫자가 적혀 있던 패널이 뒤집어 지면서 알파벳 D로 바뀐 것이라면 A+D는 10이고 D-A는 4가 될 것이다. 이렇게 알파벳을 조합하여 타겟 숫자를 만들어 내야 한다.


타겟 숫자는 계속하여 제시되고 두사람은 부저를 눌러서 정답을 맞출 기회를 얻는다. 정답을 맞추면 플러스 1점, 오답이면 마이너스 1점이 된다. 예정되어 있는 타겟 숫자가 모두 제시되거나 90초 동안 두사람 모두 부저를 누르지 않으면 그 라운드가 종료된다. 이런 방식으로 10라운드가 진행되어 누적점수로 승자가 결정된다.


게임판 안의 숫자는 19개다. 타겟 숫자를 만들어 내려면 그 숫자를 좌우로, 대각선으로 어떻게든 연결시켜 조합을 만들어 내야 한다. 그런데 불과 30초 후에 그 숫자들은 알파벳으로 변신하므로 정답을 맞추는 것은 극강의 어려운 일이 된다.


더구나 오답을 부르는 순간 감점이 되고, 오답을 불렀을 때 정답이 공개되지도 않으므로 정답 시도에 대한 보상도 없다.


그런데 라운드가 진행되면서 하석진은 령을 터득한다. 궤도는 30초 동안 19개의 숫자와 위치를 외우려고 애를 쓰는데 반하여 하석진은 양쪽 대각선의 줄에 있는 숫자만 외우고 나머지 숫자는 포기한다. 즉 게임판 위에 가상의 X를 그리고 그 X 선상에 있는 숫자만 외우는 것이다.


이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타겟 숫자가 그렇게 크지 않기 때문이다. X 선상에 있는 숫자만 가지고도 타겟 숫자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을 하석진은 알아챈 것이다.


X 선상에 있는 숫자만 제대로 외워서 그것만으로 타겟 숫자를 확실하게 구성할 수 있을 때만 부저를 누르고, X선상의 숫자만으로 타겟 숫자를 만들어 낼 수 없을 때는 침묵함으로써 오답에 따른 감점을 피하는 전략이었다. 경쟁자인 궤도가 초반에 오답을 남발하여 점수차가 제법 나 있었다는 점도 이 전략을 택한 이유가 되었다.


궤도는 매 라운드마다 19개의 숫자와 그 위치를 다 외우려는 전략을 고수했다. 그러나 천재가 아닌 한 30초 안에 19개의 숫자와 위치를 100% 암기할 수는 없다. 자기 능력을 넘는 전략을 짠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렇게 전략을 짠 것이 아니라 전략이 없었던 것이다.


하석진이 헥사곤 게임에서 승리하였다. 하석진은 최종우승자가 되었고 2억 5천만원의 상금도 거머쥐었다.


하석진은 반칙을 한 것도 아니고 이른바 잔머리를 굴린 것도 아니었다.


궤도는 10 라운드의 게임이 진행되는 동안 계속하여 같은 전략을 구사했다. 대상의 세계가 고정되어 있는 일은 절대 없으므로 ‘계속하여 같은 전략’은 ‘전략의 부재’와 다름없다.


반면에 하석진은 게임을 하면서 게임의 요령을 터득하였다. 자기의 자원(암기력)의 한계를 받아들였고, 점수 차가 벌어져 있는 상황도 활용하였다.


누구나 되돌아보면 “아, 그 때 그렇게 했어야 했지!” 하고 정답을 찾을 줄 안다. 하지만 그 와중에 있을 때는 두려움 또는 욕심 때문에 허우적거리기만 한다. 전쟁 중에서도 여유를 낼 수 있어야지 좋은 전략이 나온다.


또한 좋은 전략은 자신의 한계를 파악하고 받아들일 줄 알아야 나온다. 돈과 시간, 그리고 DNA는 사람마다 다르게 주어진다. 시간은 나이의 함수다. 20대의 전략과 60대의 전략이 달라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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