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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 변호사 Sep 12. 2023

더 웨일(THE WHALE)

시간 선물

넷플릭스 해지를 두 번쯤 했다. 그리고 다시 가입했다. 해지의 이유는 볼 게 없어서이고 재가입의 이유는 ‘한 달에 한 건이라도 건지면 월정액 값 하는데, 뭐’이다. 


탈북한지 얼마 안되는 탈북자라면 넷플릭스의 모든 드라마, 영화가 신세계였을 것이다. 신세계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재미는 ‘새로움’에서 나온다. 몇 년씩 넷플릭스를 장복하다보면 대부분 그게 그거다. 약간의 변주를 보려고 시간을 쓰기는 싫다. 갈수록 보는 맛이 까다로워져서 최소한의 인내심도 없어졌다.


영화 ‘더 웨일’은 썸네일 영상이 우중충하여 보지 않으려고 했다. 우울한 이야기는 뉴스로 충분하다. 가상의 세계에서까지 답답한 이야기를 들어주기는 싫다.


넷플릭스에서 끈질기게 더 웨일을 소개하기에 일단 앞부분만 보려고 들어갔다. 책을 읽을 때는 기다려 주는 아량이 있지만 영화, 드라마의 경우에는 미련없이 손절한다. 한 때는 결말이 궁금해서 빨리감기로 보거나 그것도 지겨우면 마지막 회의 뒷부분만 보는 편법을 쓰기도 했지만, 요즘은 가차없다. 


더 웨일의 시작 장면은 충격이었다. 거대한 살덩어리인 주인공 찰리는 남성끼리 섹스하는 동영상을 틀어 놓고 살에 묻혀 잘 보이지도 않을 것 같은 물건으로 자위를 하고 있다. 초고도 비만이므로 당연히 고혈압이다. 절정에 다다르면서 흥분한다. 그 순간 심장에 압박을 느끼고 헐떡인다. 심장이 멎는 듯하자 응급약을 찾듯이 옆에 있는 비닐 폴더를 허우적거리며 찾는다. 폴더 안의 종이를 꺼내서 몇 줄 읽는다. 


밖에서는 폭우가 쏟아지고 있다. 누군가 문을 쾅쾅 두드린다. 평소 돌봐주는 리즈가 온 줄 알고 찰리는 빨리 들어와서 자기를 구해달라고 소리친다. 들어온 사람은 생면부지의 젊은 선교사다. 


위급한 상태인 것을 알아차린 선교사는 119를 부르려고 하지만 찰리는 ‘병원은 됐고’하면서 들고 있던 종이를 준다. 종이에 적혀 있는 것을 읽어달라고 한다. 선교사는 어리둥절한다. 찰리는 소리친다. 선교사는 읽는다. 모비 딕(백경)을 읽고 쓴 짧은 독후감이었다. 찰리는 안정을 찾는다.


왜 찰리는 급박한 상황에서 그 글을 읽어달라고 했을까? 몹시 궁금했다. 본격적으로 그 영화를 봐야겠다고 마음먹는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사람은 몇사람 안된다. 배경이 되는 장소도 80% 이상이 찰리의 집 안이다. 회상 장면에서 다른 장소가 짧게 가끔씩 나올 뿐이다. 마치 연극을 보는 것 같다. 아니나다를까 엔딩 크레딧에서 원작이 연극이라고 나온다. 그리고 연극 극본을 쓴 사람이 이 영화의 각본도 썼다,


영화 보는 내내 초고도비만자인 찰리가 일어서고 움직일 때마다 가슴이 먹먹해진다. 찰리에게는 일어서는 일조차 힘든 일이다. 보행기의 도움 없이는 걷지도 못한다. 먹지 않으려고 참다가 결국 폭발할 때는 미친듯이 먹는다. 폭풍흡입이라는 말은 진짜 이 경우에 해당한다. 연민의 정을 느끼다가도 그런 모습을 보면 어쩔 수 없이...


찰리는 대학교에서 작문을 가르친다. 온라인 수업이다. 모니터에 학생들의 얼굴은 모눈종이의 모눈처럼 작은 창에 빼곡하게 뜨는데 찰리의 얼굴이 있어야 할 instructor의 칸은 까맣다. 찰리는 자기 컴퓨터의 카메라가 고장이 나 있고 아직 못 고쳐서 그렇다고 둘러댄다.


괴물의 몸을 가지고 있지만 지적이고 선량한 사람이다. 그러나 움직이지 못하니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 말끝마다 “I am sorry”를 연발한다. 계속해서 미안하다고 말을 해야 하는 인생은 얼마나 비참한가.


찰리는 딸이 있다. 자신의 성적(性的) 지향이 확립되지 않았을 때 또는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애써 부인하고 싶었을 때 결혼을 하였기 때문이다. 딸이 8살 되던 해에 자신의 제자에게 불가피한 사랑을 느끼게 된다. coming out을 하면서 집을 떠난다. 그 때부터는 그 제자와 동거생활을 시작한다. 얼마되지 않아 그 남성파트너는 강물에 몸을 던져 생을 마감한다.


찰리를 돌봐주는 사람은 그 남성파트너의 여동생 리즈다. 리즈는 찰리의 전재산이 800달러 정도인 것으로 알고 있다. 경제적 대가를 기대하지 않고 찰리를 보살핀다.


찰리의 혈압은 걷잡을 수 없이 높아지고 울혈성 심부전까지 되었다. 살 날이 며칠 남지 않았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찰리는 용기를 내서 딸 엘리에게 전화를 한다. 


찰리는 마지막의 며칠을 엘리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다. 엘리는 이제 17살이다. 잘 자라주었다면 좋았겠지만 비뚤어질대로 비뚤어진 아이다.


엘리가 아버지를 찾아온 이유는 돈을 뜯어낼 수 있을까해서이다. 찰리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 가지고 있는 현금 십몇만 달러 전부를 주겠다고 약속한다. 또한 낙제를 목전에 둔 엘리에게 에세이를 대신 써주겠다고도 한다.


찰리는 누구에게서나 긍정적인 면을 찾는 사람이다. 사랑하는 딸에게는 더욱 그렇다. 독설을 퍼붓고 패악질을 해대는 엘리에게 “너는 놀랍게 뛰어난 아이야, 배려심 많은 아이야, 완벽한 아이야.” 같은 황당한 칭찬을 주문처럼 계속한다.


영화는 종교가 찰리 같은 사람을 구원할 수 있는지에 대하여, 종교가 오히려 살아있는 사람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에 대하여 고전적인 질문을 던지는데 선교사는 그 역할을 위해서 필요한 인물이다. 또한 그에 못지 않는 다른 중요한 역할을 하기 위해서도 필요한데 그 이야기까지 하면 너무 길어지므로 생략.


찰리를 돌보아주던 릴리는 찰리가 십만 달러가 넘는 돈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배신감을 느낀다. 찰리는 그 돈을 지키기 위하여 병원에 가지도 않았고 초고도비만자를 위한 여러가지 보조기구도 사지 않았다. 찰리가 그 돈을 썼다면 릴리가 고생을 덜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찰리에게는 엘리가 전부이므로 그럴 수밖에 없었다. 


엘리는 그렇게 자기를 사랑했다면 왜 8살 때 자기를 버리고 떠났느냐고 찰리를 몰아세운다.


한 번은 문가에 서서 찰리에게 소파에서 일어나 자기가 서 있는 곳까지 보행기 없이 걸어 와보라고 한다. 찰리는 온갖 힘을 내서 간신히 일어서지만 한 발도 채 내딛기 전에 주변의 가구들이 부숴지는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쓰러진다.


찰리의 인생은 잘못투성이였다. 젊은 남자와 사랑에 빠져서 가정을 버린 것도 잘못이었고 그 남자가 죽자 폭식을 하여 고래(The Whale) 같은 덩치가 된 것도 잘못이었다.


임박한 죽음 앞에서 찰리는 잘못으로 점철된 자기의 인생에서 의미를 찾는다. 의미가 구원이기 때문이다. 찰리에게는 엘리의 존재가 그 의미가 된다.


영화 끝부분에서 영화 시작 장면의 의문이 풀린다. 찰리가 선교사에게 다급하게 읽어달라고 했던 모비 딕에 대한 독후감은 엘리가 8살 때 쓴 글이었다. 몇 문장 안되지만 매우 독창적이다. 


이제 마지막 장면이다. 엘리는 울먹이면서 자기가 어릴 때 썼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했던 그 글을 찰리의 간청으로 읽는다. 


"허먼 멜빌이 쓴 걸작, 모비 딕은 저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책의 초반부엔 작중 화자인 이스마엘이 작은 어촌에서 퀴퀘크라는 남자와 한 침대에 누워 있다. 이스마엘과 퀴퀘크는 교회에 갔다가 배를 타고 출항하는데 선장은 해적인 에이헤브다. 그는 다리 하나가 없고 어떤 고래에게 앙심을 품고 있다. 고래의 이름은 모비 딕. 백고래다. 내용이 전개되면서 에이해브는 많은 난관에 직면한다. 그는 평생을 그 고래(THE WHALE)를 죽이는데 바친다. 안타까운 일이다. 고래는 감정이 없기 때문이다. 자길 죽이려는 에이해브의 집착도 모른다. 그저 불쌍하고 큰 짐승일 뿐. 에이해브도 참 가엽다. 그 고래만 죽이면 삶이 나아지리라 믿지만 실상은 그에게 아무 도움이 안될테니까. 난 이 책이 너무 슬펐고 인물들에게 다양한 감정을 느꼈다. 고래 묘사만 잔뜩 있는 챕터들이 유독 슬펐다. 자신의 넋두리에 지친 독자들을 위한 배려인 걸 아니까. 이 책을 읽으면서 내 삶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다행이라는 생각을…”


엘리가 펑펑 울면서 그 글을 읽는 동안 찰리는 다시 한 번 일어서서 걷기에 도전한다. 


엘리가 얼마나 똑똑한 아이였는지를 증명하는 그 글은 찰리가 죽는 순간 옆에 두고 싶었던 의미이자 희망이었다. 그 글을 엘리가 자기 눈 앞에서 직접 읽고 있는 것을 보고 행복해서 찰리의 만면에 미소가 번진다. 한편, 일어서서 걷는 일이 너무도 힘들기에 고통으로 얼굴이 일그러지기도 한다. 마침내 몇 발을 걷는다. 그리고 밝은 빛과 함께 그 무거운 발이 허공으로 뜨기 시작한다.


모비 딕의 완역판이 나왔을 때 나도 읽었다. 정말 지겨운 넋두리가 계속된다. 그러다가 고래 이야기가 끝없이 나오는데 나는 위로를 받기는커녕 더욱 가중처벌을 받는 느낌이 들었다.


엘리가 쓴 독후감은 잘 쓴 글이었다. 8살 짜리가 썼다고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찰리의 자부심은 근거가 있는 것이었다. 


8살의 영특한 아이가 쓴 것처럼 독후감을 만든 작가는 당연히 대단한 사람이다. 보는 내내 완전 몰입할 수 있도록 총괄한 감독도 대단한 사람이다. 


그렇지만 최고는 찰리를 연기한 배우다. 우와, 압권인 연기를 보여줬다. 강렬하지 않지만 쉬지 않고 가슴을 쥐어짜게 만든다. 영화 보기 전까지 아무런 정보가 없었으므로 영화가 끝나자마자 도대체 이 배우가 누군가 싶어서, 어디서 이런 초고도비만자 배우를 구했나 싶어서 검색해 봤다. 놀랍게도 미이라에 나왔던 그 미남배우였다. 이름은 몰랐었는데 Brendan Fraser란다. 


이 영화로 그가 올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은 사실도 알게 됐다. 키가 1미터 90센티미터가 넘고 뱃살이 두툼한 원래 비만형 거구였지만 영화에서 보여주는 무시무시한 살덩어리는 몇시간 동안 실리콘을 붙여서 만든 것이라고 한다. 놀라운 분장기술이다. 영화는 종합기술, 종합예술이다.


인생은 시간으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 중요하다. 좋은 책, 음악, 영화, 드라마에 대한 정보를 주는 사람은 내게 시간 선물을 해주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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