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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 변호사 Aug 20. 2023

하루의 배분

중요한 일>급한 일


한 달 전쯤 수임한 두 개의 사건 때문에 요즘 생고생을 하고 있다. 사건 하나는 피의자를 변호하는 업무고 나머지 하나는 고소를 대리하는 업무다.


까도 까도 새로운 껍질이 나타나는 양파처럼 두 개의 사건 모두 사건의 실체가 파악되지 않는다. 의뢰인의 말과 증거자료가 일치하지 않는다.


무책임하게 일을 하려면 의뢰인이 말하는 그대로 법률서면을 작성하고 의뢰인이 주는 자료 그대로 증거로 제출하면 된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는 없다.


검사결과는 환자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으로 나오는데 환자 말을 그대로 믿고 처방을 하는 의사는 없을 거다. 그렇지만 검사 결과만 무턱대고 믿을 수는 없으므로 어떻게든 환자에게 바른 말을 듣고 싶다.


두 개의 사건 모두 그런 상황이다.


계속해서 주말마다 새벽부터 사무실에 나가고 매일같이 의뢰인과 미팅을 한다. 말과 증거가 맞지 않으니까 자꾸 그렇게 시간을 허비하게 된다.


어제, 오늘도 연달아 새벽에 사무실에 나갔고 진도는 나가지 않았다.


화를 삭이면서 오후를 보냈다.


지금 책상에 앉아서 생각한다.


이런 식으로 살면 안된다. 의뢰인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를, 나의 생활을, 나의 인생을 잃어가면서까지 하는 것은 좋지 못하다.


내일부터는 출근 전에 피트니스 센터에서 하는 운동을, 일 때문에 빼먹는 일은 없도록 하겠다. 시간이 부족해서 아침 운동을 거르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빼먹게 된다.


급한 일이 중요한 일을 먹어 치우는 꼴이다. 어떤 경우에든 중요한 일이 급한 일보다 우선되어야 한다. 중요하지 않은데 급한 일은 소심함 때문에 생긴다. 소심은 자기를 갉아먹는 마음의 암이다.


점심을 먹는 시간인 오후 1시까지만 수임사건 관련 일을 하겠다. 마치지 못하면 그 다음 날 오전에 다시 한다. 책갈피 끼우고 책을 덮었다가 그 다음날 다시 펼쳐서 읽는 것과 같다.


오후에는 글을 쓰겠다. 진심으로 쓰겠다. 잡문을 쓰겠다는 것이 아니다. 남은 노후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생산적인(돈을 만들 수 있는) 작업이 되어야 한다.


퇴근 후에는 책을 읽든가, 영화를 보거나, 아니면 제대로 음악을 듣겠다. 음악은 유일하게 눈을 쉴 수 있게 해주므로 중요하다. 명상은 다름 아닌 지금 이 순간을 느끼게 하는 집중훈련이다. 고전음악 듣기는 그런 의미에서 일종의 명상이다. (이렇게 말하면 명상하는 분들에게 야단 맞을지는 모르겠다. 원래 무식한 사람이 대상을 단순하게 파악한다. 이해해주시길...)


계획을 글로 옮길 때는 마치 실현된 것처럼 기분이 좋다. 그러나 역시 중요한 것은 실천이다.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말은 실천에서 숱한 좌절을 경험해 본 사람에게는 크게 와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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